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397화 (1,387/1,794)

템빨 70권 - 6화

흑기사 엘리고스가 집착하는 건 서열이 아니다.

상징.

그는 지옥의 표상이 되고자 했다.

하여 수천 년의 세월을 20번째 지옥, 개의 아가리에 머물렀다.

신화에 족적을 남긴 켈베로스의 본신과 함께 윤회의 강을 지키며, 죽은 자들의 영혼에 자신의 모습을 새겼다.

두 번 다신 되찾지 못할 삶을 갈구하는 영혼들의 절규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보아라.

들어라.

내가, 지옥이다.

“...음.”

인마대전은 엘리고스 입장에서 하찮기 짝이 없는 축제였다.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선 필사적으로 막아야 할 재앙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데빌 슬레이어 일행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그들이 절망할 모습을 예지했다.

엘리고스는 그 광경을 느긋하게 감상할 계획이었다.

한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됐다.

인간들의 얼굴에 공포와 절망이 각인되지 않았다. 잠시 스쳤다가 덧없이 사라졌다.

엘리고스는 치욕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두렵지 않은가?”

나를 경시한다는 건 즉, 지옥을 업신여기는 것과 같다.

“오만하기가 이를 데 없는 놈들이다.”

새카만 투구 사이로 엘리고스의 붉은 안광이 튀어 올랐다.

벼락처럼 요란하게, 빛살처럼 길게.

피였다.

그의 안광이 분노에 호응하여 번진 게 아니라, 솟구친 피가 안광과 뒤섞여 번진 듯한 착시를 일으킨 것이다.

“...?”

베였다고?

뒤늦게 인지하는 엘리고스의 등 뒤에 페이커가 있었다.

“란스티어.”

엘리고스를 태운 켈베로스의 어깨 높이는 무려 수십 미터다.

엘리고스와 싸우는 상대는 필연적으로 등반에 임해야했다.

지형적으로 엘리고스는 늘 유리하게 싸운다는 의미다.

높은 곳에서 통찰하고 요격하며 상대를 유린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

이런 식의 접근을 허용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림자 술법의 까다로운 점이다.

그림자를 경로로 삼는 이동이 지형의 이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예측이 힘들어 켈베로스가 요격할 틈조차 없었다.

‘바로 뒤에 있는데도 기척이 흐릿하다. 평범한 란스티어도 아니고 전설이군.’

얼마 만에 입은 상처인가.

투구 속 엘리고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찮은 인간들 앞에서 위신을 잃었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다.

딱 거기까지다.

어떤 위기를 느끼진 못했다.

스윽.

엘리고스가 굳이 돌아보지 않고 뒤로 손을 뻗었다. 어깨 위에서 죽 늘어난 손이 송곳처럼 변하여 페이커의 심장을 찔렀다. 일련의 과정이 몹시 빨랐다.

페이커의 사고가 질주했다.

머릿속에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른 여러 갈래의 선택지 중 최선을 변별하고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천재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 자리엔 천재가 여럿이었다.

“...!”

푸화하학!!

엘리고스의 가슴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림자에 묶인 손을 회수하지 못한 채, 페이커가 역으로 찔러온 단검을 다른 손으로 붙잡아 쪼개는 순간 하단에서 솟구쳐 올라온 검극에 베였다.

켈베로스의 배를 뚫고 나타난 참격이었다.

[검성 크라우젤의 강력한 검기가 지옥을 양단하였습니다.]

키야아아아아!!

켈베로스가 3개의 대가리를 뒤틀며 포효했다. 주둥이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불꽃이 일대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엘리고스는 침묵했다. 잠시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성대를 꿰뚫고, 입을 꿰맨 화살 탓이었다.

안 그래도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화살들이 정확히 참격이 발생한 시점에 날아와 꽂혔다. 그래서 기척을 읽지 못했다.

‘파마의 화살...’

엘리고스가 처음으로 경각심을 품었다. 목과 입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며 마구잡이로 흐트러지는 마기를 집중해서 붙잡았다.

‘이놈들, 강하다.’

순순히 인정한다.

그간 얼마나 많은 대악마가 인간에게 토벌당해 왔던가.

경시해선 안 될 진실이다.

물론 위축되진 않았다.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수준에 불과했다.

당대 검성과 란스티어의 이어지는 협공을 마기의 장벽으로 튕겨낸 엘리고스가 지상을 굽어봤다.

불꽃의 파도를 밀어내는 빛의 장막을 보았다. 저주에 빠져 언데드가 되었던 인간들의 육신이 정상으로 회복했음을 확인했다.

‘성녀?’

이건 상당히 놀라운 그림이다.

데빌 슬레이어와 검성, 그리고 란스티어와 궁성이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모자라 성녀까지 있다고?

경각심의 정도가 위험 수치까지 오른다.

얼마 전 놓쳤던 ‘작지 않은 신’을 떠올린 그가 직감했다.

이놈들을 오늘 여기서 몰살시키지 않으면, 머잖아 피하기 힘든 위기로 되돌아올 거란 사실을.

“...영광을 주마.”

불타는 지상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엘리고스가 마기로 빚은 거대한 창이 원정대를 겨눴다.

악과 마를 상징하는 흑(黑)을 이명으로 얻은 존재.

지옥의 최강자 중 하나가 진심어린 살의를 품고 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원정대를 적수로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때였다.

“프로미넌스 웨이브.”

짙은 마기에 침식된 20번대 지옥에선 볼 수 없는, 보지 못해야 할 현상이 발생했다.

지옥과 지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여파가 아닌 마법적인 현상이었다.

태양이 하늘을 붉게 적셨다.

지상의 불길보다 뜨겁고 환했다.

그것의 열기가 마기의 창을 녹이며 엘리고스를 덮쳤다. 그에게 낯선 고통을 선사했다.

초월적인 열기로 모든 현상에 간섭하는 마법.

천재 무무드가 이론으로 완성시켰던 궁극기를 유페미나가 실현시킨 순간이었다.

“으으... 말도 안 돼.”

유페미나가 활약에 어울리지 않게 앓는 소리를 냈다.

단 한 번의 마법을 사용한 여파로 마나 중독 페널티에 걸린 까닭이다.

마나의 순환을 방해하는 21번 지옥의 환경이 문제였다.

“저 3분 동안 마법 못 써요!”

유페미나의 다급한 외침.

“이 마법은 뭐지?”

엘리고스의 의문.

교차하는 음성을 비집고 철컥, 납검하는 소리가 울렸다.

지옥 원정 내내 크라우젤에게 무수한 영감을 선사했던 극검의 발도술이,

키야아아아!!

켈베로스의 목을 베고, 다시 한 번 날뛰게 만들었다.

격렬하게 타오르는 중인 엘리고스의 몸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상황은 도리어 악화됐다.

독무가 번졌다. 땅이 흔들리고 무너지며 원정대의 진영이 붕괴됐다.

켈베로스의 골반까지 뛰어올랐던 크라우젤이 부득이하게 잠시 멈췄다.

그 틈에 엘리고스는 불꽃을 완전히 떨쳐냈다.

극검이 혀를 찼다.

“와, 씨. 괜히 나댔나?”

“알아서 다행이다!”

켈베로스의 목을 베는데 실패하고 도리어 날뛰게 만든 극검에게 핀잔을 준 반트너가 방패를 세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루비의 보호에 전념했다.

난무하는 온갖 종류의 충격파 중 단 하나도 루비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쩌저정!!

엘리고스가 쏜 마기의 창들이 반트너의 방패에 직격했다.

켈베로스의 산성을 띈 독무 탓에 내구력을 잃은 방패에 큰 균열이 생겼다.

그리드가 직접 만들어준 레전드리 방패도 신화급 괴수의 위용 앞에선 멀쩡하기 힘들었다.

“저 괴물 새끼...”

등골이 오싹해진 반트너가 살짝 위축됐다. 엘리고스의 후속타를 걱정했다.

하지만 다행히 잠잠했다.

마침 켈베로스의 등 위에 오르는데 성공한 크라우젤이 엘리고스의 시선을 끌어줬다. 과감하게 얽혀서 공방을 교환했다.

“모두 힘내세요!”

루비는 동료들의 호위가 헛되지 않게끔 노력했다. 파티원들의 버프를 최대한 유지시켰다. 그녀의 그림자로부터 페이커가 나타났다.

“내 팔을 잡아라.”

원정대는 엘리고스를 알고 있었다.

지옥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악마 중 하나라고 유라가 사전에 철저히 주지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이유는, 마주한 상황이 크게 절망적이지 않아서였다.

부활 불가 페널티?

엘리고스에게 ‘직접’ 살해당해야만 발생하는 그것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심지어 지금은 지옥문이 열려있는 상태다. 활로가 있다.

엘리고스가 문을 가로막으며 등장했지만 페이커의 그림자 술법을 상대론 무의미하다.

켈베로스와 엘리고스를 통째로 벤 크라우젤의 우주 검이 지형을 바꿔 도움을 주기도 했다.

스파앗!

페이커가 그림자를 타고 넘을 때마다 그의 몸에 매달린 동료가 한 명씩 추가됐다.

루비, 지슈카, 극검, 유페미나.

지금 당장 지상으로 돌아갔을 때 가장 큰 도움이 될 만한 인물들로 추렸다.

“먼저 가있을게!”

“무사히 돌아오세요!”

“지상은 우리한테 맡기라구요.”

“좌표 갓리드한테 찍은 거 맞지!?”

유라가 원정 기간 동안 얻은 가장 큰 수확 중 하나가 지옥문 스킬의 레벨 상승이다.

이용 가능 인원이 4명으로 확장됐고 좌표의 정확도가 올랐다.

쿨타임은 20분으로 단축됐다. 소환 유지 시간이 무려 3분 30초가 됐으니 실질적인 쿨타임은 16분 30초다.

그때까지.

“버틴다.”

크라우젤과 페이커, 그리고 리더 유라를 필두로 남은 원정대가 엘리고스와 맞서 싸울 계획이다.

물론 무리할 생각은 없다.

남은 인원 전부가 지옥문을 이용할 때까지 버틴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전원 알고 있었다.

그저 몇 번만 더.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많은 인원을 무사히 돌려보내고 싶을 뿐이다.

“이제부터 성녀의 지원이 없다는 걸 명심하세요.”

“오케이.”

유라의 경고를 들으며 일행은 재차 각오를 다졌다.

위험해지는 즉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현재 상황에선 그게 최선이었다.

사망으로 인해 발생할 온갖 페널티는 감수하는 수밖에.

엘리고스에게 죽는 것보단 백배 천배 낫다.

***

찬연하게 빛나던 달이 붉게 달아올랐다. 심장이 박동하듯 꿈틀거리다가 이내 수만 개의 핏발 선 눈을 부릅떴다. 별들이 충격을 받은 것처럼 우그러졌다.

지상이 지옥도가 되었다.

들끓는 마기의 여파로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의 레벨과 전투력이 크게 상승했다.

후공 몬스터가 선공 몬스터로 변했으며 400레벨 이상의 고레벨 몬스터들의 경우 활동 반경이 급격히 확대됐다. 인근의 마을과 도시를 침략하는 상황이 속출했다.

혐오스러운 하늘엔 포탈이 곰보처럼 숭숭 뚫렸다.

수를 헤아리는 게 불가능했다. 차라리 무한대라고 표현함이 옳았다.

포탈은, 어느 권역의 하늘에서든 볼 수 있었으니까.

그 포탈을 통해서 악마와 마물들이 밀려닥쳤다.

“아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고.”

도미니언교와 쥬다르교 소속 플레이어들이 공황에 빠졌다.

삼신교의 주축이 되는 레베카교가 와해된 상황.

덕분에 레베카교 소속 플레이어들은 자유를 찾은 반면 도미니언교와 쥬다르교 소속 플레이어들은 완전히 구속된 상태였다.

소속 집단이 미래를 잃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도 떠나질 못했다. 시스템상 불가능했다.

“그리드가 도미니언교랑 쥬다르교도 조져줬어야 했는데, 하아.”

플레이어들은 온갖 매체를 통해서 교황청 사건을 접했다.

교황 행세를 했던 천사가 다짜고짜 그리드와 템빨국을 도발했던 정황을 알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교인들을 학살하려고 했던 천사의 실체를 목격하고 말았다.

자신을 섬겨온 인간들을 끝끝내 외면 중인 레베카 여신의 의중을 짐작하지 못했다.

삼신교에 의심을 품기에 충분한 계기들이었다.

시스템이 주는 제약을 무시하고 당장 교단을 떠나고 싶은 게 플레이어들의 솔직한 속내였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개인 활동을 하기도 꺼려졌다.

인마대전 관련으로 얻은 퀘스트들이 소속 집단과 함께해야 클리어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쩌겠어.... 떠나지 못하는 이상 순응하는 수밖에.”

삼신교 소속 플레이어들이 불안과 불만을 억누르고 전장에 나섰다.

문제는, 그들의 전장이 도미니언 신전과 쥬다르 신전이 있는 장소로 국한 됐다는 점이다.

“염병, 이 와중에 신전을 지키는 걸 최우선으로 하네. 이 근방엔 포탈이 많이 열린 것도 아닌데 왜 쓸데없이.”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는 거겠지. 안 그래도 민심을 잃은 상태인데 여기서 신전까지 잃었다간 레베카교랑 비슷한 꼴이 날 테니까.”

“아 XX... 몹이 없어... 이래서 사람이 줄을 잘 타야 되는 거구만. 엄청 뒤처지겠네.”

“차라리 잘 된 걸 수도 있어요.”

“잘 되긴 뭐가 잘 됨?”

“지금 다른 지역들은 난리가 났거든요. 사람들 죄다 2번씩 죽고 접속 제한 페널티 먹을 것 같던데. 심지어 벌써 2번 죽고 커뮤니티에서 발광 중인 사람도 많아요. 개중엔 심지어 제국 소속도 있고.”

“엥? 사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한가 보네?”

“포탈 열 개 이상 열린 권역은 몹이 너무 많아서 못 버텨. 거의 타워 디펜스 하는 수준이더라. 마물 중에 가끔 악마라도 섞여 나오면 그대로 황천길이야.”

“우린 지금 당장 잡을 몹이 없어서 적어도 죽을 일은 없잖아요. 인마대전이 뭐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컨텐츠도 아니고, 근근이 사냥하면서 버티는 게 차라리 이득일 듯싶네요.”

“방금 로그아웃해서 바깥 상황 보고 왔는데 완전 지옥임요. 바이올렛 왕국에는 무슨 데스나이트가 나타나서 혼자 성 박살내고 있음... 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도시 삭제되면서 수천 명씩 썰려나감...”

“저 사람은 뭔데 헛소리야??”

“도시 삭제 미친. 큭큭, 허풍 수준도 저쯤 되니까 웃기네.”

“어찌됐든 정말로 심각하다는 거지? 어휴, 대체 어떤 새끼가 인마대전이 이벤트라고 했던 거야 XX...”

“이런 컨텐츠를 기획한 S.A가 미쳤을 뿐이야.”

***

템빨국 왕도 라인하르트.

수십 명의 인부와 갓 핸드가 케를 옹의 주도 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석고를 구워 접합제를 만들고, 벽돌을 쌓고, 기관을 설치하고...

인부들은 최선을 다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력을 다했다. 지친 몸에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곧 거대한 전쟁이 다가올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며, 지금은 이미 전쟁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쉴 타이밍을 완전히 놓치고 혹사당했다.

그리드도 그중 하나였다.

“괜찮겠소?”

잠시 사냥터에 머물다가 이변을 감지하고 돌아온 하스터.

각지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접한 그가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거 피해가 너무 클 거 같은데... 심지어 연합군하고 제국 병력은 대부분 번헨 열도하고 무저갱에 집결해있지 않소?”

그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걱정 안 해도 되요. 번헨 열도나 무저갱이 직접적인 통로가 아닌 ‘열쇠’로 작용할 경우도 상정해 놨었거든요.”

“마물들이 이렇게 무작위로 나타날 걸 예측했단 거요?”

“네.”

라우엘과 발할라의 책사들이 가정했던 경우의 수 중 하나다.

문제는 이게 최악의 경우라는 거지만, 어찌됐든 나름의 대비는 해뒀다.

고위 대악마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한 개 지역을 홀로 감당할 수 있는 거물들이 대륙 각지에 대기 중이다.

브라함과 네펠리나, 그리고 지크프렉터와 지발 듀오가 대표적인 예다.

데미안과 휴렌트도 적당히 자리 잡았다고 연락해왔고...

무엇보다 조금 전 피아로 일행이 복귀했다.

많은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눈 뜨고 당할 지경까진 아니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리드의 다소 어두운 표정을 본 하스터가 침음하는 그때였다.

“갓리드으으으!!”

저 멀리, 반가운 얼굴들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극검과 지슈카, 그리고 유페미나와 루비였다.

반색한 그리드가 그들을 위해 준비해뒀던 물건을 꺼냈다.

“마음껏 날뛰고 와.”

“나만 믿어라!”

“와, 오브 이거 뭐야. 상상 초월이네요?”

“...”

동료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그리드와 힘차게 대답하는 템빨단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스터는 새삼 상기했다.

그리드의 강함은 일신의 무력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대장장이다.

그가 존재하는 이상 템빨단은 끊임없이 강해진다.

지금 당장은 한없이 불리해 보이는 전황이 언젠간 바뀔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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