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482화 (1,470/1,794)

74권 5화

상위룡이자 화룡.

지혜의 탑이 고룡 바로 다음가는 위계로 평가했던 이프리트의 자살특공은 무지막지한 후폭풍을 발생시켰다.

세계의 지각이 변동했다.

광야를 가로지르는 산맥이 솟구치고 수십 개의 섬이 생겨나는 등,온갖 변학로 인해 인류가 여태껏 사용해온 지도가 일부 무용해졌을 정도다.

사람들은 사건의 원인을 알 도리가 없었다.

단순히 재해로 받아들일 뿐,드래곤과 결부 짓지 못했다.

드래곤이란 민간과 완전히 동떨어진 별세계의 존재여서다.

* * *

“한동안 돌아오지 못할 듯합니다.”

스컹크 모험단이 바빠졌다.

지도를 다시 만들기 위해 새로운 모험을 준비했다.

기약 없는 여정이 될 텐데도 하나 같이 표정이 밝았다.

지도를 채우는 행위는,모험가에게 가장 크고 확실한 보상을 주는 시스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스컹크를 비롯한 모든 모험가 플레이어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각 지역 사령관들이 출정했다는 소식입니다.”

군대 역시 바빠졌다.

지각 변동은 생태계의 교란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각 지역이,사냥터가 뒤죽박죽 섞였다.

100레벨 플레이어들이 애용하는 사냥터에 30◦레벨 몬스터가 서식하게 되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

새로운 환경이 자리 잡기 전까진 군대가 상황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라우엘은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군대를 움직일 명분을 얻은 김에 금싸라기 땅을 먼저 파악하고 선점할 계휙을 세웠다.

“피아로 공께서 수송대와 농부파견의 허가를 요청하셨습니다.”

바뀐 세상은 농부들의 도움 또한 필요로 했다.

지형과 환경의 변학로 논밭들이 망가진 상황.

식량을 비축해놨던 창고가 파괴된 지역도 더러 있었다.

대륙 각지에서 식량난을 근심하게 됐는데 템빨제국은 그들을 도울 여력이 충분하고도 남았다.

피아로를 보유한 템빨제국은 농업 강국이었으니까.

지난 십수 년 동안 피아로가 친히 육성한 농부들이 또 다른 농부들의 스승이 된 마당이다.

수십 만 농부가 식량을 가득 채운 마차를 이끌고 원정 농업을 떠났다.

올해는 온 대륙에서 풍작을 거둘 거라는 야심찬 포부를 품은 채였다.

암석으로 뒤덮인 계곡에서도 논밭을 일구는 실력자가 태반이었기에 그들의 자신감엔 자격이 있었다.

‘좋다. 이번 지원을 빌미로 동맹국과 영주들에게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어.’

“라우엘,마리로즈에게 지원을 요청하러 떠났던 카츠가 전직 퀘스트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한다.”

“...”

안 그래도 미소 짓고 있던 라우엘이 반색했다.

이번 재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뱀파이어의 도시들이다.

아무래도 지하에 위치하다보니 지각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도시 중 절반 이상이 완전히 매몰됐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뱀파이어들이 워낙 튼튼하다는 점.

사상자는 적었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무너진 천장의 틈새들로부터 햇빛이 쏟아졌고 상당수의 뱀파이어는 태양에 취약했다.

사실상 숨통이 조여진 채 밤만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도시 재건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일손이 부족했다.

대륙 각지에 파괴된 건축물이 넘쳐났다. 상당수의 건축가가 생선시설과 방위시설 복구에 우선 투입 된 상태였다.

이때 나선 게 놀과 카츠다.

두 사람은 유일하게 멀쩡한 마리로즈의 도시에 주목했다.

놀은 형제라는 명목으로,카츠는 베리아체의 기사라는 명목으로 마리로즈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그녀를 찾아갔다.

밤마다 잠들지 못하고 고통 받는 뱀파이어들을 당분간이나마 거둬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카츠에겐 행운이었다.

마리로즈의 성을 장식하고 있는 베리아체의 그림들.

그것은 카츠에게 온갖 정보를 전달하는 기연이 되어주었다.

고대 클래스 <베리아체의 기사>가 반응하며 급진적인 발전을 맞이했고 마리로즈가 큰 흥미를 보였다.

“너는 꼭 필요한 아이로구나.”

마리로즈는 인계에 드문 절대자다.

인간 중에서 그녀와 비견되는 존재를 굳이 뽑자면 하야테를 언급해야 할 수준인데 보통의 사람들은 하야테를 모른다.

마리로즈를 최강으로 인식했다.

그만한 존재에게 관심과 호의를 얻게 된 것이다.

카츠 입장에선 그리드와 인연을 맺은 행운 다음이라고 여겨도 좋을,일생일대의 대사건이었다.

“카츠님께서... 이건 또 예기치못한 희소식이군요.”

라우엘은 일련의 사태를 토대로 대지신 가리온을 떠올렸다.

이번 재해는 사실 가리온의 축복이 아닐까,그런 의심을 품었다.

근거 있는 의심이었다.

크라우젤이 세상을 가를 때마다 수복시켰던 가리온이 지금은 방관하고 있었으니까.

온 대륙의 지각이 바뀌었는데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는 건 평소 그의 태도와 완전히 대립됐다.

이번 재해가 가리온의 의지로 성사된 거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가리온은 인류의,정확히 말해서 그리드 님의 편에 서기로 결심한 거 아닐까?’

짐짓 기대하는 라우엘의 표정이 밝았다.

인명피해 현황을 기록한 문서가 탑처럼 쌓였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재난으로 죽은 사람들의 가치보다 재난이 일으킨 변학의 가치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 * *

“엄마아!!”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지슈카와 템빨단원들은 인명 구조에 주력하고 있었다.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건물의 잔해를 샅샅이 뒤졌다.

공간을 상공에서부터 관조하는 지슈카의 초월적인 시야가 큰 역할을 해주었다.

“여긴 그나마 지슈카 덕분에 괜찮지만 다른 지역은 쉽지 않겠네.”

간신히 구출한 모녀의 상봉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토반이 씁쓸히 말했다.

다른 동료들의 표정 역시 편치 못했다.

지슈카가 그들을 안심시켰다.

“요즘 애들은 하나 같이 특별한 스킬을 익히고 있잖아. 다른 곳의 상황도 나쁘지 않을 거야.”

데미안과 템빨신교, 페이커와 템빨그림자단,루비와 신성교단을 비롯한 템빨단의 주력들이 구호 활동에 전념하는 중이다.

지슈카는 그들의 실력과 노력을 믿었다.

“그리고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긴 한데 일손이 워낙 부족해서...”

토반이 태클을 걸었다. 자신도굳이 이러고 싶지 않다는 듯,곤란한 표정을 지은 채다.

“라우엘 녀석,왜 굳이 사냥터에 먼저 군대를 파견한 건지...”

토반은 민간에 별 관심이 없는듯한 라우엘의 태도에 불만이 많았다.

대놓고 욕하지 못하는 이유는,라우엘이 대제국의 재상이라서가 아니라 동료이기 때문이다.

동료를 욕할 때는 폰과 반트너처럼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해야지 뒤에서 해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불학의 씨앗을 막기 위해서다.

지슈카가 라우엘을 옹호했다.

“사냥터가 뒤섞인 상황이야. 어느 지역에서 가치 있는 보스가 출현하고 수요 높은 아이템이 드롭될지 빠르게 파악해야 선점할 수 있어.”

기존의 정보는 무가치해졌다.

라우엘은 피해자들을 외면하는게 아니라 제국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동료들에게 설명하는 지슈카의 마음도 사실은 편치 않았다.

그녀는 라우엘의 성격이 얼마나 냉혹한지 잘 안다.

수만 명의 병사들을 생매장시킨전적도 있지 않나.

솔직히, 때때로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함부로 라우엘을 비난하지 못했다.

그녀의 역할은 중재자.

템빨단 내에서 그리드 다음가는 인망을 지닌 그녀에겐 중심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만약 그녀가 라우엘을 사적인 감정으로 평가하기 시작하면 파벌이 갈릴 가능성이 높았다.

‘라우엘이 템빨단을 위해서 노력하는 건 사실이고.

라우엘의 판단과 선택은 대부분 옳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희생시킨다는 점이 문제지만... 어디까지나 최선의 결과를 위해 감수하는 희생이었다.

뻔히 알고도 매번 반목했다간 조직 자체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내가 열심히 하면 돼. 희생되는 사람들은 내가 구하면 되는 거야.’

재차 다짐하는 지슈카의 얼굴에 피로감이 스쳐지나갔지만 말 그대로 한 순간에 불과했다.

그녀는 그리드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피로를 떨쳐냈다.

‘보고 싶네.’

바사라와의 정략혼 이후,그리드의 성격이 굉장히 대범해졌다.

현실에서도 솔직하게 지슈카에게 감정을 표현했다. 이번 주엔 벌써 2번이나 데이트를 즐겼다.

재밌는 사실은,그리드가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오히려 지슈카가 부끄러움을 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

갑자기 얼굴을 붉히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그녀를 동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다.

***

지상과 지옥을 연결하는 차원간 워프게이트.

통칭 <지옥 엘리베이터>의 건설이 큰 난관에 봉착했다.

며칠 전 발생한 대규모 지진 탓에 건설 중이던 엘리베이터가 처참히 무너진 것이다.

국가 인력과 자본을 대거 투입한,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사였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손실이 있었다.

재상 라우엘은 괜찮다며,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케를을 다독여주었지만... 케를의 마음은 영 불편했다.

불쑥 찾아와 눈치를 주는 라빗행정관 때문이 아니다.

그 힘들고 복잡한 작업들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게 압박이었다.

지옥 엘리베이터의 건설은 케를의 지식과 기술로도 감당하기 힘든 고난도의 작업이었고,피로도가 너무 높았다.

"후후훗."

케를이 연신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파일볼프는 웃고 있었다.

즐거운 작업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는 제국이 된 템빨국의 막강한 자본력이 황홀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며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윗선의 태도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이 나라는 과학자에게 천국이다.’

진즉에 멸망했다는 조국의 전성기가 떠오를 지경.

하지만 그보다 마음에 드는 건 새로 얻은 육체다.

평소엔 차갑지만 금방 뜨겁게 달궈지는 금속 육체.

지성과 열정을 겸비한 자신의 영혼과 꼭 닮아있지 않은가.

실로 완벽한 일체감이다.

게다가 아무리 일해도 지치지 않고 섬세한 작업도 가능했다.

거인족이나 인간의 나약한 육신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마장기는 신이고,고로 나도 신이다. 후욱... 후욱...”

‘또 병이 도졌군.’

거친 숨결을 토하며 헛소리를 지낄이는 파일볼프를 케를이 행한 눈으로 쳐다봤다.

부활(?)한 거인족.

지옥 엘리베이터를 설계한 위대한 과학자에게 품었던 존경심은 진즉 사라지고 없었다.

드워프들 사이에선 기인으로 꼽혔던 케를조차도 파일볼프의 기행을 이해하지 못했다.

“...”

템빨성의 첨탑 위.

그리드를 쫓아 은밀하게 속세에 강림한 프론잘츠와 라드볼프 형제가 할 말을 잃었다.

파일볼프에게 못박힌 채 떨리는 그들의 시선을 엿본 그리드가 헛기침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분이 파일볼프 맞습니다.”

“...믿지 못할 리가 있나. 한 눈에 알아봤소.”

“...?”

“마장기와 한 몸이 되기 위해 말년을 바치셨던 분이니... 그건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었는데

설마 천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꿈을 이루셨을 줄은...

아니,도대체 어떤 미친 자가 사람의 영혼을 마장기에 가둬버린 거지?”

“크흠, 형님”

“아...? 이런,뒷말은 잊어 주시오.”

잠시 후.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프론잘츠형제와 파일볼프의 재회가 성사됐다.

우리 외의 생존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감회에 젖은 프론잘츠 형제와 달리 파일볼프는 신의 원에만 관심을 보였다.

"가능."

과연 거인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다웠다.

파일볼프는 신의 원을 수리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지혜의 탑의 전력이 급격히 강화되게 생겼다.

결과적으로 그리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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