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권 13화
"이야.. 한창 건물 올리고 난리칠 때는 뭐하는 짓인가 걱정이 앞섰는데, 완성되고 보니까 장관이구만."
"동영상이나 스크린 샷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멋지네요."
“그렇죠?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대거 섭외했다고 하더군요.”
끝없이 이어진 행렬에서 쉬지않고 탄성이 터졌다.
성벽 너머 늘어선 고층 빌딩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다.
성벽 너머 늘어선 고층 빌딩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다.
황도 라인하르트는 플레이어가 통치하는 도시답게 현대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장 눈에 티는 건 고층 빌딩들과 기하학적 구조의 대형 건축물.
Satisfy에선 보기 힘든 양식의 건물들이 현대인의 미적 감각과 편의성을 충족시켰다.
동시에 Satisfy의 시대상을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찬사를 불러일으켰다.
색감,구도,지형,배치,심지어 조명까지 활용해서 중세와 현대의 조학를 이끌어냈는데 이질감이 전혀 없었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느낌입니다.”
“SF 영학 촬영지로 섭외하려고 노력하는 감독들이 많다더라.”
“후후훗...”
라우엘의 기분은 몹시 좋았다.
도시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노력했던가.
거액의 자본을 조달해서 현실 최고의 건축가들을 섭외하고,그들이 설계한 도시의 형태를 실제 구현할 각 분야 기술자들을 육성하고...
라인하르트의 현재 모습은 고작 한두 해 만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템빨국 건국 시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현실 시간으로 족히 5년 이상.
라우엘이 직접 발품을 팔고 사비와 시간을 투자해서 계획하고 실천시킨 프로젝트였다.
최근에야 Satisfy 내 기술자들의 수준이 올라 프로젝트가 막 실행 단계에 진입한 것인데,사람들의 반응을 보자 벌써부터 흡족했다.
그간의 노력을 보상 받는 느낌이랄까.
한데 신기한 사실은,
“높은 곳에서 보니까 더 장관이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수천만 대중의 찬사보다 그리드의 짧은 칭찬과 격려가 더 큰 보람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라우엘은 영혼의 떨림을 느꼈다.
“과연... 저는 당신이라는 그릇이 참으로 좋은가 봅니다. 제가 넘쳐 흐를까봐 염려할 필요가 없는 그릇이기 때문일 터겠죠.”
“어... 음,아무튼 축하하고 고맙다.”
“저 또한 축하드리고 감사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만났음을 기뻐하며.
난간에 기대어 선 두 사내는 주먹을 가볍게 맞부딪쳤다.
***
『거리에 가득 찬 인파가 보이십니까? 최근 3일 동안 라인하르트를 찾은 방문객이
무려 1억 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오늘 열리는 대장 선발전에 맞춰서 리뉴얼 된
도시를 공개한 것이 사람들의 발길을 끈 것인데요. 천막에 덮여 있던 새로운 건축물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
『도시의 풍경이 색다르군요. 직설적으로 묘사해보자면 유럽의 관광도시와 뉴욕이 뒤섞인
느낌인데요. 이게 또 핑장히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단 말이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지,라인하르트 리뉴얼 프로젝트에 직접 참가하셨던 이탈리아의 거장,미켈란젤로
스틸리오니 님을 게스트로 모셔보았습니다.』
『제가 이번 의뢰를 받은 건 벌써 5년 전의 일입니다. 처음엔 난감했지요.
게임 내에 존재하는 도시를 설계해주길 바란다는데,아시다시피 지금 제 나이가
여든이 넘었습니다. Satisfy를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탓에 의뢰 내용이 무척 생소했죠.
근데 이게 또... 허허,도전 정신이 생기더군요. 그날로 바로 캡슐을 구매해서
Satisfy 에 접속해보았습니다. 지질,환경,물질 등. 현실과는 다를 게임 속
조건들을 직접 확인해야 이게 수행 가능한 의뢰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Satisfy를 플레이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신 겁니까?』
『맞습니다. Satisfy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현실에서 작업했죠.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들이 Satisfy에선 가능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죠. 활용할 수 있는 자원과 환경부터가 완전히 달랐으니까요. 상상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도시 구조와 건축물을 설계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더군요.』
『Satisfy의 이해도가 무척 높으시겠군요. 혹시 이미 건축가 랭커가 되신 건 아닌지요?』
『Satisfy에선 전사입니다.』
『하하, 그렇군요... 네? 전사요?』
『활용 가능한 자원을 알아보기 위해서 온갖 곳에 모험을 다녔는데,이게 꽤 위험천만한
일이었단 말이죠. 의뢰인이 강력한 호위를 붙여주긴 했지만 때때로 호위를 무색하게 만드는
몬스터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나무로 위장한 칠드런들이나 미믹 말입니다.』
『아... 함정에 빠지셨군요.』
『그렇습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이것저것 조사해야하는 입장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죠.
아니,신기하게 생긴 나무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그냥 지나칩니까? 목재로 활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면 직접 살펴박야 할 것 아닙니까?』
『굳이 보물 상자까지 열어볼 필요는 없으셨을 텐데 말이죠.』
『크흠... 아무튼 제가 계속 호위의 경고를 무시하고 죽는단 소식을 접한 의뢰인이
난감해하더군요. 하지만 제 설명을 듣고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더니 아이템을 지원해주었습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의뢰인의 상관이 그 유명한 그리드란 말입니다.』
『아...! 지원 받은 아이템의 성능이 엄청났군요?』
『그렇지요. 갑자기 훅 튀어나오는 몬스터의 뚝배기를 아주 그냥 박살을 내버렸죠.
아,뚝배기란 두개골을 뜻하는 은어로,어원은 한국어인데. 아무튼 쾌감이 엄청나더군요.
그래서 전사로 전직했습니다.』
『...』
『지하를 뚫고 들어간 저 기둥이 보이십니까? 소문만 무성했던 차원 간 이동 게이트,
일명 ‘지옥 엘리베이터’입니다. 저 시설을 이용하면 지상과 지옥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으며,이동 시간은 고작 37분으로...』
『지상과 지옥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는 건,악마들이 역으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에 오를 수도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국 대변인 후로이의 발표에 따르면,
지옥 엘리베이터는 템빨국 지옥 본부〈크리스탈 성>과 연결되어 있으며,크리스탈 성은
시스템적으로 적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시청자 여러분께선 지옥 엘리베이터를 이름 그대로의 모습으로
상상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지옥 엘리베이터란 말 그대로 '지상부터 지옥까지 연결 된
엘리베이터’ 아닙니까? 출입구야 크리스탈 성에 설치되어 안전할지 몰라도,통로는 외부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악마들의 표적이 될 것 같은데요?』
『엘리베이터가 지옥 중앙에 기둥처럼 서있는 광경을 상상하신 거군요? 예를 들자면 긴
파이프가 지옥의 지면부터 천공까지 쭉 이어진 광경을요? 하하,충분히 그러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다릅니다. 지옥 엘리베이터는 편의를 위해 지어진 명칭일 뿐,앞서
말씀드렸듯이 지옥 엘리베이터의 정식명칭은 ‘차원 간 이동 게이트’입니다.』
『실제 엘리베이터는 아니란 말씀이군요?』
『네,지하에 묻힌 저 기둥은 쉽게 말해서 게이트의 입구인 겁니다.
수억,수십억 킬로미터의 길이를 갖고 실제 지옥까지 연결된 것이 아니라요. 애초에 지옥은
다른 차원이지 않습니까. 땅굴을 판다고 해서 도착할 곳이 아니죠. 하하.』
Satisfy 관련 방송들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새롭게 바뀐 라인하르트와 지옥 엘리베이터 공개, 지옥 원정대대장 선발전과 이에 맞춘 각종 이벤트 등.
템빨제국이 제공하는 다양한 컨텐츠 덕분이었다.
마침 코앞으로 다가온 국가대항전 때문에 Satisfy를 향한 세간의 관심이 높을 때여서,사람들의 이목이 더욱 쉽게 끌렸다.
『대장 선발전에 렘빨신의 사도들은 출전하지 않는다죠?』
『네,아무래도 사도들은 장시간 본진을 비우지 못하니까요.』
브라함과 메르세데스, 그리고 네펠리나와 사리엘은 거의 항상 라인하르트에 머문다.
브라함은 마법 제련에 열중하느라,메르세데스는 호위 임무에 주력해야 해서,네펠리나는 위험에 쉽게 노출되고,사리엘은 폭주를 경계해서.
각자에게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대중들은 모든 사도에게 제약이 있다고 추측했다.
워낙 강력한 존재들이니만큼 운용 시간에 한계가 있는 거라고 보았다.
밸런스를 고려하는 것이다.
그리드의 사도들은 그만큼 강력했다.
『그럼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는 반용족 로드겠군요.』
『네,그는 무조건 12인에 들어갈 겁니다.』
반용족.
상당수의 플레이어가 구경조차 못해본 상위종이다.
인마대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들을 목격한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전쟁 기간 동안 가장 위험한 작전 지역에 투입됐던 까닭이다.
“우와아아아아!!”
활강하는 수십 명 반용족의 출현에 사람들이 열광했다.
인류와 함께 악마들과 싸우며 지상의 수호에 일조한 종족.
몸시 포악하다는 소문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여준 그들에게 사람들은 커다란 호감을 느꼈다.
지난 수백 년.
반용족은 위험하다며 고립시키고 대치했던 사하란 제국의 ‘희생’이 사실은 거짓 날조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심을 품는 사람이 많아졌을 정도다.
온갖 미명 하에 소수민족과 이민족을 핍박했던 사하란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은 건 당연했다.
사하란 출신들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었다.
사하란이 반용족과 대립해온 건 정말로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였으니까.
“대장... 기분이 이상하오.”
“음”
반용족들이 좌불안석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낯선 기분 탓이었다.
여태껏 하등하다고 무시해온 인간들의 환호가 그들의 심경에 어떤 변화를 싹트게 만들었다.
“약한 놈들을 돕는 게 썩 나쁘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반용족들이 갑자기 착해진 건 아니다.
다만 그들도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지녔을 뿐이다.
그리드 앞에서 개처럼 짖으며 증명했듯이,그들 또한 두려움을 느낄 줄 알았다.
인마대전 당시.
끝없이 침공해오는 악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반용족은 다른 종족들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반용족의 힘만으론 피할 수 없는 위기도 모두와 힘을 합치면 극복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협동의 개념을 배웠다는 의미다.
더불어 살아가는 게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그러던 차에 쏟아진 인간들의 환호가 그들의 인식을 크게 바꿔놓기 시작한 것이다.
『반용족 로드 번츠델은 템빨신의 사도들과 비견되는 강함을 지녔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고 있죠. 오크 로드 테루찬과 달리 그리드에게 힘으로 굴복당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저 멋진 비늘과 꼬리,그리고 날카로운 손톱을 보십시오. 과연 인류를 악마들로부터
수호한 용사들답게 위용이 남다르지 않습니까?』
반용족의 출현과 동시에 각국 방송의 시청률이 급격히 치솟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국대전 전야제라는 표현이 어색했다.
국대전에 비견되는 관심도였으니까.
템빨단의 영향력이 S.A 그룹의 영향력만큼 커진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많은 분들의 예상대로 크리스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군요.』
『히든 클래스로 전직하고 레벨이 초기화 됐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봅니다.』
『인마대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으니 히든 클래스를 얻을 만도 하죠.』
『그럼 12인의 대장 후보 중 플레이어는 지슈카, 폰,레가스,극검,카츠, 반트너,
페이커,데미안,유페미나 정도로 축약할 수 있겠군요.』
유라는 논외다.
데빌 슬레이어인 그녀는 대장들을 통솔하는 사령관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었다.
『어...?』
하나둘씩 집결하는 참가자들의 면면을 살피던 사람들이 귀를 의심했다.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번츠델이 있는 방향이었다.
번츠델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그리드 앞에 정중히 부복하고 있었다.
단순히 예의를 갖추는 수준을 넘어서는 태도였다.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잘못 들은 거겠지...?’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애써 부정하는 가운데.
“지금부터 대장 선발전을 시작하겠습니다."
대회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