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489화 (1,477/1,794)

74권 12화

라우엘이 뮤토 상단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뮤토 상단.

템빨국의 상권을 사실상 독점해 온 그들의 세력은 몹시 거대했다.

상왕 뮤토의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다.

실제로 그들이 보유한 토지 현황을 보면 나라를 자처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플레이어 최조로 상왕이라고 불렸던 키르가 고작 ‘도시’를 보유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였다.

“뮤토 상단은 10분의 1 정책을 고수해온 우리 최대의 우방인데 굳이 견제를 해야 합니까...?”

10분의 1.

뮤토 상단이 템빨국과 교류할 때 남겨온 이윤을 뜻한다.

여러 실정을 고려했을 때 욕심을 아예 버린 셈이었다.

불공정 계약,노예 계약,자원봉사 등을 언급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뮤토는 템빨단 2군 소속이다.

길드원이라는 명목으로 상단의 인력과 정보를 템빨국에게 무상으로 제공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템빨국의 상권을 거머쥔 탓에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했지만,노력에 비해 얻은 대가는 몸시 적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뮤토 상단을 견제하기 위해 다른 상단을 영입하겠다는 라우엘의 결정을 후로이는 쉽사리 납득하지 못했다.

라우엘이 설명했다.

“저는 뮤토님을 의심하거나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뮤토님이 본인의 세력을 통제하지 못해서

휘둘리는 상황을 염려하는 것이죠. 현재 뮤토 상단의 운영진 숫자가 30명을 넘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시겠죠?”

“뮤토가 전원 친 그리드파 인사로 선별했다고 들었는데...”

“정치란 개인의 감정과 별도로 진행되는 겁니다. 특히 상인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게 궁극의

목적이므로 변질되기 쉽죠. 생각해보십시오. ‘그리드님의 제국’에서 충분히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그들이 감히 그리드님께 입김을 불어넣는 모습을.”

"..."

후로이의 얼굴이 서서히 상기됐강아지를 떠올리게 만드는,끝이 쳐진 유순한 눈매가 위로 무섭게 치솟았다.

그리드의 첫 번째 심복인 후로이에게 그리드란 유일한 군주이자 신이었다.

누군가가 그리드를 휘두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분노를 느꼈다.

“당신의 악마적인 재능으로 파악한 라이온 상단의 내실은... 규모에 비해서 굉장히 탄탄하더군요.

마르지 않는 샘을 둔 것처럼 외부자본이 끊임없이 유입되는데,배후 세력에게만 의지하고

있다고 보기 힘든 수준입니다. 아마 상단원들이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외유에 집중하느라

내부 스파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그런 의심이 들 지경이랄까요.”

내부 스파이란 당연히 후로이를 뜻한다.

수개월 전.

제3의 인물로 위장하고 라이온 상단에 잠입한 후로이는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정보를 빼돌리고도 스파이라는 사실을 발각당하지 않았고,심지어 중간 간부로 승진까지 했다.

라우엘은 일종의 행운으로 해석했다.

외부 자본에 집착하는 라이온 상단의 특성상 운영진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고,새로운 인물에게도 개방적이라 후로이가 활약하기 쉬웠던 거라고.

물론 후로이의 위장술과 연기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과연 응변가.

입으로 먹고 사는 직업다웠다.

“라이온 상단은 처음 진출하는 사업마다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해 왔죠.

우리와 계약할 기회를 얻게 되면 상단의 모든 자본을 투자할 가능성이 높은데 지옥

엘리베이터의 건설비용을 상당량 충당할 수준일 겁니다. 물론 후로이님께서 그들을 잘 설득하실 필요가 있겠죠.”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상단주가 내 말은 무조건 신뢰하고 보는지라.”

“과연 후로이님... 그리드님의 첫번째 심복답게 훌륨하십니다.”

“이 정도야 기본이죠...”

라이온 상단을 지옥 엘리베이터 건설에 참여시키는 것부터 시작해 뮤토 상단의 대항마로 키운다.

뮤토 상단에게 경쟁자를 던져줌으로써 경각심을 심어주고 ‘선’을 넘지 못하도록 봉쇄한다.

템빨제국은 두 상단의 경쟁 과열이 만들 여러 이점을 취한다.

만에 하나라도 두 상단이 담합할 여지는 없다.

라이온 상단에 후로이가 있듯이 유토 상단에도 긴 세월에 걸쳐서 여러 첩자를 심어뒀으니까.

담합은커녕 무한 경쟁을 유도하는 게 가능했다.

명분도 충분하다.

제국이 된 템빨국을 고작 1개의 상단이 감당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까.

뮤토 상단은 이번 사태를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감히 서운하게 생각하지도 못할 것이다.

'동시에 라이온 상단의 배후에 접근하기 수월해질 테니까 일석이조라고 박야겠지.’

* * *

이틀 뒤,라이온 상단.

“템빨제국과 교역할 길이 열릴 것 같습니다.”

“뭣이...? 정녕 사실이오? 템빨국의 상권은 뮤토 상단이 독점해 오지 않았소? 어찌 그게 가능하단 말이오?"

“평소 저를 믿고 일을 맡겨주신 상단주님과 부단주님의 배려 덕분이지요.

두 분의 신뢰에 부응하려 고 노력하다 보니 큰 기회를 거머쥐게 됐습니다.”

“허허...! 우리 상단의 복덩어리 답소! 그대를 섭외할 수 있었던 것이 우리 상단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닐까 싶소!!”

“하하하!”

“허허허!”

접대하는 자와 접대 받는 자.

접대하는 자에 속하는 부단주 섬예는 골치가 아팠다.

웃는 낯과 달리 마음은 썩어 들어갔다.

‘템빨단하고 너무 엮이고 싶지 않은데.’

섬예는 템빨단이 후로이를 첩자로 심은 이유를 뻔히 알고 있었다.

인페르노의 수십 개 점조직 중 하나.

템빨단은 라이온 상단의 정체를 파악하고 접근한 것이다.

궁극의 목표는 인페르노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일 터.

인페르노와 관련 된 정보는 모조리 파기했고,인페르노와 접촉하는 실질적 인물은 상단주 라이온이 유일했지만...

꼬리를 감추는 것엔 한계가 있는 법이다.

템빨단과 가까이 엮여서야 감춘 꼬리가 금방 발각될 수도 있었다.

물론 꼬리가 밟힌다고 해서 인페르노에게 어떤 해악이 미칠 가능성은 없다.

라이온 상단을 파헤치는 것으론 인페르노를 파악할 수 없으니까.

사실상 섬예조차도 인페르노의 정체를 정확히 몰랐다.

다만 섬예가 경계하는 건 라이온 상단의 멸망이었다.

템빨단이 인페르노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상단이 피해를 입고 양 쪽 모두에게 버려지게 된다면?

'라이온님께선 상단에 집착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하셨지만 내게 는 이 상단이 전부다...’

초조함에 휩싸이는 섬예였다.

다만 내색은 못하고 후로이와 함께 연신 웃었다.

* * *

신의 원의 수리를 마친 후.

“그동안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그리드 일행은 세계수에게 정중히 작별을 고했다.

엘프들뿐만 아니라 정령왕들까지 한 자리에 모여 그들을 배웅했다.

[어이,무돌이. 정령계도 종종 놀러오고 그래. 거기가 네 고향이니까.]

[네,불돌이님.]

[저 미친놈이 자꾸!]

[이름이 없는 것보단 낫지 않아요? 난 물순이 마음에 드는데.]

[땅돌이. 마음에 쏙. 들어요우.]

[난 풍순이... 별로지만... 이름을 지어준 무돌이의 마음이 기뻐.]

[완전히 미쳐 돌아가는군...]

불의 정령왕이 탄식하는 것과 별개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빛의 정령왕의 억압에서 풀려난 정령왕들은 자유를 느꼈고,그리드의 요리를 먹으며 미각에 눈을 뜬 엘프들은 새로운 행복을 찾았으니까.

정령왕들을 소환하는 과정에서 격의 손실이 발생한 세계수가 마음에 걸렸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였다.

그리드는 제국민들로 하여금 세계수를 숭상하도록 유도할 계획이었다.

엘프들이 숲에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게끔 허용한 이상,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숲을 찾아와 세계수에게 기도하며 격의 회복을 촉진시킬 터였다.

‘세계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이롭다.’

세계수는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지상의 공기와 마나를 정화한다.

세계수가 건강해야만 인류에게도 미래가 있는 것이다.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찾아오세요.

“꼭 도움이 필요할 때만 찾아올 게 아니라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기쁩니다. 부디 자주 뵙기를 바랄게요.

긴 여정이 끝났다.

* * *

“오오,이런...”

“정녕 해낼 줄이야!”

라인하르트로 복귀하기 전.

그리드는 파일볼프와 함께 지혜의 탑에 들렀다.

완벽하게 수리 된 신의 원을 건네받은 프론잘츠 형제는 감동을 금치 못했다.

거인족의 신물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것이다.

눈물이 절로 흐를 정도의 감격이 밀려왔다.

“귀하는 우리 종족의 은인이오.”

“이러지 마십시오.”

고개를 조아리는 프론잘츠를 그리드가 급히 일으켜주었다.

“오랫동안 세계의 평학를 위해 싸워주신 여러분께 작은 보템이라도 됐다는 점이 기쁠 따름입니다.

저야말로 여러분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신의 원을 수리한 건 제가 아니라 파일볼프님이시고요.

“세계수가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도와준 점이 컸네. 순전히 세계수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봐야지.”

매번 느끼는 거지만, 파일볼프는 정말로 영리한 사람이었다.

자연히 세계수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세계수가 보다 수월하게 격을 회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드의 바람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호감을 품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파일볼프는 변태다.

이 순간에도 연신 제 몸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은 점점 옅어지고 호감만 늘어났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대인관계도 좋을 거라는 편견을 품게 됐다.

어디까지나 편견에 불과했다.

라우엘과 브라함의 대인관계를 떠올리며 고개를 젓는 그리드의 시야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프론잘츠와의 호감도가 최대치가 됐다는 메시지였다.

지혜로운 거인족의 생존자들이 세계수를 숭상하기 시작했다는 메시지가 그 뒤를 따랐다.

* * *

“족히 4배는 더 강력하군요.”

라인하르트,템빨신교 본단.

교주 데미안은 템빨신의 샌드백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5융합 검무와 6융합 검무의 데미지 차이를 몸소 체험하며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검무 또한 무속성의 진화를 맞이한 상태였다.

템빨신 그리드의 성장에 맞춰서 교인들의 검무도 자연히 성장한 것이다.

템빨신교에 소속 된 플레이어들은 막말로 ‘가만히 있어도 강해지는’ 환상 같은 체험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무조건 스턴... 무지막지한 강점이네요.”

“솔직히 사기지.”

“궁극의 무라고 했던가요? 언젠간 교인들의 검무에도 생기는 효과일지...?”

“음... 그건 아닐 거야.”

궁극의 무는 무신 치우가 그리드에게 직접 하사한 가호다.

굳이 등급을 매기자면 유일.

그리드 외의 다른 사람이 얻는 건 평생 불가능할 것이다.

‘동료들도 얻으면 큰 도움이 될텐데.’

아무래도 불가능하겠지.

아쉬움을 뒤로한 그리드가 장소를 옮겼다.

지옥 엘리베이터 건설 현장이었다.

지옥문과 엘리베이터의 효용성을 비교하며 기술자들에게 조언하는 유라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아름답다.’

유라는 은백색의 망토로 변신한 무돌이를 걸치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음에도 물결치는 망토가 굉장히 화려했다.

유라의 미모를 가꾸는 수단으로 보일 지경으로,사람들의 이목을 자연히 집중시켰다.

저 망토가 유라의 전신을 감싸는 슈트로 변할 거란 사실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겠지?

그외드는 유라의 비밀을 아직 자신만 안다는 사실에 은근한 우월감을 느꼈다. 게다가 유라에게 큰 기대감을 품었다.

무돌이는 유라의 새로운 아이템이라고 봐야 옳았다.

다양한 형태로 변신이 가능해서 갓 핸드처럼 활용할 수 있었고,무기와 방어구로도 활용할 수 있었는데 이때 엄청난 강점이 생겼다.

별도의 무기,방어구로 변신하는 수준을 넘어서 착용 중인 무기와 방어구 위에 덧씌워지는 방식으로  활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이템 위력을 대폭 증가시키는,무돌이 버전의 아이템 합체 스킬이었다.

‘바알전에서 크게 활약해줄 거다.’

지옥 침략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

유라를 한동안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지옥 깊숙이 뻗어나가는 원통형의 엘리베이터로 시선을 돌리던 그리드가 흠칫 놀랐다.

등 뒤가 싸늘했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선을 따라가 보자 유라가 있었다.

“…메르?”

“ 네. ”

대답하는 메르세데스의 표정은 활짝 편 꽃처럼 밝고 예뻤다. 조금 전의 사늘한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잘못 본 건가…?’

고개를 저은 그리드가 시찰에 집중했다.

지옥 엘리베이터를 민간에 개방하기 전까지,템빨단은 당분간 12개의 지옥 원정대 부대를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그리고 바로 내일.

이곳 라인하르트에서 12명의 대장을 뽑는 대회가 열린다.

템빨단원들은 물론이고 무려 반용족 로드와 오크 로드,그리고 다크엘프 왕 등의 군주들까지 참가하는 대규모 대회였다.

머잖아 열릴 국대전을 앞두고 랭커들의 전력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기에 세간의 관심도가 높았다.

스스로 전력을 노출하는 템빨단이 다소 오만한 게 아니냐는 평가도 잇따랐다.

정작 템빨단은 개의치 않았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템빨단원들은 국대전엔 참가할 계획이 없었으니까.

올해부터 국대전은 템빨단에서도 최상위 실력자가 아닌 인물들,예를 들어 코크와 이벨린,토반 등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인마대전을 앞두고 그리드가 만들어준 아이템이 워낙 강력해서,그들만으로도 충분히 금메달을 쓸어 담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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