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527화 (1,515/1,794)

76권 8화

< 무형지기 >-입신

견고한 의지로 대상을 공격합니다.

*무형지기가 입히는 피해량은 의지 스탯에 근력 스탯을 더한 수치와 동일하며,

대상의 방어력이나 저항력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의지>스탯을 보유한 대상은 이 공격을 면역합니다.

스킬 자원 소모:없음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3회 발동 시마다 10초

무형지기는 심상의 개념을 깨우치면서 얻는 기본 스킬이다.

그리드의 심상이 발전하면서 자연히 함께 성장해왔다.

초입 단계일 땐 무려 24시간이나 됐던 쿨타임이 극단적으로 짧아졌고,오늘에 이르러선 자원의 소모도 없게 됐다.

실전에서 제대로 활용이 가능해졌단 의미다.

아직 심상의 개념을 몰랐던 그리드를 무형지기로 농락했던 양반 가람과 비교해도 차원이 다른 경지였다. 뜻을 품는 것만으로 적을 해치는 수준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하수를 상대할 때의 이야기다.

그리드가 적대하는 존재들은 대개 초월적이므로 당연히 의지 스탯을 보유했다.

무형지기의 표적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콰르륵…!

대천사 리파엘의 낯짝을 떠올리며 살의를 품는 그리드의 의지가 무형지기를 활성화시켰다.

그리드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히 전개됐는데,대상을 지정할 수가 없어서 사납게 날뛰어댔다.

입신의 경지에 이른 무형지기는 사실상 패시브 스킬과 다름없었다.

그리드의 의지에 민감하게 동조했다.

노에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던 무신의 호신강기와 어럼풋이나마 달았다.

“과연 폐하… 제가 흑염룡을 봉인했듯,당신께서도 엄청난 피물을 몸속에 봉인해 오셨던 겁니까? 범인은 상상조차 못할 대의를 품은 채...”

라우엘의 얼굴이 하알게 질렸다.

보이지 않는 칼날이 다짜고짜 사방팔방을 베어댔으니 겁을 먹는게 당연했다.

자꾸 헛소리를 지껄여댔는데,그리드는 무형지기를 거둘 겨를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의 무의식이 라우엘을 절대적인 아군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쳐 날뛰는 무형지기가 정작 라우엘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저들은 미카엘의 대체제를 구하고 있는 거겠지요.”

그리드의 의식은 가미긴을 레이드했던 시점으로 침잠해갔다.

삼위일체를 이루고 강림한 리파엘의 습격을 받았던 직후였다.

“영혼을 내어주지 않은 건 정말로 잘하신 일입니다. 당신껜 늘 경의를 표하게 되는군요.”

다급히 날아와 그리드를 도운 미르가 말했었다.

전설들의 영흔을 탈취하려던 리파엘의 목적과 맞물려 그리드의 이해를 도왔다.

불편한 진실을 전했다.

천사는 전설의 영혼을 소재로 제조되며,천상은 늘 전설들의 영혼을 수확해왔다는 진실이었다.

‘왜 그때 의심하지 못했지?’

칸 또한 전설이었다.

비록 죽음에 이르러서야 쓰인 전설이지만... 그래서 전설로 활동한 기간이 없다고 봐야 무방했지만,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회자했다.

그렇지 않아도 헥세타이아를 감옥에 가둬버린 천상이 탐을 내는게 당연한 인물인 것이다.

칸이 천사가 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뒀어야만 한다.

하지만 의심하지 못했다.

어쩌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걸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순간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정신적 충격과 심적 고통을 겪게 됐으니까.

‘칸…’

온갖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칸과 나란히 앉아 모루를 두드렸던 나날.

우리는 항상 웃었다.

함께 뭘 하든 즐거웠다.

밤새 머리를 맞대고 도면을 노려봤던 날도,밥도 못 먹고 풀무질만 했을 때도,진상 손님을 서로에게 떠넘기던 순간에도 칸과 나는 웃었다.

아들의 묘비에 꽃을 놓은 칸이 고즈넉한 하늘을 올려보며 눈물지을 때조차,기름때 묻은 그의 커다란 손을 조용히 쥐어주면 웃었었다.

꽈드득!

강하게 맞물린 치아가 부서질 것 같은 소음을 흘린다.

그리드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알게 고인 눈물이 붉게 보였다.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그리드는 칸이 지옥에 있다고 믿어 왔다.

생전의 기억을 간직한 채 윤회의 강을 떠돌며 고통 받고 있다고 추측했다.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한시라도 빨리 구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초조하진 않았다.

죽은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고,윤회의 강을 떠도는 것은,아무리 끔찍하고 괴로운 일일지언정 이 세계의 '순리’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바알이 왜곡시켜 만든 순리일지언정,죽은 자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세상의 규칙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합리학가 가능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천상의 개입은 사정이 달랐다.

자신들이 필요할 때,원하는 영혼만 선택해서 데려간 뒤 천사로 만든다고?

천사는 신을 위해 싸우는 병사다.

지크가 추측하길,칠악성이 아스가르드를 습격했을 당시엔 족히 수천의 천사가 앞길을 가로막았을거라고 했다.

앞에선 인간들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지껄이면서,그로 인해 숭배받는 주제에,뒤로는 은밀하게 인간들을 고기방패로 써먹은 것이다.

어쩌면 매 시대마다 그래왔을 터였다.

그 시대의 전설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서 살을 찌운 뒤 때가 되면 수확해왔을 것이다.

그래야만 천사의 숫자가 많은 게 납득이 됐다.

그리드는 아스가르드의 이중성에 치가 떨렸다.

양반이 천사를 모티브로 만든 존재임을 알기에,또한 리파엘과 미카엘을 체험해봤기에 천사 또한 불완전하단 사실을 상기했다.

천사로 부활한 칸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닐 거라고 쉽게 추측했다.

어쩌면 그는 지옥에서보다 더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옛 추억에 집착하며 이 성검들을 만든 게 아닐까.

혹은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는 그리드의 얼굴이 점차로 일그러졌다.

그의 숨결이 야수의 것처럼 거칠어질 때마다 무형지기가 더욱 사나워졌다.

리파엘의 웃는 낯짝이 자꾸만 떠올라 머릿속을 휘젓는다.

그놈이 칸을 천사로 만든 이유가 순수하게 필요에 의해서였을까?

사실은 나를 도발하려는 속셈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칸은 인질로 붙잡힌 격이다. 놈이 칸에게 어떤 만행을 저지를지 몰라 더욱 불안하다.

‘칸이 천사가 됐다는 걸 모르는 척해야 돼. 내가 눈치 챈 걸 티내는 순간 칸은 철저하게 이용당할거다.’

그리드의 살의가 회고조에 이른 순간이었다.

“고정하세요.”

방문이 열렸다.

소중한 사람들이 달려와 그리드를 감싸 안았다.

그리드가 없는 성을 묵묵히 지켜온 아이린과,아버지의 삶을 체험하고 싶다며 그리드의 자취를 쫓아온 로드였다.

메르세데스는 한 발자국 뒤에서 그리드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피아로가 그녀의 곁에 나란히 섰다.

사리엘은 겁에 질린 라우엘을 빛으로 감싸주었고 지크는 상황을 짐작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다.

활짝 열린 문에 기대어 선 브라함이 콧방귀 뀌었다.

“무신까지 잡아 족친 놈이 월 그리 초조해하는 거지?”

저벅.

한 걸음,두 걸음.

천천히 그리드에게 다가오는 브라함의 붉은 눈동자는 몸시 깊고 투명했다.

형태가 보일 리 없는 무형지기의 궤도를 관조하는 듯했다.

짜증,분노,원망,살의,초조따위로 점철됐던 과거의 눈빛과는 완전히 달랐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만,하나만 기억해라.”

“...”

그리드는 대기 중의 마나가 바뀌었음을 느꼈다. 단순히 흐름이 달라진 수준이 아니라 본질이 변했다.

바뀐 마나의 주체는 브라함이었다.

이 장소 자체가 브라함의 내부로 인식됐다.

우주처럼 무한하게 펼쳐진 브라함의 마나핵.

그리드는 마치 그 안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 아니다.

그리드뿐만 아닌 다른 모두가 같은 기분을 체험했다.

스아아...

마냥 투명하고 순수해야 할 마나가 은은한 자색으로 물들었다. 세계가 명백히 브라함의 색으로 물들어갔다.

그리드는 눈치 했다.

이건 브라함의 성역이다.

아직은 편린에 불과했지만, 브라함의 신격이 높아질수록 발전해서 언젠간 <금의 성역>과 같은 위계에 도달할 심상의 극의였다.

그리드에게 심상의 개념을 이해시켰던 인물.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고유의 심상세계를 만들어서 활용해온 브라함의 경지는,

히드라를 잡은 시점부터 꾸준히 발전한 신격과 맞물려 한층 더 진일보한 것이다.

“네가 뛰어나...게도 건방져서 우리보다 앞서가게 됐음을 안다.”

자신도 모르게 칭찬부터 꺼낼 뻔한 브라함이 자연스럽게 말을 고쳤다.

당황하지 않고 태연한 표정이었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자꾸 혼자서 책임을 질어지는 네놈을 질책하지 못했던 이유는,내게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론 다를 것이다.”

브라함의 상세 정보를 확인한 그리드가 깜짝 놀랐다.

어느새 750을 돌파한 레벨을 보고 놀란 게 아니다. 초네임드 NPC의 레벨이야 워낙 빠르게 올랐고,개중에서도 브라함의 레벨업 속도는 특별했으니까.

애초에 그리드만 해도 700레벨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아이템을 만들고 강적과 싸우는 것만으로 경험치를 올려주는 <깨달음>의 효과가 워낙 컸다.

만드는 아이템의 수준이 높을수록,적이 더 강할수록 빛을 발하는 특성이었다.

그리드가 놀란 부분은 브라함의 ‘사망 페널티’가 크게 완화됐다는 점에 있었다.

본래 브라함의 확정 부활 가능 횟수는 1회였고,그 다음부턴 확률적으로 부활했었다.

단 1번의 죽음도 여전히 치명적인 입장이었다.

한데 이젠 달랐다.

죽음 자체에 면역했다.

‘사망 시 관 속에서 24시간 휴식해야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긴했지만 마치 플레이어처럼 죽어도 무조건 부활할 수 있게 됐다.

직계 뱀파이어의 권능을 되찾고 신격이 성장한 여파인 듯했다.

안 그래도 죽은 칸을 떠올리며 슬퍼하던 그리드 입장에선 엄청나게 기쁜 소식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으로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그 부담스러운 반응에 미간을 좁힌 브라함이 그리드의 시선을 피했다.

마치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피아로를,지크를,메르세데스와 사리엘을 차례대로 바라보았다.

심지어 아이린과 로드까지 시야에 담았다.

사도 중에서 유일하게 눈길을 못받은 존재는 문 뒤에 숨은 네펠리나뿐이었다.

왠지 기분이 나빠진 그녀가 발끈했지만,브라함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드 너는,혼자가 아니다.”

“...”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도,지금쯤 지옥에서 구르고 있을 머저리들도,느리지만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홀로 싸우고,홀로 두려워하고,홀로 슬퍼하는 짓은...

그만 관둬라. 네가 우리를 위해 싸워왔듯이,앞으로는 우리가 너를 위해서 싸우고 너의

바람을 이뤄줄 것이다.”

“...네,알겠습니다.”

이 순간.

그리드는 모든 근심과 두려움을 벗어던졌다.

일말의 의심도,망설임도 없이,앞으로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의지하기로 결심했다.

이젠 그래도 된다는 확신을 품었다.

“나도. 나도 의지하여라.”

황급히 달려와 덧붙이는 네펠리나가 그리드와 아이린을 웃게 만들었다.

흉포하게 날뛰던 그리드의 무형지기는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잠시 후.

“각자 필요한 걸 골라보세요.”

그리드의 비급 증정식이 있었다.

성검은 모조리 용광로에 집어넣고 녹이는 중이다.

메르세데스야 그리드가 만든 아이템을 대부분 무장할 수 있다지만,다른 사도들은 그게 안 된다.

디바인 스톤으로 적합한 신작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칸으로 추정되는 천사가 만든 물건이라고 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그리드에게 필요한 건 칸을 추억할 물건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드는 칸의 구원을 바랄 뿐이며 언젠가 반드시 칸을 구할 각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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