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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401화 (1,391/1,794)

템빨 70권 - 10화

도대체 언제 베였지?

눈꺼풀에서 흐르는 피가 자꾸 거슬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 카일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초월의 격을 꾸준히 쌓아올린 그가 ‘인지하지 못하는 공격’은 없어야 마땅했으니.

하물며 카일은 뇌전지체의 몸이다.

그의 몸엔 피와 함께 뇌전이 흐른다.

그 탓에 부모에게조차 버려졌으나, 뇌전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된 뒤로 뇌전은 그에게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되었다.

뇌전과 동화했을 때 카일은 그야말로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그에 비례해서 사고능력이 가속하기도 했다.

초월자의 감각과 카일의 상성은 최고라는 뜻이다.

상처 입을 일은 결단코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수준이다.

실제로 카일은 셈해보았다.

템빨신 그리드의 뜻에 거역하거나, 무신 제라툴의 집착이 들러붙은 ‘팔’을 쓰지 않는 이상 자신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일은 절대 없다고 계산했다.

한데 이 순간 계산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 제파르가 그에게 강렬한 위기감을 선사했다.

“인간 초월자라...”

무너진 성벽에서 천천히 기어 나온 제파르가 살며시 웃는다.

푸른 전류를 찌릿찌릿 위시하며 자신을 노려보는 인간을 명백히 조소했다.

“그 전기 좀 거두지? 초월자씩이나 돼서는 겁먹은 개처럼 보이잖나.”

“지랄하고 자빠졌군.”

카일이 욕설을 뇌까렸다.

겁먹은 개처럼 보인다는 제파르의 감상이 영 틀리진 않았기에 울컥한 것이다.

제파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반갑다. 나 외의 초월자를 보는 건 오래간만이네.”

“네가... 초월자라고? 악마가?”

“타고나길 약했거든. 강해지기 위해서는 한계를 몇 번이고 뛰어 넘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초월자가 되었지.”

저벅저벅.

제파르는 카일과 대화하며 계속 걸었다.

자신과 카일과의 간극을 수백 미터에서 수십 미터로 줄였다.

그러던 도중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순보를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기절초풍 할 광경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렌할 공작은 초월자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

하물며 카일은 초월자다.

그들은 제파르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주시한 채 기감을 최대한 확장시켜 놨었다.

파지직!

카일의 몸을 감싸고 있던 전류가 수만 갈래로 갈라지면서 상공을 뒤덮었다.

용처럼 솟아올라 망처럼 펼쳐졌는데, 마치 결계가 작동하는 듯했다. 모든 과정이 몹시 쾌속하게 진행됐다. 번개가 빠른 건 당연했다.

“음.”

상공에 나타나자마자 전류의 망에 갇혀 감전된 제파르가 혀를 날름거렸다. 최대한 길게 뻗은 혀로 자신의 코끝에 침을 묻혔다.

“이래도 저린 게 안 가시나.”

“악마새끼가. 내 번개를 뭐로 보고.”

“하아압!!”

그렌할 공작의 기합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거대한 몸에서 피를 흩뿌리며 도약한 그의 주먹이 제파르의 안면에 꽂혔다.

초월적인 속도와 위력이었다.

전류를 세심하게 컨트롤한 카일이 그렌할 공작의 뇌와 근육을 활성화시켜주고 있었다.

제파르가 그에게 반격하는 것을 기점으로 전투가 심화됐다.

안 그래도 공간의 개념을 무색케 하는 초월자간의 전투.

거기에 카일의 신속이 더해지자 수천 대 수천 단위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후폭풍이 일대를 휩쓸었다.

빛이 명멸한다.

무한히 갈라지는 뇌전이 파괴를 일삼는다.

대륙 최대 규모의 대도시 타이탄이, 도시를 무대로 삼은 두 사내에 의해 처참히 붕괴되어갔다.

시가지 곳곳에서 살육을 일삼던 마물들과 놈들을 피해 도망치던 인간들의 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큭!”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좌시하지 못한 그렌할 공작이 전투에서 이탈했다. 때마침 도착한 맹수왕 모르이즈, 그리고 적기사들에게 사람들의 구조를 지시했다.

모르이즈가 혀를 내둘렀다.

“아따, 일단은 원흉을 제거하는 게 맞지.”

모르이즈 공작은 인명 구조보다 악마의 퇴치가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카일을 도우려고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섣불리 참전할 엄두를 못 냈다.

악마가 강한 건 둘째 치고 권역 전체를 지배할 기세로 뻗은 카일의 전류가 너무 큰 압박이었다.

번개의 신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

“...못 끼어들겠구만.”

아무래도 인명 구조를 우선하는 게 좋을 듯하다.

루비 여신께서도 민생을 보살피는 걸 최우선으로 두시지 않던가.

신성교단의 교인으로서 도탄에 빠진 사람들을 어찌 외면하겠나...

마음을 추스른 모르이즈가 휘파람을 불자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말이며 가축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지능이 극히 낮은 일부 마물도 함께였다.

건물의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주둥이로 물어 꺼내주거나 부상자들을 등에 태워 탈출시키는 등 크게 활약했다.

***

“찍어! 한 장면도 놓치지 마!”

기자들의 클래스는 대개 어쌔신이다.

폭력과 살육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안전하게 대상을 염탐하거나 취재하기 위해선 기척을 숨길 필요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타이탄에 모인 기자들은 기척을 숨길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이기 위해 대놓고 뛰어다녔다.

카일.

제국을 근거지로 둔 초네임드 NPC.

전 황제 쥬앙데르크와 함께 종종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까닭에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

인기로 직결되는 인지도였다.

흰 걸 넘어 창백한 피부와 눈가에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

어딘지 사연 있어 보이는 쓸쓸한 눈빛...

퇴패적인 미모와 초췌한 몰골이 맞물려 여성 플레이어들에게 ‘지켜주고 싶은 남자 1위’에 꼽힌 전력이 있을 정도다.

남성 NPC 인기투표에서 늘 탑10에 드는 인기이니 말 다했다.

그 유명인이 타이탄을 지옥도로 만든 악마 검객과 생사결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남은 제국의 기둥은 얼마나 강할까.

이 또한 세간의 큰 관심사였기 때문에 기자들은 불굴의 취재정신을 발휘했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현장에 흩어져 실시간 생중계를 진행했다.

“시청자 여러분, 보십시오! 제국 최후의 기둥 카일이 타이탄을 처참하게 짓밟은 악마와 대결을... 아...”

기자들이 말을 잇지 못했다.

상황을 중계할 멘트가 떠오르질 않아서였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다만 푸른 전광으로 물들어있을 뿐이었다.

수만 가닥의 전류가 명멸할 때마다 파괴된 도시의 풍경이 창백하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카일과 제파르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둘의 움직임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와 미친... 뇌신이라더니 속도만 놓고 보면 그리드보다 빠른 듯? 인정?”

개인 방송 스트리머들이 보다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시청자들과 소통했다.

인마대전 개시 후 30분.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제국군의 모습에 제국 퇴물설이 대두되는 가운데 카일의 선전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물론 그들의 눈에도 카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내리치는 뇌전이 카일의 힘이었으니 악마가 수세에 몰리고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시청자들은 카일을 열렬히 응원했다.

대악마들에게 연속되는 침략을 당했던 시점부터, 사람들은 새로운 강자의 등장을 언제나 축복해왔다.

인류 편에 더 많은 강자가 나타나주길 바라서였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전처럼 안전한 삶을 원했다.

“저도 카일이 이겼으면 좋겠... 으악!”

“어? 건물 흔들... 켁!”

시청자들과 소통하던 스트리머들이 족족 죽어나갔다.

틈틈이 채팅창을 확인하느라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 발생하는 불상사였다.

물론 주변을 잘 살폈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아비규환 속에 기자들의 사망도 속출했다.

채찍처럼 휘어지고 화살처럼 쏘아지는 수만 갈래의 번개와 그 번개를 가르는 검격의 충격 파장은 타이탄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었다.

그나마 주요 거점들엔 결계가 작동하고 있어 치명적인 피해를 면하고 있었지만 결계라는 건 영구히 지속되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재해였다.

카일도 그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

‘전장을 옮기고 싶은데.’

카일이 제국에 어떤 소속감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살인귀라는 뜻은 아니다.

무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던 추종자 시절이었다면 또 모를까,

지금의 그에게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취미 따위 없었다.

전투에 휩쓸려 죽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의 마음이 불편해져갔다.

하여 제파르를 도시 바깥으로 유인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제파르는 전장을 옮길 생각이 추호도 없어보였다.

유인에 말려들지 않았다.

카일이 도망치듯 거리를 벌리면 쫓지 않고 지상을 향해 검기를 날려댔다.

“저 빌어먹을 새끼가...”

이를 가는 카일의 몸 곳곳에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카일은 이유를 눈치 챘다.

제파르의 검기는 종종 시간차를 두고 ‘추가’된다.

한 번 검을 휘두르는 즉시 발출되는 검기를 뒤따르는 검기의 파장이 존재했다.

그리고 초월자의 감각은 검기의 파장을 공격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햇빛과 바람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시간차로 발생하는 검기의 파장이 단순한 기술의 여파로 판정받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됐다. 공격에 뒤따르는 풍압 같은 거 말이다.

까다로운 상대다.

카일의 다크서클이 더욱 짙어지는 그때였다.

“소환, 이야루그트!”

새로운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기자들과 스트리머들의 시선이 그쪽을 향해 집중됐다.

카일은 흠칫 놀라는 제파르의 안색을 놓치지 않았다.

제파르의 의식이 분산되는 찰나를 정확히 노려 왼쪽 팔을 휘둘렀다.

그 짧은 행위가 주술이며 의지였다.

순식간에 빚어진 전류의 창이 제파르의 심장을 관통했다.

“어디서 한 눈을 파냐.”

“큭...”

‘뭔가 있군.’

카일은 제국 무력대의 핵심 멤버였다.

특히 쥬앙데르크 시절에 많은 정보를 열람할 권한을 지녔던 그는 이야루그트의 정체를 당연히 알고 있다.

템빨신 그리드가 한때 사용했던 마검.

그 안에 깃든 존재가 바로 이야루그트라는 악마의 영혼이다.

놈의 이름을 들은 순간 동요한 제파르의 반응을 보건데 둘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

“제파르! 이 XX 후레자식, 잘 만났다!”

“...”

“...”

이야루그트의 출현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전광에 물든 세상에서 피어난 검.

그런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고절한 검기를 품고 등장한 노년의 악마는 자신의 주변으로 전광이 침범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반경 5미터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운 듯했다.

새파란 전류가 명멸할 때마다 창백하게 질리는 세상에서 오직 그만이 다른 색채를 띠고 있었다. 유일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기자들과 시청자들을 전율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존재감이었다.

한데 말투가 너무 경박했다. 고고한 행색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 원인이 곧 뒤따라 등장했다.

“두 유 노우 템빨단?”

극검.

성장형 아이템이되 성능이 낮은(그리드 기준) 이야루그트를 그리드 대신 육성해온 인물.

지난 수 년 동안 이야루그트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주입해온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이야루그트를 훈육하는데 성공했다.

“이봐, 극검. 괜히 뒤져서 나까지 역소환 당하게 만들지 말고 썩 꺼져있어라.”

“전투 허가를 원하는 거지? 원한다면 어서 외쳐라!”

“이, 이 잡것이 이런 상황에...”

“싫어? 그럼 다시 검에 들어...”

“두 유 노우 갓리드으으으!!”

“우오오오!!”

“...”

“...”

허리 굽은 노년의 악마.

일대의 전광을 범접치 못하게 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이가 한 순간에 위엄을 잃었다.

“X발... 씨X...”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린 이야루그트가 치를 떤다.

사실 그는 방금 전 자신이 외친 말.

그러니까 극검이 늘 강요하는 그 말의 뜻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수치심을 느꼈다.

외칠 때마다 미묘해지는 주변의 반응을 보아 뜻이나 의도가 괴상한 개소리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호탕하게 웃은 극검이 이야루그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하하핫! 잘했어! 그 기세로 복수까지 성공하고 돌아오라고!”

‘죽인다! 반드시 죽여 버린다!’

살의로 번들거리는 이야루그트의 새카만 홍채가 상공의 제파르에게 꽂혔다.

대악마와 결탁하여 자신을 검에 봉한 놈.

저놈을 갈기갈기 찍어 죽이는 게 첫 번째 목표요, 언젠가 봉인이 풀렸을 때 극검을 죽이는 게 두 번째 목표다...

‘...아니.’

악마(惡魔).

지옥에서 악마는 하나의 종족을 뜻한다.

강력한 마기를 타고난 지옥의 귀족.

그들이 바로 대악마 후보였다.

하지만 후천적인 악마들도 존재한다.

사악하기에 악마로 진화한 마족들.

그중 하나가 이야루그트다. 그는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리드와 인연을 맺고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데면데면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보와 너무 오래 함께 지내서일까.

‘저놈은 죽여 봤자 어차피 죽지도 않으니 그냥 패주는 정도로 봐주자...’

이야루그트의 심경에 작은 변화가 싹트고 있었다. 마냥 사악하지만은 않게 되어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히든 피스, <검귀들>이 발생합니다.]

[제파르를 향한 원한과 살의가 방아쇠가 되어 ‘이야루그트’의 영혼이 각성합니다.]

[‘이야루그트’가 잠시나마 전성기의 힘을 되찾습니다. 부작용으로 영혼의 격이 영구적으로 훼손됩니다.]

제파르를 향한 감정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이 원한과 살의는 불변의 진리와도 같다.

“큭큭큭... 제파르 이 역겨운 새끼. 내 예언대로 권좌에서도 쫓겨난 듯한데, 뒤졌다고 세 번 복창해라.”

“노인네 말투가 천박해졌네.”

까창!!

대화 도중 갑자기 두 자루의 검이 맞부딪쳤다.

어느새 도약한 이야루그트가 제파르를 간격에 넣은 것이다.

제파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지고의 검.

더할 수 없이 높은 경지에 이른 이야루그트의 검술은, 무아의 경지에 진입해야만 비로소 위력을 발휘하는 제파르의 반쪽짜리 검술과 차원이 달랐기에.

푸화하학!!

제파르의 검을 축으로 삼아 회전하며 솟구친 이야루그트의 검이 피의 비를 내렸다.

세상이 충격에 빠졌다.

딱 봐도 극검 못지않은 그리드 찬양론자.

극검처럼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듯한 노인이 저 강력한 악마 검객을 검술로 압도했으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속보)템빨단은 소환수도 강해...>

<(속보)이야루그트의 실제 주인은 그리드인 것으로 알려져...>

<(속보)그리드의 소환수가 그리드 없는 곳에서 미쳐 날뛰다>

절망적인 소식으로 도배됐던 전 세계 뉴스란에 속보가 쏟아졌다.

희망 찬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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