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372화 (1,362/1,794)

템빨 69권 - 5화

이름:그리드

이름은 여전히 그대로다. 탐욕이라는 뜻을 지닌.

그리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Satisfy를 시작했는지, 당시 그리드의 성격이 어떠했는지를 대변하고 있다. 지금의 그리드와는 썩 어울리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절로 이름이 바뀔 리 없다.

설령 아이디 변경권이 출시된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름에는 강력한 마력이 깃드는 법이니까.

그 사람의 삶이 묻어서,

그 사람이 만들어온 인연과 쌓아올린 업적, 명성 따위의 모든 인과를 증명하는 것이므로,

이름은 그 자체로 힘을 갖는다.

그리고 현재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이 바로 그리드였다.

레벨:463

직업:템빨신

파그마의 후예, 서사시의 마검사, 지공이라는 쟁쟁한 직업들을 모조리 포괄하는 템빨신이라는 직업 또한 결국 그리드의 이명(異名)에 불과하다.

그리드가 템빨신이 된 것이 아니라, 그리드에게 템빨신이 뒤따른 식이었다.

‘템빨신. 템빨신... 몇 번을 곱씹어도 어감이 참 멋지군.’

제법 오랜 시간 템빨신이라고 불려왔기 때문일까.

그 이름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매료당한 그리드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의 시선이 상태창의 네 번째 줄로 내려갔다.

종족,

‘신격은 불필요해졌다. 신살자가 되는 것도 물 건너갔고.’

신.

결국 되고야 말았다.

마치 운명이라는 듯이, 자석의 양극처럼 다가왔다.

그건 상당히 볼품없는 모양새여서 神이라는 문자에 깃든 무게가 새삼 가볍게 느껴졌다.

당연한 감상일 것이다.

이 세계에서 신이란, 본디부터 가벼운 존재이니.

너무 많은 일을 겪고 보아온 그리드는 ‘신’을 존중하지 않는다.

다만 무력하여 자신이 지켜야 할 땅과 백성들을 지키지 못했던 네 명의 ‘개인’을,

다만 질투심에 눈이 멀어 과오를 저지르고 후회했던 헥세타이아 ‘개인’을,

다만 복수심에 눈이 멀어 인간에게 해로운 생물을 빚어낸 한울 ‘개인’을,

다만 침묵할 뿐인 레베카 ‘개인’과 다만 소멸하고자 할 뿐인 치우 ‘개인’을,

그리드는 단지 동정하거나, 격려하거나, 혐오하거나, 경계하거나, 의심해왔다.

인간보다 강한 힘을 갖고도 불완전한 그들을 도리어 인간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죄를 덮을 힘을 지니고도 후회하고 반성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과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다.

그리드가 사방신과 헥세타이아를 존중하는 이유는 그들이 신이라서가 아니다.

그리드는 신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신이 되었다고 해서 전과 다르게 인식하지 않았다.

헥세타이아가 헥세타이아인 것처럼, 나는 나일뿐이다.

‘과거에 반신이 되기를 거부했던 이유도 거창한 게 아니었지.’

단지 신의 보복을, 무력을 두려워했을 따름이다.

그들이 혹 나의 가족을, 동료들을 해칠까 염려하며 선을 그었던 것에 불과했다.

반면 지금은 담담했다.

어차피 신이 되나 안 되나, 그들과 싸워야 할 운명이다.

내가 신이 된 것을 탐탁찮게 여긴 그들이 먼저 나를 위협한다면, 나는 당연하게도 저항할 것이며, 그들을 죽여 없앨 것이다.

신은 신을 죽이지 못한다고?

괜찮다.

나를 대신해서 신들의 심장에 검을 꽂아줄 동료들이, 내게는 아주 많으니까.

‘내가 양념 치고 애들이 마무리하면 그만이지.’

유라, 지슈카, 페이커, 유페미나, 크라우젤을 비롯한 동료들.

브라함, 피아로, 메르세데스를 비롯한 사자들.

개변시킨 신검들이 제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들보다 대단할까.

그들이 나의 사도이고 천사이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그리드가 스탯의 정보를 확인했다.

주요 스탯의 정보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근력:6,800 ★체력:5,300

★민첩:5,300 ★지력:7,200

★모든 주요 능력치가 황금비를 이뤘습니다.

★황금비를 이룬 스탯의 기능이 1.5배 강화되고 공격력과 방어력, 마법공격력과 생명력이 각 20퍼센트, 절대명중률과 절대회피율이 각 5퍼센트씩 증가합니다.

아이템과 칭호 효과, 투기 등으로 추가되는 스탯까지 합산한 수치다.

스탯 총량이 굉장히 높아졌다.

기존에 50으로 고정됐던 투기가 75로 오른 여향이 컸다.

투기는 신화적인 힘이라던 하야테의 말대로 제대로 된 신의 격을 갖추자마자 제약이 일부 풀린 것이다.

‘신위가 오를수록 투기도 점점 완전해지려나. 마법을 배울 때 생기는 제한도 차츰 사라지겠지.’

어찌됐든, 깔끔하게 떨어지는 단위가 아름답다.

근력과 민첩의 비율에는 커다란 변동이 있었다.

스탯의 총량에 따라서 황금비를 이루는 조건도 바뀔 거라는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아마 이 비율을 동료들에게 알려줘 봤자 그들은 똑같은 황금비를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대중적으로 알려진 황금비 스탯.

근력과 민첩의 1대1 비율 또한 근력과 민첩의 수치가 각 2천 이상, 지력과 체력이 800 이상일 것이라는 조건이 붙지 않나.

현재 그리드의 황금비는 너무 많은 스탯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지력과 근력 순으로 높아야한다는 점 때문에 실제로 이 비율에 도전할 사람이 누가 있을지 섣불리 떠오르지 않았다.

지력을 1순위 능력치로 두는 사람은 대개 마법사인데, 세상 어떤 마법사가 지력에 버금갈 정도의 근력을 쌓는단 말인가?

‘브라함도 이 비율은 감당하지 못할 거다.’

브라함과 동료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황금비를 스스로 밝혀내야한다.

하지만 2명.

그리드는 자신과 똑같은 황금비에 도전할만한 인물이 주변에 딱 2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선 사리엘.

대천사인 그녀(?)는 매우 높은 스탯 총량을 지녔다. 게다가 삼위일체에 의미를 두는 성향이 반영 된 탓인지 밸런스가 완벽하다. 근, 민, 체, 지 4개 스탯이 거의 동일한 비율일 정도다.

다음으로 메르세데스.

세상 모든 기사들의 우상이며 <기사도>를 이용해 성장하는 그녀의 스탯 총량 또한 사리엘에게 뒤지지 않는다. 사리엘만큼은 아니지만 밸런스도 훌륭했다. 다소 낮은 지력은 템빨로 극복 가능하다.

‘지력을 올려주는 아이템을 무장시키면 되니까.’

미소 짓는 그리드의 시야에 상태창이 가득 찬다.

이름:그리드

레벨:463

직업:템빨신

종족:신

칭호:신화가 된 자 외 42개

생명력:1,319,500/1,319,500 마나:525,730/530,900

검기:2,400/2,400 투기:75

★근력:6,800 ★체력:5,300

★민첩:5,300 ★지력:7,200

★모든 기본 능력치가 황금비를 맞췄습니다.

★스탯의 효과가 1.5배 강화되고 공격력과 방어력, 마법공격력과 생명력이 각 20퍼센트, 절대명중률과 절대회피율이 각 5퍼센트씩 상승합니다.

손재주:10,650 끈기:3,757

평정:3,043 불굴:3,298

위엄:3,271 통찰력:3,561

용기:2,550 정치력:1,150

의지:1,630 매력:2,001

행운:1,210

신위:17

잔여 능력치 포인트:0

“좀... 과하게 높아진 거 같긴 한데...”

음... 뭐 합당하다고 본다.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지독하게 일해 왔는지, ‘노동할수록 성장하는’ 손재주 스탯과 끈기 스탯이 증명하고 있다.

그간 만든 아이템을 펼쳐놓으면 도시 몇 개를 가득 채울 거고 속옷을 차곡차곡 쌓으면 작은 산 하나를 이룰 거다.

생명력 수치가 조금 많이 거슬리긴 하지만...

마치 플레이어가 아닌 몬스터가 된 기분이긴 하지만...

고위 대악마와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최소 수 억, 수십 억 단위의 생명력을 자랑할 것이다.

놈들과 비교하면 이 정도야 뭐 애교 수준 아닐까 싶다.

“...오늘은 좀 쉬자.”

커다란 성취감 때문일까.

그동안 누적 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기분이다.

정말로 오래간만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일 수도 있다.

국대전 등의 행사가 없는데도 ‘접속 제한 시간’을 남겨두고 하루를 마감한 경험은... 적어도 그리드의 기억엔 없었다. 몸살에 걸려서 비몽사몽 했을 때도 몸은 늘 캡슐에 누워있었으니.

***

그리드가 잠들어 있는 동안 세상은 난리가 났다.

템빨신의 자애.

무려 한 국가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 거대한 축복의 달콤함을 맛본 사람들이 영상을 찍어 각종 사이트에 퍼 나르기 시작한 것이다.

-와 미친 제작 속도 2배 상승ㅋㅋㅋ

-너튜버 방금 스킬 레벨 올라간 거 실화? 와 씨 거저먹네. 부러워서 미치겠다.

-검무 공격력 무시무시하네요. 저 3시간 전에 야탄교로 개종했는데 템빨신교로 다시 개종해야겠어요.

└한 번 개종하면 최소 3달 동안 개종 못해요.

└미친? 구라 치지 마세요.

└진짠데요. 아니 막말로 야탄교에서 경험치 물약 사서 다른 종교로 튀면 어떡해요. 야탄교가 무슨 자선사업 단체도 아니고ㅋㅋ

-난 3달 전에 개종했는데 왜 개종 안 되지?

└그거 종교 퀘스트 몇 개 깨야 됨. 밥값은 하고 가라 이거지.

-아 짜증나 진짜. 야탄교 벌레들한테 발목 잡혔네.

-야탄교 욕하는 놈들 특) 자기도 야탄신교임 ㅋㅋㅋㅋ

-근데 템빨신 축복 저거 템빨국에서만 적용 되는 거임? 아니면 템빨신교 신전 있는 영토까지 전부 다 적용 되는 거임?

└템빨국에만 적용.

-우리 국왕 뭐 하냐? 당장 템빨신한테 나라 갖다 바쳐라.

-아 바사라 누나 어서 갓리드한테 청혼하라고.

└황제가 뭐가 아쉬워서 유부남한테 청혼 하냐? 돌았나ㅋㅋ

└신인데 유부남이 대수?

-갓리드 닉값 지린다.

└갓리드는 별명이고 아이디는 그리드인데 닉값은 무슨 닉값이요.

└너 친구 없죠?

└친구 있으면 렙업 못함 ㅂㅅ야^^

└? 그리드는 친구도 많고 여친이 2명인데 렙 1등임

└닥쳐

-그리드 요즘 지슈카는 안 만나는 거 같더라.

└둘 다 워낙 바빠서 그렇겠지. 그리드가 쓰레기도 아니고 설마 자기 때문에 브라질에서 이민까지 온 여자랑 헤어지겠냐.

***

10시간을 푹 잤다.

이렇게 오랜 시간 잠을 잔 경험이 당최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몸과 머리가 상쾌하다. 어제 드디어 신화 클래스를 얻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감당 못할 행복감이 밀려오며 가슴이 찌르르, 떨렸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영우가 창가에 다가섰다가 움찔 놀라 뒷걸음쳤다.

“이건 상상 이상인데...”

현재 시간은 새벽 5시.

꼭두새벽부터 집 앞 인도는 물론이고 도로까지 인파로 가득 찼다. 인종도 참 다양하다. 지구에 있는 모든 방송국 기자들이 찾아온 느낌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민폐야.’

투덜거린 영우가 집밖으로 나갔다. 밤새 감시카메라를 지켜보고 있던 건지 툰이 곧장 뒤따라 나왔다.

“잠은 좀 잤어? 못 잔 거 같은데?”

“내 걱정은 마라. 그건 그렇고 기자들은 그냥 무시하는 게 낫지 않나?”

“귀찮긴 하지만 주민들한테 피해를 줘선 안 되지.”

영우와 템빨단원들이 세운 빌딩이 하나의 작은 마을을 탄생시켰다. 영우의 빌딩을 중심으로 사방에 도로가 뚫렸고 수많은 건물과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주민들의 출근 시간 전에 이 사태를 정리해야하지 않겠나.

‘기자들의 질문은 어차피 뻔할 거다.’

신화 클래스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전설 클래스를 거쳐야 하는 것이냐, 신화 클래스 전직 방법이 궁금하다, 신화 클래스 고유 특성은 무엇이 있느냐 등등.

기자들의 질문을 예상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영우는 언론을 상대한 경험이 매우 많은 베테랑이다. 기자들에게 알려줘도 되는 정보, 알려주면 곤란한 정보를 머릿속에서 손쉽게 정리했다.

“음.”

집 밖으로 나와 보니 꽤 많은 경찰이 있었다. 사태를 예견하고 미리 출동했던 건지 중무장하고 바리케이드를 친 상태다. 아마 그들이 없었다면 툰이 밤새 고생했을 듯했다.

꾸벅, 우선 경찰 분들께 감사와 사죄의 마음을 담아 인사한 영우가 기자들에게 말했다.

“다음부턴 정상적인 경로로 인터뷰 요청해주세요. 다음에도 또 오늘처럼 집까지 멋대로 찾아오는 기자님 계시면... 그쪽 언론사와는 평생 담 쌓을 겁니다. 자 5분. 딱 5분만 답변해드릴 테니까 질문하세요.”

기자들도 눈치는 있다.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을 깨닫고 냉큼 질문을 쏟아냈다.

“S.A그룹에서 그리드님을 위한 테마곡을 제작할 거라고 공식발표했습니다. 설마 플레이어용 테마곡이 만들어질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었을 텐데요. 최초의 테마곡 주인공이 되신 기분이 어떠십니까?”

“...?”

처음부터 예상을 벗어나는 질문이었다.

당황해서 대답하지 못하는 영우에게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군신 아레스가 발할라를 템빨국에 편입시킬지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밝혔죠. 발할라를 받아주실 계획이십니까?”

“...??”

두 번째 질문도 예상 못했다.

마침 도착한 경찰의 추가 병력이 기자들을 해산시키기 시작했다. 굉장히 신속한 대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굳이 안 나오는 건데.’

그건 그렇고 세금을 많이 내서 그런가.

경찰이 너무 친절하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목례하는 경찰 분들께 민망한 표정으로 화답해준 영우가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밤새 쏟아진 기사들을 뒤늦게 확인했다.

세상이 하루아침에 변해 있었다.

오직 그리드를 중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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