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444화 (1,434/1,794)

템빨 72권 - 11화

<사냥신의 법보>

등급:레전드리

사냥신의 시련을 통과한 몽크에게 수여하는 법보입니다.

드비리온의 가호가 깃들어 있습니다.

*일반 몬스터 사냥 시 고등급 아이템 획득 확률 2퍼센트, 경험치 획득량 1.5퍼센트 상승.

*정예 몬스터 사냥 시 고등급 아이템 획득 확률 3퍼센트, 경험치 획득량 2퍼센트 상승.

*보스 몬스터, 네임드 몬스터 사냥 시 고등급 아이템 획득 확률 5퍼센트, 경험치 획득량 3퍼센트 상승.

★같은 종류의 아이템, 혹은 스킬과 효과가 중첩됩니다.

무게:1

나무를 깎아 만든 낡은 패.

사냥신의 법보는 평범하게 생긴 외견과 달리 엄청난 물건이었다.

우선 인벤토리에 갖고만 있어도 효력을 발휘한다.

심지어 효과가 중첩 된다. 별도의 경험치 버프를 받고 있는 그리드에겐 더 크게 작용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꾸준한 성과를 줄 터였다.

목숨 값이라기엔 굉장히 과한 보답이었다.

하지만 메드는 이조차도 부족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드는 이유를 눈치 챘다.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일행의 목숨 값까지 셈했나.’

NPC 몽크들.

메드에겐 소중한 동료들인 것이다. 메드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감사히 받지.”

법보를 챙기는 그리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커다란 보람을 느껴서다.

좋은 아이템을 얻어서가 아니라, 귀중한 사람을 도왔다는 사실에 느끼는 보람이었다.

메드와의 인연은 반드시 멋진 결과로 이어질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

그리드의 시선이 이번엔 등 뒤로 향했다.

진즉 정신을 차린 원주민들이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드가 아닌 랜디 앞에 무릎을 꿇은 모양새였다.

턱을 살짝 치켜든 랜디의 표정이 오연했다.

그리드의 평소 모습을 제대로 표현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리드의 감상은 달랐다. 랜디가 스스로의 욕구를 충족 중인 거라고 해석했다.

‘나는 저렇게 시건방지지 않으니까.’

겸손의 미덕을 깨우친 지 오래다.

방금만 해도 보라.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메드에게 빚을 지우려는 계산이 깔려있긴 했지만, 만약 메드가 약자였어도 반드시 도왔을 것이다. 여태껏 그래왔다.

자신은 랜디와 다르다는 의미다.

‘아무튼 당분간 랜디에게 맡겨도 좋겠어.’

그리드가 워낙 바쁘게 돌아다니는 탓에 남들은 실감하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그리드는 왕이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일에 익숙했다. 사람을 능숙하게 부렸다. 직접 나설 필요가 없는 일엔 굳이 나서지 않았다.

지금이 그랬다.

그리드가 눈짓하자 고개를 끄덕인 랜디가 입을 열었다.

“산군을 깨우려면 수호자들을 쓰러뜨려야 한다지. 수호자들의 위치를 말해라.”

족장이 콧방귀 뀌었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요괴들의 왕아. 네놈이 정녕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는구나. 그분들은 4개 부족의 초대 족장과 산군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이시다. 네놈의 같잖은 사술 따위가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네놈은 그분들의 일수에 목이 날아갈 진데 무슨 배짱으로 그분들을 만나겠다는 것이냐.”

유웰.

소개울 부족의 족장인 그녀는 분명 네임드 NPC였다.

하지만 그레니어의 원주민은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설정 탓인지 안목이 떨어졌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그리드가 아닌 랜디를 본체라고 착각했다.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랜디는 그리드의 힘의 절반을 구현하는 존재다. 그리고 방금 막 힘의 편린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관점에선 절대자였다. 도플갱어일 거라고 추측하는 게 불가능했다.

‘오히려 좋아.’

덕분에 편해졌다.

전지적 부하 시점을 체험하는 그리드였다.

그는 뜨개질로 시간을 활용했고 그 사이 랜디가 일을 주도했다.

원주민들을 협박하고 고문하며 원하는 정보를 캐냈다.

폭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

전부 다 그리드를 보고 배운 것이었다.

정작 그리드는 랜디의 성격을 의심했지만 말이다.

‘노에랑 가까이 지내는 탓인가. 애가 점점 더 난폭해지네. 힘에 너무 심취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

한편 메드는 그리드를 황당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금지에서 홀로 여유로운 그가 대단해 보일 따름이었다.

고작 펫 한 마리에게 모든 일처리를 맡기는 대담한 성격을 보며 저 정돈 돼야 지존이 되는 건가 싶었다.

[학센이 당신을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파일볼프가 커다란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쯔단이 허탈감에 빠집니다.]

그레니어는 쯔단의 무덤이기도 하다.

전설적인 영웅에게 최후를 선고했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장소였다.

한데 정작 그리드는 아무런 긴장감을 느끼지 못하는 눈치였으니 반응들이 격했다.

물론 그리드의 속내는 달랐다.

‘나도 충분히 긴장하고 있다고.’

패배를 염두에 뒀을 정도다.

마냥 두려워하고 있어봤자 무의미하니 생산적으로 활동하며 마음을 다스릴 뿐이다.

“저자가 템빨신의 도플갱어라고 했나? 템빨신께서 친히 일하시는 동안 편히 앉아 뜨개질하는 모습이 담대하기 짝이 없군. 과연 성격마저 템빨신을 닮은 겐가.”

“허허... 내 오늘 느끼건데 우리 또한 템빨신을 본받을 필요가 있을 듯하오. 시련을 겪을 때마다 템빨신의 마음가짐을 떠올리며 위기를 정면에서 돌파해야...”

“정면 돌파는 개뿔. 거기서 더 정면으로 돌파하면 자살 특공대라도 되겠다는 겁니까? 적당히 하고 기도에 집중해주십쇼. 드비리온께서 제때 응답해주지 않으면 저 죽습니다.”

소란한 와중에.

“아, 알겠다! 그만 해라!!”

유웰이 드디어 항복했다.

그새 얼마나 두드려 맞은 건지 머리는 산발이었고 얼굴엔 피멍이 가득했다.

“알겠다?”

랜디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기다란 손가락을 접었다 펴기를 반복하는데 언제라도 다시 주먹을 쥘 기세였다.

유웰이 넙죽 엎드렸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원하는 장소로 안내해 드릴게요!!”

***

그레니어.

산군이 다스려온 이 산엔 4개의 부족이 살아간다.

산의 초입과 중턱을 순회하며 몬스터를 사냥하는 소개울 부족.

산 중턱 언저리에 화전을 일구고 관리하는 씨앗 부족.

고지대에서 산양을 키우는 양젖 부족.

다섯 개의 폭포에 터전을 잡고 산신께 매일 기도를 올리는 대래 부족.

그들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명맥을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자연히 상하 관계가 생겼고 소개울 부족의 권력이 가장 약했다.

식량을 생산하거나 산군과 교류하는 다른 부족들과 비교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대대로 산을 위해 가장 많이 싸워왔지만 다른 부족 입장에선 알 바 아니었다.

소개울 부족의 희생은 언젠가부터 당연한 것이 됐다. 사람들은 고마움을 잊었다.

“늦는군.”

대래 부족의 족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틀 후면 제사가 시작된다.

그때까지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사냥해오기로 약속했던 소개울 부족이 감감무소식인 것이다.

“그 잡것들이 설마 산군께 허기를 느끼게 만들 작정인가...”

“우리 덕분에 굶어 죽을 걱정이 없으니 긴장감을 잃은 듯해.”

“걱정 마라. 안 그래도 경각심을 심어주려고 한동안 보급을 끊었다. 그놈들, 열 번의 밤을 보내는 동안 나무껍질이나 먹어왔을 게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서두르고 있겠지.”

“굶겼다고...? 일처리가 늦어질 만하다. 그 녀석들 혹시 산군께 바칠 제물에 손을 댄 건 아니겠지?”

“미치지 않은 이상 그럴 리가...”

족장들이 한창 떠드는 그때였다.

“제사 준비는 잘 되고 있느냐.”

신이 강림했다.

족장들의 조상이기도 했다.

천 년도 더 전, 초대 족장들과 산군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

그레니어의 원주민은 그들을 수호신으로 섬겨왔다.

“예, 착실히 진행되고 있으니 심려치 마십시오.”

족장들이 절을 올렸다.

씨앗 부족장과 양젖 부족장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떠는 반면 대래 부족장은 온화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대래 부족은 산군과 실제로 소통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바.

제아무리 전능하다 한들 산군 아래인 수호신에게 위축되어선 안 되는 위계다.

“음... 한데 불청객이 있는 듯하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수호신의 시선이 막사 바깥으로 향했다.

불청객?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신반의한 족장들이 막사 밖으로 나갔다.

술렁이는 부족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유웰과 그녀 곁에 나란히 선 흑발의 사내가 눈길을 끌었다.

“인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고?”

“헛소리. 세상 밖은 혼돈뿐이다. 우리 외의 인간이 존재할 리 없다.”

씨앗 부족장과 양젖 부족장이 호들갑을 떨었고,

“그렇군. 인간의 탈을 쓴 요괴다.”

대래 부족장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상처투성이인 유웰의 모습을 통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만약 곁에 수호신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마침 수호신께서 요괴에게 다가가고 계셨다.

“그 주황색 기파가 범상치 않구나. 마치 태양을 두른 듯한데 인신이더냐.”

흑발 사내에게 하는 말이었다.

수호신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대기가 요동쳤다.

“인신이 감당하기엔 과분한 힘이다. 내가 취하여 산군께 바쳐야겠다.”

그레니어의 지배자들에게 있어서 신이란 특별한 대상이 아니다. 맛 좋은 사냥감에 불과했다.

신화를 찬탈하며 군림해온 존재들이므로 당연하다.

꽈르릉!!

귀를 찢는 폭음이 울렸다.

수호신이 땅을 박찬 여파였다. 빛살처럼 쏘아진 그가 흑발 사내를 공격했다.

두 자루의 손도끼가 반월을 그리자 폭풍이 휘몰아쳤고 반월이 교차하는 순간 사내의 몸이 4등분으로 갈라졌다.

푸화하하하학!!

시뻘건 핏물이 휘몰아쳤다.

부족민들이 쏟는 피였다.

수 미터 거리까지 뻗어나간 도끼의 예기가 구경꾼들의 몸을 갈라버렸다.

정작 흑발 사내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잘려나간 줄 알았던 몸이 멀쩡히 붙어있었다.

종이 한 장 차이.

말 그대로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했기 때문에 베인 듯한 착시가 생겼던 것이다.

‘이놈... 강하다.’

수호신이 인신의 수준을 즉시 파악했다. 경각심을 품었다.

인신의 검이 날아오고 있었다.

수호신이 도끼를 손에서 놓았다. 양손을 교차시켜 아직 체공 중인 도끼를 다시 쥐었다.

꽈창!!

자연히 역수로 쥐어진 도끼가 검을 막는다. 반대편 손에 쥐어진 도끼는 인신의 가슴을 후려쳤다.

무지막지한 기운을 내포한 채다.

천 년을 살아오며 쌓은 내력이 담겨있었다.

무용했다.

쩌어엉!!

원을 그리며 맞물린 도끼를 튕겨낸 인신의 검이 가슴으로 꽂히는 도끼의 경로마저 차단했다.

회(回)의 활용이었다.

인신 즉, 그리드의 모습을 빌린 랜디는 단 하나의 반격기로 두 가지 효과를 발생시켰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그리드의 표정이 흐뭇하다.

‘기특한 녀석.’

지력 스탯은 NPC와 몬스터에게 더욱 특별하게 작용한다.

마법 공격력, 마법 저항력, 마나 수치 등이 오를 뿐만 아니라 실제 지능이 상승했다.

플레이어완 다른 것이다.

여태껏 지력에 강제로 스탯 포인트를 투자해온 그리드는 그것을 손해라고 생각해선 안 됐다.

그리드의 지력이 높아질수록 랜디의 기술엔 지혜가 담겼으니까.

“어서... 어서 내 형제들을 불러와라!!”

자신의 도끼에 어깨를 찍힌 수호신.

한쪽 무릎을 꿇은 그가 다급히 외쳤다. 표정이 낯설었다.

원주민들의 작은 세계에 균열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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