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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445화 (1,435/1,794)

템빨 72권 - 12화

흠결 없는 피부가 매끄럽게 빛난다. 도기를 연상시켰다.

전장의 유라는 우선 외모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녀를 회자할 때 외모를 배제했다.

무위를 칭찬하며 감탄하기 바빠서다.

쿠와아아아아앙!!

직선으로 뻗어나간 옥빛의 마력이 경로 상의 마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타격 범위가 워낙 크고 관통의 성질을 지닌 포격이다. 마물의 약점을 자연히 공략해 쥬다르의 가호가 무색했다.

소수의 악마는 포격을 가볍게 피했지만, 여전히 건재한 옥빛 마력을 비추는 눈동자로 파고든 섬전을 끝으로 명을 달리했다.

저격을 행함과 동시에 이동하여 검술로 결착 짓는 유라의 전투 양상은 이전과 크게 달랐다.

지옥 도약 스킬을 무척 쾌속하게,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신속이 순보를 연상시켰다.

“고생했다! 뒤는 우리에게 맡겨!”

유라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건 효율적인 역할 배분 덕이기도 했다.

마물 웨이브는 일정 간격으로 반복된다.

또한 웨이브마다 출현하는 마물의 종류가 다르다.

템빨단원들은 상성이 유리한 전투를 선택해서 출전하는 식으로 서로의 부담감을 줄여줬다.

웨이브 발생 간격과 출현 마물을 예측하는 공식을 간신히 정립시킨 책사진과 그들에게 막대한 정보를 전달해준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성사시킨 전략이었다.

지금의 연합국은 일심동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오직 대륙을 지키기 위해 한마음 한 몸으로 움직였다.

그리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 한 명의 절대적인 무력과 신망이 인류의 분열을 억제했다.

지옥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었다.

“예로부터 인간이란 욕망과 불신의 화신이었다. 유혹에 간단히 넘어가 이간책이 쉽게 통했는데 요즘 것들에겐 도통 먹히질 않는군... 개골.”

체파르데아가 난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남은 전쟁 기한은 고작 11일.

앞으로 11일 후면 무저갱의 마력이 회복되기 시작한다.

검귀 제파르가 가른 공간이 즉시 수복되며 지옥과 지상은 다시 독립 될 것이다. 두 세계를 잇는 포탈 또한 모조리 닫힐 예정이었다.

그때까지 템빨신을 죽여 약화시킨다는 목적을 달성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근본적인 문제는 전력의 차이다.

인간들의 무력이 너무 강했다. 예상과 크게 달랐다.

주요 거점을 수호하는 베리아체의 아들과 칠악성 지크가 특히 큰 골칫거리였다.

“죽어서도 훼방을 놓다니... 참으로 집요하고 역겨운 계집이다. 개골.”

베리아체는 바알의 천적이었다.

최초엔 바알의 계획에 동조했던 아모락트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반기를 들고 훼방을 놓았다.

지옥의 본질을 운운하며.

‘무의미한 것에 집착하는 병신 따위가.’

“저곳을 점령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데.”

망령을 욕하며 상념에 잠겼던 체파르데아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단탈리안의 유산.

투명한 크리스털 성이 사방팔방으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세계가 섞인 여파로 지옥에 드리운 태양, 그리고 본래 흑색이었다가 정화 된 수정이 만든 흉물이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개골. 너 따위 저급한 것이 보기엔 응당 불가능해 보이겠지.”

빈정거리는 체파르데아의 표정이 사늘했다. 경멸에 찬 눈빛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매번 태클을 걸면서도 호의를 보였던 시절과 전혀 다른 태도다.

체파르데아는 아그너스를 혐오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바알이 직접 나서서 힘을 쥐어줬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내내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한 망종.

아그너스는 역대 바알의 계약자 중 최악의 실패작이다.

바알이 완전히 흥미를 잃고 버렸던 베티보다 못한 놈이다.

이까짓 놈에게 마르바스의 권능 중 일부를 쥐어줬다는 사실이 천추의 한이었다.

“그럼 다행이고.”

아그너스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체파르데아의 달라진 태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니, 오히려 편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모멸에 익숙하므로.

게다가 체파르데아의 기분을 이해하기도 했다.

전쟁 개시 직후.

여러 도시와 전장을 휩쓸며 빠르게 레벨을 회복하는 게 목적이었던 아그너스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인계에 강림한 순간 귀신 같이 따라붙은 페이커에게 살해당한 까닭이다. 이후에도 같은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몸에 위치추적기라도 달아놓은 건가 의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 탓에 아그너스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연속 된 사망으로 접속 불가 페널티를 너무 자주 먹었다.

딱히 분노하진 않는다.

‘약하면 밟혀야지.’

일찍부터 깨달은 진리.

지금 내가 겪는 모든 수모는 지극히 당연한 순리다.

가능할 리 없는 연인의 부활에 집착하며 광인으로 떠돌던 시절 뿌렸던 악의가 응징으로 되돌아오는 것에 불과했고, 내겐 거기에 저항할 힘이 없다. 그게 전부다.

잠시 침묵이 맴도는 가운데.

“준비 됐다.”

체파르데아의 손 위에 놓인 작은 거울에서 기어 나온 악마가 말했다.

오루올.

아그너스도 익히 들어온 네임드 악마다.

‘빛을 반사하는 물건’을 매개로 공간을 넘나드는 것이 대표적인 특징인데, 그래선지 거울 악마라고 불렸다.

‘과연... 저놈의 힘을 빌리면 흑수정 성에 침투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군.’

현재 흑수정 성에는 레라지에가 피신해 있다.

악마들이 전쟁에 나가있는 동안 지옥 땅 절반을 집어삼킨 패왕.

서열은 비록 10위에 불과하나 패배를 모르기로 유명하다. 체파르데아조차 그녀를 상대하는 건 꺼려했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레라지에는 가미긴의 영혼 보관소에서 패주했고 명성을 잃었다. 격의 훼손으로 직결 될 사건이었다.

지금의 그녀에겐 체파르데아의 응징을 피할 힘이 없었다.

“시간 끌 것 없다. 곧바로 진입해서 레라지에를 격살하고 놈의 권속과 영토를 모조리 흡수한다. 개골.”

체파르데아가 눈짓하자 고개를 끄덕인 오루올이 권능을 사용했다.

아그너스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을 느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처음 보는 어떤 건물의 내부였다.

난공불락의 요새로 불려온 흑수정 성에 손쉽게 침투한 것이다.

바알의 권속 체파르데아가 존중하는 오루올의 권능은 불합리에 가까운 힘이었다. 명성에 과장이 없었다.

“네놈...”

침상에 누워있던 레라지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두 눈을 부릅뜬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익히 들었던 패왕의 기세는 온데간데없다.

약해졌다는 추측이 기정사실화 된 순간이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주제를 모르고 설쳐댔더구나. 개골. 레라지에 너는 선을 넘었다.”

“선? 네놈들 나름대로 그어놓은 선이 있더냐. 우습구나. 법도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지옥을 왜곡시킨 바알의 몸종이라는 것들이 새로운 규칙을 만들...”

레라지에의 말이 도중에 멎었다. 체파르데아가 뻗은 긴 혀가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쥔 까닭이다. 일고의 여지도 없는 숙청이었다.

“네놈... 언젠가 바알에게...”

레라지에의 분홍색 피부가 파랗게 질려갔다. 간신히 토해낸 몇 마디 말을 끝으로 숨결이 희미해졌다.

하지만 웃는다. 체파르데아의 경직 된 표정이 썩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아그너스는 대군을 소환하고 있었다.

거대한 방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창밖까지 언데드 행렬이 이어졌다.

콰앙!!

기척이 다가온다 싶더니 굳게 닫힌 방문이 부서졌다. 붉은 피부의 악마와 서큐버스들이 밀려들어왔다.

데스나이트를 선두에 세워 놈들에게 맞서는 아그너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서큐버스들의 이름 앞에 ‘그리드의’ 라는 수식언이 붙은 까닭이다.

‘테이밍 몬스터?’

재주도 많은 녀석이다. 그리드의 영역은 대체 어디까지 커진 걸까. 이젠 짐작조차 안 됐다.

“너, 약하군.”

오루올이 아그너스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붉은 악마와 서큐버스들에게 죽어나가는 언데드들을 확인하면서다.

아그너스가 코웃음 쳤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그때였다.

쿠우웅!!

붉은 악마에게 쇄도하던 오루올의 신영이 새카만 무언가에 짓눌려 무너졌다.

죽은 개구리처럼 뻗은 그의 등 위에 사신이 올라서 있었다.

“페이커...”

설마 나를 잡으려고 지옥까지 쫓아온 건가?

황당해서 실소하는 아그너스의 뺨을 축축하고 불쾌한 어떤 것이 스쳤다.

체파르데아의 혀다.

창처럼 쏘아진 그것을 피해기 위해 페이커가 자리에서 이탈했다.

그와 동시에 몸을 벌떡 일으킨 오루올의 두 눈이 분노로 충혈됐다.

“네놈의 시선을 얼마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한낱 인간 따위가 나를 추적해온 거냐? 감히?”

“...”

페이커는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전황을 살폈다.

거울 악마를 쫓아온 것인데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에 직면했으니 그도 내심 당혹스러웠다. 물론 표정은 침착했다. 동요하여 판단력을 흐리는 실수를 범할 레벨이 아니다.

-카심, 우선 레라지에를 구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레라지에는 명백한 우군이다.

지옥 원정대가 엘리고스로부터 살아남았던 것도, 유라와 크라우젤이 지옥에서 활약했던 것도 전부 그녀의 도움 덕분이었다.

템빨단은 레라지에의 은혜와 잠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페이커의 그림자 속 카심이 대답했다.

-알겠다.

두 어쌔신의 표적이 바뀌었다.

거울 악마를 지나쳐 체파르데아의 그림자에 도달했다. 이어 시간차를 두고 튀어나온 그들의 단도가 레라지에의 목덜미를 옥죄고 있는 체파르데아의 길쭉한 혀를 찔렀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체파르데아의 혀에서 스며나온 점액이 단도를 미끄러뜨렸다.

애써 명경지수를 유지하는 두 어쌔신의 후위를 거울 악마가 습격했다.

공격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상처를 입은 페이커와 카심이 직감했다.

‘이건 위험하다.’

장소부터 썩 좋지 않았다.

드디어 거울 악마의 경로를 특정하고 추적술을 사용했는데 하필 지옥까지 떨어질 줄이야.

심지어 바알의 권속과 조우하고 말았다. 재해를 마주한 격이다. 승산을 논하기 힘들었다.

두 사람이 최악의 결과를 떠올린 순간.

“인간! 너무 늦었다!!”

붉은 피부의 악마 글런트가 고함을 내질렀다. 격양된 기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저벅.

고즈넉한 발소리가 이어졌다. 부서진 방문 너머 복도에서 울렸다.

체파르데아와 오루올, 페이커와 카심, 이어서 아그너스의 신경이 자연히 그쪽으로 쏠릴 무렵엔 이미.

서걱!

체파르데아의 혀가 잘려나갔다.

방 안을 가득 채웠던 언데드 군단이 단체로 상체를 잃고 기울었다.

아그너스는 불사 상태에 돌입했다.

“내게 1층을 지켜달라고 부탁한 건 그쪽 아닌가.”

해일 같은 검기를 일으키고도 호흡이 잔잔하다.

고저 없는 음성으로 대꾸하며 입실한 사내, 검성 크라우젤이었다.

지상엔 당분간 위기가 없을 거라고 판단한 라우엘이 레라지에의 호위로 지옥에 파견한 것이었는데, 크라우젤은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템빨단 취급을 받는 기분이랄까.

‘썩 나쁘진 않다만.’

무쌍검법의 기수식을 취하는 크라우젤의 백호검이 낮게 운다. 무색의 검기가 요란하게 나부끼며 스치는 개념을 모조리 절단시켰다.

검성의 능력에 적합하게 진화해온 성장형 무기가 템빨신의 개변 덕분에 폭발적인 발전을 이룬 것이다.

그와 별개로 막대한 숙련도가 쌓여있기도 했다.

동쪽에서 양반들과 미르를 상대로 싸운 세월이 족히 1년.

그간 축적 된 경험치가 인마대전을 계기로 범람하기 직전이다.

템빨신이 만들고 검성이 가꾼 새로운 신검이 탄생할 전조였다.

***

부와 명예, 멋지고 소중한 인연들.

그리드는 모든 걸 얻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목표는 뚜렷하고 분명했다.

평화와 안정.

여태껏 이룬 것들을 지킬 힘을 갈망한다.

더 많은 것을 이룰 힘이기도 했다.

당장은 파그마의 영혼과 헥세타이아를 구해야 했고, 훗날엔 혹시 모를 세계의 리셋을 막아야 했으니.

그러므로 그레니어부터 찾은 것이다.

신화 찬탈자.

그리드가 당장 노릴 수 있는 표적 중 가장 큰 보상을 드롭할 만한 대상이다. 고대 전설의 전직서를 확정 보상으로 깔고 간다.

‘랜디가 생각보다 더 잘 싸우는데.’

그리드는 지난 몇 시간 동안 많은 정보를 얻었다.

산을 오를수록 쯔단의 기억이 조금씩 회복된 여파다.

덕분에 수호자의 존재를 미리 파악했고 그들 전부에게 인정을 받아야 산군을 만날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산군을 만날 때까지 힘을 비축할 수 있겠어.’

초대 족장들과 산군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정을 감안했을 때, 수호자들은 반신으로 분류함이 옳았다.

최소 양반과 동격일 것으로 추측했기 때문에 산군을 만나기 전에 어느 정도 힘을 소비할 각오도 했었다.

한데 전개의 양상이 예상과 달랐다. 랜디가 무쌍을 찍게 생겼다.

수호자들이 가람급도 안 되는 ‘평균적인 양반’의 수준에 그친 까닭이기도 했고 랜디의 전투력이 출중해서이기도 했다.

스킬 복제와 관련해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랜디.

그게 랜디의 한계였는데 자력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있었다.

몇 개 안 되는 스킬을 전부 소모한 후에도 수호자들의 협격을 능히 감당하는 것이다.

육체와 무기, 그리고 환경 등을 활용하는 능력과 판단력이 그리드를 감탄시킬 정도였다.

지력 스탯의 힘이었다. 랜디의 전투 지능은 명백히 달인의 경지를 초월했다.

‘컨트롤 솜씨만 놓고 보면 인공 감각을 쓰지 않을 때의 나보다 낫다.’

[수호자들의 인정을 받으면 산군을 만날 수 있다고 쯔단이 재차 설명합니다.]

[수호자들의 인정을 받으면 산군을 만날 수 있다고 쯔단이 재차 설명합니다.]

쯔단이 자꾸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고개를 기울인 그리드가 잊지 않았다고 대답했지만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수호자들의 인정을 받으면 산군을 만날 수 있다고 쯔단이 재차 설명합니다.]

“알고 있다니까요? 아.”

쯔단이 호들갑을 떠는 이유를 그리드가 뒤늦게 눈치 챘다.

넝마가 된 수호자들의 생명력 게이지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어느새 죽음을 목전에 둔 것이다.

“...죽이면 자연히 인정받는 거 아닌가?”

[쯔단이 아찔함을 느낍니다.]

[학센이 수호자의 목숨을 빼앗는 건 뒤로 미루는 게 좋다고 조언합니다.]

“음...”

확실히, 수호자들이 산군과 연결되는 유일한 창구일 가능성도 고려해야한다.

납득한 그리드가 랜디에게 눈짓했다.

그제야 폭력이 멈췄다.

비록 중상을 입었으나 두 발로 똑바로 선 랜디와 상반되게 수호자들은 죄다 쓰러져 있었다.

원주민들은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수호자들은 분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종이 한 장 차이였다는 자평이 잇따랐다.

철면피 같은 태도였지만 이해는 됐다.

랜디가 그들을 완전히 압도한 건 아니니까.

장장 30분을 넘게 싸웠는데 어느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

그리드의 능력치 절반을 구현하고, 그리드가 공들여 만들어준 전용템을 몸에 둘둘 둘렀다고 하나.

아무리 그래도 천년 넘게 살며 호흡을 맞춰온 4명의 반신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물론 그걸로 충분했다.

“좋다... 우리만으론 네놈을 감당하기 벅차니 아무래도 산군께 직접 끌고 가야겠다. 따라와라.”

산군과 만날 길이 열렸다.

게다가.

[당신의 펫 ‘랜디’가 정체불명의 태동기에 진입합니다. 아직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몬스터 태생으로 반신과 싸워서 이긴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세워서일까.

랜디에게 어떤 변화가 시작되려 했다.

그리드는 묵묵히 랜디의 뒤를 쫓았다.

인피면구를 써서 아이린으로 변장한 상태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산군을 만나기 전에 괜한 심력을 소모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 평범한(?) 사람으로 위장한 것이다.

앞장서 걷는 수호자들은 음흉한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비록 우리가 종이 한 장 차이로 지긴 했지만.’

‘아직 상대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다시 싸우면 승산이 높아.’

‘드디어 우리도 제대로 된 신격을 맛 볼 수 있겠군.’

랜디가 한낱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여전히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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