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69권 - 7화
<템빨신의 자애>는 독이 든 성배다.
기술의 발전은 국가의 성장에 이로운 반면 종교의 힘이 몹시 강성해지는 건 경계해야 옳았으니.
템빨국을 제외한 국가는 템빨신의 자애를 마냥 달갑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외면할 순 없었다.
지식인들은 이참에 그리드라는 ‘신’을 제대로 섬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빛의 여신을 배신하는 행위라며, 무려 수백 년 동안 섬겨온 신앙과 대립하는 순간 사회에도 큰 혼란이 야기될 거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지만 소수의견에 불과했다.
이제는 대장장이뿐만 아니라 모든 기술자가 템빨국에서 살아가길 소망하지 않나.
기술자를 모조리 빼앗기게 생긴 마당에 삼신교의 눈치를 본다는 건 우행밖에 안 됐다.
무엇보다 삼신교의 신들은 적잖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대부분의 현명한 국가는 템빨신을 주신으로 대우하며 섬기겠노라 선언했다.
여기까지가 ‘연합이 아닌’ 중립 국가들의 반응이다.
인마대전에서 템빨국과 함께 싸우기로 맹세한 연합 국가들 즉, 원래부터 템빨국과 우호관계였던 국가들은 내부적인 갈등을 전혀 겪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드의 신전을 즉시 대규모로 증축하고 템빨신교를 국교로 지정하는 등 그리드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줬다.
한데 문제가 있었다.
템빨신의 자애의 적용 대상은 ‘그리드가 직접 다스리는 영토’로 한정된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제아무리 열렬히 템빨신을 섬기고 신전을 세워봤자 템빨국이 아닌 이상에야 템빨신의 자애를 받는 건 불가능했다.
각국은 어쩔 수 없이 노선을 바꿨다. 기술자들의 이민을 법으로 금지하거나 몸값을 올려주는 등의 미봉책을 썼다.
강제적인 법령은 플레이어의 발을 묶는 수단이 되지 못하므로, 별 의미 없는 발악이었다. 하지만 그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간청드리옵니다.”
사하란 제국은 이번 사태를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불사왕 그렌할이 직접 템빨국을 방문해 머리를 조아렸다.
“이대로는 대부분의 기술자가 제국을 떠날 테고 백성들이 불안에 떨 것이옵니다.”
과언이다.
모든 플레이어 기술자가 제국을 떠날지언정 NPC 기술자들은 제국에 남을 것이다. 그들은 법령의 구애를 받으며 제국을 조국으로 섬기는 진정한 백성이기도 했으니.
하지만 기술은 막말로 모든 분야에 필요하다. 기술자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건 국가가 발전할 동력이 약해진다는 뜻이다. 기술자를 잃는 국가는 퇴보하는 수밖에 없다.
“고개를 드세요.”
그리드가 망치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대장간엔 여전히 망치질 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30개의 갓 핸드가 아이템을 제작하는 소리였다.
적해에서 돌아온 그리드가 가장 먼저 한 일이 갓 핸드의 개변과 대량 생산이었다. 탐욕의 수량에 제약이 사라졌으니 노동력부터 확보한 것이다. 보유하고 있던 탐욕 중 상당량을 갓 핸드의 재료로 썼다.
개변시킨 갓 핸드는 ‘주인의 순수 근력과 손재주 스탯을 60퍼센트’만큼 계승하며 ‘주인의 고유 스킬을 40퍼센트 위력(성능)으로 재현’한다. 심지어 ‘장인급 대장장이 기술’을 보유했다.
갓 핸드가 스킬을 쓸 때마다 그리드의 마나가 소모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드의 마나량과 마나회복량이 워낙 높았기에.
[당신의 <갓 핸드(3)>이 새로운 아이템 제작에 성공하였습니다.]
[당신의 <갓 핸드(19)>가 새로운 아이템 제작에 성공하였습니다.]
[당신의 <갓 핸드(6)>이...]
“안 그래도 이틀 내내 재상과 의논했습니다. 템빨국은 기술자들의 유입을 무조건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그렌할 공작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세상을 쥐락펴락할 권력을 지녔다.
하지만 그리드와 연을 맺은 뒤로 템빨국엔 쭉 신뢰와 호의를 보여줬던 인물이다.
템빨아카데미 졸업식과 로드의 성인식 등, 크고 작은 행사에도 매번 참석해 템빨국의 국제적인 입지를 키우는데 일조해줬다.
그리드와 라우엘이 타국의 기술자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고 결정한 요인에 그렌할 공작의 지분이 없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번 방침이 순전히 ‘타국의 입장을 헤아려서’ 결정 된 것은 아니다.
라우엘은 사태를 현실적으로 보았다.
템빨국이 대륙의 모든 기술자를 수용하는 건 물리적으로 어렵다. 물가를 통제하지 못하는 품목이 반드시 생길 테고 집값과 땅값 등은 급격히 올라 경제적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인마대전을 앞둔 마당에 치안 문제가 생기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대규모 인구의 유입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진행하는 편이 좋았다. 급할 이유도 없다. 지금의 템빨국은 대장장이를 한 명이라도 더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던 시절과 달리 여력이 있었으니.
또한 라우엘은 확신했다.
사람들은 먹지 못하는 떡에 더욱 환장하는 법이다.
템빨국이 기술자의 유입을 막으면 막을수록 기술자들은 템빨신의 자애를 더욱 애타게 바라게 될 테고, 각국 왕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을 통제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각국 왕실이 ‘결국 템빨국과 협력하는 방법 외엔 도리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템빨국에 보다 우호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고 선택하게끔 미리 호의를 베풀어놓자는 게 라우엘이 그린 그림이었다.
결론은,
어차피 지금 당장은 기술자의 유입이 필요하지 않고 귀찮기만 할 뿐이니 타국의 호의도 얻을 겸 기술자의 유입을 잠시 막는 방향으로 간다는 거다.
그리드는 당연히 라우엘의 의견을 수용했다.
템빨국을 여기까지 키운 천재 책사를 그리드는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가끔 헛소리를 지껄일 때는 무시하기도 했지만... 그건 흑염룡이니 뭐니 할 때의 이야기다.
“더불어 살아가야지 않겠습니까. 지금쯤이면 제국을 비롯한 대륙의 모든 국가에 공문이 도착했을 겁니다. 우리는 타국의 기술자를 빼앗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 담긴 공문이요.”
“오...! 오오오! 어찌 이리도 훌륭하신...!”
“그리 감동하지 마십시오. 실력이 훌륭한 장인들의 발걸음은 되돌리지 않을 생각이니까요. 대륙의 화목도 화목이지만 본국의 발전을 좌시할 수 없는 게 제 입장이지 않겠습니까.”
“암요...! 이해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훌륭하시고 도량이 하해와 같으십니다!!”
“하하...”
그리드는 그렌할의 눈빛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신격화할 때마다 보여줬던 눈과 꼭 닮아있었다.
‘좀 민망하네.’
라우엘의 뜻대로 행동할 때마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그리드였다.
***
그렌할이 떠난 후.
사하란 제국 내부에서 ‘템빨국을 새로운 제국으로 삼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할 언젠가를 기대하며 다시 작업에 집중하던 그리드가 문득 소란을 눈치 챘다.
길드 채팅창이 빠르게 갱신되고 있었다.
“...하스터가?”
이틀 전 지옥 탐사대에서 낙오 된 하스터가 자신을 다시 지옥으로 보내달라고 생떼를 부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흠.”
하스터는 어떤 사건 이후로 명성이 크게 추락하고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동안 두문불출했던 그가 지옥 탐사에 지원한 모습은 나름 인상적이었다.
라우엘은 그의 근성을 나쁘지 않게 평가했다. 게다가 전대 적기사단원들에게 ‘붉은 현자’가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하스터를 탐사대에 넣어줬다.
하지만 결과는 꽝이었다. 22번 지옥까지 생존한 건 필시 훌륭한 일이었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하스터는 붉은 현자라는 이름에 또 한 번 오명을 남겼다. 그의 스승이자 전대 적기사단의 첫 번째 기사였던 윈프레드가 저승에서 분통을 터뜨려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스터는 e스포츠의 황제로 군림했던 자신의 명성조차 추락시켰다. 자신이 한 번 꺾었던 크라우젤의 이름조차 더럽혔다.
하스터에게 패배했을 당시의 크라우젤은 레벨이 초기화 된 상태였다지만 어찌됐든... 기대보다 못한 모습만 보여주는 하스터에게 가장 크게 실망한 인물은 크라우젤일 터였다.
-그러면서 염치도 없이 뭘 또 다시 지옥에 보내달라는 거야.
일부 템빨단원들이 썩 좋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하스터를 혐오하거나 비난한다기보다 아쉬움을 느끼는 눈치였다.
그들은 하스터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게임 경력이 긴 사람일수록 하스터를 우상시했던 시절이 있는지라 실망감도 큰 것이었다. 어떤 상실감마저 느끼는 눈치였다.
“메르세데스.”
“네.”
메르세데스는 최근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오후까지 쉬지를 않는다고 하는데 밤에는 또 그리드의 곁을 지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다. 도리어 생기가 돌았다.
‘저 두루마린 뭐지?’
언젠가 ‘여분의 목숨’이라고 표현했던 보조무기가 꽂혀있어야 할 벨트에 웬 두꺼운 종이들이 잔뜩...?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저것들 때문에 방패에 대충 묶여 덜렁거리는 무기들이 거슬린다.
하지만 지금 그리드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전대 붉은 현자의 실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였지? 피아로나 아스모펠과 비교해서.”
“윈프레드 경께는 윈프레드 경만의 역할이 있었으므로 두 분과 비교하기가 힘들어요. 어떤 임무에서든 독자적인 활약을 펼쳤다고 들었습니다.”
“현자라고 불렸다는 건 지식에 의거한 활약도 많았다는 뜻일 텐데... 단순히 무력의 수준만 가늠할 순 없나?”
“근접전은 아스모펠 공이나 싱크레드 경보다 못했지만 다루는 무기는 오히려 더 많았고, 스스로 창안한 마법은 대마법사의 허를 찌를 정도였다... 정도로만 알고 있어요. 정확한 답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 그 정도면 충분해.”
전대 적기사단이 활동할 무렵의 메르세데스는 어린 소녀였다. 당시의 그녀가 1번 기사의 실력을 가늠한다는 건 혜안의 힘을 빌려도 어려웠을 것이니 기억도 흐릿하리라.
“가서 하스터라는 사람을 좀 데려와 줄래? 만약 반항해도 죽이지는 마.”
“명을 받듭니다.”
메르세데스에게 있어서 그리드의 명령이란 세상 모든 것보다 우선시해야 할 법칙이었다.
즉시 은익을 펼친 그녀가 내성 성벽을 단숨에 넘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누가 보면 대악마나 무신의 추종자라도 나타난 줄 알고 놀라 기겁할 광경이었다.
10분 후.
그리드와 30개의 갓 핸드가 무려 8개의 아이템을 찍어낸 바로 그때.
“데려왔습니다.”
메르세데스가 복귀했다. 하스터의 목덜미를 붙잡은 채였다.
“...”
죽이지 말라니까 죽기 직전까지만 패놓은 듯하다.
“저항 했나 본데. 왭니까?”
상처투성이가 된 하스터에게 그리드가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대답하는 하스터의 눈빛은 깊고 고요했다. 부정하기 힘든. 아니, 부정해선 안 되는 연륜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저항한 게 아니라 대결을 요청했을 뿐입니다. 그녀의 실력은 대단히 유명하니 귀중한 기회라고 여겨서.”
하스터의 태도는 과거에 만났을 때와 비교해서 한결 부드러웠다. 옛날엔 난폭했다는 뜻이 아니다. 처음 만났을 때도 태도가 나쁘진 않았다. 한참 연하인 그리드에게 꼬박꼬박 존대했을 정도이니.
한때 최고의 플레이어였던 만큼 다른 플레이어들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 같다는 게 그리드가 하스터를 처음 본 날 느꼈던 감상이다.
단지 지금은 눈에서 독기가 빠졌다고 해야 할까... 뭔가 체념한 느낌이 있었다.
‘히든 전직자 사냥에 당한 뒤로 의욕을 잃은 건가? 아니, 의욕을 잃은 사람이 지옥 탐사대에 지원할 리도 없고 복귀하고 싶다고 생떼를 쓸 리도 없다. 뭐야? 이 사람.’
그리드는 모른다.
하스터가 한때나마 자신에게 호승심을 품었었다는 사실을.
휴렌트를 만난 뒤로 즉시 버렸지만.
어찌됐든 그 짧은 과거마저 부끄러워 그리드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초라해지는 하스터였다. 솔직히 말해서 눈을 마주치기도 뻘줌했다.
“그래서 어땠습니까?”
“과연 강하더군요.”
딱히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하스터는 일방적으로 짓밟혔다. 그는 넝마가 된 반면 메르세데스는 작은 생채기조차 없었으니. 심지어 보조 무기들을 여전히 방패에 주렁주렁 매단 채다. 정체불명의 두루마리들도 무사했고.
-이상했어요.
메르세데스가 전음을 보내왔다.
-윈프레드 경의 기술을 쓰면서도 약하더군요.
-설마 재능이 없는 거야?
-그건 아니에요. 일부러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전투 스타일을 바꾸는 과정에 있는 걸까?
-단순히 그렇다고 보기엔 필요 이상으로 부자연스러웠어요. 조금 더 지켜봐야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맞는 옷을 입은 상태였다면 어땠을 것 같아?
-그래도 약했습니다.
...조금 실망인데.
혜안을 지닌 메르세데스의 평가는 매우 정확한 편이다. 그녀가 실수할 때는 그리드의 신변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말고는 없다. 요즘에도 그럴진 모르겠지만.
잠시 하스터를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리드가 이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옥 탐사대에 복귀하고 싶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활약할 테니 부디 기회를 주면 좋겠군요.”
“당신에게 유라의 시간을 할애하게 할 가치가 있다고 보십니까?”
“...”
하스터가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의 그는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줄 알았다.
유라가 굳이 자리를 비우면서까지 자신을 다시 지옥에 데려가야할 이유?
없다.
탐사대에 민폐만 끼치는 꼴이다. 하지만...
“민폐라는 건 알고 있지만 염치없게도 꼭 복귀하고 싶습니다.”
하스터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
비록 전성기가 끝나 피지컬도, 판단력도 한심한 수준이지만 붉은 현자의 힘과 칠악성의 힘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았다. 이 힘을 썩히는 건 죄다.
“내가 밥값만 할 수 있게 되도... 인마대전에서 필시 도움이 될 겁니다.”
“인마대전을 위기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야 당연하지요. 템빨국도 그리 생각하니까 이리 열심히 준비 중인 거 아닙니까? 윈프레드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옥의 존재들은 하나도 어김없이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인마대전에서 활약하고 싶은 이유는 뭡니까?”
“그야 당연히 나의 명예 때문입니다.”
‘차라리 솔직해서 좋군.’
붉은 현자의 잠재력은 전대 적기사단원들이 진즉부터 증명해주었다.
그리드가 하스터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다.
그리드는 그를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순간 하스터의 열망을 확인했다.
하나의 손도 아쉬운 마당에 돕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기껏 도와줬더니 나중에 뒤통수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우문이다.
플레이어의 배신 따위를 걱정해야 할 레벨은 진즉에 지났다.
여전히 플레이어를 두려워 할 짬밥이었다면 헥세타이아를 구출하겠다는 각오조차 다지지 못했을 테지.
기껏 힘들게 강해져놓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그게 무슨 병신 짓일까.
지금 그리드에게 필요한 건 의심이 아닌 신뢰였다. 자신과 타인을 향한 신뢰.
“알겠습니다. 제가 유라를 설득해보죠. 단, 조건이 있습니다.”
촤르륵.
곁으로 8개의 갓 핸드를 불러들인 그리드가 하스터에게 대련 신청을 보냈다. 대련에선 죽어도 페널티가 발생하지 않는다.
“얘네하고 싸워서 이기세요.”
“하하... 지금 나보고 고작 AI랑 싸우라는 겁니까?”
하스터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
갓 핸드.
그리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템이긴 하지만 섬세한 명령은 수행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녔다.
하스터는 인터넷에 공개 된 그리드의 전투들을 셀 수 없이 복기했지만 갓 핸드의 능력엔 감탄한 경험이 적다. 실제로 갓 핸드가 활약한 횟수도 적었고 말이다.
초창기라면 또 모를까, 지금의 갓 핸드는 그리드의 주력이 아니라 보조 아이템에 불과했다.
“8개는커녕 30개 전부와 싸워도 감당할 자신이 있습니다만 뭐... 알겠습니다.”
자신이 어디까지 추락했는지 실감하며 쓰게 웃은 하스터가 테스트를 수락했다. 그리고 8개의 갓 핸드를 뒤따라 공터로 나갔다.
그리드는 대장간에 그대로 있었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
4분 후.
“...처음부터 8대1은 도무지 안 되겠군요. 6대1 아니, 3대1 정도부터 시작하며 차츰 적응하고 싶습니다만...”
넝마가 된 하스터가 슬그머니 돌아와 부탁했다.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인물다웠다.
그리드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바르바토스의 시야를 이용해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메르세데스 또한 창문을 통해 전투를 지켜봤다.
좋아하면 닮는다더니 두 사람 모두 관음에 익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