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는 8장이 되었다. 4쌍의 날개를 활짝 펼치자 경외심마저 들었다.
“...음?”
사리엘을 마기로부터 해방시킬 단초를 얻었다.
예상보다 큰 성과에 몹시 기뻐하던 그리드가 문득 의문을 느끼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사리엘의 날개 끝에 옅은 주황색이 그라데이션으로 물든 까닭이다.
천사들의 날개는 마냥 순백이 아니었던가?
“후훗, 사자는 신의 영향을 받는 법이니까요. 저는 신님의 천사이니 신님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거겠죠.”
사리엘은 자신의 변화가 즐거운 눈치였다. 밝게 웃는 모습이 예뻤다.
마주 웃어준 그리드가 그녀에게 천사의 고리와 깃털을 건넸다.
그것은 일종의 강화석으로, 고리와 깃털을 강화할 때 쓰는 재료였다.
“이제 이걸 써서 강화해보자.”
“네.”
사리엘의 잣대는 주인에게도 적용된다. 신들의 죄를 밝히고 지적했던 것이 증거다.
하지만 주인이 도리에 어긋나는 죄를 범하지 않는 이상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마치 메르세데스처럼, 그리드의 명령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망설임 없이 시행했다.
곧바로 고리의 강화를 시도했다는 뜻인데, 실패했다.
“...?”
“어머, 쉽지 않네요.”
“...”
파스스,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천사의 고리.
천진하게 웃는 사리엘의 모습을 그리드는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니, 천사잖아.
천사는 뭔가 행운의 상징 같은 인상인데 처음부터 말아먹을 줄이야.
“날개 강화는 내가 해보마...”
사리엘은 단 한 번 실패했을 뿐이다. 벌써부터 똥손 취급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사리엘의 천진함이 마음에 안 들었다. 고리를 날려먹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깃털을 날려먹고도 웃을 것 같았다.
그건... 생각만 해도 우울해지는 일이었다. 그리드는 슬퍼지고 싶지 않았다. 공감을 바랄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서 책임을 짊어지는 편이 나았다. 그게 덜 울적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정의의 날개>의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
[당신의 사자 ‘사리엘’의 날개가 <정의로운 학살의 날개>로 진화합니다!]
사리엘의 고리와 날개의 이름은 정의였구나.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그리드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리엘의 올곧은 본질을 새삼 엿본 느낌이라 뿌듯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죄책감을 느꼈다.
정의라는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학살의 수식언을 더해주었으니...
어찌됐든.
[당신의 사자 ‘사리엘’의 민첩성이 5퍼센트 증가합니다. 추가로 날개에 귀속된 권능이 강화됩니다.]
그리드의 강화는 성공했다.
템빨신의 기술이 개화하고 신화 클래스로 성장하면서 ‘강화 확률 상승’ 버프도 업그레이드된 게 아닐까 싶었다.
‘이건 정확히 실험해볼 필요가 있겠어.’
어차피 또 한동안 대장간에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
이번 출장은 레베카교의 도발과 선동을 좌시할 수 없어 다녀온 것일 뿐, 인마대전까지 대장일에 집중하는 게 그리드의 본래 계획이었다.
강해졌단 사실보다 그리드와 함께 뭔가를 했단 사실에 기뻐하는 사리엘에게 미카엘의 성검까지 넘겨준 그리드가 성으로 떠났다.
***
선택엔 희생이 따른다.
그리드가 레베카교 정벌을 선택하자 그를 예의 주시하던 다른 세력들은 과감한 행동에 나섰다.
“전이 마법 차단 술진을 가동해라.”
다크엘프 군단은 여전히 세계수의 숲 초입에 대기하고 있었다.
경비 병력이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제국이 급파했을 원군을 기다리는 것이다.
다크엘프의 성격은 무척 신중해서, 혹시 모를 변수를 완전히 제거한 후에야 숲으로 진입하고 깔끔하게 점령할 계획이었다.
번쩍!
숲 곳곳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빛을 뿜었다가 소멸한다.
마법을 이용한 출입이 금지되는 순간이었다.
두두두두두두...
다크엘프들의 예민한 감각에 희미한 진동이 감지됐다.
천리안을 발동시킨 엘프들의 왕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제국의 군대를 시야에 담았다.
심상치 않은 결계를 느낀 건지 보폭을 늦추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사정권 내다.
검게 물든 정령의 힘을 빌린 다크엘프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다.
“숲의 질서를 바로 잡을 때다.”
훼방꾼들을 척결한 후, 감히 우리를 추방한 여자들을 단죄하리라.
다크엘프들의 붉은 눈에 살기가 번졌다. 그들의 피부처럼 검게 물든 정령들이 춤추듯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