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368화 (69권) (1,358/1,794)

템빨 69권

=======================================

템빨 69권 - 1화

성녀의 성역은 최대 900미터 범위까지 확장이 가능하다.

앞서 세운 성역의 유지 시간(3시간)이 끝나기 전에 새로운 성역을 세우고 이어붙이면 규모가 커지며 유지 시간이 초기화되는 식이다.

하지만 성역 스킬의 쿨타임은 2시간 30분이었다.

유지 시간 내에 새로운 성역을 세우고 이어붙이는 건 현재 스킬 레벨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초월신성검의 보조가 있다.

‘혼자가 아니야.’

마물들의 공세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지만 루비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계속해서 성역을 확장해나갔다.

그 결과.

“오오...!”

지옥문이 열린 지점부터 흑수정 성의 입구까지, 약 400미터의 짧지 않은 거리가 온통 성역으로 물들었다.

완벽한 거점의 탄생이었다.

***

“와... 와, 대박.”

“대단하다 정말...”

탐사대원들의 탄성이 끊이질 않았다.

첫째, 루비의 성역에 놀랐고 둘째, 유라의 전투력에 놀랐다.

수십, 수백 단위의 마물 무리가 나타날 때마다 놈들을 통솔하는 악마를 간파하고 한 번의 저격으로 처단하는 유라의 화력과 통찰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지휘체계를 잃은 마물들은 템빨단원들이 어렵지 않게 마무리했다.

이쯤 되면 지옥 탐사가 아니라 정복도 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템빨단의 명성은 오히려 축소되어 있던 거다.’

‘하나 같이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 없군.’

눈썰미 좋은 그들조차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유라가 마음껏 활약할 수 있던 이면에는 크라우젤과 지슈카의 공로가 컸다는 사실 말이다.

수백 미터 상공에서 나타난 비행형 악마와 마물들.

새카만 구름을 엄폐물로 삼은 놈들은 탐사대를 불시에 폭격할 의도로 접근했고 탐사대는 놈들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다. 실로 은밀한 기동 전술이었다.

하지만 크라우젤과 지슈카의 광범위한 시야 앞에서 무력화됐다.

놈들은 탐사대를 공격 범위에 넣기도 전에, 아직 탐사대에게 포착되기도 전에 검기와 화살에 휩쓸려 잿빛으로 산화하길 반복했다.

흡사 인공위성과도 같다는 궁성의 시야와 비교하면 활용도가 낮지만, 최대 10킬로미터까지 확장되는 바르바토스의 시야는 필시 최정상급의 탐색 스킬이었다.

거기에 시야 범위 스킬이 연계되자 비행형 마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르바토스 이 허접아 뭐하냐!! 어서 권속 한 마리 더 보내봐라!!”

흑수정 성.

탐색대는 잠시간의 휴식시간을 가졌고 템빨단원들은 따로 회의실에 모였다.

뒤늦게 크라우젤의 숨은 활약을 전해들은 반트너가 창문을 열고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무려 한 자릿수 대악마를 도발하는 무식한 행동이었다.

질투에 눈이 멀어 이성을 상실한 그의 입을 가로막은 폰이 유라에게 질문했다.

“지옥에선 귀환 포인트를 지정하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가?”

단탈리안의 유산인 이 아름답고 견고한 성은 근거지로 삼기에 매우 적합했다. 당연히 귀환 포인트로 지정하려고 했는데 시스템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귀환 시스템 자체가 비활성화 상태였다.

“네, 그건 데빌 슬레이어의 고유 권한으로 알고 있어요.”

즉, 데빌 슬레이어가 아닌 이상 지옥에서 귀환 시스템을 이용하는 건 영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가장 확실한 생존기 하나가 차단 된 셈이었다.

“흠... 각오하긴 했지만 좀 두렵군.”

성역은 지옥에서 받는 페널티의 절반을 약화시켜준다.

한데 그마저도 모든 스탯을 15퍼센트나 깎았고 온갖 디버프가 발생했다. 아직 20번대 지옥임에도 그랬다.

탐사를 위해 성역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순간... 탐사대는 그야말로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었다.

긴장하는 동료들을 유라가 격려했다.

“하나 같이 대단하신 분들이 모였잖아요. 힘내보죠.”

탐사대는 성역에서 ‘안전하게 사냥하려고’ 지옥을 찾아온 게 아니다. 직접 지옥을 체험하고 악마와 마물의 힘을 가늠하여 대책을 마련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인마대전의 무대가 인계라고 하지만 지옥 페널티가 발생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악마들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전쟁을 일으킬 리 없잖은가.

반면 인간이 준비할 수 있는 패는 무척 적었다.

유라의 지옥 정화와 루비의 성역, 그리고 삼신교 사제들의 합창.

지옥 페널티를 없애거나 약화시키는 방법은 현재로써 그 3개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범위가 크지 않았고 항시 유지하기도 들었다.

심지어 삼신교는 제대로 협력해줄지조차 의문이었다.

템빨신교가 탄생한 뒤로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으니.

물론 악마들이 지상을 침공한 와중에 손가락만 빨고 있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이 기다리겠어요. 슬슬 출발하죠.”

유라의 말대로 이번 탐사에는 하나 같이 대단한 사람들만 모였다.

개중에는 지슈카와 크리스처럼 다수의 길드원을 통솔해온, 소위 말하는 제왕의 자질을 갖춘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탐사대의 리더는 유라였다.

지옥에서만큼은 그녀가 최고였으니 그녀가 모두를 이끌어야했다.

‘...변해야 할 때야.’

유라는 거의 항상 단독행동을 해왔다. 사람들을 통솔한다는 게 심한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겨내야 했다. 악마들과의 전쟁이 예고 된 이상 그녀에게도 막중한 책임이라는 게 부여됐다.

이제 개인의 무력에 집착하는 단계를 넘어서 다각도에서 준비하고, 노력하며 자격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그리드처럼 말이다.

***

마장기는 본디 대마병기(対魔兵器)다. 고대의 거인족이 대악마와 맞서 싸울 수단으로 만들었다.

거인족의 유이한 생존자들이 탑의 결사가 된 작금에 이르러선 드래곤을 대적하기 위한 병기로 개조되었지만... 본질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마력을 차단하는 합금과 수십 톤의 무게를 위시하는 파괴력, 인간의 육체로는 구현 불가능한 가동범위와 파일럿을 보호하는 정신 방벽 술식 등.

마장기의 기본적인 특징들은 여전히 대악마에게 위협적으로 작용했다.

‘정확히는 대악마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존재에게 위협적이라고 봐야겠지.’

대마력(対魔力)은 차치하더라도, 수십 톤의 무게와 인간보다 뛰어난 가동성, 거기에 기동성까지 겸비했다는 부분부터가 사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굳이 상성을 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수십 톤의 무게’는 그리드가 재현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리드가 습득하고 있는 마장기 제작법은 이름부터가 소형이다. 크기가 작고 무게도 가볍다. 총 중량이 2.5톤밖에 안 됐다.

‘그러니까 레이더스의 제작법을 얻어야한다.’

템빨신 그리드의 기술은 신화급 스킬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게 아니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이 신의 권능 같은 성능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

이제 그리드는 기관(機關)을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비록 마법공학기술을 모를지라도, 템빨신 그리드의 기술이 있는 이상 그 어떤 고등급 기관 제작법이라도 습득하고 ‘아이템 제작 가능 목록’에 장식할 수 있었다.

라드볼프가 파브라늄의 소문을 듣고 영감을 얻어 장난삼아 만든 소형 마장기 제작법.

파브라늄으로 구성한 몸을 ‘어설픈’ 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는.

라드볼프가 ‘상용화 시킬 수 없다.’고 단언했던. (파브라늄이 탐욕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엔 말을 바꿨지만)

또한 ‘상용화 시킬 필요도 없다.’고 평가했던 그 조악한 제작법에 집착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소형 마장기 군단이 아니라 레이더스 군단을 만든다.’

라드볼프에게 새로운 제작법을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래서야 빙 돌아가는 것밖에 안 된다.

라드볼프가 아무런 대가 없이 부탁을 들어줄 리 없으니 퀘스트를 진행하는 과정이 생기고 만다.

설령 순순히 부탁을 들어준다고 해도 라드볼프는 탐욕을 제대로 모른다.

오직 그리드를 위해 존재하는 그 광물의 진정한 가치와 제대로 된 활용방법을 아는 사람은 단연코 그리드가 유일했다.

탐욕으로 만드는 기관은 자신이 직접 설계해야 훨씬 더 좋은 결과가 있으리란 확신이 그리드에겐 있었다.

‘레이더스 제작법을 습득하는 과정에 마장기 관련 지식을 쌓고 아이템 창조까지 쓴다.’

그리드는 과감하게 투자할 계획이었다.

레이더스 제작법을 얻는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그 제작법을 기반으로 새로운 마장기를 창조할 생각이다.

평범한 합금으로 만들어서 파일럿이 직접 조종하도록 하는 탑승형 마장기. 즉, 지발이 현재 사용 중인 레이더스를 양산하는 건 첫 번째 목표에 불과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기관부터 몸체까지 100퍼센트 탐욕으로 만들어서 자아 혹은 에고를 부여한 ‘완전 자동화 마장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일장일단이 있다.

자동화 마장기는 오직 탐욕으로 구성되어 훨씬 더 강력하겠지만 탐욕의 소모량이 너무 크다는 게 치명적인 문제다. 아직은 대량 생산이 힘들다.

레이더스는 상대적으로 내구력과 화력이 약하지만 ‘파일럿의 역량’에 따라 더 좋은 움직임을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대량 생산도 비교적 쉽다.

‘템빨함선... 비공정은 개뿔. 현재 시점에서 그런 곳에 탐욕을 쏟아 붓는 건 쓸데없는 낭비다.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은 마장기를 생산해서 전력을 갖춘다.’

그리고 파일럿을 육성하기 위해선 지발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드가 대장장이들의 귀감이 되어 칸과 스미스를 비롯한 훌륭한 대장장이들이 탄생했듯이, 지발이 파일럿들의 귀감이 되어준다면 훌륭한 파일럿들이 탄생할 것이다.

‘일단은... 지발이 활약할 수 있도록 레이더스를 업그레이드한다.’

레이더스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것보단 작동 시간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방법은 아직 모른다. 일단 분해를 해봐야 힌트라도 얻을 것이다.

“소환, 레이더스.”

티라멧의 벨트의 개변을 끝낸 후.

정원으로 나온 그리드가 지발에게 양도 받은 레이더스 소환 장치를 작동시켰다.

쿠우우웅!!

순백의 거신이 그리드의 눈앞에 강림했다.

고요한 초록색 안광이 그리드를 바라본다.

여기서 ‘탑승’하지 않는 이상 소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전원 버튼을 꺼놓은 셈이라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는 것이다.

‘개변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올 때까지 1차 작업한다.’

가볍게 몸을 띄운 그리드가 레이더스의 어깨 위로 올라섰다.

온갖 도구가 그의 품에 있었다. 무려 고대의 유산을 낱낱이 해제하기 위한 도구들이었다.

“꿀꺽...”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지켜보는 지발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리드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게 된 그는 순순히 레이더스를 빌려줬지만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드가 여태껏 수많은 무구를 만들어왔다는 사실이야 알고 있다. 전설의 대장장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적으로서, 아군으로서 절실히 체험해왔다.

하지만 마장기는 무구라고 보기에 애매하지 않나.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레이더스를 이해하고 업그레이드시키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이런 젠장... 믿는다...’

이미 물건은 넘겼다. 이젠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걸 알지만...

“헉...! 야! 정수리에 말뚝을 왜 박아!!”

그리드의 분해 작업은 너무나도 과격하고 심지어 빨랐다.

레이더스가 망가지기라도 했다간 지발은 정말로 모든 걸 잃게 되는 셈이었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작업능률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아지경 상태에 돌입한 상태였다. 지발의 비명을 듣지 못한 채 작업에 집중했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