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396화 (1,386/1,794)

템빨 70권 - 5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전설이 된 자는 쉽게 죽지 않습...]

[불사의 지속시간이 끝났습니다.]

[종족이 언데드로 바뀝니다. 일부 자원이 생명력으로 치환됩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무한 회귀 상태입니다. 즉시 부활하고 모든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 됩니다.]

[무한 회귀의 페널티로 경험치 손실량이 2배 증가합니다.]

[레벨이 하락하였습니다.]

[접속 제한 시간이 경과하고 28시간이 지났습니다.]

[현실 시간 기준입니다.]

[플레이어의 신변이 몹시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동의했던 Satisfy의 운영조항에 의거, 플레이어의 안전과 구출 대비를...]

“허억... 허억... 허억...!”

간헐적으로 떠오르는 잡스러운 알림창을 아그너스는 무시했다. 인지하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이 세계에서 도대체 며칠을 보낸 걸까.

아그너스는 기억하지 못한다. 헤아릴 여력이 없다.

마르바스.

지옥 유수의 권력자라는 이명답게 군단을 무한히 불러 모으는 놈에게 접근하고자 오로지 전진할 뿐이다.

바알에게 일시적으로 받은 퀘스트 전용 스킬, <무한 회귀>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사망하였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접속 제한 시간이 경과하고 30시간이 지났습니다.]

“역대 바알의 계약자 중 최악이군.”

고작 칠주야 만에 마물의 군단을 돌파하고 코앞까지 다가온 녹발의 사내.

여전히 맹수의 것처럼 번들거리는 금안을 무심히 마주한 마르바스가 중절모 위에 한쪽 손을 얹었다. 그러면서 지팡이를 살짝 들어 올렸는데 날카로운 검광이 번쩍이며 아그너스의 몸이 베였다.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검기의 파장이 몹시 요란했다.

아그너스의 로브가 폭풍이라도 맞은 듯이 펄럭였고, 수십의 스켈레톤 호위병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마르바스가 사전에 미리 모자를 붙잡아 둔 이유가 있었다.

“파그마처럼 죽어서 영혼이 저당 잡혔다면 또 모를까, 살아생전부터 바알의 뜻대로 움직이는 계약자는 내 처음 보았네. 역대 계약자 전부 광증을 겪긴 했지만 그대는 그중에서도 특히 심하게 뒤틀린 듯한데.”

‘이놈...’

아그너스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정신과 육체가 마모되는 풍파를 겪으며 일주일을 버티는 동안 그는 마르바스를 충분히 파악했다. 마르바스를 소환사로 단정했다.

그게 아니면 수만, 수십만의 마물을 끊임없이 소환해온 놈의 능력을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까.

한데 검술조차도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검에 실리는 속도와 위력이 하이랭커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하고도 남았다.

아그너스가 아는 한 가장 강력한 인물.

인마대전을 발발시킨 장본인 그리드의 검격이 조금이나마 연상될 정도였다.

“란스티어!!”

보스, 혹은 네임드 NPC에겐 30퍼센트의 위력으로밖에 적용되지 않는 벤타오의 조롱으로 위기를 넘긴 아그너스가 다급히 외쳤다.

반응이 즉시 왔다.

마물 군단의 그림자를 타고 넘으며 학살을 자행해온 데스나이트 란스티어.

아그너스가 백 단위의 죽음을 겪는 동안 놈의 레벨은 도리어 수십 개 오른 상태였다.

신속을 발휘하여 아그너스와 바르바스의 사이에 순식간에 나타났다.

꽈창!

“흠...!”

짧게 찔러오는 단도를 쳐내고 반격하려던 마르바스가 헛숨을 들이키며 검을 세웠다.

쩌저저정!!

네 번의 충격이 검을 울리며 손끝에 전달된다. 란스티어의 힘과 기술이 전성기의 실력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마르바스의 다소 커진 눈동자에 광망이 비추었다.

전장 한복판에서 마물들을 학살 중인 리치가 저격 마법을 쏜 것이다. 위력이 처음 본 날과 비교해서 몇 배는 강력했다.

콰아아아앙!!

‘...바알의 의도가 이거였나.’

지난 일주일.

바알의 계약자가 급격히 약화된 반면 그의 리치와 데스나이트들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주인의 죽음을 양분 삼은 성장이었다.

마르바스를 지켰던 마물 군단이 이 순간 역으로 마르바스의 숨통을 거머쥐었다.

‘퇴로는 막혔고.’

체파르데아를 비롯한 바알의 권속들이 펼쳐놓은 결계가 등에 닿는 것을 느낀 마르바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결계는 죽음을 선고하는 무대다.

몇 번을 죽어도 무한히 되살아나는 망령들이 도사리는...

‘괘씸한.’

바알의 장난질이 도를 넘었다.

여태까진 적어도 민폐를 끼치는 느낌이 적었던 반면 이제는 대놓고 판을 뒤집어엎으려 하고 있었다.

‘설마 나를 노릴 줄이야. 놈이 정말로 신의 바람을 등질 셈인가? 아들이면서...’

혀를 찬 마르바스가 중절모를 벗었다.

그러자 멋진 노신사의 모습이 사라졌다. 뿔이 비죽비죽 솟은 상처투성이의 머리가 흉물스럽게 드러났다.

뚜둑!

마르바스가 자신의 뿔 중 하나를 손으로 꺾고, 뽑았다. 새카만 피가 줄줄 흐르며 마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개골?

지옥으로 복귀하자마자 힘과 권위를 되찾은 체파르데아.

위풍당당하게 선 채 사태를 여유롭게 관망하던 놈이 인계에 있을 때처럼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집채만큼 커진 덩치와 어울리지 않았다. 제1위 대악마 바알의 심복이라는 자각을 잊고 추태를 보였다.

놀랄 만도 했다.

마르바스가 이토록 강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결계를 강화해야...!

“늦었다.”

마르바스가 다소 허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새카맣게 일렁이는 마기를 검 끝에 모아 머리 위로 치켜세운 채다.

표적은 아그너스가 아닌 결계였다.

그는 결계를 양단할 속셈이었다.

바알이 유희를 위해 만들고 사용해온 우리.

한 자릿수 대악마가 아닌 이상 흠집도 내지 못하게끔 설계된 이 결계는 여태껏 수많은 살육을 저질러온 무대다.

대악마조차 짐승처럼 이곳에 넣어져 바알이 지켜보는 앞에서 처참히 죽은 사례가 많았다.

광기와 악의로 빚어진 그 무대를 부술 힘이, 지금의 마르바스에게는 있었다.

이제 3개밖에 남지 않았던 뿔 하나를 버린 대가로 얻은 힘이다.

‘아까워해선 안 된다. 살아남는 게 우선...’

마르바스의 생각이 멈췄다. 몸이 굳었다. 높이 치켜세운 검을 내려치지 못했다.

“도망치게? 어디 해봐.”

그것은, 두려움이나 공포 따위의 감정이 아니다.

혐오였다.

상리를 벗어날 정도의 끔찍한 무언가를 마주해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을.

본래라면 평생 겪어보지 못해야 할 경험이다.

“나와 보라니까?”

바다의 선와처럼 빙빙 도는 눈동자가 따로따로 움직인다.

위를 보고, 아래를 보고, 옆을 보며.

끈질기게 주변을 살핀다. 마치 재미난 장난감을 찾듯이.

그러면서도 마르바스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

꿀꺽, 마른 침을 삼킨 마르바스가 위로 치켜세웠던 검을 조용히 내렸다. 그리고 아그너스에게 시선을 돌리며 결계 너머에 선 괴물을 가리켰다.

“저것은... 공허다. 자네를 반드시 파멸로 인도할 저주야.”

-놈! 감히 전하께 삿대질을!!

드물게 직접 현장에 행차한 바알과 고래고래 소리치는 체파르데아.

어지러운 소란 속에서 아그너스는 도리어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나는 이미 망가졌는데.”

“지옥의 진실을 알려주지.”

“관심 없어. 나는 단지 강해지고 싶을 뿐이다.”

힘.

그리드처럼 독보적인 힘을 쌓고 모든 걸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시시해지지 않을까.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향한 이 희미한 미련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을까.

그때야 비로소 나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생각하고, 갈망하며.

아그너스는 성난 아귀처럼 마르바스를 물어뜯었다. 도망치기를 포기하고 죽음을 각오한 마르바스에게 살해당하기를 반복했다. 마르바스의 단언대로 그는 실시간으로 파멸해갔다.

[사망하였습니다.]

[레벨이 하락하였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사망하였...]

...

..

[접속 제한 시간이 경과하고 34시간이 지났습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아그너스의 정신이 다시금 희미해져갔다.

아그너스는 모래성이 된 심정이었다.

자신이 붕괴하고 있음을 자각했다.

하지만 그의 권속들은 강해졌고 점차 더 큰 결속을 맺었다.

언제든지 다시 복구할 수 있는 레벨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힘이 강화되어가는 것이다.

그래, 레벨은 언제라도 복구할 수 있다.

인마대전이 최고의 사냥터가 되어줄 테니.

전설 등급으로 성장한 직업 효과와 여러 칭호 효과로 인해 레벨이 오를 때 얻는 스탯 포인트도 대폭 상승했으니 오히려 좋은 일이다...

피로와 고통에 일그러졌던 아그너스의 얼굴에 차츰 미소가 번졌다.

“바아알!!”

마르바스의 얼굴에선 여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등 뒤에 도사리고 있는 바알의 시선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아그너스가 아닌 리치와 데스나이트들을 격파하여 자신의 죽음을 유예했다.

어디까지나 유예였다.

마르바스의 검이 더 이상 아그너스를 향하지 않게 된 시점부터 아그너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길 반복했다. 전투를 가속시켰다.

죽음으로 모든 스킬의 쿨타임을 초기화시키고 리치와 데스나이트를 다시 소환했다. 무한히 밀어닥치는 마물 군단을 사냥시켜 먹이로 제공했다.

끝내 마르바스까지 먹어치우게끔.

***

현재 제국의 병력이 부족한 이유는 비단 마인들 때문만이 아니었다.

무저갱.

세상의 끝이며 경계.

황도 타이탄에 존재하는 그곳이 전쟁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제국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상당수의 병력을 무저갱에 집결시킨 채 마족들의 침공에 대비했다.

연합국의 지원은 적었다.

연합군 병력의 상당수가 또 다른 시작점으로 예측되는 번헨 열도를 경계하고 있었으니까.

병력을 분산시켰다는 선택 자체가 오만이었을지 모른다.

“누구...!”

거대한 무저갱의 입구를 둘러싼 채 주시하고 있던 경계병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그간 받아온 훈련의 성과를 증명하듯 신호탄을 쏘아 올릴 준비를 즉시 마치며 목청껏 소리쳤다.

반응 속도와 판단, 행동이 정예답게 신속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들의 음성은 외침으로 변모하지 못했다.

수십 개의 신호탄이 쏘아지기 직전에 맥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만월을 그린 검광이 그들의 목을 벤 까닭이다.

지독한 침묵이 일대를 지배했다.

하지만 경계병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도처에 선 망루가 반응했다.

높은 곳에서 동료들의 죽음을 목도한 병사들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나팔을 불기 시작한 것이다.

“의외로 재미있겠군.”

인간들의 움직임이 일사분란하다.

전반적인 수준이 제법 높아 보인다.

기분 좋게 웃은 제파르가 검으로 재차 호선을 그렸다.

세계의 경계를 베어 없앤 궁극의 검술이다. 여태껏 없던 묘리가 담겨있었다.

길게 뻗어나간 검광이 수십 채의 망루를 우수수 무너뜨렸다.

급히 진영을 갖추고 있던 선두의 기마병 중 일부가 베여서 잿빛으로 산화하기도 했다.

“XX... 저게 뭐냐...?”

병사들 틈에 섞여 경계 퀘스트를 진행 중이던 제국 소속 플레이어들이 넋을 잃었다.

뭔가 일이 크게 잘못 됐음을 느꼈다.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들 정도로 새카만 무저갱의 입구에선 요란한 기파가 발생하고 있었다.

경계를 잃은 세상이 뒤섞이려 하는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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