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69권 - 20화
‘오래간만에 사냥이라도 다녀올까.’
하스터에겐 지난 며칠이 천금보다 귀했다. 현역 시절처럼 소중하게 다가왔다.
하루도 어김없이 성장하지 않았나.
전부 그리드와 갓 핸드 덕분이었다.
8개의 갓 핸드와 싸워서 이길 수준은 아직 못 되었지만, 어디 적당한 사냥터라도 찾아가 성장한 실력을 체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섣불리 성을 떠나진 못했다.
다시 돌아오기가 곤란해서였다.
그는 템빨단이 아니니까.
성에 들어오기 위해선 라우엘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또 무슨 염치로...
‘잠자코 있자.’
고즈넉한 정원에 홀로 앉은 하스터가 별빛의 파편을 담은 분수를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는 그때였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지나가던 기사가 인사를 건네 왔다.
로이먼이라는 이름의 기사였다.
상당히 젊었다. 한데 동작에 절도가 있고 눈빛이 깊었다. 나이답지 않은 연륜이 느껴졌다.
남장을 했다는 특이 사항도 눈에 띄었다. 미모를 가리기 위함일까.
“그렇소...”
갓 핸드에게 얻어맞으면서 빵으로 때웠다.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이야기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하스터에게 로이먼이 빙그레 웃어주었다.
“종종 식당도 이용해보십시오. 왕궁의 음식은 무척 훌륭합니다. 단, 주말의 조식은 피하시고요.”
많은 뜻이 담긴 이야기였다.
눈앞의 기사는.
붉은 견장을 단 선임기사는 하스터를 불청객이 아닌 손님으로 대우해주고 있었다.
상부에서 내려온 지침을 따랐을 터다.
템빨국이 하스터를 손님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였다.
“...알려줘서 고맙소.”
스승을 잃은 후로 하스터는 늘 혼자였다.
한데 어느새 자연히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이 가슴을 따스하게 적시는 게 느껴져서, 하스터는 그만 웃고 말았다.
그런 자신이 어색해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로이먼이 의아하게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
왕궁의 깊은 곳.
그리드의 대장간 근처에서 2개의 기파가 느껴졌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기척이었다.
하나는 그리드 전하의 것이나 다른 하나는 누구의 기척인지 도통 모르겠다. 낯설었다. 몹시 강대했다.
지옥이나 천상의 침략이 떠오를 정도였다.
“이런!”
이를 악 문 로이먼이 곧바로 몸을 날렸다. 대장간을 향해서였다.
성 곳곳에서 튀어나온 수십 명의 기사와 어쌔신이 그녀의 뒤를 쫓았다.
“자, 잠깐! 가면 안 될 텐데...!”
하스터가 말려봤지만 소용없었다. 기사와 어쌔신을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은 템빨단 내에서도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니.
***
“자네에겐 무패왕의 검술도 있지. 무패왕의 검술과 자네의 검술을 구분 짓지 말게. 검무와 순보를 함께 썼듯이 응용해보게.”
조금 전.
그리드는 초연살파극의 동작이 유지되는 동안 순보를 썼다. 한 번의 호흡으로 해낸 일이었다.
먼저 순보를 쓴 뒤에 검무를 연계하거나 검무를 쓴 뒤에 순보를 연계했던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궤가 달랐다.
기존의 응용법이 ‘콤보’의 범주에 있는 반면 새로운 응용법은 기술의 합일에 가까웠으니.
‘검무와 무패왕의 검술을 함께 쓴다?’
스킬 융합 시스템을 의미하는 건 아닐 터다.
스킬과 스킬의 융합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발생하지 않는 히든 피스였다. 스킬 융합이 쉽게 가능했다면 플레이어들의 스킬 보유 개수는 평균 수백 단위였다.
단일 스킬로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그리드의 검무와 무패왕의 검술이 하나로 융합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순보와 검무를 함께 썼음에도 스킬 융합 시스템이 발생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검무를 전개하는 과정에 추가 동작을 넣어서 무패왕의 검술을 자연스럽게 연계하란 뜻일 텐데.’
가능할까?
그나마 순보는 ‘이동 스킬’로 분류된다. 공격 스킬과의 자연스러운 연동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무패왕의 검술은 이름 그대로 검술이다.
검무의 동작이 이어지는 도중에 무패왕의 검술을 쓸 경우 검무의 기존 동작은 캔슬될 수밖에 없다. 그럼 당연히 검무의 발동 자체가 캔슬될 것이다.
‘음...’
그리드가 문득 떠올렸다.
파를 매개로 삼는 융합 검무는 동작과 동작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
파를 쓰면 검을 최대한 크게 횡으로 휘두르게 되는데 이때 검을 회수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간극에 무패왕의 검술을 삽입한다면?’
그리드는 계산해보았다.
바깥쪽 횡으로 솟구친 검을 안쪽 횡으로 끌어당기며 허리에 회전을 싣는다...
즉, 파의 간극과 무패왕의 검술을 쓰는 동작을 일체화시킨다.
‘...가능하다.’
팔과 허리, 그리고 특히 등 근육에 엄청난 부담이 가해지긴 할 거다. 산산이 찢겨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가중이 발생할 터였다.
하지만 괜찮다.
일정량의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신화 클래스의 특성으로 감당 가능한 영역이다. 아마도.
“감이 좀 잡히는가?”
그리드가 생각하는 동안 비반은 잠자코 기다려줬다.
작은 고양이를 학대하듯 노에 등에 올라타 있는 랜디와 고고한 표정을 짓고 있는 뱀파이어들을 가만히 지켜만 봤다.
‘내가 생각에 잠긴 틈에 기습했으면 애들 몇 명은 해칠 수 있었을 텐데.’
단순한 호의일 수도 있지만 고지식한 성격에 발목이 붙잡힌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드는 웃고 말았다.
아마 비반은 평생 바뀌지 않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상대하기 피곤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비반이었다.
매번 사고를 쳐도 탑에서 쫓겨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아이템 합체의 지속 시간이 조금 전에 끝났다.
그리드는 신격을 써서 쿨타임을 초기화시켰다. 하지만 즉시 다시 사용하진 않았다.
한 가지 질문이 먼저였다.
“실례지만 혹시 몸이 잘려도 재생되십니까?”
“뭬야? 내 팔이라도 자르겠다는 속셈인가?”
“팔이 아닐 수도 있지만요.”
“허허, 요즘 아이들의 몇 안 되는 장점이 솔직한 거라고 하더니 말본새가 아주 고약하구만. 이쯤 되면 장점이 아니라 단순히 버르장머리가 없는 게 아닌가 싶네. 하늘처럼 섬겨도 모자랄 어르신의 팔을 자르겠다고 협박을 하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내가 젊었던 시절엔 도무지 상상조차 못했을 언행일세. 혹시 요즘 아카데미에선 도덕 과목이 사라진 겐가?”
“죄송합니다. 그래서 재생이 된다는 겁니까, 안 된다는 겁니까?”
“에잉, 쯧쯧... 자네는 내가 괴물인 줄 아나? 사람이 몸이 잘리면 그걸로 끝이지 무슨 도마뱀 꼬리처럼 다시 자라나겠는가.”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대답이었다.
탑의 결사들은 몸이 산산조각 나도 다시 회복하는 악마와 천사들, 그리고 양반 미르와 달랐다.
단기결전에선 비반이 고위 천사와 악마들보다 우위에 있을지 몰라도 싸움이 장기전이 될수록 패배할 확률이 급격히 올라갈 터였다.
‘잘리면 그걸로 끝인 몸... 그런 몸으로도 드래곤과 싸워왔다는 건가...’
물론 초월자의 몸은 쉽게 훼손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가 드래곤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터.
결사들에게 새삼 더 큰 존경심을 품게 된 그리드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비반의 검술은 무척 패도적이다.
검과 검의 충돌 때마다 그리드도 흠칫흠칫 놀랄 정도였다.
실제로 대부분의 치명상을 피했는데도 생명력이 15만이나 소모된 상태다. 대략 100만밖에 안 남았다.
3분의 2밖에 남지 않은 비반의 생명력과 비교하면 사정이 훨씬 낫긴 했지만, 그리드는 강수를 두고 싶었다.
‘전설에다가 초월의 격까지 쌓아서 그런지 치명타도 안 터지고. 딜 교환이 꺼려지는 상대다.’
맞아주고 때리는, 그리드의 기본 전술은 자신과 비슷한 스팩의 대상에겐 썩 효과적이지 않다.
그리드는 낙월검을 활용하고 싶었다. 비반을 단숨에 베어버리고 승기를 잡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지금 상태로는 불안해서였다.
가장 큰 문제는 화신의 폭풍이 약화됐다는 점이다.
[소용돌이치는 어검술이 화신의 폭풍을 베어내는 중입니다. 거룩한 불꽃의 영역과 위력이 대폭 감소하여 효과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의지의 불꽃이 소멸하였습니다.]
[태산보다 거대한 거검이 화신의 폭풍을 반으로 갈라놓았습니다. 주작의 9번째 심장과 주작의 교신이 끊겼습니다. 당신의 의지와 심상이 흐릿해집니다.]
화신의 폭풍이 그나마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건 하야테에게 선물 받았던 ‘무한의 검기’ 덕분이었다.
태산 같은 거검이 우뚝 선 세계에 수만 개의 어검이 떠도는 풍경으로 묘사되는 비반의 심상은 그리드의 불꽃을 대부분 가르고 조각내며 집어삼켰지만 불꽃 끝에 존재하는 무한의 검기만큼은 훼손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침습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검성의 심상은 강력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
검성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중 하나가 심검합일(心劍合一)이다.
검이 없어도 검술을 펼친다. 평범한 나뭇가지로 명검을 대체할 수 있다. 마음속에 검을 품었으니 그 몸 자체가 이미 명검보도를 넘어선 신검이다...
기(氣)와 마음(心)으로 검을 움직이는 어검술과 의지만으로 세상을 절단하는 심검이 문헌 속 뮐러의 상징이었다.
검성이 추구하는 검술엔 심상이 밀접한 관련을 이루고 있단 뜻이다. 검성의 심상은 특별하게 단련될 수밖에 없다.
아직 심기체의 조화조차 완전히 이루지 못한 그리드의 심상이 비반을 상대로 역부족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몸이 잘려도 너무 당황하지 마십시오. 어떻게든 다시 붙여드리겠습니다.”
속전속결이 답이다.
비반의 심상이 급기야 무한의 검기마저 집어삼키는 순간 급격히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 전에 끝낸다.’
각오를 다진 그리드가 라우엘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잠시 로그아웃해서 세희를 호출해달라고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근데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기사들이 전부 그쪽으로...
라우엘이 뭐라고 떠들었지만 그리드는 대답까지만 듣고 말았다.
얼굴을 대춧빛으로 물들인 비반이 당장 출수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신경을 분산시킬 여력이 없었다.
“도무지 좌시할 수가 없군. 내 오늘 자네에게 검술뿐만 아니라 예의범절까지 가르쳐주겠네! 자네가 제명에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베푸는 호의이니 감사히 받아들이게!”
“원덕구.”
그리드는 문답무용의 자세로 임했다. 가르침은 이미 충분히 받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쓸모없다는 판단이었다.
“혜안.”
[당신의 기사 ‘메르세데스’가 혜안의 사용을 허가합니다.]
혜안의 이식이 완료됨과 동시에 전투가 재개됐다.
각자 무기를 거머쥔 30개의 갓 핸드가 일제히 비반에게 쇄도했다.
하지만 그중 ‘검’을 쥔 갓 핸드들은 도중에 멈춰서고 말았다. 검성의 의지에 지배당해서였다.
쿠콰콰콰쾅!!
멈춘 갓 핸드들이 일제히 매직 미사일을 폭격했다. 비처럼 분사되는 섬광이 비반에게 쏟아졌다.
검막을 펼치고 솟아오른 비반이 그리드의 모습을 복제하고 있는 랜디를 공격했다.
노에가 전격의 방벽을 세웠지만 검성의 검은 베지 못하는 게 없다.
서걱!
전격의 방벽과 랜디의 검무를 단칼에 벤 비반의 검이 그대로 랜디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닿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리드가 어느새 나타나 비반의 공격을 회로 받아친 것이다.
신조차 두려워하는 혜안의 힘 앞에서는 수백 년을 연마한 검성의 기술도 대부분 읽혔다.
혜안이 유지되는 한 그리드는 시스템의 비호를 받았다. 최선의 선택지와 사태의 공략법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리드의 이어지는 연격을 흘려내며 한 발 물러서는 비반의 후위로 묠니르를 쥔 갓 핸드들이 덮쳐왔다.
쩌저저저저정!!
어검술이 묠니르를 모조리 쳐냈다.
그리드는 인정했다.
‘초월자에겐 갓 핸드가 통하지 않는다.’
굳이 검성일 필요도 없다.
강력한 무형지기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수준만 되도 갓 핸드를 공략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게 혜안의 해석이었다.
괜찮다.
‘아이템 변신, 레이더스.’
번쩍-!
갓 핸드가 일제히 거대화 되었다.
이내 형상을 갖춘 그것의 모습을 확인한 비반이 동요를 금치 못했다.
‘마장기라고?’
꽈창!!
그리드를 떨쳐낸 비반이 멀찍이 물러섰다. 그리드를 호위하듯 선 묵색의 거인들을 떨리는 눈동자에 담았다.
어느 날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건 비반의 생애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였다.
함께 세계를 지키자며 손을 내밀었던 하야테.
드래곤의 피를 뒤집어쓴 그의 등 뒤로 마장기들이 도열해 있었다.
지금의 그리드와 닮았었다.
그렇다.
비반은 그리드와 하야테를 겹쳐보았다.
그리드로부터 절대자의 풍모를 희미하게나마 엿보았단 뜻이다. 폭발적인 전율에 휩싸였다.
“허허...”
노기충천했던 비반이 다시금 차분해진다. 잠시 늘어뜨렸던 검을 머리 위로 치켜세우면서였다.
츠칵!
종으로 떨어지는 검이 섬전과 같다.
비반에게 은밀하게 접근해왔던 엘핀스톤의 어깨가 깊이 베였다.
“극한의 수혈.”
단 일격을 허용한 대가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엘핀스톤이 즉시 궁극기를 발동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장장 24시간이지만 그만큼 탁월한 위력을 발휘하는 단일 흡혈 스킬이었다.
비반은 그것을 단지 베었다.
스카아악!
“뭣...!”
마법진에서부터 솟구친 혈류의 기둥이 물리적인 힘에 베여서 소멸하는 광경은 엘핀스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예측한 사태였다. 갈라지고 비산하는 혈류의 기둥 속에서 튀어나온 그가 피로 빚은 검을 비반에게 힘껏 꽂았다.
혈검 분쇄의 전조였다.
극한의 수혈에 가려진 상태로 제대로 빈틈을 찔러온 그리드의 기습에 비반은 완벽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막거나 베어선 안 되는 기술이라는 걸 뻔히 읽고도 부득이하게 왼 손에 꺼내 쥔 소검으로 막아냈다.
콰아앙!!
혈검이 폭발하며 소검을 산산조각냈다. 비반의 몸에서 선혈이 솟구쳤다.
다만 그리드도 대가를 치렀다. 그새 허리를 베였다.
‘능력치가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심상의 힘이다.
심상을 펼친 비반의 전투력은 종전과 비교해도 압도적이었다.
꽈아아아앙!!
공터 중앙에 우뚝 솟아있던 태산 같은 거검.
비반의 심상에서도 특히 중요한 상징으로 추정되는 그것이 한쪽으로 기울어 쓰러지며 지진을 일으켰다.
그림자가 흩어지는 게 보였다.
직계 뱀파이어 중 몇 안 되는 여성인 라티나가 혈마법으로 비반의 발을 묶었다가 도리어 당한 것이다.
다만 허무한 퇴장은 아니었다. 그녀의 마법은 비반의 발을 묶는데 성공했다.
“우오오오!!”
어검술의 해일을 돌파하고 득달같이 달려온 티라멧이 잠시 멈춘 비반의 허리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하늘을 질주하는 마장기 군단과 함께였다.
그들 전부가.
스파앗─!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베여 반으로 갈라졌다.
티라멧과 직계들이 그림자로 흩어졌고 마장기들은 지상으로 추락했다.
그들과 다른 궤도에 있던 노에와 랜디, 심지어 그리드도 상처를 피하지 못했다.
수중무검 심중유검(手中無劍 心中有劍).
검성의 궁극기가 모든 적을 절단한 것이다. ‘시야에 담은 대상’도 아니고 ‘인식하는 대상’을 모조리 범위에 넣는 대단위 궁극기였다.
‘대단하다.’
탐욕의 내구력은 무한이다. 보통의 방법으론 손상되지 않고 경직당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베여서 반으로 갈라졌다.
압도적인 격이나 기술을 갖춘 상대에겐 베일 수도 있다는 최악의 가정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물론 수복 기능이 내장되어 있지만 수복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보이지 않는 예기를 감지한 순간 백호자세를 취해 피해를 최소화시킨 그리드.
심검에 베인 충격을 간신히 견뎌낸 그는 이미 연살파극을 전개했다.
무려 30대의 마장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심검을 대규모로 전개한 비반은 빈틈을 드러낸 상태였고 혜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꽈드득!
그리드의 전신 근육이 뒤틀리고 뼈마디가 비명을 질렀다.
파의 연계 직후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회수 동작을 십만대군 학살검으로 연계한 여파다.
낙월검과 염룡검을 합친 채였다.
미카엘의 힘으로 강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지평선까지 이어질 검광에 반사되는 비반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마장기 군단의 출현을 목도했을 때보다 조금 더 격한 반응이었다.
사방을 떠돌던 어검술과 중앙에 꽂혀있던 거검이 불시에 그의 눈앞으로 나타나 장벽을 이룬다.
비반의 심상이 ‘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의념을 품었다는 증거다.
마치 드래곤의 브레스를 정면에서 마주했을 때와 같았다.
그 의념마저도,
꽈창─!
베인다.
그리드의 궁극은 가장 위대한 검사의 의념을 웃돌고 있었다.
압도적인 폭력이었다.
천상에 올라 신과 싸울 자.
가장 위대한 검사로는 그리드를 감당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