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439화 (1,429/1,794)

템빨 72권 - 6화

<혜성그룹 주가 고공 행진 어디까지?>

소위 ‘그리드 캡슐’로 알려진 모델명 DN941 접속기의 조기 완판이 거듭되고 있다. 고가 모델로는 유례없는 기록으로 해외에서의 주문이 폭주...

<(칼럼)초월에 대비해야할 때>

히어로 영화 속 주인공을 보는 듯했다.

가미긴, 바알, 리파엘. 재앙과도 같았던 강적들을 패퇴시키는 그리드의 모습을 보면서 한계라는 단어를 잠시 잊고 말았다.

그리드의 현재가 제시하는 우리의 미래는 필시 초월자에 가까웠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과연 우리는 초월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리드가 전투 중에 보여준 움직임은 보통의 운동능력으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정신론을 적용시키기에도 무리가 컸다.

일부 전문가는 최소 공군 조종사 수준의 훈련을 받지 않는 이상 그리드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평가했으며...

<모든 플레이어가 빛났다>

개전 후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자면 단연코 그리드의 활약이다.

하지만 그리드가 없는 전장을 지킨 플레이어들의 활약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전 세계가 익히 아는 템빨단은 물론이고 아레스 군단을 비롯한 랭커들, 심지어 악명 높은 다크 플레이어들과 이 기사를 읽고 있을 당신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영웅이었다.

<지옥과 천상은 한통속인가>

교황 행세를 하며 이간계를 쓴 미카엘이 이미 암시한 바 있다.

아스가르드는 무조건적인 선역이 아니다. 인류가 의지해야 할 대상과 거리가 멀었다.

이번 사건으로 다시 한 번 증명됐다.

인류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들이 내려 보낸 천사의 창끝은 악마가 아닌 그리드에게 향했다.

쥬다르 신이 악마들의 배후에 있다는 템빨단의 주장에 신빙성이 더해진 셈이다.

인류의 적은 지옥만이 아닐 수도 있다.

<(속보)미르의 정체>

홀연히 나타나 그리드를 도운 인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가운데 동대륙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플레이어들로부터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미르의 정체가 양반이라는 것이다.

양반은 동대륙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을 여러모로 핍박하는 일족으로 근근이 알려져 왔다.

대단위 퀘스트 낚시로 다수의 플레이어들을 해친 전력이 밝혀져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바 있으며...

(중략)

...그러므로 양반과 그리드의 관계는 본래 앙숙이라 함이 옳다.

미르의 참전은 새로운 관계의 형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지옥과 아스가르드의 수상한 행보를 견제할 가능성이기도 하다.

<신영우, 4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선정>

<천정부지로 치솟는 그리드의 몸값... 세계 최고의 기업들이 백지수표를 건네다>

<대한민국 정부, 그리드 신영우에게 금관문화훈장, 금탑산업훈장에 이어 무궁화장까지 수여. “줄 수 있는 건 다줬다.”>

<국민 여론 싸늘. 안 그래도 바쁜 그리드에게 왜 오라가라냐... 청와대에 항의 빗발쳐>

<재점화 된 훈장 수여 남발 문제. 가치 없는 훈장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론 의식한 대통령? “영우씨에게 소망이 있다면 반드시 이뤄주고 싶다.”고 밝혀 화제>

<야권도 동조... 그리드 앞에선 화합하는 정계>

대한민국의 열기가 심상찮다.

평화통일이 되거나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이런 분위기일까 싶을 정도였다.

몇몇 언론이 사용하기 시작한 ‘그리드공화국’이라는 표제가 국민들에게 자연히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국대전에서 우승했을 때와 비교해도 차원이 다른 반응인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드는 Satisfy라는 또 다른 세계의 대표이자 수호자로서 자격을 증명하는 중이다.

단순히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을 높였을 때와 비교해서 세상에 전파하는 무게감과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컸다.

세계 모든 언론이 그리드의 활약상을 대서특필했다.

국가, 인종, 문화 등의 차이를 막론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얼굴의 상처를 갓 핸드로, 난자당한 몸은 망토로 가린 그리드의 사진을 첨부하면서다.

사람들을 안심시키고자 자신의 상처를 숨겼던 그리드의 고결한 정신은 만인의 귀감이 되었다. 여러 위인과 비교됐다.

대한민국은 그리드 보유국이라는 이유만으로 호황을 맞았다.

국가인지도와 경제성장률이 수직상승했다.

각국의 큰손들이 그리드와 교류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히 발생한 현상이다.

국민이 그리드에게 취할 만한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

‘이런 것도 이젠 적응되네.’

한바탕 소란을 치르고 돌아와 Satisfy에 접속하는 신영우의 표정이 차분하다.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에 들뜨거나 부담감을 느끼는 단계를 진즉 지난 것이다. 초탈의 경지였다.

애초에 현실은 평화롭다.

매일 근심하며 어떤 책임을 짊어질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편했다.

신영우가 긴장을 유지해야하는 장소는 바로 이곳, Satisfy 뿐이다.

[템빨신 그리드가 출현하였습니다.]

“...”

접속하자마자 표정이 굳는 그리드였다.

접속을 할 때마다 길드창에 뜨는 메시지가 영 부담스러웠다.

의무를 상기시키는 듯해서다.

대통령이 수여한 무궁화장의 무게보다 훨씬 더 무겁게 다가왔다.

<알 수 없는 열쇠(1)>

사용처를 알 수 없는 열쇠입니다.

인간의 기술력으로 재연하기 힘든 아름다운 세공이 눈길을 끕니다.

가치를 측정하기 힘듭니다. 일확천금을 노려 볼 수 있겠네요.

무게:0

그리드가 리파엘을 격퇴하고 얻은 보상 중 하나다.

나머지 보상은 칭호와 대량의 레벨, 그리고 격의 상승.

죽이지 못하고 패퇴시킨 수준에 그쳤음에도 대단한 보상 목록이다.

어지간한 네임드 보스 여러 마리를 레이드해야 얻을 수준의 보상을 한꺼번에 얻은 격이었다.

그리드는 자각할 틈도 없이 급격히 발전했다.

고작 수십 분 만에 가미긴, 리파엘과 싸워서 이기고 레벨이 무려 50개 단위로 올랐으니.

이쯤 되면 ‘헬구간이 없어도 괜찮은 건가?’ 하는 걱정이 될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빨랐다.

‘성장이 빨라야 정상이긴 하지.’

300레벨 후반.

딱 거기까지가 도달하기 힘든 경지였다.

400레벨부턴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 총량에 변동이 없다.

4차 전직으로 급격히 강해져서 사냥속도가 몇 배는 빨라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레벨 업 난이도가 크게 떨어진 셈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드는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세계관의 확장.’

고위 악마들과 천사.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적들의 수준이 종전과 차원이 다르다.

제국의 칠공작을 최강자로 인식했던 시절과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고 표현함이 옳았다.

플레이어는 강해져야만 한다...

“여어, 대장.”

따사로운 햇볕에 젖은 돌담길의 온기를 느끼며 걸을 때였다.

“휴렌트?”

우연히 마주친 인물의 얼굴을 확인한 그리드가 반색했다. 여러 상념을 거짓말처럼 떨쳐내고 웃었다.

오러 마스터 휴렌트.

그 피아로가 ‘잠재력에 끝이 없다며’ 몹시 아끼는 인물이다.

직업 퀘스트를 방치하고 농업에만 힘써 와서 그렇지, 사실 휴렌트는 지금 당장 전설이 되도 이상하지 않을 실력자다.

“드디어 룬을 얻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려요.”

그리드는 동료들의 활약에 굳이 차등을 매기고 싶지 않았다.

한 명도 어김없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니.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의무를 등한시했다면 전쟁은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휴렌트가 유독 눈에 띄었던 건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라우엘은 휴렌트 혼자서 최소 3개 군단의 진격을 막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무저갱과 번헨 열도 중 한 곳은 양동을 당했을 것이다.

게다가 휴렌트는 기본적으로 농부다.

라우엘이 말하길, 손자병법을 비롯한 고대 병법서의 내용 상당량은 보급과 관련되어 있다고 했다.

단적으로 말해서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병사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이었다.

템빨국이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드와 다수의 대장장이, 그리고 피아로와 다수의 농부를 거느린 템빨국의 보급은 항상 원활하게 유지된다. 전쟁 때마다 항상 보급로를 먼저 확보하는 라우엘의 책략이 날개를 달아주기도 했다.

아무튼 결론은, 그리드는 휴렌트를 의지하고 있었다. 몹시 강한 호감을 느꼈다.

당장만 해도 감탄하는 중이다.

휴렌트는 오러를 입자 단위로 나눠서 몸에 두르고 있었는데 마치 빛을 망토로 삼은 듯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오러의 형상에 집착했던 그가 새로운 경지에 진입했다는 의미였다.

‘공방일체가 기본에 간합을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해.’

빛처럼 번지는 오러.

입자 하나하나가 고정 데미지를 입히는 그것과 정면에서 겨뤄서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이번 전쟁에서 휴렌트가 단독으로 레이드한 대악마는 총 둘.

두 놈 모두 위계가 상당히 낮았던 탓에 다행이라며 안도했다는 후문이지만... 그리드가 봤을 때 휴렌트는 20위 초반의 악마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어보였다.

아니, 함부로 측량하기 힘들다.

심지어 룬까지 얻지 않았나.

“축하할 것까지야, 뭐...”

너는 이미 몇 년 전에 얻은 걸 난 이제 와서 얻은 거다만...

그리 말하려던 휴렌트가 입을 다물었다.

당사자 앞에서 그와 자신을 비교하며 자학하는 건 서로에게 불편할 뿐이니까.

“...어찌됐든, 그간 고생 많았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만 해도 대륙 각지에서 마물들의 침공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처음과 비교해서 규모가 크게 줄었고 기세 또한 약해졌다.

인류가 적응하기도 했다.

이제 사람들에게 마물의 침공은 일상이 되었다. 뒷산에서 산짐승을 사냥해오듯이 마물을 사냥했다. 두려움을 벗었고 체계를 잡았다. 요령을 숙달해가는 중이었다.

그리드가 직접 나설 일은 더 이상 없을 확률이 높다.

아마 전쟁이 끝날 쯤엔 사람들 모두 크게 강해지지 않을까.

이미 인류의 5분의 1가량이 죽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끔 남은 이들은 시련을 이겨낼 것이다.

“고생이야 당신이 훨씬 더 하셨죠. 안 그래도 요즘 당신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는 중인데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그리드는 휴렌트에게 딱히 해준 게 없다.

애초에 휴렌트에겐 제약이 많았다.

오러를 무기와 갑옷으로 삼기 때문인데 그런 배경 탓인지 착용 가능 무기와 방어구의 종류가 상당히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늘 미안했다.

휴렌트의 활약상을 들을 때마다 그를 열정 페이로 부려 먹는 악덕 업주가 된 심정이었다.

휴렌트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가죽갑옷과 부츠를 정성들여 제작 중인 이유다.

“뭘 선물까지야...”

휴렌트가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거리감이 느껴졌다.

역시 평소에 잘했어야 하는데...

후회하는 그리드를 앞장서 걷기 시작한 휴렌트가 중얼거린다.

“드디어 신상 농기구 세트가 나온 건가...? 호미 하나로도 감지덕지긴 한데...”

“...”

신상 농기구 세트도 만들어주자.

다짐하던 그리드가 문득 의문을 느꼈다.

현재 그는 아이린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템빨신교 본단이 목적지였다.

휴렌트의 터전인 논밭과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한데 휴렌트는 여전히 그리드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어디 가는 길이세요?”

호미를 되뇌던 휴렌트가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대장네 신전.”

“템빨신교에 가입하시려고요?”

어색한 두 사람이다.

중간에 피아로라는 가교가 없었다면 이렇게 나란히 걷는 일은 평생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드는 휴렌트에게 종교 가입을 권유하지 못했었고, 휴렌트가 템빨신교에 가입하지 않았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못내 아쉬웠다.

템빨신교에 진즉 가입했다면 여러 혜택을 누렸을 텐데... 스탯만 해도 엄청나게 올랐을 텐데...

“응? 가입이야 첫날부터 했지. 난 원래 종교가 없어서 템빨신교에 바로 가입할 수 있었거든.”

“그래요...?”

“어, 내가 여태껏 게임하면서 잘했다고 자부하는 일 중 하나야. 대장 덕 참 많이 봤어.”

“하하...”

밝게 웃는 그리드였다. 거리감이 그새 좁혀진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 휴렌트가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내가 신전에 가는 이유는 대장 와이프 때문이야. 라우엘이 호위를 부탁했거든.”

카심과 페이커를 비롯한 템빨그림자단의 실력자들이 거울악마를 사냥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다.

아이린의 호위 임무는 자연히 사리엘에게 인계됐는데 라우엘은 그마저도 불안했던 눈치다.

‘사리엘에 휴렌트면...’

하늘이 두 쪽 나도 아이린은 무사하겠다.

그런 믿음을 품은 그리드가 휴렌트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바쁘실 텐데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뭘... 내가 만든 요새엔 적들의 발길이 끊기기도 해서 마침 여유가 있었어. 신전 화단에 밭을 만들어도 좋다는 허락도 받았고.”

또 머쓱한 표정을 짓던 휴렌트의 얼굴이 이내 진지해졌다. 눈빛은 헌앙하여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미국.

세계 최대의 강대국을 대표했던 시절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드디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전쟁을 겪으며 자신이 결코 약하지 않음을 깨달은 눈치였다.

“대장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거 알아. 설령 바알이 쳐들어와도 대장이 도착할 때까진 반드시 지켜낼게.”

“...네.”

축적되는 시간과 사건들이 새로운 유대를 형성한다.

인마대전을 계기로 템빨단의 결속력이 한층 더 단단해졌다.

그리드도 안심하고 자리를 비울 수 있게 됐다.

최우선 목표는 옛 전설들의 전직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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