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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563화 (1,560/1,794)

템빨 78권 - 2화

전전대 검성이자 전대 검성 뮐러의 스승.

비반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다.

본인 스스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역대 최강의 검성을 키워냈으니까.

탑의 결사가 되기 전부터 이미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이다.

그가 직간접적으로 구해낸 인명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무조건 그를 존경했다.

브라함이 이상한 프레임을 씌우기 전까진 그랬다.

‘무능해서 제자에게 추월당했다’는 프레임 말이다...

브라함이 비반을 신랄하게 비판하자 사람들의 마음속에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비반이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덜 위대하지 않을까, 그런 의심이었다.

애초에 검성은 무적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크라우젤이 증명했다.

검성 중에서도 유독 뮐러가 특별했던 걸 수도 있다는 게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그래, 비반은 생각보다 약할 수도 있다.

그가 쌓아올린 명성 중 상당수가 제자 뮐러 덕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이 됐다.

그러므로 위기다.

“흐음, 템빨신을 기다렸는데 말이지.”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가 달린 기형적인 존재.

짐승마냥 긴 혀로 갈기를 핥아대며 서서히 일어나는 놈은 몹시 거대했다.

코끼리와 나란히 있어도 몇 배는 거대할 몸집인데, 정작 머리는 인간 크기다. 우습기보다 기이했다. 마기에 너울거리는 새카만 갈기가 살아있는 뱀처럼 보여서 더욱 그랬다.

제6위 대악마, 발레포르.

크기부터 비반을 압도하는 놈의 기세가 흉흉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쿵쿵 땅이 울리고 하늘에선 꽝꽝 벼락이 내리쳤다.

“으아아...”

사람들이 할 말을 잃었다.

제4위 대악마 가미긴의 강함을 상기하면서다.

브라함과 호각을 이뤘던 가미긴.

비록 뒤늦게 합류한 그리드에게 거의 일합에 베여 죽긴 했지만, 그때 놈은 이미 많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지상이었던 점을 고려해야했다.

악마는 지상에서 몇 배나 약화된다.

지옥에 있는 6등위 대악마는 지상에 있는 4등위 대악마보다 훨씬 더 강력할 여지가 컸다.

비반은 상대를 잘못 만난 셈이다.

차라리 바알의 심복들에게 고립 된 다른 결사들과 사도들의 사정이 나아보일 지경이었다.

그나마 바알의 심복들은 개체별로 무위의 격차가 컸으니까.

하지만 일단 대악마라는 타이틀을 단 놈들은 네임드였고 최소 기본 이상은 했다.

하물며 그게 한 자릿수 대악마라면 지옥의 주력이라고 봐야 옳았다.

“그리드를 기다렸다고? 왜? 혹시 둘이 친한가?”

“뭐...? 인간들은 말장난을 그런 식으로 하나? 재미는 없고 불쾌하기만 한데.”

“그럼 안 친한가?”

“그런 당연한 말을...”

“친하지도 않으면서 그리드를 기다린 이유가 뭔가?”

“용언에 이골이 난 용잡이라서 그런가. 지껄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지고 짜증이 치솟는 걸 보면 언령에도 일가견이 있어.”

눈살을 찌푸린 발레포르가 앞발을 크게 휘둘렀다.

발톱 하나의 크기가 비반의 몸보다 컸다.

그런 게 몇 갈래로 뻗어오니 거대한 쇠창살이 덮쳐오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갇혀버린 뒤 몸이 몇 등분으로 나뉠 것만 같았다.

실제로 피할 길을 찾지 못한 걸까.

비반은 가만히 굳어있었다.

보는 이들을 아찔하게 만드는 광경.

너도나도 눈을 감기 시작하는 그때.

퍼엉!!

결국 끔찍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비반의 몸이 갈기갈기 찢기다 못해 폭발하면서 난 소리 같았다.

차마 눈을 뜨지 못하는 사람들의 귓전에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스며들었다.

키야아아악...

그건 분명히 악마의 목소리였다.

제6위 대악마 발레포르가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금 하늘로 향했다.

하늘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지옥의 풍경 중 하나를 보았다.

잘려나간 한쪽 발을 붙들고 몸서리치는 발레포르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드를 만났으면 뭐 어쨌을 거냐는 말일세.”

비반은 집요하게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를 노려보는 발레포르의 눈에는 이제 짜증과 분노가 아닌 혼란이 깃들었다.

“방금, 뭐지?”

발레포르의 발톱은 그 어떤 병장기보다 단단하고 날카롭다.

한데 베였다.

마치 수십 개로 분열하는 듯한 잔영을 남긴 일검에.

몹시 기이한 검술이었다.

비반은 검을 단 1회 휘둘렀으나, 정작 그가 휘두른 검은 발레포르의 발톱을 수십 차례 가격했다. 진동을 일으키며 점차적으로 파고든 끝에 베어버렸다.

과거에 유명했던 무쌍검법과는 또 달랐다.

“풍문으로 들었던 뮐러의 검술과 크게 다른데?”

발레포르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멎었다.

어느새 앞발을 완전히 재생시킨 놈이 재차 으르렁거렸다.

“당연히 달라야지.”

비반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뮐러가 나의 검술을 발전시켰듯이 나 또한 내 검술을 발전시켰으니까.”

검기의 고속 운용을 통해 검날을 진동시키는 수법.

어디까지나 이론으로만 가능했던 기술이다.

하지만 그리드가 실현시켜줬다.

그리드가 선물해준 이 드래곤 웨폰이 검기의 흉포함을 견뎌주었기에.

“자, 이제 말해 보시게.”

쏴아아아아...

지옥의 풍경이 서서히 변해갔다.

검의 형태를 이룬 은색의 검기 수천수만 개가 지상과 하늘을 유영하며 어둠을 걷어갔다.

검기 하나하나가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때문에 은색의 파문이 겹겹이 생겨났다.

“뭣...”

검성의 심상세계.

셀 수 없이 많은 저 검기 하나하나가 개세적인 위력을 품고 있음을 느낀 발레포르가 위축됐다.

이 안에서 싸우는 건 어리석다. 장소를 바꿔야한다.

빠르게 판단하고 텔레포트를 발동했지만 술식이 완성되질 않았다.

은색 검기의 파문이 방해했다.

“칫...!”

조금 더 초조해진 발레포르가 네 발을 이용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무거운 몸을 질풍처럼 움직여 심상의 끝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도중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쿠우우우우우웅!!

태산보다 거대한 대검.

하늘에서 내려와 꽂힌 건지, 땅에서 솟구쳐 오른 건지 분간할 수 없는 그 커다란 대검이 발레포르의 앞길을 막아버렸다.

화들짝 놀란 발레포르가 즉시 경로를 바꿨지만, 그 앞에 또 다른 대검이 나타나 섰다.

쿵! 쿵! 쿠우우웅!!

연달아 나타난 대검은 총 다섯 개.

그것이 성벽을 이루어 발레포르를 가두기까지 찰나였다.

코끼리보다 족히 몇 배는 컸던 발레포르가 콩알보다 작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발레포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위로 들었다.

유일한 퇴로를 확인하는 몸짓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비반이 점령하고 있었다.

허공에 떠오른 검을 밟고 선 그가 은빛 하늘을 등진 채 말했다.

“그리드를 만났으면 뭘 어쨌을 겐가?”

“이 노망 난 늙은이가... 왜 자꾸 쓸데없는 걸 묻는 거냐? 당연히 죽여 버렸을 거다. 내가 가미긴보다 낫다는 사실을 증명...”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가?”

“...?”

“나는 혹시 자네가 그리드의 부하가 되고 싶은 게 아닐까 오해했지 뭔가.”

“미친놈이!!”

마기로 날개를 펼친 발레포르가 날아올랐다.

검으로 둘러싸인 절벽을 순식간에 넘어서 비반에게 발톱을 휘둘렀다.

위력이 무지막지했다.

팔을 내뻗는 동작이 일으킨 풍압에 의해서 다섯 자루의 대검이 크게 들썩였을 정도다.

하지만 비반은 동요하지 않았다.

“드래곤과 비교하면 애송이구만.”

비반이 등진 하늘이 은빛인 이유는 그의 등 뒤로 수만 개의 검기가 집결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모조리 발레포르를 겨눴다.

드래곤.

비반의 심상은 감히 대적하기 힘든 최강의 존재를 묶어두고 비늘을 벗겨내기 위해 설계 된 것이다.

일개 대악마가 감당할 위력이 아니었다.

꽈아아아아아아앙...!!

급히 양팔을 교차시키는 발레포르의 의식이 한 순간 흐릿해졌다.

자신의 발톱을 베어낸 드래곤 웨폰과, 가죽을 벗겨내며 살을 파고드는 검기의 세례를 겪으면서, ‘이 상태’론 이길 수 없음을 인정했다.

거대하게 부풀리고 있던 몸을 빠르게 압축시켰다.

이젠 기억도 안 나는 먼 옛날.

아마도 인간이던 시절에 쓰던 몸을 되찾았다.

그제야 신체의 밸런스가 맞았다.

몸에 비해 너무 작았던 얼굴에 여유가 묻어났다.

2페이즈에 돌입한 것이다.

“너의 모든 걸 빼앗겠다.”

발레포르는 도적의 악마다.

그것이 물건이든, 능력이든, 외모든, 수명이든.

타인의 것인 이상 쉽게 훔쳤다.

표적이 자신보다 강한 건 문제가 아니었다.

“...?”

단 한 번의 상처도 입지 않고, 고작 몇 분 만에 대악마를 위기에 빠뜨려 페이즈를 넘긴 비반.

기세등등했던 그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누가 봐도 흠칫 놀란 기색이었는데, 마침 검기의 세례를 돌파한 발레포르가 간신히 비반의 뺨에 손을 얹고 있었다.

오싹한 미소를 머금은 채다.

“됐다.”

순간.

“...!”

발레포르의 눈가에 옅은 주름이 지기 시작했다.

콧대가 높아지더니 비주가 멋지게 내려왔다.

턱엔 각이 졌고 머리카락은 짧아지며 회색으로 물들어갔다.

등이 넓어지고 키가 커졌다.

귓불이며 눈이며 근육의 형태까지 바뀌어갔다.

간단히 말해서 비반을 닮아갔다.

반면 비반은 조금씩 추해졌다.

머리는 산발이 됐고 메마른 피부는 쩍쩍 갈라졌다.

콧대가 무너지듯 주저앉은 반면 코끝은 들창코가 되었다.

눈매가 쳐지고 턱은 벌어졌다.

입술이 부르텄고 눈썹은 길어졌다.

키가 작아졌다. 근육을 잃어갔다.

잘생긴 중년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발레포르에게 모습을 빼앗긴 여파다.

이젠 비반이 발레포르가 되어갔다.

“하핫! 황홀한 전능감이구나! 이게 절대자가 보는 세계인가!!”

어느새 비반의 옷차림과 검마저 빼앗아간 발레포르가 소리쳤다.

황홀경에 빠진 표정으로 지껄여대는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비반의 심상마저 빼앗진 못했다는 점이다.

수만 자루의 은빛 검기가 주인을 돌려내라는 듯이 거칠게 발레포르를 압박해갔다.

하지만 발레포르는 비반의 검술을 빼앗은 상태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수백 자루의 검기를 분쇄시켰다.

심상이 빠르게 무너져갔다.

급기야 우뚝 섰던 다섯 자루의 대검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무수히 많던 검기가 흔적도 없이 소멸해갔다.

‘똥을 밟았구만.’

고위 대악마와 싸워본 건 처음이라 권능을 경계하지 못했다.

무릇 대악마란 특수한 성질을 지니므로 쉽게 봐선 안 된단 조언을 여러 차례 들었던 것 같은데... 정작 상황이 닥치자 까먹었다.

자연히 드래곤과 싸울 때의 감각을 유지한 게 패착이었다.

비반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한 순간.

꽈장창창!!

그의 심상세계가 완전히 무너졌고,

쏴아아아...

지옥은 본래의 풍경을 되찾았다.

지옥 달이 내뿜는 붉은 빛이 밤하늘을 희미하게 물들이고 있다.

적야(赤夜)다.

“드디어 찾았다.”

어떤 인영이 비반의 곁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비반조차 그 사실을 한 발 늦게 인지했다.

결사의 기감을 속이는 존재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하물며 그게 인간이라면 숫자가 훨씬 더 제한된다.

비반이 즉시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은 하나였다.

수백 개의 다중 결계가 걸려있는 지혜의 탑을 털어먹었던 도둑놈.

바로 적야의 대도다.

다짜고짜 현장에 난입한 그가 발레포르의 심장을 훔쳤다.

자신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도둑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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