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451화 (1,441/1,794)

템빨 72권 - 18화

지난 천 년.

거산 그레니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전설과 신화가 묻혔다.

그 흔적은 의외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암벽 곳곳에 새겨진 수십 만 개의 검흔이 바로 그것이다.

그레니어의 산군은 침략자들의 흔적을 항시 되새겼다.

매일 암벽의 검흔들을 연구하며 복기했고, 체화하여 발전시켰다.

산용수상(山容水相).

그리드가 얻은 신화급 스킬의 기원이다.

천 년의 역사, 그레니어를 지키고자 노력해온 산군의 의지, 산군의 의지에 삼켜진 전설과 신화들이 담긴.

아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스킬 중에서 가장 많은 해석이 녹아들었을, 여러 존재들의 항쟁을 증명하는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산용수상(山容水相)>

패시브

어느 산천의 형세를 구현하는 검술입니다.

우뚝 솟은 산봉우리,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산세를 따라 흐르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 폭포에 풍화되어온 바위, 홀로 선 소나무에 이르기까지.

누군가가 평생토록 지켜온 풍경을 검으로 그려냅니다.

★도검류 무기 착용 시 의지 스탯 2배로 상승.

★검술 스킬의 형태에 따라 추가 효과 발생.

★쌍수검 페널티 삭제.

★쌍수검 사용 시 2개의 검술 관련 스킬을 동시 전개 가능. 단,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 소폭 증가.

★보유 중인 검술 관련 스킬이 전부 사용 불가 상태일 경우 패시브 강화. 검술 스킬의 형태에 따라 발생하는 추가 효과가 일반 공격의 형태에 따라 발생. 단, 도검류 무기를 장착했을 경우에 한함.

패시브 스킬이다.

발동 조건이라곤 도검류 무기를 착용하거나 검술 관련 스킬을 사용하는 게 전부였다.

그리드에겐 사실상 항시 적용되는 스킬이란 뜻이다.

한데 성능이 남달랐다.

‘일단 화신의 폭풍을 비롯해 의지 스탯의 영향을 받는 스킬들의 위력이 대폭 강화됐고.’

저벅.

실험삼아 화신의 폭풍을 활성화시킨 그리드가 보폭을 내딛었다. 가벼운 동작이었는데 쏘아진 검의 형체는 빛살 같았다.

살(殺)의 전개다.

퍼퍼펑!!

“...!”

그리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 충격파가 한 번이 아닌 세 번으로 분절된 까닭이다.

바위를 풍화시켜온 폭포를 뜻하는 걸까.

‘찌르기’ 형태의 스킬에 다단히트 효과가 추가됐다.

‘미친.’

등골이 오싹해진 그리드가 템빨골들을 소환했다.

변화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서다.

물론 꺼려졌다.

비록 템빨골이 고통을 모르는 언데드라지만 소중한 펫에게 함부로 칼질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공교롭게도 어쩔 수 없다.

그리드의 딜량을 견디는 수련용 허수아비가 없으니까. 라빗이 쓰러질 거다.

그렇다고 해서 ‘데미지를 입지 않는’ 갓 핸드를 딜 미터기로 쓰는 건 불가능하다.

퍼퍼펑!!

1회의 검격이 템빨골1을 3회 꿰뚫었다.

살의 피해량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100의 공격을 3회하는 건 아니다. 100에 이어지는 두 차례의 피해량은 각각 50퍼센트, 80퍼센트씩 위력이 차감됐다.

하지만 액티브 스킬이 아니라 항시 적용되는 패시브 스킬이라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최소 수십 퍼센트의 추가 데미지를 거저먹은 셈이다.

심지어 다단히트로 적용됐다.

다단히트는 적의 방어 스킬을 소모시키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몹시 유용하다. 상황에 따라서 단순히 깡딜이 오르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이러니까 제라툴의 비급이 성에 차겠냐고.’

제라툴이 작성한 쌍수검 비급은 충분히 대단했다.

베니스 앞에선 짝퉁이라고 비하했지만, 속내는 괜히 무신이 아니구나 감탄했을 정도다.

쌍수검 착용 시 공격력과 공격속도가 대폭 상승하여 직관적인 위력만 놓고 보면 산용수상의 위력을 초월했으니까.

명백히 신화급 스킬이었다.

고작 며칠 만에 그런 비급을 완성시킨 제라툴의 저력이 솔직히 두려웠다.

만약 제라툴이 마음먹고 비급을 양산한다면, 그것을 습득하고 강해질 천사들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결국 산군의 비급을 선택했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라 제라툴의 비급에 단점이 있어서다.

첫째, 지속력에 한계가 있었다.

쌍수검 착용 시 상승하는 공격력과 공격속도는 계속 유지되는 반면 사용할수록 여러 상태이상이 유발됐다.

특히 골절 등의 물리적인 상태이상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서 쌍수검은커녕 검 한 자루도 제대로 못 다루는 사태를 겪을 가능성이 있었다.

제라툴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무신의 추종자들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듯, 제라툴은 자신의 무술을 익히고 사용하는 대상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부작용을 겪든, 설령 죽을지언정 자신의 무술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그걸로 족하다고 여긴다.

‘단점은 그뿐만이 아니야.’

산용수상은 다른 마스터리 스킬과 마찬가지로 그리드의 검무와 조화를 이루는 반면 제라툴의 비급은 조화가 어긋났다.

쌍수검 착용 시 발생하는 효과를 극대화시켰기 때문에 발생한 부작용인 듯한데, 그리드 입장에선 전혀 메리트가 없었다.

쌍수검을 쓸 때마다 검무의 패시브 효과가 사라지면 쌍수검을 쓰는 의미가 사실상 없는 까닭이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충분히 감수할 페널티겠지만.’

제라툴의 쌍수검 비급은 현존하는 마스터리 스킬 중 가장 위력이 뛰어나다고 단언해도 좋았다.

평범한 사람은 기존의 마스터리 스킬을 버리는데 고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가 감수할 건 못된다.

검무의 패시브 효과를 포기해선 손해가 너무 컸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마치 산용수상이 제라툴의 비급보다 성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의지 스탯 상승, 스킬 사용 시 추가 효과 발생, 2개 스킬 동시 사용 가능, 스킬 사용 불가 시 추가 효과 강화.

제라툴의 비급엔 없는 옵션들이 산용수상엔 있었으니까.

산용수상은 보조 역할에 최적화 된 마스터리라고 해석하는 게 적절했다.

‘이쯤 되면 확신해도 좋겠지.’

산군은 내 상태를 간파했다.

내게 부족한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비급들을 골라 넘겼다.

그간 수많은 전설과 신화를 만나고 찬탈해온 산군의 배경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터다. 통찰력이 어디 보통이겠나.

‘애초에 산군의 영역이기도 했고.’

역시 자신의 영역에서만큼은 고룡급이 아닐까 싶다.

라우엘은 전혀 동의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현재로썬 이렇게 추측하는 게 옳았다.

그리드는 산군이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받는 피해 감소’의 권능을 몹시 높게 평가했다.

‘일단 뚫으면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드래곤의 절대 방어와 달리 산군의 피해 감소는 뚫고 말고의 개념이 없는 패시브 스킬이므로.

‘...아니, 아무리 그래도 고룡급은 너무 과장인가?’

드래곤의 절대 방어를 뚫는다고 해서 실제로 유의미한 데미지를 입힐 거라고 확신할 수 있나?

없다.

물론 그리드는 악룡과 미식룡을 만나봤다.

하지만 이중 미식룡은 단순히 유희를 즐겼기에 전투력을 짐작하기 힘들었고, 악룡은 단순히 재앙으로 인식돼서 통찰이 제대로 안 됐었다.

충격적인 능력치만 기억에 남을 뿐, 스킬이나 권능 등은 경험해볼 기회도 없었다.

무엇보다 당시 그리드의 수준이 너무 낮았다.

‘무지가 일으킨 혼선일 가능성이 높겠어.’

악룡과 싸웠을 때의 그리드와 지금의 그리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악룡을 싸웠을 땐 핏덩어리에 불과했다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니다.

만약 지금 다시 악룡을 만나면... 예전과 전혀 다른 감상을 느낄 확률이 높다.

‘고룡은 무신에 필적한다고 했으니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무신이 치우가 아닌 제라툴일 수도 있다.

과연 그레니어를 제라툴과 동급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확신이 안 들어. 내가 본 제라툴은 인계 강림 버전에 불과했으니까.’

그놈에 ‘영역’이 문제다.

대악마들은 지옥과 지상에서 다르고, 천사들과 신은 천상과 지상에서 다르듯, 개체별로 영역에 따른 힘의 편차가 너무 심한 탓에 자꾸 헷갈린다.

당장 산군만 해도 그레니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처음 봤으면 허접이라는 인식이 박혔을 거다.

‘결국 전부 직접 경험해봐야 알게 될 사실들.’

그때가 왔을 때 좌절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시작하자.”

딱딱! 딱딱딱!

템빨골들이 오늘따라 말을 잊었다.

기껏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턱만 부딪쳤다. 비명을 삼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그리드는 산용수상의 상세 효과를 전부 확인하고 체득할 수 있었다.

다른 3개의 전설 스킬도 마찬가지다.

<폭풍전야>

발동 즉시 50퍼센트의 피해 감면 효과를 얻습니다.

최소 3초에서 최대 10초 동안 ‘모든 행동 불가’ 상태가 되며 초당 10의 분노를 얻습니다.

분노 수치가 20 이상일 때부터 반경 5미터 내의 모든 적의 행동이 느려집니다.

분노 수치가 높아질수록 영향 범위와 감속 효과가 커지고 발동 해제 시 영향 범위 내의 모든 대상에게 ‘감면시킨 데미지 전부’를 되돌려줍니다. 추가로 2초간 기절시킵니다.

기절 확률은 분노 수치와 비례하며, 100의 분노를 축적했을 경우 100퍼센트 확률이 됩니다. 이때 대상의 스턴 저항력을 무시합니다.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30분

스킬 마나 소모:25,300

우선 새로운 필드 스킬을 얻었다.

제약이 크고 조건이 까다롭지만 일발역전을 노리기 적합하다.

활용 능력에 따라서 전황을 쉽게 반전시킬 것이다.

다만 굉장히 큰 단점이 있었다.

“나의 분노를 감당할 자격이 있느냐.”

...스킬 발동에 시동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후회하라.”

심지어 분노가 충전될 때마다,

“오열하고.”

대사가 추가됐다.

“절망하라.”

의지와 다르게 멋대로 입이 열렸다.

시스템의 강제력이었다.

아무래도 적들의 기세를 분노로 억누른다는 스킬 구조를 근거로 발생하는 효과 같았다.

‘어떤 마안족이 그레니어까지 기어들어갔었나?’

스킬의 기원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그리드였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렸다.

인마대전 기간 동안 무저갱에서 종종 활약한 마안족 덕분에 중2병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실정이니까.

‘...아니, 전혀 위안이 안 되잖아?’

아무튼 아직 2개의 스킬이 남았다.

<암중검>

스킬 활성화 시, 매 공격마다 30퍼센트의 확률로 마법공격력의 60퍼센트에 비례하는 추가 공격을 발생시킵니다.

추가 공격은 대상의 발밑에서부터 발생하며 물리력으론 방어가 불가능합니다.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없음

스킬 활성화 시 마나 소모:10,000

스킬 활성화 유지 시 마나 소모:초당 500

*스킬이 발동할 때마다 추가로 2,500의 마나 소모

회피하거나 마나를 쓰는 스킬을 써야만 방어가 가능한 기술.

발동 확률이 30퍼센트로 높진 않지만 그리드의 공격 속도를 생각하면 아쉬워하기 힘들다.

템빨골1을 대상으로 연을 쓰자 템빨골1의 발밑에서 솟구쳐 올라온 새카만 칼날의 개수가 무려 10개가 넘었다.

‘마나 소모량이 미쳤는데.’

그리드는 부조리의 반지 등의 효과를 누리는 중이다.

스킬을 사용할 때 소모되는 마나가 요구량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런데도 마나가 쭉쭉 빨려나갔다.

공격 속도가 워낙 빨라서 생긴 부작용이다.

하지만 무조건 좋은 스킬이었다.

정말, 백이면 백 누구나 탐낼 만큼 강력하고 활용도가 높았다.

멋지기도 했다.

10개 이상의 칼날이 동시에 솟구칠 때는 그 자리가 완전히 새카맣게 물들어 소멸해버린 듯한 착각을 준다.

‘다 좋다. 다 좋은데...’

마지막 스킬이 문제였다.

<산중지왕>

패시브

생명력이 3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질 시 산군의 가호를 받습니다.

모든 속도가 대폭 증가하고 유체화 상태가 되어 물질을 관통할 수 있습니다.

공격 대상을 관통할 때마다 대상에게 입히는 피해량이 2배씩 증가합니다. 최대 20배. 단, 스킬 피해량은 최대 4배만 적용.

★산중지왕 상태에선 회피율이 51퍼센트 상승합니다.

*이 스킬은 생명력이 30퍼센트 이상으로 다시 회복되기 전까지 유지됩니다. 최대 1시간.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1시간 5분

스킬 마나 소모:없음

순보를 쓰는 그리드에게 관통 중첩을 쌓는 건 일도 아니다.

공격 대상을 목표로 지정해서 순보를 쓰는 순간 일단 1중첩을 쌓고 시작하는 거니까.

뇌신과의 조화도 기대가 됐다.

하지만 생명력을 30퍼센트 미만으로 유지하는 게 어려웠다.

흡혈 템을 착용한 상태로 대상을 공격하면 곧장 생명력이 30퍼센트 이상으로 솟구치고, 흡혈 템을 벗는다고 해도 자연 회복 속도 탓에 또 금방 생명력이 30퍼센트에 도달한다.

치유력을 억제하겠답시고 화신의 폭풍을 끄면 결과적으로 약화되는 셈이라 비효율적이었다.

‘대악마 하나가 쫓아다니면서 둠 걸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아쉬운 마음에 별 황당한 생각을 품는 그리드였다.

입가엔 미소가 번진 채다.

새로 얻은 스킬들 덕분에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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