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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440화 (1,430/1,794)

템빨 72권 - 7화

[정말로 쥬다르교를 떠나시겠습니까?]

쥬다르교의 세력이 크게 줄었다.

개종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큰 페널티를 입으면서도 떠나는 플레이어가 많았다.

악마들의 배후에 쥬다르 신이 있다는 소문 탓이다. 흉흉한 소문이었다.

만약 사실로 밝혀졌다간 쥬다르교인 전체가 불이익을 당할 터였다. 당장의 손해를 꺼려할 계제가 아닌 것이다.

‘소문은 아마 사실이겠지.’

플레이어들은 쥬다르 신을 신뢰하지 않았다. 쥬다르의 배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리파엘의 출현이 너무 크게 작용했다.

다짜고짜 나타나 그리드를 공격하고 무저갱의 모든 플레이어를 해치려했던 제1위 대천사의 태도는... 그나마 티끌이나마 남아있던 믿음마저도 상실시키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아스가르드 입장에서 보면 천사들이 트롤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천사들의 행보는 기이했다. 범상한 면이 없어 위태했고 실제로 여러 후폭풍을 일으켰다.

아무튼 쥬다르교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세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최근 이틀 동안 사람들의 병세가 호전됐다.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다시 기억해내는 사람이 많았다.

정황상 쥬다르가 여론을 의식하는 듯했다.

어쩌면 단순히 권능의 지속 시간이 끝나가는 걸 수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후자일 가능성이 컸다.

캬르르르르!!

필드 곳곳에 흔하게 출몰하는 마물들의 상태가 여전했기 때문이다.

약점을 공격하지 않는 이상 피해를 입지 않았다.

쥬다르의 권능은 일부나마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큰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대상의 약점을 떠보고 공략하는데 익숙해져서다. 지능이 낮은 마물일수록 약점을 대놓고 보호하는 경향이 있어 노리기 쉬웠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대륙 전역에서 레벨 업을 상징하는 빛의 기둥이 쉬지 않고 솟구쳤다.

최근 가장 많은 레벨을 올린 사람은 단연코 그리드와 그리드의 양친이었다.

“100레벨 돌파! 드디어 뉴비에서 벗어난 건가?”

“아무렴요. 이제 우리도 두 자릿수 레벨을 졸업했는데.”

“???”

본래 180레벨대 플레이어가 애용하는 사냥터다.

인마대전이 발발한 후로 20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들에게 권장되었고, 쥬다르가 개입한 뒤론 23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들에게 권장되었다.

명품을 몸에 두른 졸부처럼 호화로운 장비를 도배한 중년인 부부가 뉴비 행세를 하는 노릇을 수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당사자들은 의식하지 못했다.

진실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했다.

“좀 쉬고 올까?”

“그래요. 며늘아기도 심심할 텐데.”

대학교에서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 일찍이 혼인하고 아이를 낳은 두 사람이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 훈육보단 일에 집중했다.

그 탓인지 첫째가 많이 방황했다. 돌이켜볼 때마다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다. 스스로 방황을 끝내고 성공한 아들에게 한없이 감사했다.

그리드의 양친은 아이린을 예뻐할 수밖에 없었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선택한 여인이니까.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그래서 애써 관심을 억눌렀던 거지만 최근에야 실감한다.

그녀 또한 살아있는 존재임을.

선한 마음과 사려 깊은 행동으로 주변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녀는 분명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음?”

템빨신교 본단.

궁전을 떠나 쓸쓸하게 있을 아이린을 위해 그녀가 좋아할 만한 야생화를 따서 돌아온 그리드의 양친이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신전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우선 웬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뭐 저런 경우 없는 자가?”

그리드의 부친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며느리가 소중히 가꿔온 중정의 화단을 멋대로 파헤치는 몰상식한 사람에게 당장 다가가 따지려고 했다.

그를 부인이 말렸다.

“흥분하지 말고 잘 봐요. 호박을 심고 있잖아요.”

“...음, 기본은 되어있군. 넝쿨이 나무를 해치지 않고 예스레 감싸겠어.”

“간격이 아주 좋아요. 꽃이 필 무렵이 기대되네요. 노란 호박꽃이 며늘아기가 심은 꽃들의 색깔을 더욱 예쁘게 가꿔줄 거예요.”

“단순한 농부가 아니라 조경사인가...?”

그리드의 양친은 수십 년간 농업에 종사해왔다.

두 아이가 있는 집이 겨울에는 늘 따뜻하고 여름에는 늘 시원하도록, 최소한 냉난방비 정도는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일했다.

그러므로 안목이 있었다.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앉아 밭일 중인 사내의 정체를 유추했다.

‘혹시 저자가 피아로인가?’

아들이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다가가 인사하려는데 마침 농부가 고개를 들었다. 피아로라고 하기엔 꽤 젊었다. 서른 중반이나 됐을까 싶었다.

“여기 외부인은 출입 금진데. 기도하러 온 거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그래?”

말도 짧은 것이 자유분방한 서양인다웠다.

“호박 그렇게 심는 거 아닐세.”

표정을 사늘히 식힌 그리드의 부친이 응수했다.

아버지가 되기 전까진 사고뭉치였던 남자다. 욱하는 경향이 있었다.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을 일찍 하지 않았으면 동네에서 알아주는 골칫덩어리가 됐을 것이다.

“허?”

농부 휴렌트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지만 눈빛은 그가 품은 오러처럼 이글거렸다.

농부에겐 농부의 자존심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심상찮은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침입자입니까?”

메르세데스.

모종의 이유로 잠시 라인하르트에 복귀해 있던 그녀가 달려와 그리드의 부친을 쓰러뜨렸다. 과잉 진압은 아니었다. 목덜미를 지그시 누르며 팔을 꺾었을 뿐이다.

한데 그리드의 부친은 픽하고 고꾸라졌다.

레전드리 아이템을 무장했다지만 저레벨용 아이템에 불과해서 사도를 상대론 별 효력이 없었다.

“꺄악! 아버님!!”

“?!”

아이린의 새된 비명이 메르세데스의 얼굴을 하얗게 질리게 만들었고,

“...난 모르겠다.”

대충 분위기를 파악한 휴렌트는 나무 뒤로 슬그머니 숨었다.

***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템빨신교 본단은 상당히 민감한 상태였다.

아이린.

템빨국 최고 요인의 거처가 된 까닭이다.

수상한 자가 나타나면 즉시 제압함이 옳았다.

하지만 그리드의 양친은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애초에 중정에 당당히 들어왔을 정도면 신분 검증이 끝났다는 뜻이다.

전쟁터에서 이제 막 돌아온 메르세데스와 휴렌트가 필요 이상으로 경계했을 뿐.

“아이고... 괜찮아요.”

그리드의 부친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휴렌트와 기 싸움을 벌였을 때완 인상이 완전히 달랐다. 그리드와 쏙 빼닮은 날 선 눈매가 거짓말처럼 호선을 그렸다.

“메르세데스 양이라고 했죠? 우리 아들이 항상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아앗...! 제, 제가! 저, 저야말로 전하께에...!!”

메르세데스의 커다란 눈동자가 핑글핑글 돌았다.

주군의 부친께서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몸 둘 바를 몰랐다. 급기야 넙죽 엎드려서 절을 올릴 지경이었다.

메르세데스를 몇 년 동안 봐온 사람들 입장에선 실로 충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가 없었다.

고결하고 강직한 성격이 표정부터 드러나 칼날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그녀가 저토록 안절부절 못하며 송구해하다니... 현실감이 없었다.

이후.

메르세데스는 홍차를 입으로 넣는지 코로 넣는지 모른 채 그리드의 양친과 담소를 나눴다. 분명 담소가 맞았다. 비록 대화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지만 얼굴은 계속 웃고 있었으니까.

기필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일념으로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유지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아마도.

“...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메르세데스가 석상처럼 굳었다.

왜 눈앞에 내 방문이 있는 거지?

떨리는 시선을 돌려 힐끔 뒤를 돌아보자 아이린 왕비와 로드 왕자, 그리고 주군의 양친께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서로의 방을 보여주는 게 요즘 아이들의 놀이라고?”

“그게 아니라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라잖아요. 우리 손주는 왕자라고 해서 아무도 끼어주지 않고.”

“별 신기한 놀이가 다 있구만... 하긴 뭐, 재미는 있겠어. 연예인 집 구경 시켜주는 방송이 괜히 허다하겠나.”

“메르세데스 경의 방에는 검과 갑옷이 잔뜩 진열되어 있겠죠? 기사의 기풍이 느껴져서 정말 멋질 것 같아요. 벌써부터 기대가 되요!”

“왕자, 체통을...”

“...”

상황을 파악한 메르세데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도무지 방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녀의 방엔 삐까소 화백이 부자인 이유를 설명하는 증거품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로드 왕자가 기대하는 기사의 기풍 따위... 흔적조차 없었다.

“메르세데스 경?”

로드가 재촉했다. 눈빛이 너무 순수해서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주군의 양친께서 은근히 기대하시는 눈치라 압박감이 가일층됐다.

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거란 사실을 뻔히 알기에, 메르세데스는 차라리 죽고 싶어졌다.

‘변태... 변태라고 오해하실 거야...’

오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문고리를 쥔 메르세데스의 손이 덜덜 떨리는 그때였다.

“그만하죠.”

아이린이 말했다.

“이런 문화는 잘못 됐다고 생각해요. 귀족들이 과연 순수한 의도로 서로의 방을 구경하고 보여주는 걸까요? 소수의 귀족이 저열한 과시욕을 충족하기 위해 만든 수단은 아닐까요?”

의외로 반발은 없었다.

그리드의 양친이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렇고말고.”

“우리 며늘아기가 역시 생각이 깊구나. 어른인 우리가 오히려 배움을 얻네. 그리드 곁에 있어줘서 든든하구나.”

로드 왕자도 납득한 눈치였다.

덕분에 안도하던 메르세데스가 문득 아이린과 시선이 마주쳤다.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서 배려를 눈치 챘다.

메르세데스가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과연 정실은 다르시구나.’

웃어른으로 공경할 만하다.

예전부터 느껴온 사실이다.

언젠가 가족이 됐을 때 시기하지 않고 화목하게 어울릴 자신이 있었다.

메르세데스의 비밀이 지켜진 어느 날의 사건이었다...

***

모험을 떠나기 전.

아이린을 만나고 돌아온 그리드는 거대한 관 앞에 섰다.

지크의 육신.

정확히 말해서 ‘그랜드마스터의 시신’이 누워있는 관이었다.

그랜드마스터의 시신은 전혀 부패하지 않았다. 피부에 탄력이 있고 생기가 넘쳤다.

마치 살아있는 듯해서 관에 누운 모습이 괴이할 정도였다.

[고등한 마법의 잔재를 느낀 학센이 흥미를 품습니다.]

[파일볼프가 이것은 룬어를 이용한 고대의 주문임을 알립니다.]

그리드를 안식처로 삼은 전설과 영웅들의 영혼은 예상치 못한 도움이 됐다.

그리드가 모르는 옛 역사와 정보를 알려주거나 자신의 특기 분야에 한해서 조언을 주는 식이다.

물론 영웅들의 영혼은 전설들의 영혼과 달리 자아가 뚜렷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정보의 질이 떨어졌다.

하지만 당연히 없는 것보단 나았다.

그들에게 그리드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육체를 템빨골에게 줄지 이야루그트에게 줄지 결정을 못하겠습니다. 벌써 열흘이 넘도록 이어지는 고민입니다.”

[쯔단이 당신의 고민을 이해합니다. 쯔단은 템빨골과 이야루그트 양쪽 다 뛰어난 검사라고 평가합니다. 물론 기술만 봤을 땐 이야루그트의 검술이 훨씬 더 뛰어나지만 언데드에겐 언데드만의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학센이 조언합니다. 예로부터 ‘산 자의 모습을 한 죽은 자’는 이질적인 격을 품는 법이라며 무후총의 망령을 예시로 듭니다.]

[파일볼프가 학센의 조언에 동의합니다. 단순히 백골로 만든 데스나이트와 전신혈맥을 유지하고 활용하는 데스나이트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뽐낸다고 첨언합니다. 지혜로운 거인족이 가장 두려워했던 적 중 하나라고 고백합니다.]

“혹시 당신들이 이 육체를 갖는 건요?”

[쯔단이 손사래 칩니다.]

[학센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파일볼프가 자신은 마장기와 한 몸이 되고 싶다고 사심을 섞어 고백합니다.]

네크로맨서라면 또 모를까, 일반적으로 시신은 아이템 판정을 받지 못한다.

애초에 그리드의 <자아 부여>는 대상 ‘아이템’에 자아를 부여하는 스킬이다.

악마의 권능으로 타인의 육체에 기생하는 이야루그트, 자신의 몸을 개조하는 재주가 있는 템빨골 스스로 시신을 활용하게끔 허락할 권한을 지녔을 뿐, 직접적으로 시신을 활용할 순 없는 것이다.

물론 강시 제조법으로 영혼 없는 강시를 만들 순 있겠지만 그건 효율이 너무 떨어졌다.

“음...”

영혼들과 더 대화를 나누며 고민한 끝에.

“그래, 너로 정했다.”

그리드는 템빨골1을 소환했다.

템빨골2가 리치가 된 이후 서열싸움에서 완전히 밀려 기가 죽은 녀석.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나라 잃은 표정을 짓고 있는 꼴이 가엾다. 자업자득이긴 했지만.

“다시 태어나라.”

그리드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템빨골1에게 그랜드마스터의 시신을 보여주며 짧게 명령할 뿐이다.

그걸로 족했다.

새카만 기파가 솟구쳤다.

대장간 천장을 부수고 하늘 위 구름까지 꿰뚫는 위력의 기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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