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409화 (1,399/1,794)

템빨 70권 - 18화

인마대전 개시 후.

각국 언론을 주축으로, 사람들은 대륙을 크게 7개 구역으로 나누었다.

국가 단위가 아닌 동서남북 네 방위와 주요 거점 세 곳으로 구분했다.

단순히 편의를 위해서다.

『북부에선 총 3,831개의 포탈이 관측되었죠. 다행히 대악마가 출몰하진 않고 있습니다. 어스름족 오크 왕국을 중심으로 합심한 국가들과 플레이어들이 마물들의 침공을 쉽게 막아내고 있어요.』

『오크 로드 테루찬과 로드 친위대의 활약이 대단하더군요. 친위대원 상당수가 플레이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네, 99퍼센트가 플레이어입니다. 몇 해 전에 오크로 종족을 바꿨던 랭커들이 어느새 요직에 앉을 정도로 성장한 거지요. 어스름족 오크족엔 네임드 NPC가 거의 없다는 점도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랭커들의 노력을 굳이 폄하할 필욘 없겠죠.』

마법사 랭커들은 마력에 민감하다. 마법적인 장치나 현상을 어렵지 않게 관측했다. 서로 협조하여 포탈의 숫자를 헤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남부의 사정도 썩 나쁘지 않습니다. 관측된 포탈의 수는 5,420개로 굉장히 많은 편이지만, 수개월 전 헤밀턴 공국이 문호를 개방한 덕분에 남부의 전반적인 수준이 크게 오른 상태여서요.』

『확실히, 공국에서 등장한 여러 퀘스트가 플레이어들의 발길을 끌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특히 많은 뱀파이어가 이주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이주까진 아닙니다... 뱀파이어의 도시들은 전부 템빨국에 소속되어 있는데 굳이 템빨국 국적을 버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하, 제가 무지했군요.』

『뭐 어찌됐든, 현재 남부엔 상위 랭커와 뱀파이어 플레이어가 상당수 주둔 중이므로 침공에 능숙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강대국이나 초네임드급 NPC가 없어서 대악마가 나타나는 순간 금방 균형이 깨질 듯하지만... 그나마 위안인 점은 카츠의 존재겠죠. 그의 최근 성장세가 정말이지 눈부십니다. 30위대 대악마까지는 카츠를 중심으로 플레이어만으로 레이드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허황된 말로 들리지 않는군요.』

제4위 대악마의 어그로를 끌고 제법 큰 피해를 입힌 극검, 제24위 대악마와 잠시나마 백중지세를 이룬 아레스.

23위, 28위, 31위 대악마를 상대로 분전하는 지슈카와 레가스, 폰, 스캇 등...

번헨 열도와 무저갱에서 활약 중인 네임드 플레이어들의 수준은 전문가들의 예측을 넘어섰다.

템빨국산 아이템을 무장한 수십만의 군대, 그리고 브라함과 템빨골2 같은 그리드의 사도들(?)과 협력해가며 뜻밖의 선전을 거듭했다.

각국 언론은 랭커들의 실력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서부는 굳이 논할 필요도 없죠. 이곳에도 대략 4천개의 포탈이 열렸지만 마물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하하... 서부에는 템빨국이 있으니까요. 하물며 도미니언교와 쥬다르교의 본단도 자리 잡고 있죠?』

『예, 다행인지 불행인지 템빨국의 종교 탄압은 레베카교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두 종교도 자신의 권역 내에선 안정적으로 활약 중입니다.』

『하면 문제는 역시...』

『네, 동부입니다.』

Satsfy의 역사와 전쟁 분야의 석학.

하버드 대학 교수 바레인이 잠시 말을 멈추고 대륙 지도를 화면에 띄었다.

대륙을 크게 4개의 구역으로 나눈 지도였는데 붉은색으로 칠해놓은 동부의 영역이 서부, 남부, 북부를 합친 것보다 컸다.

중부를 동부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편의상 합당한 표기였다.

이 붉은색의 영토가 전부 제국의 땅이었기에.

『동부엔 총 11,090개의 포탈이 열렸습니다. 심지어 심장부에 무저갱이 위치해 있죠.』

인류의 주요 거점으로 지정된 세 곳 중 하나.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별이 표기된 장소가 바로 무저갱이다.

그곳은 하필 제국 수도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동부의 상황은 절망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 시작 전부터 발생했던 마인 출몰 사건과 다크엘프의 침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병력을 적잖게 소모했죠. 오래 전부터 병력난을 겪어온 제국에겐 치명적인 사건들이었습니다. 거기에 이번에 발생한 11,090개의 포탈과 제파르와 가미긴의 연속적인 침략... 제국엔 스스로를 지킬 힘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흠... 제국의 병력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서 쉽게 공감이 안 되는군요. 제국의 인구는 수십 억 아닙니까? 상당수의 플레이어가 제국 국적을 취득하기도 했고 말이죠. 제국은 각종 퀘스트를 이용해서 플레이어들을 병력으로 활용하는 한편 국민들을 꾸준히 징집해온 거로 아는데 왜 병력이 부족한 거죠?』

『제국의 영토가 필요 이상으로 크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죠. 제국은 시작부터 잘못 된 국가에요. 대륙의 주인을 자처한 순간부터 능력 이상의 책임을 짊어지었습니다. 현재 제국엔 수백 개의 도시와 요새, 그리고 27개의 국경이 있으니 필연적으로 병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고...』

교수는 제국의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대 황제 바사라가 제국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개혁을 촉진하고 있으나, 그 많은 개혁이 고작 1세대 만에 이뤄지는 건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어쨌든 결론은, 제국은 이번 위기를 자력으로 극복하지 못할 겁니다. 무조건 템빨국의 지원을 받아야하죠.』

『그렇군요. 하긴 타이탄만 봐도 브라함이 아니었으면 큰 낭패를 겪었을 테니...』

『사실 그랜드마스터 지크프렉터와 첫 번째 기사 메르세데스를 템빨국에게 빼앗긴 시점부터 제국의 명운은 그리드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고 봐도 무방한... 어? 뭐요?』

『이런, 말씀드리는 순간 속보입니다. 무저갱에 새로운 대악마가 출현하였다고 합니다. 번헨 열도의 균형도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

범람하는 영감과 그를 뒷받침하는 지식, 그리고 재능과 신격.

거기에 되찾은 권능을 토대로 완성시킨 신화급 마법.

브라함의 <퍼니쉬먼트>에 갈가리 찢겨나간 가미긴은 비명조차 토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브라함이 치른 대가도 컸다. 무리한 마법 전개로 내상을 입어 칠공에서 피를 쏟고 있었다. 정신이 아찔해졌을 정도다.

하지만 어떻게든 혼절은 피했다. 직계의 육신이 그를 지탱해주었다.

‘이 상태로 퍼니쉬먼트를 다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시간이 필요해.’

아쉬운 대로 전설급 대마법을 사용할 형편도 안 된다.

굳건히 버텨준 육체와 달리 마력이 역류하고 있었다. 간신히 통제하는 게 고작이었다.

여기서 무리했다간 마나핵에 영구적인 손상이 발생할 공산이 컸다.

벌써 재생하기 시작한 가미긴의 육신을 좌시하지 못한 브라함이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마법을 못 쓰는 상황이니 물리력을 행사할 심산이었다.

격조 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건 썩 좋아하지 않고, 능숙하지도 못하지만 상황이 정 급하니 어쩔 수 없다...

그때였다.

“회복에 전념하십시오.”

공손히 말한 카일이 브라함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았다.

가미긴의 재생을 막기 위해 뇌전의 폭풍을 불러일으키는 기세가 맹렬했다. 갑자기 날아온 저격에 어깨가 날아가기 전까지만 해도 믿음직했다.

제8위 대악마 바르바토스의 저격이었다.

카일은 워낙 지친 상태였고 가미긴에게 집중하느라 대응이 느렸다.

눈살을 찌푸린 브라함이 뇌까렸다.

“죽더라도 5분은 버텨라.”

“...기왕이면 살아서 버텨보죠.”

당장 끊겨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덜렁거리는 한쪽 팔.

카일은 개의치 않았다.

본래부터 ‘없는 셈’ 쳐왔던 팔이기에.

***

‘사실 궁성이 제일 사기 직업 아닐까?’

제13위 대악마 벨레드.

귀찮은 일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며, 지상에 별 관심이 없는 그가 선봉군 사령관 역할을 맡은 이유는 당연히 보상 때문이다.

바알의 최측근 체파르데아가 그에게 커다란 선물을 약조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퍼져있었다.

벨레드가 그만큼 유능한 대악마라는 뜻이다.

바알의 최측근이 친히 섭외 할 정도로.

실제로 벨레드의 공포정치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결속을 모르는 악마들을 힘으로 핍박해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무려 수백의 악마와 넷의 대악마가 벨레드의 협박을 좌시하지 못하고 이번 작전에 참가했다.

로제가 봤을 때 악마군의 전력은 대단히 훌륭했다.

그리드가 사도들을 단체로 이끌고 나타나지 않는 이상 적수가 없다고 믿었을 정도다.

한데 지금, 믿음이 흔들리려 하고 있었다.

발할라의 장군들과 각국 기사들이 통솔하는 수십만 병사와 레가스, 폰 등의 하이랭커들이 전장에서 버티는 동안 마물들을 멸절시킬 기세로 화살을 쏘아 붓는 지슈카.

그녀의 화살 세례가 장대비처럼 퍼부어지고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쏟아졌다. 한 명의 인간이 행사하는 현상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한데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저격 포인트를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수십 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오는데 각기 궤도가 달랐다. 어디서부터 쏘아진 화살인지 추측하기 힘든 구조였다.

그야말로 신기였다.

“빌어먹을, 이 화살이 너무 방해된다.”

31위 대악마가 가장 먼저 초조함을 드러냈다. 그 또한 신예였다.

그리드와 유라의 지옥 정벌 때 너무 많은 대악마가 죽음을 맞이했다. 빈 권좌를 차지한 새로운 대악마들은 대부분 아직 원숙하지 못했다.

오직 무력만으로 권좌를 차지했고, 이후 어떤 경험을 쌓지 못해 단순한 면이 있었다. 인내심이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내가 찾아내서 죽인다!”

소리친 31위 대악마가 적진 한가운데로 돌진했다. 거대한 언월도를 맹렬하게 휘두르면서다.

인간들이 몸으로 세운 고기 장벽 따위, 손쉽게 난도하고 돌파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했다.

연합군 병사들 중 일부 정예가 빠르게 대응했다.

무기를 버리고 자신의 키만큼 큰 작살을 꺼내 냅다 투척하기 시작했다.

‘용작살?’

언젠가 국대전에서 보았던 그리드의 보조 무기를 떠올린 로제가 불안을 감지했고,

“크아악!!”

수십 개의 작살에 꽂힌 대악마가 적진 한가운데 멈춰 선 채 몸부림쳤다.

자세히 보니 작살마다 튼튼한 밧줄이 이어져 있었다.

발 빠르게 움직인 병사들이 밧줄 끝을 말뚝으로 고정시켜 대악마의 육체를 일시적으로 봉인해버렸다.

한두 번 연습한 솜씨가 아니었다.

작살의 위력과 밧줄의 내구력이 엄청나기도 했다.

“좋아! 잘했다!!”

웃으며 소리친 폰의 창이 발 묶인 대악마의 심장에 꽂혔다. 레가스의 섬전 같은 주먹은 대악마의 얼굴을 수십 회 후려쳤다.

그들은 은색으로 빛나는 창과 건틀렛을 무장하고 있었다.

그리드가 인마대전을 앞두고 직접 제작한 레전드리 등급의 무기들로, 방어력을 무시하는 높은 관통력과 마기를 약화시키는 옵션을 겸비한 최고의 아이템이었다.

위력이 어찌나 치명적인지 대악마의 비명이 전장을 진동시켰다.

‘Satisfy에서 전쟁은 원래 양보다 질인데.’

로제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본래라면 대악마에게 쉽게 유린당했어야 할 병사들.

각기 다른 템빨을 무장한 그들이 특정 상황마다 자신의 포지션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본래 항거하지 못할 압도적인 무력에 숫자로 대응하고 있었다.

여태껏 Satisfy에선 볼 수 없던 상황이 순전히 아이템의 힘으로 구현 된 것이다.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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