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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382화 (1,372/1,794)

무려 6장의 날개를 펼치고 성검을 뿌려 자신의 정체가 천사임을 밝힌 교황 미카엘.

그는, 교인들이 상상해온 천사의 고결한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성스러운 그리드의 모습과 대비된다는 게 특히 큰 문제였다. 선과 악이 반전된 듯했다.

미카엘을 향한 교인들의 응원과 격려가 어느새 멈췄다. 힐 세례 또한 잠잠해졌다.

애초에 미카엘에겐 힐이 필요치 않았지만 말이다.

‘삼신들의 축복을 받고 있을지언정.’

쪼개지고 재생되길 반복하는 뇌수에서 미카엘의 생각이 끊어지고 이어지길 반복한다.

‘축복이 위대할지언정 이만큼 강하다고?’

미카엘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인계에 강림한 여파로 삼위일체를 잃고 상당량의 힘이 봉인되었다곤 하나, 그의 검술이 녹슨 건 아니었다. 한데 밀렸다.

긴 세월 수많은 이교도를 척살했던 집행의 검이 그리드를 벌하지 못했다. 급소를 노려서 찔러도 그리드는 죽지 않았다. 팔을 잘라도 베어지질 않았다. 반면 자신은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할 때마다 뼈가 부러지거나 잘려나갔다.

‘설마 여신께서 이자를 신으로 인정하신 건가?’

천사는 아스가르드의 신들을 벨 수 없다. 사리엘처럼 타천하지 않는 이상 어길 수 없는 법칙이다.

미카엘은 그리드가 아스가르드의 신이 된 것은 아닐까 의심을 품었다.

착각이었다.

그가 그리드를 베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공격력이 부족해서였다.

그리드가 무장하고 있는 방어구들은 하나 같이 개변을 마친 신물들.

심지어 상당수를 탐욕으로 만들었다. 충격을 누적시켜 데미지를 주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베는 건 불가능했다.

삼위일체를 이루거나 천상에 올라 대천사의 전력을 해방시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리드의 성장에 맞추어 신화가 된 탐욕을 베는 것은 최소 동격의 신, 혹은 신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들에게만 허락된 일이었다.

‘...아니, 여신께서 아무런 언질도 없이 그러셨을 리 없다. 이자는 아직 여신께 인정받지 못했다.’

천사의 행동 원리에 감정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오로지 신앙에 따라서 움직인다.

미카엘이 천번만번 당혹하고 혼란을 겪을지라도 그의 검 끝이 무뎌질 일은 없었다. 그리드가 보유 중인 <엔젤 슬레이어> 칭호 탓에 경계심을 품으면서도 거침이 없는 이유다.

콰작!

천의 검무가 끝난 후.

2융합 검무에 또 다시 잘려나간 오른 팔을 회복시킨 미카엘이 즉시 반격했다. 막강한 신성력을 품은 성검이 그리드의 가슴을 때렸다. 하늘에 닿을 듯 솟구친 백색의 광채가 노을을 갈랐다.

꽈자장!!

충격을 견딘 그리드가 손에서 무형검을 놓았다. 미카엘이 파고들며 초근접전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무형검의 강점을 살리기 힘든 거리였다. 1번 갓 핸드가 날아와 무형검을 손에 쥐었고 그리드는 마력사출기를 꺼냈다.

촤르륵!

은사의 입자가 섞인 마력이 뻗어져 미카엘의 손목을 휘감았다. 그대로 당겨서 성검의 궤도를 비튼 그리드가 무릎을 미카엘의 가슴에 꽂았다.

덕분에 성검은 그리드를 비껴갔지만 성검이 흘린 빛의 입자들은 창칼이 되어서 그리드를 폭격했다.

그리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열망의 무아 칼날과 결착된 마력사출기를 역수로 쥔 그가 미카엘의 복부를 꿰뚫었다.

손목이 부러질 만큼 꺾어 성검의 궤도를 수정한 미카엘이 그리드의 목덜미에 검을 꽂았다. 무형검을 쥔 갓 핸드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채챙! 채채채챙!!

공방이 가속했다. 그리드와 미카엘은 생각하지 않았다. 순전히 경험으로 학습된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서로를 압박했다. 그리드는 갓 핸드와 에고 아이템들의 도움을 받았고 미카엘은 신성력을 활용했다. 초당 수십 회의 공방이 교환됐다.

겉으로 보기엔 그리드의 상처만 누적되는 듯했다.

하지만 미카엘의 몸과 날개가 잘려나가는 즉시 재생된다고 해서 무적은 아니었다. 베이고, 재생할 때마다 놈의 생명력 게이지는 줄어들고 있었다.

다만.

‘빛의 활용도가 너무 높다.’

미카엘이 성검이 뿌리는 빛의 파편들.

그것은 창칼처럼 뻗어지고, 채찍처럼 휘고, 폭탄처럼 폭발하며 적을 섬멸하는 동시에 미카엘의 몸에 닿을 때마다 생명력을 조금씩 회복시켰다.

공방일체로 부족해 회복 능력까지.

정말이지 부조리할 정도로 대단한 능력이었다.

아군 한가운데에 이런 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죽지도 않고 대량의 병력을 순식간에 학살할 테니.

‘이놈이 같은 편이었다면 인마대전에서 정말 큰 도움이 됐을 텐데.’

그리드는 3위 대악마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3위 대악마의 대척점인 미카엘을 부득이 바알 혹은 마리로즈와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미카엘을 비교했을 때, 미카엘이 약화된 상태인 점을 감안해도 한 수 아래라는 인상이 컸다.

하지만 그리드는 미카엘을 도무지 쉽게 볼 수가 없었다. 대량 학살과 유지력에 초점을 맞춘 전투 특성 자체가 ‘병기’로 최적화된 느낌이었다. 지옥은 천사 중에서 미카엘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여기서 이놈을 반드시 죽인다.’

그리고 오늘부로 미카엘은 템빨국의 적이기도 했다. 여기서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템빨국의 재앙이 될 것이었다.

언젠가 헥세타이아를 구출하러 아스가르드를 방문했을 때 마주치는 일도 없었으면 했다. 막말로 1~3위 대천사가 삼위일체를 이룬다면... 승산을 엿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하여.

[<화신의 폭풍>을 전개합니다.]

그리드는 미카엘과 얽힌 채 자신의 영역을 세웠다. 그의 주변뿐만 아니라 하늘 전체가 그의 색으로 물들었다.

주작의 9번째 심장과 화공의 무형지기가 템빨신의 신격과 공명하는 것이었다.

불완전했던 화신의 폭풍이 그리드가 신이 되면서 비로소 완성됐다.

[거룩한 불꽃이 당신의 감각이 미치는 범위까지 확대됩니다. 언데드, 혹은 마족인 아군을 제외한 모든 아군의 치유 효과가 30퍼센트 상승하고 모든 적의 치유 효과가 60퍼센트 감소합니다. 치유 감소 효과에 걸린 대상이 회복을 시도 시 <화신의 분노>가 발생, 대상의 현재 생명력의 5퍼센트에 해당하는 고정된 피해를 입히며 회복 효과를 높은 확률로 반전시킵니다. 종족이 언데드, 혹은 마족인 대상이 폭풍의 범위에 있을 경우 매우 큰 피해를 지속적으로 입습니다. 이 효과는 화신의 폭풍을 전개하는 동안 유지됩니다.]

[거룩한 불꽃에 의지의 불꽃을 덧씌웁니다.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적에게 의지 스탯과 근력 스탯에 비례하는 심(心)속성 데미지를 입히고 의지 스탯과 지력 스탯에 비례하는 화(火)속성 데미지를 추가로 입힙니다. 이중 심 속성 데미지는 대상의 방어력과 저항력을 관통하지만 의지 스탯을 보유한 대상에게는 피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피해를 입은 대상은 무조건 화상을 입고 높은 확률로 의지 하락을 겪습니다. 화신의 폭풍을 전개하는 동안 유지됩니다.]

[거룩한 불꽃과 의지의 불꽃은 범람합니다. 필드 활성화 시간과 비례하여 불꽃의 영향 범위가 확장됩니다. 화신의 폭풍을 전개하는 동안 유지됩니다.]

[성장한 주작의 9번째 심장이 동방의 주작과 공명합니다. 주작의 의지를 강림시켜 불의 비를 내릴 수 있습니다. 불의 비의 피해량과 회복량은 주작의 능력치에 영향을 받습니다. 1회 강림시마다 2만의 마나가 소모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10분.]

[성장 끝에 완전해진 주작의 9번째 심장이 주작의 의지를 강화시킵니다. 당신이 원할 경우 주작의 본체가 현현합니다. 단, 소환시킨 주작이 사망할 경우 당신과 주작 양쪽에 강력한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소환 시 10만의 마나가 소모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12시간.]

[꺾이지 않는 당신의 의지가 아군을 감화시킵니다. 폭풍의 영역에 있는 모든 아군이 상태이상에 걸릴 확률이 크게 줄어듭니다. 최대 3분 동안 유지되며, 유지 시간 동안 초당 5천의 마나가 추가로 소모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3시간. 아군이 상태이상에 저항할 때마다 당신과 아군 전부에게 버프 스킬이 부여됩니다. 단, 같은 종류의 버프 스킬과 중첩되지 않습니다. 버프 유지 시간은 버프의 종류에 따라서 다릅니다.]

[템빨신의 심상세계가 잠시 현현합니다. 폭풍의 영역에 존재하는 아이템을 최대 4개까지 특정하여 강제력을 부여합니다. 위력을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강화 수치는 당신이 지금까지 만든 아이템 중 가장 강력한 아이템의 능력치에 영향을 받습니다. 약화 수치는 당신이 여태껏 본 아이템 중 가장 약한 아이템의 능력치에 영향을 받습니다. 강제력은 최대 10초 동안 유지되며, 유지 시간 동안 초당 2만의 마나가 추가로 소모됩니다.]

피시식...

“...으음?”

미카엘의 고개가 기울었다.

성검의 빛이 허망할 정도로 약해진 까닭이었다. 꺼지기 직전의 촛불을 보는 듯했다.

더불어 그리드의 기세가 강해졌다. 고요한 시선으로 자신을 직시해오는 모습에 자칫 위축될 뻔했다.

몹시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 중에도 대천사를 위축시킬 수 있는 존재는 단 둘뿐이기에.

“이건... 정말 놀랍군요. 먼 옛날 칠악성을 벌할 때도 느꼈지만 여신께서 인간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알겠...”

미카엘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흥분해 떨리는 그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시린 달빛이 그의 몸을 적시고 있었다.

“...아.”

양쪽 시야가 어긋난 채 하강한다. 처음에는 서서히, 이내 빠르게.

미카엘은 자신의 반으로 갈라진 몸이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자각했다.

천사의 추락은 타락을 상징한다.

어디까지나 상징에 불과할지라도,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본능적인 혐오감에 휩싸인 미카엘의 반쪽짜리 얼굴들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평정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의 판단과 행동은 변함없이 신속했다.

그는 천사 중의 천사.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촤르르륵!!

신체 절단면마다 신경과 근육이 자라난다. 뼈와 뼈가 서로를 잇는다. 불꽃의 폭풍 속에서도 애써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빛의 파편들이 재생을 촉진하고 마지막 남은 상처까지 회복시킨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푸화하학!!

반동 또한 즉각 발생했다.

“...!?”

미카엘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일그러졌다.

회복은, 창조와 함께 여신의 가장 원초적인 권능이다.

여신이 대천사에게 하사한 힘 중 제법 원본에 가까운 것이기도 했다.

한데 부정당했다고?

“당신, 설, 마...”

미카엘이 최악의 가정을 떠올렸다.

...아스가르드의 인정을 받지 않고도 완전한 신이 된 존재가, 여태껏 치우를 제외하고 있던가?

꿀렁꿀렁!

회복에 실패했지만 미카엘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천사에게 있어서 회복과 재생은 포기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히 행해지는 것이었다. 그의 잘려나간 신체들은 다시 달라붙거나 재생됐고 상처는 회복되어갔다. 화신의 폭풍 탓에 느려지고, 부정당하기도 했지만 꾸역꾸역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점멸하는 정신 속에서 미카엘은 자신의 결말을 예지했다.

‘‘이것’은 죽는다.’

아슬아슬하게 형체를 유지하는 그의 몸을,

콰르르르르릉!!

그리드의 융합 검무가 베었다. 재생하면 다시 베었고, 다시 또 재생하면 또 다시 베었다.

화신의 폭풍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아이템 합체를 쓰고 융합 검무를 중첩시켰다.

반면 꼬챙이만도 못해진 미카엘의 성검은 그리드의 몸에 닿지 못했다.

“어...?”

“저, 저건...”

검을 쥔 묵색 금속의 손 서른 개가 미카엘의 살덩이를 가둬놓고 일제히 풍차처럼 회전했다. 약식의 검무를 연쇄하는 것이다.

살이 분쇄됐다. 재생하는 속도보다 쪼개지고 다져지는 속도가 곱절은 빨랐다. 파괴적인 광경이었다.

경악에 빠진 광장의 교인들과 시청자들이 자문했다.

천사가 약했는가?

아니, 강했다. 몇 차례나 보았던 대악마보다 여러 면에서 월등한 존재였다.

한데 골똘히 곱씹지 않으면 약했노라 기억하게 될 것 같았다.

강함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그를 도륙한 인물과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했기에.

세상이 침묵하는 그때.

‘내 준비가 소홀했다.’

미카엘의 육신이 드디어 한계를 맞이했다. 갈려나간 육신이 더 이상 회복되질 않았다.

하지만 미카엘은 태연했다.

천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옷을 한 벌 버린 셈과 같았다.

‘상대의 수준을 파악했으니 다음엔 만전을 기해야겠군.’

미카엘이 망가진 육신에 신성력을 집약시켰다.

어차피 버릴 육신, 폭발시켜서 그리드의 목숨을 위협할 의도였다.

폭발에 휩쓸린 교인들이 상당수 죽게 되겠지만... 최소한의 위엄을 지키고 죽는 편이 앞날에 좋다는 판단이었다.

꽈아아아아앙!!

폭발은 빠르고 강력했다.

초월적인 기파가 그리드를 덮쳤고 교황청의 건물들을 잿더미로 만들...어야 정상이었다.

‘...?’

폭발하는 육신에서 빠져나가던 미카엘의 영혼이 생각을 멈췄다.

영혼의 시선이 불길한 주황색으로 물든 하늘의 저편, 아스가르드를 향해 고정 된 채 흔들렸다. 그를 마중하는 건 환한 빛이 아닌 새카만 어둠이었다. 고향이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그리드가 교황청으로 출발하기 전 소집했던 성녀 루비.

잠시 지옥을 떠난 그녀가 합류한 것이다.

여신의 신성과는 궤를 달리하는 신성이 장벽을 이루어 그리드와 교인들을 지켰고 미카엘의 영혼을 소멸 중인 육신으로 돌려보냈다.

항거할 수 없는 인력(引力)이 미카엘을 충격에 빠뜨렸다. 당연한 권리처럼 누려온 ‘기회’가 사라졌음을 직감하고 절망했다. 템플러가 끝까지 나서주지 않은 점에 대해서 뒤늦게 의심을 품고 원망했다.

다 부질 없는 일이었다.

쏴아아아...

유독 높이 솟구치는 잿빛의 기둥 주위로 흰 깃털이 나부꼈다.

[제3위 대천사 미카엘이 소멸하였습니다.]

월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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