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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360화 (1,350/1,794)

템빨 68권 - 13화

“윤 이사 몰골이 말이 아니네~?”

“오셨어요? 어휴, 죽겠네요. 비상 떨어진 뒤로 퇴근을 못하고 있어요.”

“이번에 모르페우스가 화가 많이 나긴 했지. 운영팀이 상황 주시 한다고 고생하겠다 싶더라고~ 아무리 그래도 운영이사까지 노숙 할 줄은 몰랐지만.”

“제 권한 없인 판단 못할 사태가 발생할 확률이 높으니까 항시 대기해야죠. 뭐, 그나마 위안인 건 넬슨 이사님의 신세도 저랑 똑같다는 겁니다.”

“아하하, 그러고 보니까 보안쪽도 비상 떨어진 건 마찬가지네.”

“...에이미 사장님, 지금 다른 회사 이야기 하십니까? 웃으실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미안~ 미안, 넬슨 화 풀어~”

대개 네임드란 세계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수호하고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선 무력이나 권력이 필수불가결의 요소였다.

네임드의 힘(레벨 등)이 플레이어의 성장에 비례해서 오르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세계관을 지키기 위함인 것이다.

모르페우스의 방어기제라고 해석함이 옳다.

그리고 이번에 태동한 인마대전 에피소드는 모르페우스의 역대 방어기제 중 가장 규모가 큰 현상이었다.

S.A그룹 입장에선 비상이 떨어진 셈이다.

세상 사람들은 S.A그룹이 밸런스 등의 온갖 이유를 핑계로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악덕기업인양 묘사하곤 하지만, 사실 S.A는 업계 역사상 둘도 없을 유저 친화적 기업이었다.

Satisfy라는 이름부터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충족시켜주고 싶다’는 속뜻을 품고 있지 않나.

임철호 회장은 플레이어들이 행복하길 바랐다. 극단적인 예로, 현실에선 장애 때문에 걷지 못하는 사람이 Satisfy에선 마음껏 뛰어다니고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과 보람을 느꼈다.

물론 임원진의 마음은 그처럼 순수하지 않다. 그들은 사업가니까.

하지만 그들 또한 사람들이 보다 쉽게, 그리고 즐겁게 Satisfy를 플레이해주길 바랐다. 사람들이 Satisfy에 하염없이 몰입하고 자체적인 컨텐츠를 생산하며 Satisfy를 영원불멸의 세계로 진화시키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근데 인마대전이라고?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포문을 여는 격이었다. Satisfy의 수명을 급격히 단축시킬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세계’가 ‘선택받은 소수의 게임’으로 전락하고 말 테니.

“시작하겠습니다.”

S.A그룹 본사 임원회의실.

술렁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임철호 회장이 들어온 까닭이다.

평소와 달리 지친 기색의 그가 자리에 앉자 모니터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인마대전을 계획 중인 체파르데아와 아그너스의 지난 한 달(현실 시간)을 기록한 영상이었다. 하이라이트 부분들만 편집해서 모았지만 분량이 제법 길었다.

인마대전을 성립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포섭해야하는 검귀 제파르와 영혼의 왕 가미긴을 만난 순간들.

제파르에게 인정받기 위해 몇 번이나 죽음을 겪는 아그너스.

제파르에 이어서 가미긴도 계획에 동참하자 그를 중심으로 결집하기 시작한 대악마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상황을 지켜보는 제1위 대악마 바알.

바알에 비하면 여러모로 권한이 약한 아모락트...

지옥의 주요 장면들이 빠르게 재생됐다.

호시탐탐 지상을 노려온 존재들답게 대부분의 악마가 이번 사태에 굉장히 협조적이었다.

Satisfy를 ‘플레이어가 만드는 세계’가 되길 바라온 임철호 회장이나 임원진 입장에선 난감한 전개였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리드가 기존의 세계관을 위협하는 시기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모르페우스 입장에선 여전히 많은 안배가 남아있는 세계가 벌써부터 무너지는 걸 원치 않아 이번 사태를 발생시킨 거다.

모르페우스는 주장하고 있었다.

지옥은 향후 20년은 건재해야 한다고.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최소 5차 전직에 돌입한 시점은 되어야 지옥 멸망 후 쏟아질 아스가르드 관련 에피소드를 세상이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하지만 그리드와 템빨단만으로 지옥을 정벌할 가능성이 생기고 말았다.

비록 그 확률이 2퍼센트 미만에 불과하긴 했지만, 그리드라는 변수가 여태껏 일으켜온 예측 밖의 결과를 몇 번이나 목격한 모르페우스는 그리드를 지극히 경계했다.

그 경계심이 인마대전이라는 현상으로 표출 된 것이다.

모르페우스는 그리드가 데빌 슬레이어 유라의 도움을 받아 지옥을 정벌할 가능성을 좌시하지 않고 전장을 지상으로 옮겨버렸다. 그리드가 지옥 정벌을 노릴 여유 자체를 주지 않고, 그리드와 템빨단의 터전이 되는 지상을 초토화시키려고 했다.

지옥의 멸망 시기를 늦추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장기적으론 그게 낫다고 판단하는 건가...”

“악마와 마물들이야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개중에는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종도 많으니까요. 인마대전에선 플레이어들도 어떻게든 성장할 수 있지만 아스가르드는 워낙 만만치 않으니...”

“하긴, 아스가르드 관련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적들은 무조건 천사와 신수일 테니까. 공, 방, 신성 삼위일체를 갖춘 그들을 지금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겠지.”

“그건 장담할 수 없는 거죠. 막말로 플레이어들이 그리드가 만든 무기를 쥐는 순간 흐름이 바뀔 텐데.”

“그리드가 본인이 만든 무기를 외부에 유출한 이력이 거의 없잖습니까. 모르페우스도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플레이어의 수준을 책정한 거고.”

“근데 악마 군단이 지상에 올라오면 오히려 악마들에게 불리한 거 아닌가요? 그리드와 템빨단이 플레이어들과 협력해서 침공을 막으면 지옥 멸망 시기가 도리어 앞당겨지는 건 아닌지?”

“무저갱이 무너지면 세상 일부가 ‘섞입니다.’ 악마들이 지상에서 얻는 페널티가 어느 정도 완화되죠. 게다가 지옥은 그 구조적 특성상 대악마들이 각개격파를 당하기 딱 좋은데 가미긴을 필두로 지상에서 똘똘 뭉쳐버리면 그럴 염려가 낮아지고요.”

“뭐? 지옥에 있는 전대 전설들의 영혼이 7개라고? 가미긴이 그것들을 사용할 권한을 얻게 되면 상위 대악마급의 전략병기가 7기나 추가되는 셈 아닌가? 그걸 플레이어들이 무슨 수로 감당하라는 거지? 이번만큼은 모르페우스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임원들이 술렁이는 가운데 모니터 속 무대가 지옥에서 지상으로 바뀌었다. 정확히는 지상이라기보다 세계의 이면이었다.

무후총(無後?).

이름 그대로 후손이 끊겨 돌보는 사람이 없는 무덤이다.

하지만 규모는 쓸쓸한 분위기와 상반 된다.

“진시황릉을 모티브로 삼은 건가?”

모니터 속 아그너스의 감상이 무후총의 거대한 규모를 짐작시키고도 남았다.

미로처럼 끝도 없이 이어지는 복도.

아그너스는 무려 일주일을 헤매기만 했다. 함정도, 몬스터도 만나지 못했다. 사실 이곳엔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의구심마저 느꼈다.

정처 없이, 기약 없이 헤매는 일이 어디 쉬울까.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제라도 포기할까 몇 번이나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그너스는 쉬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설사 벽에 가로막혀도 동요하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시작했다.

평생을 미로 속에 갇혀 헤맸던 그의 입장에서 고작 일주일의 방황 따윈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의 정신력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극한까지 내몰리고 단련되어왔으니.

“...”

나흘이 더 지난 날.

드디어 아그너스가 거대한 동공에 들어섰다.

수백 개의 묘비가 늘어선 동공이었다.

무엇이 묻힌 묘비들일까?

아그너스가 <시체 일으키기>를 전개했다.

쿠우우우우...

묘비 아래 묻혀있던 정체 모를 백골들이 땅을 헤집으며 나타났다.

아그너스의 표정이 굳었다.

백골들에게 이미 주인이 있었던 까닭이다.

통제가 되지 않았다. 곧바로 전투가 시작됐다.

***

토인 병사들과 언데드 군단이 뒤얽혀 싸우는 중이다.

아그너스의 사자와 데스나이트들이 용맹하게 선두에 섰지만 대세는 역전되지 않았다. 훼손되지 않는 토인들의 진격은 마치 거대한 산이 움직이는 것과 같아서 해골병사들을 무참히 짓밟고 진토로 되돌렸다.

토인들은 보름 전 첫 번째 동공에서 조우했던 언데드들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했다.

하지만 아그너스는 집요했다. 지난 보름 동안 수십 번의 패배를 겪고 많은 자원을 소실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토인들에게 계속해서 도전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토인들의 약점을 찾아냈다. 거기에 운까지 따라줬다.

장장 34일 만에, 그는 드디어 토인 군대를 돌파하고 그들이 지켜온 무덤의 안쪽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

환희에 찼던 아그너스의 얼굴에 드문 감정이 떠오른다.

공포.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다.

그럴 수밖에.

이곳에야말로 무후총의 망령이 있으리라 믿었던 무덤 안쪽에 자리한 것 또한 수백 마리의 토인들이었으니. 심지어 이번엔 하나 같이 말에 올라타 있었다. 죄다 장수급인 것이다.

너무나도 거대한 무덤의 규모를 뒤늦게 실감한 아그너스가 끝내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인마대전을 앞두고 무후총의 망령을 손에 넣으려고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직감하고 물러났다.황금보다 귀한 시간을 무려 34일이나 버린 셈이다.

실시간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휴.”

혹 아그너스가 이대로 무후총의 망령을 만나 설득하거나 지배에 성공하는 건 아닐까.

잔뜩 긴장한 채 모니터를 지켜보던 임원들이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인마대전은 조금 더 늦추어지겠군요.”

“아그너스의 사전조사가 빈약했던 덕분이죠. 무후총의 망령이 언데드라는 사실을 듣고 상성에서 유리할 거라고 믿은 눈치인데 완전히 오판이었습니다. 무후총의 망령은 신화 포식자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존재이니...”

“그렇다고 다른 포식자들에게 도전해봤자 승산이 없었으니까요. 대악마들하고 협조했으면 또 모를까.”

“대악마들과의 협조라... 어휴,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만약 아그너스의 성향이 그리드와 닮았으면 답도 없었겠어.”

“맞네요. 이번 기회에 대악마들을 아군으로 만들었을 테니까. 신화 포식자도 모조리 수하로 거뒀을 수도... 그리드였으면 가능했을 거야...”

“...그리드의 사자 목록이 새삼 황당하네. 전대 전설과 당대 전설들로 모자라서 대천사에, 칠악성에, 해츨링에...”

“그러니까 모르페우스가 경계해서 이 사달이 난 거 아니겠습니까. 자, 어찌됐든 아그너스의 행보가 잠시 삐끗한 걸 확인했으니 이제 마음 편히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도록 하시죠.”

이제부터 본론이다.

이번 사태를 방관하느냐, 개입하느냐.

S.A그룹은 선택해야만 했다.

임원들의 시선이 묵묵히 있는 임철호 회장에게 향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회장이 눈을 반개하며 말했다.

“나는 유저들을 돕는 게 옳다고 보네.”

S.A는 게임의 흐름과 시스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게 기본 정책이다. 불변해야 할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두고 싶은 게 임철호 회장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이대로 인마대전이 발발했다간 플레이어들이 터전을 잃을 테고, 특히 비전투 직업군 플레이어들은 갈 곳을 잃게 된다. 대륙에 범람하는 마물과 악마들을 감당할 힘이 그들에겐 없다. 많은 사람들이 Satisfy를 떠나는 계기가 될 확률이 높았다.

“물론... 정책을 어기자는 건 아닐세.”

임철호 회장은 간신히 냉정을 유지했다. 상황에 개입해서 유저들을 직접적으로 돕고 싶다는 속내를 끝끝내 삼켰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임원진에게 충분히 전달됐다.

에이미 사장은 회장의 의지를 실천할 방법이 무엇인지 눈치 챘다.

“곧 인마대전이 열릴 거라는 사실을 공표하자는 말씀이시죠~?”

체파르데아가 구상하는 인마대전은 기습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무저갱과 그 안에서 튀어나올 악마 대군을 세상은 불쑥 맞이하게 될 것이다. 특히 무저갱 위에 세워진 제국의 황도는 하룻밤 사이에 멸망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사하란 제국의 기능은 잠시 마비될 테고 인류는 한동안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몇 달 후 끝내 전쟁에서 인류가 승리한다고 해도 지상의 문명은 대부분 파괴 된 뒤이리라.

“맞네. 정확히 언제, 어디서부터, 무엇을 계기로 시작되는 전쟁이라고 알리자는 게 아닐세. 그건 너무 노골적인 개입이니까. 다만 머잖아 전쟁이 시작될 거라고 알리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Satisfy도 결국 서비스산업에 속한다. 그 점을 내세우면 모르페우스도 납득할 수밖에 없으리라.

며칠 후.

대규모 에피소드 <인마대전>의 발발 가능성이 전 세계 언론사의 헤드라인으로 걸렸다.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호의적이었다.

설마 전쟁의 원인이 그리드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사람들은 다만 자신들이 성장함에 따라 에피소드도 자연히 발생한 거라고 믿었다. 인마대전을 대규모 이벤트쯤으로 취급하고 들떴다.

-악마들하고 마물들이 제 발로 지상에 기어 나오면 경험치 덩어리밖에 안 되지.

-지금 시점에선 대악마도 문제가 아니야. 사람들의 평균 레벨이랑 수준이 워낙 높아져서.

-맞지ㅋㅋ 갓리드는 몇 달 전에도 지옥에서 20위대 대악마들을 레이드 했잖아. 대악마라고 해봤자 지상에선 이제 진짜 개허접일 듯.

-지상 기준으로 보면... 어지간한 중소규모 길드 단일로 30위대 대악마 레이드는 가능하겠네.

-밥그릇 싸움 치열하겠다. 아 너무 기대 돼서 요즘 잠이 안 와. 이벤트 기간 동안 얼마나 득템하려나 ㅎㅎ

“...사람들의 반응이 예상과 많이 다릅니다.”

“크흠...”

임철호 회장이 침음했다.

플레이어들이 충분한 경각심을 품고 철저히 대비해주길 바랐건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축제를 앞둔 것처럼 마냥 들떠있을 뿐이었다.

이래서야 미리 알린 보람이 없다...

S.A그룹 임원들의 한숨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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