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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366화 (1,356/1,794)

템빨 68권 - 19화

‘제발! 어서!!’

[성역을 선포하는 중입니다. 현재 42퍼센트...]

성녀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영역.

성역 선포는 루비가 300레벨을 달성하고 얻은 필드 마법이다.

성녀가 허락하지 않은 법칙은 모조리 무효화시키는 권능을 발휘하는 만큼 위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뛰어났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효율적이진 못했다. 380레벨을 달성하기 전까진 사용 자체가 불가능했을 정도다.

일단 성역을 건설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무려 1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루비는 제자리에서 ‘행동 불능’ 상태가 된다.

심지어 스킬 사용에도 큰 제약이 생겼다. 성역을 건설하는 동안은 3분당 단 하나의 스킬만 사용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기초 마법으로 한정됐다.

가장 큰 문제는 성역을 선포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마나와 신성력이 소모된다는 점이었다. 소모량이 워낙 큰 까닭에 380레벨 전까진 회복량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젠 여유가 있었다.

인마대전을 앞두고 스킬의 레벨을 올린 까닭이다.

대악마들의 영혼을 몇 차례 소멸시키고 업적 보상으로 얻었던 스킬 강화권. 긴 시간 동안 쓰지 않고 아껴왔던 그것을, 루비는 과감하게 투자했다.

길드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다. 지옥을 무력화시킬 수단이 되도록 많아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오빠의 태도를 봤을 때, 템빨단은 언젠가 반드시 대대적인 지옥 정벌에 나설 낌새였으니까.

그날을 대비해서라도 루비는 미리 성역의 레벨을 올려뒀다.

덕분에 성역 선포에 걸리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초월신성검의 도움까지 받고 있다.

25분.

이론적으로 25분이면 완성시키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마치 영겁 같았다.

크라우젤의 몸에 상처가 늘어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루비의 마음이 함께 찢어졌다.

그녀의 초조한 마음을 읽은 걸까.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네 덕분에 페널티가 줄어서 버틸 수 있는 거다.

-홀리 인챈트의 지속을 부탁하마. 생명력 관리는 내가 스스로 하겠다.

크라우젤이 귓속말을 보내왔다.

넝마가 된 몰골로, 담담하게.

***

보레론은 강하다.

비록 군단장의 지위에 오르진 못했지만 개인의 무력만큼은 바르바토스의 권속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했다.

주제파악 못하고 레라지에를 도발하거나, 헬가오가 비운 왕좌에 탐욕을 드러내곤 했던 부군단장 크르차보다 한 수 위라고 보레론 스스로 자부했다.

육체능력과 전투기술이 탁월한 건 아니었다. 타고난 권능이 이치에 어긋날 정도로 강할 뿐이다.

그걸로 충분했다.

대상의 무기를 빼앗고 지배하는 권능.

그것은 보레론이 항상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승리의 원천이었다. 실제로 보레론은 바르바토스의 종복 중에서 가장 많은 공훈을 세워왔다.

물론 권능이 만능은 아니었다.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일정 범위 내에서 무조건 작동하기 때문에 보레론은 병력을 이끌지 못했다. 군단장이 될 수 없었다.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해 격을 쌓기 힘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강력한 권능 때문에 도리어 태생적인 한계가 생긴 케이스였다.

하지만 보레론은 항상 자신감으로 넘쳤다.

무기를 지배하는 권능이 존재하는 한 자신이 바로 천하무적이었으니까.

자신이야말로 바르바토스의 가장 뛰어난 종복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한데.

‘통하지 않다니,’

보레론은 낯선 경험을 하고 있었다. 연약한 인간의 검을 뜻대로 지배하지 못했다.

벌어져선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고 시야마저 잃은 그는 혼란을 느꼈다. 여태껏 품어온 자부심이 흔들릴 정도로 동요했다.

당연히 겉으로 티내진 않았다.

권능이 안 통한다는 이유로 고작 한 명의 인간조차 감당하지 못할 거라면, 위대하신 제8위 군주 바르바토스의 권속으로서 체면이 서질 않았다.

‘조급해할 거 없다. 무기를 빼앗지 못하고 시야를 잃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놈보다 강하다. 그것도 월등하게.’

보레론의 육체능력과 전투기술이 탁월하지 못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다른 권속들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다. 인간은 당연히 압도했다. 비록 눈을 잃었어도 ‘감각’으로 인간의 경로와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놈은 내 시야를 봉인함으로써 저격을 멈췄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리석은 오산이다.

감각을 끌어올린 보레론이 집중했다. 벌써 3번째 칼에 베인 자신의 눈이 빠르게 재생되고 있음을 느꼈다. 이 눈을 베기 위해 인간은 곧 다시 접근해올 거다.

그때 놈을 죽인다.

‘지금입니다!’

깊은 마경의 왕좌에 앉아있는 바르바토스에게 보레론이 지정하는 좌표가 전달 됐고,

콰아아아앙!!

보레론이 예측했던 ‘크라우젤이 움직일 지점’에 저격이 발생했다.

보레론은 흑조권을 휘두르고 있었다. 수십 줄기로 분절시킨 새카만 마기를 두 주먹에 연동시켜 지정한 범위 내의 모든 지점을 타격하는 궁극의 마투술이었다.

하지만 타격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작은 신음도 들리지 않았고 피비린내도 없었다.

마침 시야가 흐릿하게나마 회복됐다.

그때였다.

스칵!

섬광이 번쩍이더니 다시 세상이 어두워졌다.

“노옴!!”

보레론이 더 이상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짐승처럼 포효하며 조금 전 칼침이 날아온 방향으로 주먹과 발을 휘둘러댔다.

줄기줄기 갈라지는 마기의 파동이 폭풍처럼 뻗어나가 주위를 통째로 짓뭉갰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크라우젤을 해치진 못했다.

당연하다.

크라우젤은 무려 1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르와 싸워온 인물이다. 비록 매번 패배했다지만, 그 모든 패배를 양분 삼아 초감각과 검술을 극한까지 단련했다.

악마의 감각?

크라우젤의 초각감엔 닿을 리 없는 미천한 재주에 불과하다.

“당대의 검성에겐 명예도, 자존심도 없는 건가! 네놈이 정녕 검성이라면 도망만 다니지 말고 나와 맞서 싸워라!”

검을 빼앗지 못했던 시점부터 크라우젤의 정체를 어렴풋이 눈치 챘던 보레론이 이제 확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십 갈래로 퍼뜨렸던 마기를 한 점으로 응축시킨 그가 포격을 준비했다. 빌어먹을 검성 놈이 대꾸한답시고 입을 여는 순간 쏘아 맞출 심산이었다.

“...”

크라우젤은 당연히 상종하지 않았다. 크기를 키울수록 공간을 압박하는 마기의 구체를 경계하며 조용히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움직임을 더 줄여야 한다.’

보레론 등장 이후 어느덧 10분이 지났다.

크라우젤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전투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가속과 운신에만 체력과 마나, 검기를 투자하며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마나를 끊임없이 빨아들이는 초월신성검과 지옥 페널티 탓에 생각보다 자원 소모가 빨랐다.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기 위해선 힘을 더 비축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을 듯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저 대규모 공습을 보아하니.

“큭...!”

수백 발의 유탄이 흡사 비처럼 쏟아져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지면에 닿는 유탄 하나하나가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며 화마의 해일을 일으켰다. 산소가 빠르게 결핍되었고 독무가 자욱하게 번져나갔다.

지독한 산성을 품은 독이었다. 호흡에 딸려 들어올 때마다 장기가 녹으며 내상이 발생했다. 물리적인 상태이상으로 구분되어 저항할 수 없었다. 크라우젤이 끝내 신음을 토하게 만들 정도로 지독했다.

“거기에 숨어있었구나!”

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유탄과 그에 붕괴되는 지면이 폭음을 연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레론의 예민한 청각은 크라우젤의 신음을 놓치지 않았다. 한껏 응축시켜두었던 마기를 직선으로 쏘아 크라우젤의 복부에 구멍을 꿰뚫었다.

“하핫! 크하하하핫!!”

보레론의 몸은 촛농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진 폭격과 이후 발생한 화마에 그 또한 무사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크게 웃는 꼴을 보니 고통 이상의 희열을 느끼는 눈치였다.

“이 지긋지긋한 숨바꼭질도 끝이다!!”

콰앙!

땅을 박찬 보레론이 몸을 날렸다. 크라우젤의 혈향을 쫓아 최단 거리로 주파했다.

살을 태우고 뼈를 녹이는 화염 장막과 장기를 분쇄하며 혈액을 역류시키는 독무를 개의치 않고 돌파해 크라우젤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크라우젤이 전투 내내 도망만 다닌 모습을 본 까닭에, 그에겐 하나의 관념이 박힌 상태였다.

당대의 검성은 쥐새끼에 불과하다는 관념.

놈은 나와 비교해서 하찮을 정도로 약하다. 발을 잠시만 묶어 놓을 수 있다면 접근해 그대로 도륙을 내놓을 수 있다...

보레론은 그렇게 ‘착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뼈와 살을 내어주면서까지 바르바토스에게 융단폭격을 요청한 것이며, 폭격을 이용해 강제로나마 크라우젤에게 접근한 것이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크라우젤이 보레론과 정면승부를 피한 이유는 그의 역할이 ‘루비의 보호’였기 때문이다.

보레론 레이드는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 유보해놨던 것뿐이지 두려워서 외면했던 게 아니다.

크라우젤은 오히려 보레론을 사냥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바르바토스의 저격>

난이도:SSS

제8위 대악마 바르바토스가 당신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그의 권속 보레론이 살아있는 이상 바르바토스의 저격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서 보레론을 처치하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보레론 토벌

퀘스트 클리어 보상:바르바토스의 시야(4)

퀘스트 실패 시:레벨 -5

보레론이 등장함과 동시에 떠올랐던 이 퀘스트는, 크라우젤의 사냥꾼 기질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사냥감은 크라우젤이 아닌 보레론이었다.

“흠모한 끝에 이해하였고.”

[<검을 찬미하는 시>를 읊습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격을 목도한 시점부터 크라우젤은 보레론의 심리와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놈이 나를 잡기 위해 희생을 각오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이해한 끝에 하나가 되어.”

그래서 더 깊이 끌어들였다.

벽력을 전개해서 폭격의 대부분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고, 보레론이 쏜 마기 광선까지 순순히 맞아주었다. 루비에게 힐을 쓰지 말고 홀리 인챈트를 유지해달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검이 되었다.”

쩌저정!!

보레론의 뿔이 크라우젤의 안면에 정통으로 꽂혔다.

하지만 크라우젤은 멀쩡했고 대신 그의 인벤토리 속에 있던 에픽 등급의 검 두 자루가 박살났다.

콰작!!

보레론이 올려 친 손톱이 크라우젤의 구멍 난 복부를 헤집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크라우젤이 아닌 크라우젤의 인벤토리 속 검들이 손상됐다.

쿠구구구구!!

보레론의 모든 행동에 마기 폭풍이 연쇄되며 유압 프레스로 짓누르는 듯한 압력이 발생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진 못했다. 크라우젤은 눈과 귀에서 피를 쏟을지언정 무릎 꿇지 않았다.

어느새 크라우젤은 모든 예비 무기를 잃었지만,

덕분에 시간은 그의 편이 되어주었다.

그가 밟고 선 땅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파티원 ‘루비’가 <성역 선포>를 완료하였습니다.]

[성역의 효과로 현재 적용 중인 모든 감소 효과가 해제됩니다. 단, 성역 안에서만 유지되는 일시적인 효과입니다. ‘완전 면역 상태’는 앞으로 10초 동안만 유지됩니다.]

[10초 후, 완전 면역 상태가 해제되며 ‘불완전 면역 상태’에 돌입합니다. 불완전 면역 상태는 모든 약화 효과를 50퍼센트 감소시킵니다.]

“신성 쇄도!”

[파티원 ‘루비’가 당신에게 버프를 부여합니다.]

[적용 중인 신성 속성 버프의 위력이 증가하며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우주 검.”

지옥이.

[<검을 찬미하는 시>의 효과로 <우주 검>의 위력이 14배 증가합니다!]

“...!”

갈라졌다.

균열의 중심에 선 보레론의 몸이 양단되었으며 지옥 반대편에 존재하는 바르바토스 성의 궁전 몇 개가 두부처럼 잘려나갔다.

이는 지옥에 영원불멸 각인 될 상처이며, 수치였다.

대지의 신 가리온은 지옥을 보살피지 않기에.

[놀라운 업적입니다!]

[지옥의 일부를 파괴하였습니다!]

[업적 달성 보상으로 칭호, <지옥을 반으로 가른>을 획득하였습니다!]

[퀘스트 <바르바토스의 저격> 클리어 보상으로 <바르바토스의 시야(4)>를 획득하였습니다.]

[성녀와 함께 대적을 물리쳤습니다. 아주 먼 과거의 전설 <검성과 성녀>를 재현하여 모든 스탯이 5퍼센트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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