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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541화 (77권) (1,529/1,794)

77권 1화

리파엘을 추적 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늘에서 밀려드는 황금색의 구름이 하야테와 사도들의 접근을 봉쇄했다.

허락받지 못한 자는 물러나라는 태도였다.

브라함이 콧방귀 뀌었다.

“주제넘게 거만하군.”

브라함의 조소는 감정의 배설따위가 아니다. 명백한 근거를 토대로 삼은 이성적인 감상이었다.

천상.

아스가르드는 신들의 세계라는 이유 하나로 군림해왔다.

당연하게 숭배 받았고 자연히 신성을 축적했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유일한 성역이 아니게 됐다.

그리드가 동쪽의 환국을 밝힌 것으로 모자라 지상에 템빨계를 세워버린 여파다.

템빨계.

이름부터 신비로운 성역이 지상을 새로운 신성으로 물들여가고 있었다.

아득히 먼 곳에 도사리는 아스가르드의 신성과 달리 직관적이다. 뚜렷하게 보이고 느껴졌다.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이롭게 작용할 기운이었다.

사람들은 점차로 아스가르드와 멀어질 터였다.

한데 이제 와서 아스가르드의 상징 따위가,한낱 구름 따위가 도도하게 군다고?

같잖을 따름이다.

동냥으로 연명하는 거지가 거들먹거리는 꼴이랄까.

어깨를 으쓱인 브라함이 시선을 뒤로 돌렸다.

금발의 사내가 보였다.

자신보다 앞서 현장에 도착해 있던 사내.

고귀한 혈통을 이은 자신과 나란히 서도 손색이 없는 품격이 인상적이다.

브라함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다.

“드래곤 슬레이어.”

지상에 유일한 절대자.

영겁의 세월 동안 인류를 지켜온 수호자.

무엇보다 그는,용살(龍殺)을 이뤘다.

브라함의 염원을,브라함이 추구하는 궁극을 이미 오래 전에 이룬 존재란 말이다.

“만나서... 영광이다.”

브라함이 인사했다.

허리는커녕 고개조차 숙이지 않고 목례하는 수준에 그쳤으나,단어 선택이 충격적이었다.

영광... 이라고?

피아로는 흐뭇한 표정을 짓는 반면 메르세데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하의 브라함이 저토록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건 처음 봤기 때문이다.

물론 충격은 잠시뿐이었다.

메르세데스 또한 하야테의 정체를 알아봤다. 아득한 수준을 가늠했다.

저만한 힘을 지니고도 군림하지 않고 짊어져 왔구나.

원하는 즉시 세상을 지배했을 인물이,그간 단 한 번도 역사에 등장하는 일 없이 묵묵히 세상을 지켜온 것이다.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메르세데스와 피아로까지 허리를 숙여 존경을 표하자 하야테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웅들께서 사람을 오해하시는구려. 나는 한낱 겁쟁이에 불과하오. 그리드...

템빨신과 함께 세상을 지켜온 그대들과 달리 은밀히 연명해왔을 뿐이외다.

부디 태도를 고쳐주시오.”

“그리드가 좋아할 만하군…”

눈살을 찌푸린 브라함이 중얼거렸다. 급격히 어두워진 얼굴에 열패감이 스쳤다.

“고인의 겸손이 지나치세요.”

브라함의 반응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메르세데스가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

인류는 드래곤의 위대함을 체험했다.

드래곤의 별 뜻 없는 숨결이,단 한 번의 날갯짓이 인류가 힘모아 세운 거대한 도시를 삽시간에 박살내는 광경을 보았다.

그런 괴물들을 견제해온 인물이 바로 하야테였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인류는 드래곤이 일으킨 재앙을 벌써 몇 차례나 체험하고 절망했으리라.

분위기가 의외로 화목한 가운데.

파지직!

멀어져가던 황금 구름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다짜고짜 뇌전을 일으키더니 하야테와 사도들에게 폭격을 가했다.

무지막지한 위력.

지상이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저놈.”

적자색 실드로 몸을 가린 브라함이 상공을 노려봤다.

흐트러진 구름 사이로 반투명한 갑옷을 무장한 존재가 보였다.

신(神)이다.

위계가 대단히 높아보였다.

브라함의 피부 위로 돋아난 소름과 실드에 뻥뻥 뚫린 구멍이 증명했다.

“도미니언.”

지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리파엘을 후퇴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

멀찍이 선 채 ‘이번 세계의 최강자’를 살피던 그가 상황을 좌시하지 못하고 현장에 난입한 것이다.

“저자가 연전연승, 백전불패 등의 개념을 만든 시초다.

무엇으로도 꿰뚫지 못하는 갑옷과 무엇이든 꿰뚫는 창을 무장하고 있지.”

“불합리한 존재로군요.”

“그래.”

도미니언은 전쟁의 신이다.

또한 아스가르드는 여태껏 그 어떤 전쟁에서도 패배한 적이 없다.

칠악성의 반란이 허무하게 실패했던 이유가 바로 도미니언에게 있었다.

“...”

하야테는 지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세계의 최강자답게 이전 세계의 최강자에게 어떤 특별한 감상을 느꼈다,그런 식의 운명적인 무언가는 아니었다.

단지 순수하게 무위를 가늠하고 경탄했다.

‘과연 칠선인답구나.’

칠선인 즉,칠악성은 이전 세계의 역사다.

현 세계에 전파된다는 건 본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해서 기록되고 전파됐다.

신선 벤타오의 안배다.

그로 인해 당대의 사람들도 칠악성을 알았고 그건 하야테 또한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대화가 빨랐다.

지크의 말을 하야테가 묵묵히 경청했다.

숫제 손윗사람을 대하는 태도였다.

“저런 거물이 가벼운 이유로 행차했을 리 없다. 라인하르트가 불안하군.”

지크가 귀환을 논했다.

브라함은 마음에 안 들었다.

적은 바로 머리 위에 있다.

위협이 된다면 여기서 즉시 쳐야 옳았다.

괜히 라인하르트로 귀환했다가 역으로 추적이라도 당하면?

전장을 확대하는 꼴밖에 안 됐다.

한데 어째서 귀환을 논한단 말인가?

브라함은 지크가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요구할 수가 없었다.

지크 한 명을 상대할 때도 은근히 큰 부담이 됐었는데,하야테까지 지크에게 동조하는 눈치였으니 도무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가... 천하의 브라함이 어찌다가 이런 꼴이...’

본래 브라함은 만인에게 평등했다.

자신을 제외한 전부를 하찮게 여기고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인식했었다.

하지만 그리드와 함께하면서 변했다.

그리드를 곁에서 지켜보며 영웅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제자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고 반성하며 존중을 배웠다.

하여 두 영웅에게 반발하지 못하고 묵묵히 따랐다.

도미니언의 등 뒤에 숨어 킥킥 웃는 리파엘을 애써 외면한 채 귀환 주문서를 사용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에 도착한 순간 보았다.

라인하르트 상공이 황금색으로 물든 채 빛나고 있었다.

작은 틈조차 남기지 않고 몰려온 천상의 구름 때문이었다.

구름 떼의 선두에 거대한 존재가 보였다.

불투명한 갑옷을 전신에 휘감고 양손에 창을 쥔 존재.

전쟁의 신 도미니언이 이곳에도 있었다.

“이게 무슨?”

도미니언이 둘일 리 없다.

그럼 조금 전 우리가 보았던 도미니언은 분신이나 환영이었다는 뜻인데,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게 가짜였다고 하기엔...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고강했었으니까.

당황하는 브라함에게 지크가 설명했다.

룬어를 두르고 가속하면서다.

“도미니언은 모든 전장에 있다.”

목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텔레포트를 전개한 브라함이 지크를 따라잡았다.

지크가 마저 설명했다.

“즉,이곳은 이미 전장이다.”

지크는 신의 습성을 안다.

놈들은 ‘경고’를 즐기며,놈들의 경고는 언제나 천재지변을 일으켰다.

- 템빨신 그리드.

쿠르릉! 콰쾅!!

도미니언이 입을 열자 천둥이 쳤다.

지상 곳곳에 폭발이 발생하고 화마가 치솟았다.

쏟아지는 낙뢰에 의해서였다.

하필 사람이 많았다.

템빨계의 탄생을 축하하고자 모인 인파였다.

‘음.’

광역 실드를 전개하려던 브라함이 주문을 멈췄다.

보이지 않는다 싶던 피아로가 어느새 땅을 일구고 있었다.

그의 쇠스랑이 지하 깊은 곳에 묻힌 암석 따위 등을 뽑아 장벽을 만들었다.

작은 산맥을 보는 듯했다. 거기에 사리엘이 빛의 마력까지 입혔다.

덕분에 사상자는 거의 없었지만,사도들의 마음은 급했다.

신전 앞에 홀로 선 그리드에게 구름 위 도미니언이 창을 겨누고 있었다.

푸르게 번지는 신성이 위협적이다. 그리드의 신성보다 훨씬 짙고 범위가 컸다.

그가 던지는 창은 번개보다 빠를 것이 분명했다.

- 헛된 욕심으로 거짓 신계를 건설하고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린 죄를,

너는 너를 섬기는 무리와 함께 머잖아 똑똑히 치르게 될 것이다.

도미니언의 호통이 라인하르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천둥을 꿰뚫는 그의 묵직하고 사나운 음성을 모든 인간이 들었다.

누군가는 장수의 호령을,누군가는 행수의 포효를 떠올렸다.

본능적으로 위축되어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리드의 표정도 굳었다.

‘저 여우 같은 놈.’

불쑥 찾아온 전쟁의 신은 거대했다.

강력한 신력과 사나운 기세가 맞물려서 만드는 착시가 아니라, 실제로 기골이 장대한 거구였다.

아득히 높은 상공에 있어도 이목구비가 보일 정도인데,하는 짓거리는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섬세했다.

템빨계와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한 채 지껄이는 것이다...

저게 정상이긴 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굳이 남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싸우는 놈은 없겠지.

하지만 덩치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도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드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도미니언은 주신이다.

심지어 레베카의 두 아들 중 하나였다.

게다가 신중하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이제야 처음으로 출현했음이 증거다.

제라툴이나 가브리엘과 비교해서 약할 리가 없었다.

신중함을 고려하면,필시 그 둘보다 강한 힘을 비축한 뒤에 강림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사도들이 지켜줄 거야.’

신전 입구.

템빨계와 지상의 경계에 선 그리드가 언제든지 발검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도미니언이 사람들을 노리고,사도들이 그를 막아설 때,기회를 틈타서 나설 생각이었다.

왜 하필 지금 도미니언이 강림한 건지에 대해선 딱히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아스가르드는 명백한 적이다.

지금 당장 레베카가 지상을 침략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늘 그랬듯이 싸울 뿐이다.

“...?”

잠자코 집중하던 그리드가 흠칫 놀랐다.

도미니언의 신력이 점차로 강해지고 있었다.

손에 쥔 창에 덧씌워질수록 기세를 키우는 신성에 한도가 없는 듯했다.

그리드가 깨달았다.

도미니언은 사람들을 해칠 생각이 없다.

놈의 표적은 처음부터 나였다.

‘내게 상처를 입히고 격을 떨어뜨릴 의도인가.’

만약 그리드가 템빨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창에 꿰둘린다면,설사 죽지 않을지언정 격을 잃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템빨계가 무용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꼴이었으니까.

꽈아아앙!!

마침 도미니언이 창을 투척했다.

정확히 그리드를 향해서였다.

마장기 레이더스의 창보다 거대한 창이,하늘을 두 갈래로 나누며 그리드에게 쏘아졌다.

그리드는 즉시 대응했다.

망설임 없이 회(回)를 전개했다.

까앙!!

거대한 창에 맞물린 두 자루 검이 비스듬히 기운다.

급기야 호선을 그리고 창의 궤도를 비틀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한데...

[반격에 실패하였습니다.]

창에 실린 힘이 무지막지했다.

회의 발동이 자연히 취소됐고 그리드의 가슴은 창에 꿰뚫렸다.

퍼엉!

그리드의 상반신이 폭발했다.

사방팔방으로 살점과 핏물을 뿌렸다.

도미니언의 창은 그대로 템빨신의 신전까지 날아가 박혔다. 그리드의 몸을 꿰뚫고 남은 여력으로 신전을 붕괴시켰다.

아비규환.

끔찍한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사람들이 한 발 늦게 정신을 차리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쿨럭.”

그리드는 격을 잃었다.

...

..

“...?”

그리드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무너졌던 등 뒤의 신전도 멀쩡했다.

가슴에 상처가 없다.

하늘 위 도미니언은,이제야 막 투창하고 있었다.

방금 그건,뭐지?

‘데자뷰?’

당황하고 안도하면서도,그리드는 망설였다.

한 눈에 봐도 개세적인 위력이 담긴 거창.

저것을 회로 막는 게 과연 옳을까?

애초에 그리드의 적들은 늘 진화해왔다.

이 세계가 게임인 이상 당연하다.

1레벨 때 사냥했던 토끼와 719레벨인 지금 싸우는 적들의 수준을 감히 비교할 순 없는 것이다.

‘언제까지고 회가 통할 거란 보장은 없어.’

템빨신의 검무는 무적이 아니다.

회의 판정이 항상 우위에 서기엔 적들의 수준이 너무 높아졌다.

조금 전에 겪은 데자뷰는 이와 같은 무의식이 만들어낸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리드는 빠르게 판단했다.

위(爲)의 검무를 썼다.

쓰러질 듯 휘청거리는 춤사위였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결사의 각오를 표현했다.

코앞까지 다가온 거창이 우뚝 멈췄다.

그리드의 위세에 짓눌렸다.

신력이 담긴 부작용이다.

물아일체의 경지에 발목을 붙잡혔다.

도미니언과 신력으로 연결 된 거창은,도미니언과 교감하고 있었다. 감정을 품었다.

그러므로 위의 영향을 받고 위축되어 멈췄다.

0.2초에 불과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조건만 갖춰지면 물질을 대상으로도 통하는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그리드가 금의 성역을 펼쳤다.

멈춰있는 거창을 지배해 도미니언에게 날려버렸다.

신의 경고.

절대적인 뜻을 품기에 피할 수도,막을 수도 없어야 정상인 그것을 역으로 되돌려줬단 말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한 도미니언과 지크의 두 눈이 부를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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