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528화 (1,516/1,794)

76권 9화

“제라툴이? 이상한 놈이군.”

무신의 패배는 지옥에서도 화제였다.

“왜 굳이 지상에 추락해서 불리한 싸움을 한 거지? 지상에서 템빨신의 위계가 결코 만만치 않은데.”

아모락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태초의 3악.

야탄이 친히 빚은 지옥의 절대자들이다.

인마대전에서 공포로 군림했던 제4위 대악마 가미긴조차도 그들을 경외했었다.

한데 그 절대자가 그리드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드의 업적을 생각하면 아모락트가 아니라 야탄이라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겠지.’

로제는 놀라면서도 순순히 납득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서운함도 느꼈다.

‘그런데 아모락트는 유라에게도 계속 구애를 보내왔잖아? 쟤 설마 나만 푸대접하는 거 아니야?’

와신상담.

로제가 수백수천 번도 더 되새겨온 말이다.

그녀가 흑마법사 랭킹을 노렸을 무렵엔 이미 유라가 지존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흑마법사 랭킹 1위를 넘어 통합 랭킹을 지배하고 야탄의 종에 등극했었다.

유라가 야탄교를 배신했을 무렵엔 격차가 더 벌어졌다.

무려 템빨단과 협조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리드를 중심으로 모인 각 분야 최고의 랭커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시너지를 일으켰다.

템빨단은 말 그대로 종횡무진으로 활약했고 급기야 나라까지 세워 군림했다.

적대 세력을 잔인하게 짓밟았고 그 대상 중엔 야탄교가 포함되어 있었다.

청작 템빨단은 기억조차 못할 테지만,로제는 몇 번이고 템빨단과 충돌했다.

그때마다 당연하다는 듯이 패배하고,실패하며 고배를 마셔왔다.

서러워서 울었던 적도 있다.

특히 히든 퀘스트를 방해받고 실패했을 때는 화병에 걸려서 며칠동안 밤잠을 뒤척였다.

너무 억울해서 방송에 나가 언론 플레이까지 했다.

앓아 누운 적은 없다.

포기하고 싶다거나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품지 않았다.

유라를 목표로 경쟁했던 경험이 그녀를 강인하게 만들었다.

피나는 노력을 해도 좁히기 힘든 격차.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처음부터 겪어봤기에,그녀는 주변 환경이 아무리 험난해져도 금세 적응했다.

Satisfy는 원래 어렵다. 단 한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 이 고난은 당연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괴로움을 참고 견뎠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적이 강해서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

고만고만한 녀석들과 얽히고설키면서 아무도 몰라주는 진흙탕 싸움을 하느니,

모두가 인정하고 선망하는 자들과 경쟁하면 결과와 상관없이 나의 가치도 덩달아 오를 테니까.

단순한 자기합리화 따위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에겐 많은 기회가 제공됐다.

이를 악 물고 버티다보니 어느새 야탄교의 희망이 된 까닭이다. 모두 다 떠난 집단.

언제 바다에 삼켜질지 모를 난파선처럼 위태로운 신세가 된 야탄교에 남은 하이랭커는 어느새 그녀가 유일해졌다.

야탄교와 관련 된 온갖 히든 피스가 그녀를 중심으로 모이는 건 당연한 흐름이었고,결국 그녀는 아모락트를 만나 대악마로 거듭났다.

처음엔 충분한 보답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삶에 황금으로 깐 길이 펼쳐졌다고 믿었다.

...템빨단에게 패배하기 전까진 그랬다.

플레이어 최초로 대악마가 되는 위업을 세웠건만 그녀의 신세는 달라진 게 없었다.

템빨단과 만나면 백전백패하였고 멀리 선 그리드의 그림자만 봐도 오금이 저리는 건 똑같았다.

더 큰 힘이 필요했다.

그래,카츠처럼 3악의 수족 정도는 되어야 경쟁력이 생길 터였다.

로제는 아모락트에게 간택되기를 바랐다.

지옥으로 터전을 옮긴 뒤부터 지금까지 정말로 성심성의껏 그녀를 섬겨왔다.

마음이 충분히 전해졌다고 믿었다.

아모락트는 자신에게 친절했으니까.

카츠가 베리아체의 기사가 되었듯,자신 또한 아모락트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되리라 기대했다.

착각이었다.

아모락트가 유라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눈치 했다.

아모락트는 로제에게 진정한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유라에게 집착하는 태도와 비교하면 로제는 숫제 길바닥 돌멩이 취급이었다.

로제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야탄의 종 출신의 데빌 슬레이어.

유라의 배경이 워낙 특별하지 않나.

아모락트가 관심을 보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드야 두말할 나위 없다.

“트라우카의 딸 이프리트가 세월을 무색하게 만드는 자라고 평가했다지.

템빨신의 성장속도가 순리에 어긋난다는 뜻일 터인데,쓸데없이 콧대만

높은 제라툴이 간과하고 수모를 겪었구나.”

플레이어의 지존.

세계관을 바꿀 정도로 강력한 그를 아모락트가 모르거나 저평가할리 없는 것이다.

‘다 이해해. 이해하긴 하는데,정작 내겐 관심도 없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소외감을 느끼는 로제였다.

하지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웃고 말았다.

그리드와 유라.

아모락트도 인정하는 두 사람과 장장 10년 이상을 경쟁(?)해온 사람이 바로 나다.

최근 몇 년은 무력 충돌도 심심찮게 벌였다.

물론 항상 일방적으로 패배했고,그 두 사람은 내 이름을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두 사람과 싸우면서 버틴 나도 참 대단한 것이다.

‘이런 나를 인정하지 않고 배기겠어?’

아모락트.

비록 지금은 나를 소홀히 대할지언정 언젠간 결국 나를 돌아보게 되리라.

그 순간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황홀하다.

“...후훗! 깔깔깔깔!!”

“...?”

갑자기 혼자 대소하는 로제를 아모락트가 기이하게 바라보다가 관뒀다.

이 인간 출신의 대악마는,여러모로 이해가 불가능하다...

매번 임무에 실패하고도 실실 웃기 일쑤인데,너무 잦은 패배를 겪은 부작용으로 정신이 돌아버린 것만 같았다.

‘처음엔 제법 괜찮은 재능을 지닌 아이라고 생각했건만.’

유라를 다시 만난 순간 턱없음을 깨달았다.

유라가 우주에 고고히 빛나는 별이라면,로제는 진흙에 뒹구는 진주쯤 되었다.

나쁘진 않지만 비교할 수준이 아닌 것이다.

아아,유라.

데빌 슬레이어가 무용함을 모르는 가여운 아이야.

바알이 알렉스의 영혼을 노리개 삼았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너는 모른다.

네가 의지하고 있을 멸악의 빛은 이미 진즉에 철저히 해부 당했다.

바알은 저열하여 타인의 고통을 즐기므로,알렉스의 영혼을 오랫동안 바닥까지 파헤쳐왔다.

애초에 알렉스의 힘은 3악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네가 정녕 지옥을 정화하고 싶다면,데빌 슬레이어에 만족해선 안된다.

내가 내미는 손을 붙잡아야만 한다...

오늘도.

아모락트는 유라에게 속삭였다.

그녀의 몸은 옥좌에 묶인 채였으나,그녀의 마력이 빚은 의태가 유라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 의식을 전달했다.

‘...으음?’

안타까운 표정을 짓던 아모락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태가 너무 손쉽게 베인 까닭인데,여태껏 이런 일은 없었다.

바알이 뜻 모를 농간을 부려 지옥에 침략한 인간들의 수준이 빠르게 고강해졌다곤 하지만,벌써 이 정도 수준에 도달했을 리 없다.

‘뭐에 베인 거지? 설마...?’

템빨신.

제라툴과 싸워 이긴 기세를 타고 곧장 바알에게 도전하러 온 건가?

지나친 과신이다.

필패하리라.

‘아쉽지만 잘 된 일이다.’

아모락트의 바람은 지옥의 회귀 즉,정화였으나,그렇다고 해서 그리드에게 품은 원한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드는 야탄교를 탄압하고 야탄 신을 능멸한 원흉이니까.

끝없이 강해진 끝에 드래곤들의 인정을 받은 놈을 좌시하기엔 여러모로 꺼림칙했다.

솔직히 위협적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오늘 놈이 바알에게 패주하고 신격을 잃으면... 균형이 맞게 된다. 인간들이 템빨신이 아닌 나를 의지하게 되겠지.’

아모락트가 바라는 건 인간의 완전한 독립이 아니다.

인간들이 바알에게 승리하여 지옥을 되찾되 그 과정에서 반드시 자신의 힘을 빌리길 바랐다.

본래 악마란 더욱 강하고 많은 인간과 계약할수록 강해지는 법이니까.

가장 이상적인 그림은 인간들이 지옥에 오는 단계부터 자신의 도움을 받는 거였지만...

지옥 엘리베이터라는 해괴한 장치가 출현한 까닭에 거기까진 바랄 수가 없게 됐다.

‘머잖아 아버지의 실추 된 명예를 되찾고 오직 나만이 아버지의 곁에 서리라.’

템빨신의 이른 출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아모락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와우...”

바알이 보낸 마물의 공세가 그친 직후.

템빨단 진영에 아모락트의 의태가 난입했다. 노린 듯한 타이밍이었다.

크게 지친 템빨단원들에게 엄청난 위기로 다가왔다.

바로 그때 유라가 나서서 의태를 베어버린 것이다.

그렇다.

아모락트의 예상과 달리 그녀의 의태를 벤 인물은 유라였다.

덕분에 한숨 돌린 템빨단원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멸악의 빛에 주목했다.

멸악의 빛은 사악한 존재에게 상극으로 작용하는 데빌 슬레이어의 궁극기다.

무조건 치명타와 약점 공격,치명타 데미지 상승,속성 저항력 무시,관통 데미지,중첩 데미지,마기 약학,치유 불가 등등.

온갖 이로운 효과가 내포되어 있다.

오직 마기를 지닌 대상에게만 온전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끔찍한 제약을 지닌 대신 불합리할 정도로 강력했다.

대신 한 가지 단점이 더 있었다.

원거리 공격이라는 점.

총에 장전하여 탄환으로 쏘는 식이기 때문에 쾌속하고 저격에 용이하긴 했지만 접근전에서 활용하는 건 사실상 힘들다고 봐야했다.

데빌 슬레이어는 지옥에서 최강을 논하는 전투력을 발휘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팀원이 받쳐 줬을 때의 이야기다. 1대1 상황에선 강점을 봉인당해서 비교적 취약했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언젠가부터 멸악의 빛을 오러처럼 운영하려고 시도했던 유라가 무돌이에 익숙해진 뒤로 완전하게 진화했다.

무장에 덧씌워지길 거부하며 온전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멸악의 빛이 정령의 기운과 혼합되어 무장에 덧씌워졌다.

무돌이가 무(無)의 정령왕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무돌이는 속성이 없으므로 서로 상극인 속성들을 모조리 포용할 수 있었다.

정령왕의 힘과 데빌 슬레이어의 궁극기가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로,당연히 초월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멸악의 빛의 위력은 전보다 몇 배나 상승했다.

심지어 지속형 스킬로 변모해서 여러모로 유용해졌다.

-당신과 계약한 보람이 있네요. 템빨신께서도 기뻐하실 거예요.

‘고마워,무돌아.’

마치 그리드와 함께 있을 때처럼 밝게 웃는 유라의 모습이 유독 아름다웠다.

흐뭇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반트너가 감격해서 말했다.

“유라가 초월의 격을 쌓는 건 기정사실이고... 거기에 추가로 600레벨도 찍겠는데?”

바알이 보내는 마물 웨이브는 갈구노스의 사원에 서식하는 언데드보다 수십 배나 많은 경험치를 줬다. 게다가 숫자는 수천 배 많았다.

사실상 경험치 웨이브였다. 이쯤되면 바알이 일부러 도와주는 게 아닐까,그런 어처구니없는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그래,이 상태가 1년,2년 지속되면 600렙도 쉽게 찍겠지. 근데 그 전에 바알이

우리를 직접 치러오거나 우리가 바알을 치러 가거나 하지 않겠냐? 600랩은 개뿔.

아직 그리드도 600은 아닐 텐데.”

폰이 태클을 걸었다.

굳이 시비를 걸려는 의도는 없었다.

애초에 반트너도 자신의 말에 현실성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유라에게 감탄한 나머지 흥분해서 되는대로 지껄였을 뿐이다.

하지만 반트너는 폰의 말에서 한가지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드가 600레벨이 아닐 거라니? 갠 당연히 600레벨 넘었지.

내가 보기엔,음... 최소 602레벨은 넘었을 거다.”

“당연하죠. 그리드 님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시니까요!”

후로이가 곧바로 동의했다.

무조건적인 믿음이 충성심을 넘어서는 신앙에 가까웠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레가스는 물론이고 심지어 카츠를 비롯한 다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의외로 극검이 부정했다.

“아무리 갓리드라도 아직 600은 아니야. 거의 반년을 넘게 사냥을 일절 못했잖아.”

누구보다 그리드를 잘 안다고 자부하기에 품는 확신이었다.

극검은 조국을 위해 일하는 대한 애국협회장답게 그리드의 신변을 몹시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드의 일정을 꿰고 있을 정도였고 그가 어디서 월하고 있는지 거의 다 알았다.

최근 반 년 이상 대장일에만 집중했다는 사실도 당연히 안다.

물론 중간에 드래곤과 싸우고 제라툴을 격퇴시키는 등,초네임드급 보스 레이드에 수차례 도전하긴 했지만 정작 승리한 건 제라툴전이 유일했다.

그리드가 경험치를 얻었을 만한 경로가 제라툴전 딱 하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한데 무슨 수로 600레벨을 넘겼단 말인가?

갓리드를 모르는 하수들이나 품을 법한 환상이었다.

“뭔 사냥을 일절 못해? 그리드는 아이템 만들면서 사냥도 할 수 있잖아?”

“갓 핸드와 템빨골 등을 활용하는 방법 말이냐? 훗,과연 너희는 갓리드를 너무 모르는군.

그리드가 최근에 만들어온 아이템은 무려 드래곤 웨폰과 드래곤 아머다.

구젤의 어금니를 만들었을 때처럼 초대형 용광로가 필요할 테니 사냥과 동시에 대장일을

진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단 의미지.”

극검의 콧대가 점차로 높아졌다.

자신의 말을 진리라고 여기는 눈치였다.

템빨단이 그리드 숭배세력에 가깝다는 점을 증명하는 광경이었다.

그리드가 600레벨을 넘었다고 믿는 쪽도,아니라고 생각하는 쪽도,자신이야말로 그리드 전문가라고 믿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선구자의 혜택을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드가 싸워온 적들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 또한 어럼풋이 헤아릴 뿐,직관적으로 이해하진 못했다.

유라와 지슈카는 상황이 마냥 재밌었다.

매일 그리드와 만나거나 통화하는 그녀들은 그리드의 정확한 레벨을 알고 있었으니까.

무려 691.

동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될 때 얼마나 놀랄지... 벌써부터 반응이 기대됐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7차 각성까지 8레벨 남았군.’

14자루의 성검을 분해하고 제련하는 과정에서 레벨이 또 올랐다.

안 그래도 경험치 게이지가 거의 꽉 찬 상태였다.

무신 제라툴을 격퇴하고 오른 레벨이 사실상 50개가 넘게 된 셈이었다.

‘즐겁다.’

레벨이 정말 죽어라고 안 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300레벨 후반과 400레벨대가 특히 그랬다.

그나마 템빨과 칭호빨로 경험치 상승 버프를 몇 개 얻긴 했지만 한참 부족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선구자가 되고서 많은 게 바뀌었다.

깨달음 효과가 그리드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안 그래도 강적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인 그리드에게 깨달음은 찰떡궁합의 버프였다.

깨달음의 효과는 적의 격과 레벨이 높을수록 극대화되니까.

드래곤 웨폰과 아머를 만들기 시작한 게 주요하기도 했다.

시스템부터가 궁극의 아이템이라고 판단한 건지,어지간한 네임드 보스를 잡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치를 안겨줬다.

앞으로 제논의 비늘을 꾸준히 수급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드를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레벨이 쑥쑥 오른다는 점이 즐거웠다.

‘역시 게임은 레벨 올리는 맛이 제일 크지.’

특히 Satisfy는 100레벨 단위로 스탯이 각성을 한다.

새로운 레벨 단위에 진입할 때마다 목적의식이 부여되므로 성장이 질릴 틈이 없었다.

“...음?”

로드와 함께 작업에 집중하던 그리드가 이변을 눈치 했다.

공기가 변했다.

브라함의 성역과는 달랐다.

브라함의 성역은 대기 중의 마나에 신격을 씌워 파괴력을 끌어올리는 반면 지금의 공기는 상냥하고 따스했다.

그리드가 한 발 늦게 눈치 했다.

변화의 시작이 땅에서부터 비롯했음을.

넘치는 땅의 활력이 생태계에 변화를 주었고 그로 인해 기후마저 변해갔다.

‘피아로?’

새롭게 익힌 비급과 상성이 좋았나?

벅찬 감동을 느낀 그리드가 작업을 멈추고 대장간 밖으로 나가보았다.

자연과 일체 된 피아로가 보였다.

생뚱맞은 알림이 함께였다.

[대지의 신 가리온이 드디어 해낸 거냐며,믿고 있었다고 환호하며 박수를 칩니다.]

“...”

레베카로부터 비롯했으나 아스가르드가 아닌 지상에 머무는 신.

비록 지상에 있으나 세계수처럼 만인의 존경을 받는 대지의 신 가리온은,상당히 오랫동안 피아로를 지켜봐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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