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380화 (1,370/1,794)

교황이 백색의 날개를 펼쳤다. 6장의 날개가 깃털을 나부꼈다.

깊이 눌러썼던 삼중관이 떨어지며 빛의 링이 머리 위에 떠올랐다.

드러나는 이름은 미카엘.

사리엘에게 듣기로 대천사 중에서도 위계가 높은 천사였다.

신이 최초로 만든 천사였던가.

이명은 기사(騎士), 혹은 집행관.

대천사장 리파엘, 그리고 가브리엘 다음으로 뛰어난 무력을 지녔다.

‘죽이는’ 기량에 있어서는 최고일 수도 있다. 그는 가장 많은 전쟁을 경험한 천사들의 선봉이자 가장 많은 신벌을 집행해온 사신이었으니까.

“누가 신을 칭하나.”

콰앙...! 콰앙...! 콰앙!!

미카엘이 읊조리자 굉음이 연쇄되며 성검의 부피가 커졌다. 수십 갈래로 뻗어진 빛을 연속해서 흡수한 결과였다.

성검의 길이가 5미터가 되었을 무렵엔 현장의 누구도 눈을 뜨지 못했다. 빛이 너무 환해서였다.

덕분에 그리드는 신화 클래스의 숨겨진 특성을 알게 됐다.

교황청 전체로 퍼져나가는 강렬한 빛을 코앞에서 마주보아도 눈이 멀지 않았다. 조금의 불편함도 없었다.

신이란 태양에 닿는 존재.

눈부심을 겪지 않는 게 당연했다.

“신을 향한 당신의 접근법은 굉장히 잘못되었습니다. 무릇 신이란 여신으로부터 태어나거나 아스가르드의 인정을 받은 존재여야 하는 법.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당신을 교정해드리지요. 우선 개종(改宗)합시다.”

콰아아아앙!!

선포한 미카엘이 거대한 성검을 내리찍었다.

파괴력이 심상치 않았기에 그리드는 뒤로 물러나 피했다. 그리고 즉시 실수임을 깨달았다.

빛의 파편들. 사방으로 산란한 그것들이 창처럼 뻗어져 그리드를 덮치거나 구의 형태로 응축되어 폭발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에게 있어서 실수란 끝이 아니다. 그에겐 실수를 만회할 수단이 많았다. 실수를 경험으로 삼아 발전하는 근본을 지니기도 했다.

그리드는 굳이 순보를 쓰지 않았다.

순보의 원리는 ‘보는 곳’으로 몸을 옮기는 것. 실력이 뛰어난 자는 시선을 읽고 순보의 도약 지점을 예측하는 게 가능했다. 미카엘을 상대로 순보를 쓰는 건 도리어 약점으로 작용할 확률이 있었다.

콰쾅! 쿠콰콰쾅!!

그리드는 개변시킨 사신의 방어구들을 위시하여 돌진했다. 육신에 뇌신을 덧씌워 빛의 창을 피하고 백호의 자세로 구체의 폭발 데미지를 최소화시켰다.

그렇게 몇 걸음 허공을 답보하였을 때.

꽈르르르릉!!

미카엘이 다시 한 번 빛의 거검을 내리찍었다.

공간이 베이며 빛의 파편이 재차 산란했다.

일대의 영역이 미카엘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수천, 수만 개. 아니, 무한개의 빛의 파편은 하나하나가 파괴력을 내포한 채 그리드의 행동을 제약하였고 거검의 본체는 그리드의 육신을 찢어발겼다.

미카엘의 푸른 눈동자가 왼편으로 돌아갔다.

빛의 거검에 닿는 순간 잔상만 남기고 사라졌던 그리드가 그가 보는 방향에서 나타났다.

콰앙...! 콰앙...!

빛의 거검은 실시간으로 커지고 있었다.

어느새 길이가 8미터에 도달하여 그리드를 사정권에 넣고 휘둘러졌다.

쿠오오오오!!

빛이 세상을 지웠다. 찬란하게 빛나며 모든 풍경을 집어삼켰다. 그리드의 몸을 둘러싼 주홍빛의 극광도 흔적을 잃었다.

아니.

“천(天).”

잃지 않았다.

고요한 빛의 세계에 작은 점을 새겼다. 점은 곧 선이 되었다. 물결처럼 번졌다.

츠카카카카카칵!!

빛의 거검에 어깨를 짓눌린 그리드가 <주작의 가호가 깃든 백호의 견갑>에 의지한 채 돌진하는 중이었다. 무겁고 날카로운 검날이 견갑을 점차 깊게 파고 들었지만 멈추지 않고 속력을 높였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그리드의 모습을 보면서, 미카엘은 견갑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비명이 아닌 포효라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 챘다.

어흐흐흐흥!!

<울부짖어라!>Lv.1

포효하는 백호의 형상을 소환합니다.

백호의 포효가 닿는 범위에 있는 모든 적이 최소 1초에서 최대 7초 동안 경직되고 모든 아군의 방어력이 10% 상승합니다.

마나 소모:2,000

재사용 대기 시간:12시간

“...!”

그리드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을 노려 양단할 계획이었던 미카엘의 얼굴이 굳었다. 몸이 움직이질 않는 까닭이었다. 검을 더 세게 내리찍고 싶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동쪽의 짐승이 훼방을 놓는가.’

미카엘은 불쾌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얼굴을 풀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마법을 쓰면 될 일이었다.

빛의 거검에 둘러친 신성력에 술식을 더했다. 기적의 행사였다.

거검을 둘러싼 빛은 물론이고 일대를 집어삼킨 모든 빛이 신성력에서 마력으로 치환됐다. 그리고 성검을 매개로 삼아 모조리 연동됐다.

멸망.

천재지변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실제로 신벌을 행사할 때 애용하곤 했던 대단위 마법의 전개였다.

미카엘은 경악할 그리드의 표정을 기대했다. 피를 토하며 추락할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자신의 마법이.

위대한 신의 징벌이 발동과 동시에 파훼되기 직전까지 그는 자신의 고통을 예측하지 못했다.

푸우욱!!

은사가 섞인 마력을 사출해 급속도로 접근해온 그리드에게 거리를 내준 미카엘의 심장에 살(殺)이 박혔다.

전초에 불과했다.

천의 검무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리드는 더 이상 신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신화 클래스로 전직한 시점부터 신을 두려워해선 안 되는 입장이었다.

꽈르릉! 꽈과과과광!!

빛이 사그라진 세상에서 주황색의 잔상이 영역을 확대한다. 그때마다 굉음이 폭발했다. 천의 검무가 연계하는 단일 검무들이 바람을 가르고 미카엘을 난도질하는 소리였다. 천둥이 울리는 듯했다.

진정한 신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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