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405화 (1,395/1,794)

템빨 70권 - 14화

인류는 30위, 20위대 대악마에게 멸망의 위기를 겪었었다.

한 자릿수 대악마가 몹시 고강하단 사실을 상식적으로 알았다.

다만, 9위 대악마와 10위 대악마의 격차가 한 끗 수준인 걸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고작 하나의 등수 사이에 천지를 논해야할 정도의 격차가 존재한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한줌에 불과했다.

어쩔 수 없다.

세계관에 깊이 접근한 유저는 여전히 적었고, 그중에서도 지옥 에피소드를 제대로 겪어본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니.

심지어 유라도 지옥을 전부 이해하진 못하고 있다.

그녀는 아직 지옥 심층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유저의 성장에 비해 세계의 흐름이 너무 빨랐다.

제4위 대악마의 수준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단 뜻이다.

무엇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한 ‘태초의 3악’을 제외한 최고위 대악마...

만약 등장 메시지에 이런 수식언이 대놓고 붙었어도 보통 사람들은 어떤 감상을 느끼지 못했을 거다.

바알, 아모락트, 베리아체를 뜻하는 태초의 3악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기에.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리드도 최근에야 벽화를 보고 알았으니.

-미친 여기서 브라함이 나오네.

-상황 종료 ㅋㅋ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 에슈발트.

그는 부활하기 전부터 유명했다.

그리드의 육체에 빙의해 야탄의 종을 손가락 하나로 물리치고 국대전에서 크라우젤을 쓰러뜨리는 등, 너무 많은 활약을 해와서다.

물론 당시 그의 정체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밝혀졌지만...

어찌됐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브라함은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다.

절세의 미남인지라 인기도 많았다.

카일이 여성 유저를 대상으로 한 인기투표 탑10의 단골손님인 반면 브라함은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았다. 인기투표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해왔다.

온갖 환상이 보태지며 어느 시점부턴 완전무결의 존재로 인식되어온 거물 중의 거물이 바로 브라함인 것이다.

그가 패배하는 모습을 섣불리 상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와아아!!”

운석에 도시 일각이 소멸했음에도, 그 여파에 휩쓸려 죽거나 죽기 일보직전의 위기에 놓였음에도.

사람들은 악이 바쳐라 함성을 내질렀다.

제국군을 몰살시킨 제파르를 등장하자마자 없애버린 걸로 모자라 제4위 대악마의 안면에 운석을 처박아준 브라함의 모습에 전율하며 응원했다.

물론 내심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타이탄은 무려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다.

한데 지금 브라함은 그중 5분의 1가량을 초토화시켰다.

수만, 수십만 명이 폭발에 휩쓸려 죽어나갔어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대악마가 활개치도록 놔뒀다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테지만... 이건 좀 심한 게...

염려를 금치 못한 시청자들이 모니터 속 브라함의 모습에 집중했고,

‘이건 뭐지.’

브라함의 널따란 등엔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물론 겉모습은 태연했다. 도도하게 치켜세운 턱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브라함은 조금... 아니, 상당히 많이 당황한 상태였다.

방금 그는 총 3개의 운석을 불러왔다.

하나는 실시간으로 사용한 메테오 마법이었고, 다른 2개는 사전에 알람으로 준비해놨던 메테오 마법이었다.

무저갱이 열린 뒤 제파르의 이동 경로를 눈에 담으며 언제, 어느 지점에서 강적이 출현할지 대략적으로 예측한 뒤 안배했던 것이다.

3개의 운석 중 단 1개만 가미긴에게 적중한 이유다.

물론, 나머지 2개의 운석도 가미긴을 피해범위에 넣긴 했다.

전황을 정확히 예측했던 덕분이다.

정말이지 대단한 통찰력과 계산능력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어쨌든.

누차 말하지만 브라함은 3개의 운석을 우주로부터 끌어왔다.

한데 실제로 나타난 운석은 무려 27개였다.

물론 27개의 운석 모두 똑같은 위력을 내포하고 있던 건 아니다.

브라함이 직접 소환한 3개의 운석의 파괴력이 각 100이라고 가정했을 때, 나머지 24개의 운석은 각 3에서 10의 파괴력만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위력이었다는 게 문제다.

도시의 5분의 1이 파괴됐을 정도로.

‘...원인은 이 지팡이인가.’

브라함의 차가운 시선이 손에 쥔 지팡이로 향했다.

지난 지옥 원정에서 얻었던 부산물들을 이용해 그리드가 직접 강화시킨 벨리알의 지팡이.

마법사에 불과(?)한 브라함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그리드가 진행한 강화 과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새로운 설계로 단점을 보완하고 더 나은 재료를 추가하여 위력을 증진시킨 수준의 강화가 아니라 신의 권능을 불어넣었다.

템빨신의 권능.

바로 <개변>이다.

브라함의 무기는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마력이 잔상을 남기고 잔상이 주술을 복제하는 식인가.’

브라함은 지팡이의 새로운 기능을 대번에 간파했다.

어째서 3개의 운석이 27개가 된 건지, 지고한 지식으로 그 원인을 분석하고 이해했다.

‘이건 단순히 위력을 증폭시키는 개념이 아니야. 발동된 마법의 개수 자체를 증식시켜 다차원적 효과를 유도한다.’

기적의 영역이다.

그리드는 터무니없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용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겠는데.’

브라함은 직감했다.

이 지팡이는 마법사를 위한 무기가 아니라 마법사를 집어삼키는 괴물이다.

평범한 마법사가 이 지팡이를 사용한다면 통제하지 못하고 자멸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은 다르다.

빠르게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

직계의 권능을 되찾지 못했을 뿐, ‘마법사’로서의 능력은 이미 진즉에 되찾았으니.

전성기 시절의 브라함 에슈발트가 완전히 부활했단 의미다.

히드라 토벌과 지옥 원정, 헬가오 레이드 등이 큰 도움이 됐다.

애초에 경험치 획득량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도 했었다.

마침 그를 안심시키는 외침이 들려왔다.

“브라함 공! 백성들의 피난은 진즉에 유도해놨으니 근심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렌할 공작의 외침이었다.

그의 말엔 한 점의 거짓도 섞이지 않았다.

무저갱에서 악마들이 침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던 마당에 백성들을 피신시키지 않았을까?

제국에 남아있던 백성은 대부분 전투가 가능한 인원들 즉 플레이어와 길드 소속 상비군이었다. 백성이되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단 뜻이다.

물론 전원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그나마 남아있던 일반인은 그렌할 공작이 조금 전 완벽하게 피난시켰다.

적기사들의 도움과 모르이즈 공작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브라함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시시하군. 내가 사람들을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나?”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등을 적셨던 기분 나쁜 식은땀도 어느새 말랐다. 클린즈 마법으로 털어내자 상쾌해졌다.

“고인의 마음을 짐작하려 들어 죄송합니다.”

그렌할 공작이 정중히 사죄했다.

그는 얼핏 대수롭지 않게 다가오는 브라함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했고 긴장했다.

제국의 공작이란 일인지하 만인지상임에도 그랬다.

역대 최강의 대마법사.

브라함이 지닌 이름의 무게가 그만큼 컸다.

“아핫...! 아하핫! 대단, 대단하네에...”

쇠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불에 타들어간 성대를 억지로 움직여 지껄이는 목소리가 사뭇 기괴했다.

“...”

사람들의 시선이 거대한 크레이터의 중심부로 옮겨졌다.

우뚝 서있는 말이 보였다.

하체는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하나 가슴 위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화염 너머에 언뜻 드러나는 모습이 섬뜩하다.

찢어지고, 조각나고, 녹아 늘어진 살점과 뼈가 어린아이의 손으로 만진 진흙처럼 뭉개져 뒤얽혀 있었다.

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자랑했던 가미긴의 상체가 브라함의 메테오를 정면으로 맞은 여파를 감당 못해 흉측하게 일그러진 것이다.

“뭐야아... 베리아체의 핏줄... 너무 대단해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꽃 속에서 가미긴의 몸은 재생하고 있었다.

꺾여서 축 늘어져있던 목뼈와 가시처럼 비죽비죽 어긋났던 척추가 똑바로 올곧게 섰다.

곤죽이 됐던 심장이 본래의 형상을 갖추고 박동했다.

산산조각 난 두개골이 다시 동그랗게 붙고 새카맣게 타들어갔던 피부가 덧씌워지며 황홀한 표정이 표현됐다.

“갖고 싶어... 응! 꼭 가져야지!”

떨어졌던 팔이 다시 붙고 성대가 회복되며 목소리까지 회복됐다.

눈동자 없이 흰자위만 있는 가미긴의 눈은 정확히 브라함에게 고정된 채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브라함의 주위로 수십 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가미긴이 재생하는 동안 준비해놨던 대마법들이다.

“더럽고 천한 것이.”

쿠콰콰콰쾅!!

각기 다른 위력과 효과가 탑재된 수십 개의 마법이 하늘과 땅을 수놓았다.

대응이 불가능한 수준의 파상공세였다.

브라함의 마법이 보통의 마법보다 강한 이유.

그건 단순히 마력의 질과 양, 술식의 차별성 때문만이 아니다.

브라함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대응을 예측하고 유도한다.

대상의 성격과 성질, 목적, 전장의 상황, 환경, 심지어 날씨와 풍향 등 모든 요소를 분석한 뒤 자신의 마법이 보다 빠르게, 강하게, 효과적으로 대상에게 적중하도록 만든다.

“...!!”

곡선으로, 사선으로 어지럽게 질주하며 마법 공세를 피하는 가미긴의 얼굴에서 차츰 미소가 사라졌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서가 아니다.

유독 위협적인 마법들을 경계하다 보니 자연히 브라함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에게 접근하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사실을, 가미긴은 금세 깨닫게 되었다.

‘베리아체가 괴물을 낳았네. 아니... 오히려 한심한 걸 낳아서 괴물이 된 건가.’

베리아체는 마법을 쓰지 않았었다.

정확히 말해서 그녀에겐 마법이라는 공부가 필요 없었다.

한 방울의 피로 전능에 가까운 이적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

말인 즉, 브라함이 베리아체의 힘을 반의 반만큼이라도 물려받았다면 굳이 마법사가 될 이유가 없었단 의미다.

‘불쌍한 아이. 어미에게 사랑 받지 못해서 그 모양 그 꼴이 됐구나.’

지금의 너 꼴을 보아라.

어디 위대한 3인의 핏줄이라 할 수 있겠느냐.

하찮고 나약해 평생토록 마법을 연마할 수밖에 없던 하등한 인간 마법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움을 느낀 가미긴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갈 길 잃은 영혼들을 보살피는 망자들의 왕답게 모성애를 느끼는 것이었다.

그녀는 브라함을 보듬어주고 싶었다.

하찮은 행태와 달리 강인하고 고결한 저 영혼을 당장에라도 끄집어내 평생토록 곁에 두고 싶었다.

“아아! 브라함!!”

문득 상념에서 깨어난 기미긴은 자신이 큰 함정에 빠졌음을 자각했다.

브라함의 마법을 피하다보니 자연히 서게 된 땅.

그 지하에서 들끓는 대량의 마력이 느껴졌다.

“훌륭하구나! 가상하구나! 어미에게 버림받아 재능을 타고나지 못하고도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발버둥 쳐왔던 것이냐! 기특한 너를 내 아들로 삼아줄게에엑!!”

화산처럼 터지는 마법 함정에 휩쓸린 가미긴의 외침이 찢어지고, 늘어졌다.

사람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조금 전 가미긴의 대사는 누가 들어도 개소리였으니까.

브라함이 재능이 없다고?

하물며 갑자기 아들로 삼겠다고?

그새 노망이 든 건가 의심이 생길 정도였다.

그만큼 가미긴의 기질이 특이하고 괴이했다. 인간들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지옥에서 평생을 절대자로 군리해온 존재다. 상식적일 리 없었다.

어떤 상념이 떠오를 때마다 현실과 구분 짓지 않는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상념을 즉시 현실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그것을 타인에게 자연스럽게 강요했다.

가미긴에겐 충분히 그럴 권한이 있었다.

세상을 자신이 뜻하는 대로 바꿔놓아도 어떤 후환을 두려워할 위치가 아니기에.

“음...”

브라함은 깊은 사색에 잠겨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생채기 하나 입지 않은 하체를 중심으로 재생하는 가미긴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수백 종류의 계산을 동시에 진행했다.

메테오의 물리력과 화염 마법의 폭발력, 빙결 마법과 중력 마법의 강제력, 보조 마법의 개입으로도 훼손되지 않는 가미긴의 하체를 보고 흥미를 느낀 까닭이다.

여태껏 없던 영감들이 밀물처럼 밀려오며 그의 뇌리를 저미고 있었다.

물론 가미긴이 지껄인 헛소리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브라함에게 중요한 건 타인의 말이 아닌 자신의 심상이므로.

애초에 가미긴의 해석은 틀린 것이다.

브라함은 베리아체에게 재능을 받지 못했던 게 아니다. 가미긴 못지않게 괴팍한 이 성격 탓에 기껏 받았던 재능을 빼앗겼을 뿐이다.

“브라하아아암!!”

재생을 마친 가미긴이 멀리 떨어져있는 브라함에게 정면으로 돌진했다.

몇 번의 계산을 토대로 마법을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고 계산한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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