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384화 (1,374/1,794)

템빨 69권 - 15화

그리드의 예상은 빗나갔다.

새로운 종교의 이름은 루비신교가 아닌 신성교단으로 정해졌다.

시스템이 성녀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었다.

‘예상보다 더 별로군.’

월드 메시지를 본 그리드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숭배의 대상이 명확하게 표기되지 않은 점이 불만이었다.

삼신교와 야탄교는 섬기는 신의 이름을 따왔고, 템빨신교는 그리드의 이명에 어원을 두지 않았나.

어째서 신성교단만 상징성이 적은 건지... 이래서야 루비의 이름값만 소외되는 느낌이라 오빠 입장에서 안타까웠다.

‘차라리 루비신교였어야...’

그리드는 아쉬움에 혀를 찼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지금 막 새로운 종교가 탄생했습니다! 그리드의 친동생으로 잘 알려진 성녀 루비를 신으로 섬기는...』

『템빨신교와 신성교단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레베카 교단을 흡수하며 세력 구도가 급변...』

-와, 신성교단은 좀 있어 보이네.

-템빨신교랑 비교하니까 선녀가 따로 없다.

-...남매가 신이야? 응? 남매가 신이야?

-응! 남매가 신이야!

-신남매ㄷㄷ 심지어 성도 신씨임ㄷㄷㄷ

-와 성도 신씨;; 신가로 시집가신 그리드 어머님의 선견지명은 대체;;

-아니 한국인들은 한국 커뮤니티로 가라고

-방송 그만 보고 빨리 다시 접속해야겠다. 나도 업적 세워서 내 종교 만들 거임.

-나도ㅋㅋㅋ 내가 신 되면 무지개색 오로라 생길 예정.

-전 퍼스널 컬러가 흰색이라 흰색일 듯...

-단체로 뭐 잘못 먹었나ㅋㅋㅋ 일단 전설부터 찍고 말해요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드가 독보적인 활약을 펼칠 때면 밸런스 망겜을 외치던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시기는 이미 진즉에 지났다.

플레이어가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그리드를 통해서 희망을 엿봤다.

Satisfy가 현실과 다른 이상향이란 사실을 체험하면서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장을 확실하게 경험했다. 노력한 만큼 보답 받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학습했다. 타인을 질시할 시간조차 아깝다 느끼며 본인의 성장에 집중할 뿐이다.

-다들 열렙!

-득템요

그리드의 모습에서 미래의 자신을 엿본 사람들이 인마대전을 앞두고 품었던 불안감을 의욕으로 승화시킨다.

야탄교 진영과 삼신교 진영에 속한 플레이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말이다.

***

그리드는 복잡한 일이 질색이었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라우엘에게 뒷수습을 맡겼다.

호위 기사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라우엘은 교황청의 잔당부터 정리했다. 아직 미련을 접지 못한 교인들에게 개종을 권고한 뒤, 거부하는 자들을 국외로 추방시켰다. 단, 잔당들의 구심점이 될 인망이나 실력을 갖춘 고위 사제들은 모조리 구금했다.

교황청 부지와 재산은 당연히 몰수했다. 인마대전이 끝난 이후 건축가들을 모아 신성교단의 본부로 개조할 계획이었다.

템빨국 외부의 레베카 신전들도 표적으로 삼았다.

라우엘은 신전이 있는 지역마다 병력을 급파해서 신전을 무력 점거했다. 거리가 멀 경우 연합국의 협조를 받거나 정치적으로 고립시켰다.

예전부터 피도 눈물도 없기로 유명한 인물이 바로 라우엘이다. 그리드 앞에서나 싱글벙글 웃지, 수만 명의 포로를 학살한 전력이 있을 정도의 냉혈한이다.

그는 레베카교를 완전히 해산시킬 작정이었고, 일처리에 거침이 없었다. 모든 일이 신속하게 진행됐다.

다행히 레베카교 소속 플레이어들이 협조적이었다. 힐은 더 이상 레베카교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플레이어들은 굳이 레베카교와 의리를 지킬 이유가 없었다. 이참에 템빨단 줄을 탈 수 있게 되자 도리어 기꺼워했다.

[대상이 귓속말을 받지 못하는 장소에 있습니다.]

‘벌써 지옥으로 돌아갔나?’

라인하르트로 귀환한 그리드.

신성교단이 탄생했다는 월드 메시지를 보자마자 루비에게 귓속말을 보냈지만 닿지 않는다.

앞으로 이끌게 될 종교의 이름이 하필 신성교단이 된 점에 대해서 심심찮은 위로를 보낼 생각이었건만...

‘하긴, 세희가 자리를 오래 비우면 원정대가 너무 힘들지.’

원정대는 성녀를 오매불망 기다렸을 것이다.

파티에 힐러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극명하니까.

‘앞으로도 쭉 지옥에서 파티 플레이를 한다고 했었나...’

유라에게 들은 말이다.

유라와 세희를 중심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인마대전이 끝난 뒤에도 지옥에서 활동하기로 약속했단다.

그중엔 지슈카와 크라우젤도 있었다.

그리드는 살짝 불안했다.

‘지슈카는 파마의 화살 덕분에 지옥에서도 화력이 엄청나다지만 크라우젤은 굳이 왜...’

동대륙에서 솔플하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나?

크라우젤이 지옥에서 장기간 활동했다간 언젠가 지옥이 소멸할 수도...

우주 검의 위력을 떠올리며 걱정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템빨신교 본단이다.

“신님께서 어찌 직접 행차를 하셨나요. 부름을 주셨으면 달려갔을 텐데요.”

사리엘은 아스가르드의 시선을 경계해야한다.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라인하르트에서 보냈다. 정확히는 템빨신교 신전에 머물렀다.

방문객들에게 버프를 주는 대신 기도를 받고 신성력을 축적하는 것이다. 그녀를 향한 믿음이 곧 그리드를 향한 신앙이 되었기에, 그녀가 신전에 머물며 사람들의 기도를 받을수록 그리드에게도 이득이었다.

‘화관까지 썼네.’

목걸이며, 귀걸이며, 반지며.

사리엘은 화려한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일견해도 비싸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사심을 품은 방문객들이 선물공세를 퍼붓는 듯했다.

천사의 성별은 ‘중성’으로 구분되지만, 사리엘의 겉모습과 언행은 영락없는 여성. 심지어 메르세데스나 마리로즈와 비견될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니 방문객들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게다가 사리엘은 누구에게나 친절해서 접근성도 좋다.

“이거 부수입으로 짭짤한데...”

그리드가 신전에 입장하자 교인들이 입구를 봉쇄하고 물러났다.

세간에 ‘무구의 신’으로 인식됨에 따라 온갖 무구를 상징물로 둔 거대한 신전에 그리드와 사리엘 단 둘뿐이었다.

덕분에 사리엘의 뒤편에 쌓여있는 보석함과 의류를 부담 없이 챙긴 그리드가 품에서 선물을 꺼냈다.

“자, 받아.”

“이건 미카엘의... 그자가 소멸했군요.”

언젠가의 추억을 떠올리는 걸까.

미카엘의 고리와 깃털을 건네받은 사리엘의 표정에 옅은 회한이 스쳤다. 하지만 커다란 눈동자엔 흔들림이 없었다.

“신님께서 정말 큰일을 해내셨네요.”

사리엘은 미카엘이 무언가를 파괴하고, 죽임에 있어서 가장 우수한 천사라고 하였다.

아스가르드와 전쟁을 치를 때 2위 대천사 못지않은 난적이 됐을 거라며, 그를 미리 소멸시킬 수 있던 건 행운이나 다름없다고 피력했다.

그리드는 의문을 느꼈다.

“레베카는 그런 중요한 전력을 왜 돕지 않고 방치했을까?”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리드는 미카엘과 싸우는 내내 아스가르드의 개입을 경계했었다.

하지만 개입은커녕 아스가르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미카엘이 소멸하고 레베카교가 붕괴되는 과정을 잠자코 관망했다.

대대로 천사의 복제품이 이끌어온 듯한 교단의 템플러도 감감무소식이었고.

“돕지 않은 게 아니라 돕지 못한 건가?”

“죄송하게도 답변을 못하겠어요. 타천하면서 신들에 관한 기억을 잃은지라 저 또한 그들의 의도를 모르겠네요.”

사리엘이 그리드의 사도로 합류했을 무렵.

라우엘과 브라함은 그녀로부터 아스가르드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사리엘은 아스가르드와 관련 된 기억을 상당량 잃었다. 특히 신들에 대한 기억은 생김새조차 잊었을 정도로 희미해진 상태였다.

브라함은 사리엘이 금제에 걸린 것으로 추측했다.

하긴 금제는 당연했다.

신들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대천사를 추방했겠나.

심지어 사리엘은 신들의 죄를 밝혀내고 지적한 천사다.

마음 같아선 추방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죽여 버리고 싶었을 터였다.

‘굳이 죽이지 않은 이유는... 벌을 주는 의미도 있겠지만 예비 육체를 활용하고 싶어서일 거라고 했지.’

사리엘의 희미한 기억에 따르면, 영혼이 소멸하지 않는 이상 대천사의 예비 육체들은 영구적으로 남는다고 한다. 쓰임새가 많을 거라며, 템플러의 단장을 예시로 들었다.

역겨운 이야기였다.

[당신의 사자 ‘사리엘’이 <학살의 고리>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사자 ‘사리엘’이 <학살의 날개의 깃털>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사자 ‘사리엘’의 모든 능력치가 10퍼센트 증가합니다.]

[당신의 사자 ‘사리엘’이 새로운 스킬과 마법을 습득하였습니다.]

[당신의 사자 ‘사리엘’이 마기의 영향을 받아 폭주할 확률이 소폭 줄어듭니다.]

사리엘은 미카엘의 힘을 흡수했다.

빛이 흘러내린 듯한 금발 위로 무려 2개의 광원의 고리가 떠오른 모습이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