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521화 (1,509/1,794)

76권 2화

천사란 신의 호법이자 대행자이다.

신이 세운 율법을 수호하고 실행하며,사사로운 일까지 참견하여 신의 위신을 지킨다.

탄생 이유 자체가 신을 위해서였다.

무수히 많은 경배를 받아도 신이 될 순 없다.

지옥의 대악마들이 공포로 군림했던 시절에도 악신,마신 따위가 되지 못한 것과 이치가 같았다.

원념의 집합체인 슈트리오 같은 기형이 아닌 이상에야 천사나 악마는 신과 완전히 다른 종으로 분류됐다. 신격이라는 개념 자체가 쌓이질 않았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레베카와 야탄이 태초에 빚은 일곱 천사와 세 악마.

그중 일부는 태생부터 보통의 신을 초월했으니, 그들이 신격마저 쌓을 경우 신계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며 대다수의 신들은 존중 받지 못할 터였다.

“좋네요.”

제1위 대천사 리파엘.

지고하신 빛의 여신을 지척에서 모시는 유이한 존재 중 하나가 빙그레 웃었다.

혹시 몰라 수집해놨던 대장장이의 영혼.

헥세타이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천사로 만든 그의 실력은 리파엘이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아직은 핵세타이아는커녕 템빨신보다 실력이 못했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판단했다.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핵세타이아님은 평생 감옥에 가둬놔도 되겠어요. 언젠간 당신이 그의 몫까지 해줄 테니까요.”

계속되는 리파엘의 칭찬에 대장장이 천사가 머리를 긁적였다.

“과찬이십니다. 한낱 천사인 제가 어찌 헥세타이아 신의 자리를 대신하겠습니까.”

“나를 봐요. 천사라고 해서 신보다 못하란 법은 없잖아요. 실제로 천사 중에는 신보다 고절한 자들이 더러 있어요.”

“대천사님들이야 워낙 특별하시니…”

“하하,큰 착각을 하시네요. 오히려 대천사에겐 더 큰 한계가 있답니다.

옛적에 추방당한 사리엘의 경우를 생각해박요. 놈들은 여신께서 설계하신 대로만

작동하므로 기계나 다름이 없고 상상력이 미약해서 발전을 못하죠. 대천사 중에서 특별한

존재는 오직 나와 가브리엘뿐이에요. 그리고 당신들 천사는 나와 가브리엘처럼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죠.”

인간으로 살았던 전생 덕분이다.

게다가 그들은 인간 시절의 기술을 고스란히 계승한 채 천상에 올랐다.

전설의 위계까지 올랐던 기술.

그 기술을 여신의 호의와 가브리엘의 축복을 받아 더욱 빠르게 연마하니 생전보다 월씬 더 고강해진다.

뒷말은 삼킨 리파엘이 싱글벙글 웃었다.

대장장이 천사는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리파엘이 신뢰의 근거를 밝히질 않으니 막연해서 그저 머리만 긁적였다.

그는 아직 손끝에 남은 감각에 집중하고 싶었다.

머릿속을 떠도는 기억의 파편들이 투영하는 작품들을 만들 때 느꼈던 감각.

그리움과 따스함이었다.

* * *

대륙 각지에 나타난 성검의 소유자들.

라우엘은 그들을 토벌하고자 사도를 파견할 계획까지 짰다.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였다.

성검을 상징으로 삼은 삼신교의 잔당들이 수만,수십만의 신도들을 확보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경계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삼신교에겐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적게는 수십 명,많아봐야 수백 명씩 무리지어 흩어져 있는 놈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그리드 또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번 사태를 새로 만든 드래곤 웨폰과 아머의 성능을 확인할 기회쯤으로 여길 뿐,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드물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며 수련에 힘쓰고 있는 사도들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메르세데스는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겠지.

세상 모든 기사들의 귀감인 그녀는 쉬는 법을 몰랐으니까.

‘어찌면 기사도를 되새기며 명상중일 수도...’

아침 햇살 아래 무릎 꿇은 메르세데스의 고결한 모습을 상상하는 그리드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메르세데스가 자랑스러운 한편 걱정도 됐다. 그녀도 작은 취미생활 정도는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떠나는 겐가?”

템빨신의 새로운 신물.

묵단룡 크란벨의 비늘처럼 투명하고 아름다운 검의 자태를 살피며 감탄하던 비반이 조심스레 물었다. 섭섭한 눈치였다.

다른 결사들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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