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콰드득!
그리드가 딛고 선 땅이 형체를 잃어갔다. 보폭을 밟을 때마다 박살이 나서다.
힘이 깃들 수밖에 없다. 한 번의 걸음으로 시야를 반전시킬 정도의 위치 전환을 반복해야했다.
그리드는 가미긴의 돌진을 경계하고 있었다. 직선으로 마주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방, 팔방, 상하.
매 초마다 모든 면을 향하는 그리드의 시야가 그의 움직임이 얼마나 격렬한지 대변한다. 점차 짙어지는 주황색 잔광이 급기야 태양처럼 부풀었다.
꽈아아앙!!
그리드의 망토가 어지럽게 펄럭였다. 가미긴의 이마가 스치고 지나가며 일으킨 풍압 탓이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했다.
‘확실히, 돌진 속도만큼은 으뜸이다.’
네 다리를 쓰는 가미긴의 돌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빠르게 연계됐다. 제라툴을 연상시키는 속도로, 초음속의 영역이었다. 브라함과 싸웠을 때와 비교해서 확실히 빨랐다.
당황할 건 없다.
전설들의 영혼을 대동하고 나타났을 때부터 예견했던 사태다. 심지어 쥬다르가 개입했다.
가미긴은 더욱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브라함이 맞대결을 피한 이유가 있었다.
‘괜찮아.’
스쳐지나가는 가미긴의 목젖에 검을 얹었던 그리드가 손목을 힘차게 꺾었다.
가미긴의 목을 베며 놈의 머리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했다.
안개처럼 번지는 마기를 화신의 폭풍으로 상쇄하고, 물리적인 공격들은 맞아주면서다.
공격을 피할 시간이 아까웠다. 회피 기회를 반격 기회로 소모했다.
물론 치명적인 공격들은 흘렸다.
그리드는 다가오는 공격의 궤도와 강약을 구분하는 게 가능했다.
서른 개의 갓 핸드가 유지 중인 <인공 감각> 덕분이다.
가미긴의 돌진공격이 초음속을 돌파할지언정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애초에 가미긴에겐 커다란 약점이 있었다.
말과 같은 하체 덕분에 직선 움직임엔 특화되어 있는 반면 방향 전환이 둔하다.
물론 보통 사람에겐 그마저도 신속으로 보일 테지만 그리드에겐 확실히 서툴게 다가왔다.
대단한 실력자들을 어지간히 상대했어야지.
고난도 전투 경험이 서러울 정도로 과하게 축적됐다.
퍼어엉!!
염룡검과 합체하여 베기와 찌르기 양면에 특화 된 구젤의 도.
그것이 가미긴의 목을 스치자 폭음이 터졌다.
절대방어가 부서지는 소리다.
안 그래도 투기를 지닌 그리드와 구젤의 도는 뛰어난 궁합을 자랑했다. 절대방어를 높은 확률로 없는 셈 쳤다.
이쯤 되면 드래곤을 레이드하진 못해도 치명상을 입히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스스로 자평할 수준이었다.
5분.
실제로 가미긴은 전투 개시 후 고작 5분 만에 피투성이가 됐다.
제4위 대악마답게 피통이 ‘최소’ 수십억 단위일 텐데도 그렇다.
그리드의 공격력은 이제 초월적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사기급. 가히 버그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템빨의 극의다.
그리드가 여태껏 쌓아온 업적과 칭호, 격과 스탯 등이 드래곤 웨폰이라는 최강의 무기를 극한까지 벼리고 있었다.
“푸후으...”
거친 숨을 토하는 가미긴의 표정은 의외로 차분했다. 위기가 강해질수록 냉정해지는 타입 같았다.
‘믿는 구석이 있나보군.’
그리드는 분당 수백 회의 시야 전환을 겪은 탓에 머리가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다.
아직 몸은 지치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이 상당했다.
Satisfy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신체 능력이 올라갈수록 플레이어가 부담하는 대가가 커진다. 집중력을 오래 유지하는 게 불가능했다.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시스템 보조 효과를 최대한 억제하는 부작용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괜찮았다.
스태미나가 바닥나는 등 시스템적으로 제약이 생기는 게 아닌 이상, 정신적인 피로든 육체적인 피로든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끈기.
그리드 최대의 강점이다.
‘아무래도 약점을 극복할 수단이 있는 거겠지.’
전투 개시 후 절정에 이른 그리드의 집중력이 흔들리지 않고 유지됐다.
가미긴이 강구한 타개책이 무엇인지 추측하고 대비했다.
티를 내진 않았다. 움직임에 변화를 주지 않고 전투 패턴을 유지하며 유리한 고지를 착실히 점령했다.
가미긴에게 직진이라는 최단의 경로를 내어주지 않고, 끊임없이 보폭을 밟아 측면을 파고들며, 그 과정을 검무로 승화시킨다.
크롸라라라라라!!
검무에 깃든 마법들이 구젤의 자아에 영향을 받았다.
드래곤의 포효가 주변의 마물들을 위축시켰다.
불완전하나마 드래곤 피어다.
그리드보다 레벨이 하나라도 낮거나 격이 크게 낮은 적은 공포에 빠져 전투력을 상실했다.
지속 시간은 1초에 불과했지만 사실상 무의미하다.
검무에 깃든 마법은 계속해서 연계됐고 그만큼 드래곤 피어의 지속 시간도 늘어났으니.
스칵!!
가미긴의 좌측 하단에서 검을 휘두른 그리드가 가미긴의 후방 상단에서 나타나자 가미긴의 가슴과 등에서 새로운 선혈이 동시에 분출됐다.
아군을 환호하게 만드는 쾌속의 검술이었다.
“...!”
반면 브라함의 등골은 오싹해졌다.
쯔단과 파일볼프의 발을 묶으면서도 그리드를 살피던 그는 목격하고 말았다.
가미긴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광경을.
뭐라 외칠 틈이 없었다.
즉시 실드를 전개하여 그리드의 전신을 감싸주었다.
그땐 이미.
콰아아아아아아앙───
가미긴의 팔방위로 새카만 광선이 분사됐다.
그리드가 집요하게 노려온 가미긴의 약점들, 측면 사각지대가 날카로운 무기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
“...!”
가미긴을 중심으로 둔 8줄기의 광선은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상공에서 보면 검은 눈의 결정체 같은 모양새인데, 신비롭고 아름다운 외견과 달리 참혹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경로 상에 존재하는 플레이어와 마물들이 흔적도 없이 산화했다.
방어 스킬과 마법이 무용지물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즉사였다.
한데 범위도 컸다.
광선 하나의 지름이 족히 수십 미터였고 비거리는 수십 킬로미터였다.
광선이 한 번 쏘아진 여파로 전장이 쑥대밭이 됐다는 의미다.
광선을 코앞에서 마주친 그리드는 피할 틈도 없었다.
초월경이 발동했을 땐 이미 시야 전체가 광선에 가려진 터라 순보의 발동이 불가했다.
대신 회(回)로 대응했다.
반격을 예견했던지라 찰나의 지연조차 없었다. 즉시 선회한 구젤의 도가 광선을 정확히 맞받아쳤다.
다만 반전이 있었다.
[150,0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물리력과 마력을 무시하는 고정 데미지.
회의 검무와 충돌하지 않고 관통하며 들어온 광선이 그리드의 전신을 난자했다. 랭커들이 즉사한 이유를 설명하는 높은 데미지였다.
심지어 광선은.
[150,0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상이 범위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피해를 중첩시키는 구조였다. 초당 30만의 데미지였다.
제4위 대악마의 진가다.
플레이어가 섣불리 도전할 위계가 아님을 증명했다.
“크하하하하!!”
가미긴이 대소를 터뜨렸다.
그리드를 집어삼킨 광선을 꺼뜨리지 않고 유지한 채, 백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는 듯이 속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 과정에서 브라함의 마법을 연달아 허용했다.
광선의 위력이 초절하는 만큼 유지하기 위해선 빈틈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응당 감당해야 할 수모였다.
이 암흑 광선은 바알의 파벌에 속하는 대가로 얻은 힘.
바알이 말하기로 야탄 신의 권능이라 하였다.
물론 그 힘을 온전히 해방하고 활용하는 건 가미긴의 역량으로 불가능했지만,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는 것으로 충분한 위력을 발휘한다.
광선의 속성 자체가 불합리했다.
거대한 질량으로 물질을 끌어당기며 짓누르고, 분해한다. 그러면서도 물질마다 갖는 고유의 저항은 철저히 무시한다.
광선에 한 번 닿은 대상은 죽기 전까지 그 안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신을! 죽인다!! 크핫! 크하하하핫!!”
광소를 멈추지 못하는 가미긴의 칠공에서 검은 잉크 같은 피가 줄줄 흘렀다. 파랗게 부푼 혈관들이 처참하게 터져나갔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보였다.
물론 쉽게 죽을 리 없다. 대악마 고유의 재생력과 쥬다르의 권능이 그를 지탱했다.
스파아아앗!!
이질적인 소음이 울렸다.
두 눈을 부릅뜨는 가미긴의 상공에서 포털이 열렸다.
옥색의 마력이 빛처럼 쏟아졌다.
지옥 원정대의 귀환이다.
“지옥 규제.”
콰과과과광...
전설인 데빌 슬레이어가 태초신의 권능에 영향력을 행사할 리 만무하다. 그건 어지간한 주신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암흑 광선의 위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환경에 의해서다.
야탄은 지옥에서 숭배하는 신이므로, 전장에서 지옥이 소멸한 순간 자연히 광선의 존재감이 옅어진 것이다.
“이놈이...!”
가미긴은 광선을 거두지 않았다.
진즉 한계에 봉착한 몸이 지옥 규제 탓에 가일층 약화됐으나 악착 같이 버텼다.
말 그대로 한계였기 때문이다.
그리드와의 전투는 몹시 짧았지만, 가미긴이 입은 피해는 치명적이었다.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사실 가미긴은 이 모든 순간들이 꿈만 같았다.
그리고 이 꿈을 악몽으로 마무리 짓지 않기 위해선, 그리드의 숨통을 반드시 끊어놔야만 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죽도 밥도 안 됐...
“...!”
가미긴의 사고가 잠시 멈췄다.
바로 곁에 내려앉은 인간 탓이다.
흑발의 사내였다.
그를 쫓아 유성처럼 이어진 은빛의 검로 너머로 가미긴의 두 팔이 부유하고 있었다.
“검성...!”
“쓸데없이 끼어들었어.”
철컥.
읊조리듯 중얼거린 크라우젤이 검을 거뒀다.
허리에 비스듬히 매단 검파에 손을 얹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마치 누군가에게 길을 열어주는 듯했다.
가미긴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몹시 건방진 태도였지만 가미긴은 분노할 여력이 없었다.
피부가 타들어가는 열기를 느껴서다.
여전히 유지 중인 광선 너머에서 다가오는 열기였다.
이제 보니 암흑 광선의 중심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희미한 날개가 보인다.
광선에도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이루어진 날개였다.
콰드드드득!!
“무...슨...?”
지옥 규제 탓에 약화 되었다곤 하나 태초신의 격이 담긴 광선이다.
한데 그 중심부가 우그러지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를 감당 못하고 녹아내리는 모양새였다.
뚜벅. 뚜벅. 뚜벅.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발소리가 가미긴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고즈넉한 걸음걸이를 통해서 가미긴은 깨닫고 말았다.
승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음을.
“강해졌구나.”
급기야 반으로 갈라진 광선을 통로삼아 모습을 드러낸 그리드가 크라우젤에게 웃어주었다.
활활 타오르는 주작을 등 뒤에 장식한 채, 가미긴에겐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낙월검과 구젤의 도를 순차적으로 휘둘렀다.
진즉부터 노려온 약점을 파고드는 검로였다.
두 칼에 깃든 주작 신의 가호와 루비의 버프가 가미긴이 등에 업은 쥬다르의 가호를 어느 정도 상쇄시키기도 했다.
푸화하하하하학!!
분수처럼 솟구치는 핏줄기와 얽히는 잿빛이 새로운 소식을 알렸다.
[제4위 대악마 가미긴이 소멸하였습니다.]
[최단시간에 공략 당한 대악마로 기록됩니다.]
[전투 개시 후 가미긴의 최후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7분 31초이며, 이 기록은 템빨신 그리드가 세웠습니다.]
새로운 신검.
드래곤 웨폰의 위력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
세계의 장르가 바뀌었다.
절망뿐인 아포칼립스에서 쾌감이 난무하는 핵 앤 슬래시로.
그리드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전장을 관통하는 회색용의 잔영이 마물들을 뒤집어놓는 광경은, 사람들에게 한도 없는 쾌락을 선사했다. 시각적인 마약이었다.
『우, 우와아아아아!!』
급기야 가미긴이 죽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중계진이 환호했다.
공영 방송국의 앵커들조차 체면을 잃고 열광했다.
스튜디오가 발칵 뒤집혔다는 표현이 옳았는데, 의견 충돌로 서로를 비난하던 전문가들이 얼싸안고 방방 뛸 정도였다.
커뮤니티의 열기는 한층 더 뜨거웠다.
-아니 미친 거냐고ㅋㅋㅋㅋ
-무기 위력이며 이팩트며 간지 지리네...
└조만간 극검에게 검거 될 댓글입니다.
└뭔 솔?
└간지라고 해서 그런 듯.
└정작 극검도 발도술 쓰는데?
└발도술이 아니라 발검술이고, 발검술은 한민족 고유의 검술임. 극검이 옛날에 직접 밝힌 바 있음. 근거는 없다고 함.
└??
-저거 드래곤 웨폰인가요?
└드래곤 웨폰일 가능성은 없죠. 드래곤이 잡힌 역사가 없는데.
└ㄴㄴ트렘펏이라는 산간오지에 가면 500년 전에 악룡 봉인했다는 영웅 칭송 민요 있음.
└그건 봉인이지 죽인 게 아니잖아요. 지능 실화신가?
└ㅗ
-그리드 사도 중에 드래곤인지 해츨링인지 있다며. 서사시에 나왔던 걔. 걔 잡아서 무기 만든 거 아님??
└미친놈인가 ㅋㅋㅋㅋ
└맞는 거 같은데? 그리드 사도 중에 걔만 못 본 듯.
└바알 같은 새끼들.
-어쨌든 X나 멋있다.
살아가다 보면 실감하는 사실이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드물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특히 중장년층의 사람들이 그리드의 무적 신화에도 유통기한이 있을 거라고 추측해왔다.
그리드의 실력을 비하하는 게 아니다. 그리드가 망하길 바라서 저주하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자연히 다가올 흐름으로 대비했다.
실제로 적들은 점점 더 강해졌고 급기야 인마대전이 발발했다.
수천수만 단위를 우습게 학살하는 초월적인 존재들이 난립하는 전쟁이었다. 하나 같이 그리드의 독보를 위협하는 강자들이었다.
천하의 그리드라 해도 긴장할 만한 사태였다. 드디어 신화에 도달한 명성에 흠집이 생길 것을 염려할 법했다.
실제로 그리드는 전쟁에 직접 나서지 않았다.
뭇 사람들이 그를 논하길, 그럼 왕이 처음부터 직접 나서야겠느냐, 군대는 괜히 모았겠느냐 등등 떠들어댔지만, 그건 사실 냉정한 분석이 아니었다.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전쟁은 위기이자 기회다. 경험치가 지천에 널렸지 않나. 1초라도 더 종횡무진하며 싸워야 옳았다.
한데 그리드는 전쟁을 피했다.
긴장하는 것이 분명했다. 패배를 겪는 걸 극도로 꺼려하는 눈치였다.
중장년층 플레이어들은 그리드의 판단을 이해했다. 오히려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그리드는 인류의 상징이니까.
만에 하나 그가 패배하기라도 했다간 적들의 기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터였고, 전쟁은 허무하리마치 쉽게 결판 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드의 가치를 아는 사람일수록 그리드가 비겁하기를 바랐다.
확실한 승기를 노릴 수 있을 때만 개입해서 적에겐 재난으로, 아군에겐 희망으로 버텨주길 바랐다.
그렇다.
그리드가 바알을 상대로 나섰을 당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드의 선택을 반기지 않았다. 위험을 자처하는 꼴이라며, 정이 너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다행히 바알을 쓰러뜨리긴 했지만 운이 좋은 결과라고 평했다.
한끗 차이 승부였으니까.
그리드는 그 한 번의 전투로 상처투성이가 됐었다.
자칫하면 인류는 희망을 잃을 수도 있던 것이다.
한데 오늘.
그리드는 또 다시 위험을 자처했다. 고작 수천의 사람, 심지어 플레이어들의 위기를 좌시하지 못하고 나섰다.
자고로 영웅이란 우직하다 하더니 과연 현명하지 못했다.
그를 보고 걱정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리드가 더 강해져서 돌아왔네요.
-새로 만들었다는 신검 덕분일까요. 참으로 대견합니다. 허허. 사위 삼고 싶네요.
-제가. 30년만 젊었어도., 그리드랑 한편 먹고 싸웠을 텐데. 에혀. 세월이 야속합니다 그려.
-우리 세대가 자식 놈들 공부시키지 말고 게임 시켰어야했는데. 실수했죠. 그래야 그리드가 외롭지 않았을 것을. 쯔쯔쯧...
가미긴이 쓰러지고 나서야.
그리드를 묵묵히 지켜보며 평가하던 중장년층의 플레이어들이 드디어 쓸데없는 근심을 거뒀다.
순수하게 열광하며 방송 채팅창을 장악했다. 커뮤니티 게시글도 우후죽순으로 늘려갔다.
심각한 고령사회를 입증하는, 실로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일부 철 없는 청년들이 틀딱의 난이냐며 그들을 조롱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애초에 취미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연령은 중요하지 않았다.
세대의 통합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어떤 위인도 이루지 못했던 업적을, 그리드가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