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해서 얼굴을 붉히는 그리드에게 2권의 마법서가 두둥실 날아갔다.
[<브라함식 강화 보조 마법서:마력 응집>을 획득하였습니다.]
[<브라함식 강화 보조 마법서:마법 분사>를 획득하였습니다.]
“...장난해요?”
별빛을 품은 게 아닐까, 그런 착각을 들게 만들 정도로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그리드의 눈동자가 삽시간에 썩은 생선 눈깔로 변했다.
안 그래도 새카만 눈동자가 빛을 잃자 표출되는 것은 무심(無心). 천하의 검성조차도 지금의 그리드와 싸우면 의도를 읽지 못하고 기술을 예측 못해 필패하리라.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던 브라함이 속으로 혀를 찼다.
‘내가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구나.’
이쯤 되면 그리드가 뭔 짓을 해도 의미를 부여하고 대단하다 추켜세울 판이다. 물론 녀석에겐 그런 취급을 받을 자격이 차고도 넘치지만...
애써 표정을 차갑게 만든 브라함이 그리드에게 반문했다.
“어느 부분을 보고 장난이라는 거지?”
“이거 2개 다 보조 마법이잖아요.”
지옥에서 마물 대군과 대악마들을 참살하고 꿈에 그리던 전직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등.
지난 반년 동안 그리드의 레벨은 전성기 시절과 비견될 정도로 빠르게 올랐다.
현재 그리드의 레벨은 무려 455.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던 399레벨을 돌파한 이후부터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량에 별 변화가 없다는 점이 단단히 한 몫 했다.
어찌됐든 그리드의 지력 수치는 5,303이다. 마법사 랭킹 1, 2위를 다투는 제드노스의 지력보다 무려 2,000이나 높은 수치였다.
물론 의도적으로 올린 건 아니었다. 지공의 영향이 컸다. 그리드는 레벨이 오를 때마다 18개의 스탯 포인트를 얻는데 이중 8개가 지공 효과로 인해서 강제로 지력 스탯에 투자된다.
게다가 어느덧 50개가 되어가고 있는 칭호 효과들, 착용 중인 아이템의 옵션들, 신화 아이템을 만들 때마다 얻는 보너스 스탯과 현무의 등껍질 등으로 오른 스탯 등을 모두 합산한 수치가 5,303인 것이다.
단순히 지력 스탯만 놓고 본다면, 그리드는 마법사 랭킹 1위가 아니라 대마법사의 지위도 노려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리드는 꽤 좋은 마법을 배우게 될 거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브라함은 그리드의 기운이 마법을 배우기에 적합해졌다고 말하지 않았나. 어찌 기대를 안 하겠는가.
“저는 최소한 기가 라이트닝이나 익스플로전 정도는 배울 줄 알았는데...”
그리드가 토로를 시작했다.
자신이 제작 중인 아이템에 마법을 부여할 수 있게 됐으니 공격 마법을 배우고 싶다는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브라함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별도의 재료 없이 마법을 부여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그건 정말 놀라운 발전이구나. 파그마의 기술에 지공의 지식이 결합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되도록 강한 마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마법 부여의 효과를 극대화시켜야죠.”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이 마법들부터 배워야한다.”
쿠구구궁.
브라함이 스톤 월을 시전 해 10미터 전방에 바위 장벽을 세웠다. 매직 미사일의 위력이 온전히 보존되는 거리다.
“네 지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쯤이야 알고 있다. 파트리안의 애송이보다 조금 나을 수도 있겠지.”
대마법사 아슈르를 말함이다. 대륙 10대 마법사도 브라함에겐 여전히 애송이였다.
“하지만 지력 수치와 마법 실력은 비례하지 않는다. 라인하르트의 대장장이 장인들과 너의 차이를 생각해 봐라. 네 기술이 그들보다 뛰어난 이유가 단지 손재주가 높아서인가?”
“...그건 아니죠.”
“마법도 마찬가지다. 마법의 위력, 속도, 적중률과 형태를 결정 짓는 요소는 지력뿐만이 아니다. 기술이 뒷받침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확실히, 그리드에겐 마법의 위력을 강화시키는 패시브 스킬이나 칭호가 부족하다. 만약 제드노스와 똑같은 마법을 배워서 쓴다고 해도 마법의 종합적인 위력이나 효용성은 오히려 밀릴 가능성이 있었다. 지력 스탯은 마법의 공격력 계수에나 영향을 미치지 종합적인 완성도는 다른 패시브 스킬들의 보조가 필요했으니까.
“아...!”
그리드가 깨달았다.
브라함이 보조 마법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브라함은 그리드의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간파하고 보완시킬 방법까지 궁리해놓은 것이다. 평소에도 늘 그리드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 됐다.
“봐라.”
지이잉.
바위 장벽을 겨냥한 브라함의 손끝에 새하얀 마력이 응집됐다.
그리드도 익히 아는 강화 매직 미사일의 전조였다.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곧 변화가 시작됐다.
빛이 모이고 2초가 지나자 빛의 색감이 미묘하게 짙어졌다. 3초 째가 되자 부피가 확장됐다.
“이게 응집이다. 마법의 캐스팅 시간 동안 대기 중의 마력을 마법에 응집시키고 위력을 키운다. 네 매직 미사일이 개똥이고 내 매직 미사일이 유성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개똥이라니...? 호감도가 떨어졌나?
좋은 마법을 가르쳐주지 않은 이유도 사실 나를 괴롭히려는 게 아닐까.
그리드는 의심했지만 잠시뿐이었다. 보석처럼 차갑게 빛나는 브라함의 붉은 눈동자에 미처 감추지 못한 호감이 숨어있음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보통의 마력 응집은 마법 캐스팅 시간을 최대 2배 늦추고 마법의 위력을 1.5배까지 증폭시킨다. 하지만 내가 개량한 응집은 캐스팅 시간을 최대 3배 늦출 수 있고 위력을 4배까지 증폭시키지.”
예를 들어 매직 미사일(강화)의 캐스팅 시간은 1초다. 응집을 써서 캐스팅 시간을 3초로 늘리면 위력이 4배로 뻥튀기 된다는 거다.
콰앙!!
매직 미사일이 바위 장벽으로 날아가 폭발하자 바위 장벽에 균열이 생겼다.
매직 미사일을 쓴 것도 브라함이고 바위 장벽을 만든 것도 브라함이며 바위 장벽이 훨씬 더 상위의 마법인 바.
본래라면 매직 미사일이 장벽에 흠집도 내지 못해야 정상이었는데 응집으로 강화 된 위력이 상당했다.
“다음은 분사다.”
브라함이 다시 한 번 매직 미사일을 시전했다. 이번에도 3초의 캐스팅 과정을 거쳐 주변의 마력을 응집시켰고 매직 미사일의 위력이 극대화됐다.
그것이.
파파파파팡!!
10갈래로 나뉘어서 쏘아졌다. 마치 직선으로 쏘아지는 빗줄기를 보는 듯했다. 표적이 됐다간 초월경이 강제로 발동할 것 같았다. 그것에 맞은 바위 장벽에 10개의 흠집이 생겼다.
“분사는 공격 마법을 최대 10갈래로 퍼뜨린다. 적중률과 범위를 비약적으로 높이지. 다만 만능은 아니다. 하나의 마법을 나누는 것이니만큼 위력이 약해지니까. 하지만 활용도가 매우 높다.”
“...그럴만하군요.”
단일 마법을 광역 마법으로 바꿔버리는 기술이다. 지력이 높은 마법사일수록 하수들을 상대로 자주 애용할 듯했다. 그리고 다행히 그리드는 지력이 높다.
브라함이 굳이 이 2개의 마법을 먼저 그리드에게 전수하려는 이유가 있던 것이다.
브라함은 그리드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고 있었다.
지금 당장 강력한 위력을 지닌 마법을 전수하기보다 약한 마법조차 강하게 활용할 수 있는 마법들을 먼저 전수한 뒤 차근차근 성장시킬 의도가 담긴 가르침이었다.
‘응집이 특히 마음에 들어.’
위력을 4배 강화시킨 매직 미사일을 아이템에 귀속시키면... 기대했던 기가 라이트닝이나 익스플로전의 위력엔 당연히 못 미치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쓸 만 할 것이다.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기가 라이트닝이나 익스플로전과 비교하면 재사용 대기 시간이 수십 배는 짧으니까.
“감사히 잘 배우겠습니다.”
브라함의 가르침에 담긴 마음에 감동한 그리드가 마법서를 펼치고 2개의 새로운 마법을 습득했다. 그리고 휴대용 용광로를 꺼내 아이템을 제작하며 마력을 응집시킨 매직 미사일을 귀속 시켰다.
고작 8분 만에 400레벨 제한의 한손 검이 만들어졌다. 만약 300레벨 제한의 단검을 만들었으면 5분도 안 걸렸을 거다.
<어금니를 숨긴 검>
등급:유니크
공격력:1,830 내구력:890/890
*1회 마법 부여로 템빨신의 강력한 마력이 무기에 깃들었습니다. 무기공격력이 추가로 10.6퍼센트 상승합니다.
*공격 시 강력한 매직 미사일 발사. 재사용 대기 시간 5초. 마나 소모 600. 활성화, 비활성화 가능.
템빨신 그리드가 만든 검입니다.
검신에 감도는 순백의 마력이 가득 찰 때마다 마력을 응집시켜 강화된 매직 미사일이 장전됩니다.
사용 조건:고급 소드 마스터리. 레벨 400.
‘쿨타임은 매직 미사일하고 똑같군.’
응집 효과로 위력은 4배나 상승했는데 재사용 대기 시간은 차이가 없다. 마나 소모량도 일반 매직 미사일보다 단 200 높을 뿐이다. 응집을 쓸 때 소모되는 마나량이 200이었기 때문이다.
‘템빨신의 기술 이거 정말 사기네.’
그리드는 검에 귀속시킨 매직 미사일의 위력보다 매직 미사일을 귀속시킴으로써 발생한 무기 공격력 상승효과에 주목했다.
마법 부여.
‘템빨신의 마력이 주입됐다.’는 논리로 검의 잠재력을 높인다. 아이템의 본질적인 성능을 강화시켜주는 아주 핵심적인 요소였다.
‘지금 내 지력이 5,300이라서 마법 부여로 인한 물리 공격력 상승이 10.6퍼센트 적용된 거면... 지력이 1만이면 20퍼센트 오른다는 건가? 게다가 이건 어디까지나 매직 미사일 기준이야. 부여하는 마법의 질이 올라갈수록 지력에 따른 공격력 상승 계수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마법 부여를 2회, 3회까지 중첩시키면 위력이 널뛰기 될 여지도 있었다.
예전부터 지력에 강제로 투자해온 스탯 포인트가 자주 거슬렸는데 이젠 전혀 아깝지 않았다.
기뻐하는 그리드에게 브라함이 희소식을 전해주었다.
“지력을 조금만 더 올리면 새로운 마법을 하나 더 배울 수 있을 거다. 당분간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좋을 것 같군.”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더라.
지력을 5,500까지 올리면 되지 않을까.
기대에 찬 그리드가 속으로 메테오를 외치며 자리를 떠났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지옥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우선 갈구노스의 유해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지슈카와 유페미나가 가져온 전리품.
그것을 매입해서 템빨골 강화를 시도할 계획이다.
‘그리고 갈구노스의 핵.’
어쩌면 템빨골을 리치로 진화시키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리치가 되면 소통도 가능해진다. 잘하면 마드라의 일기장을 해독할 수도 있을 거야.’
데스나이트 말년에 이성을 상실한 마드라가 휘갈겨 쓴 일기장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검술의 가르침이 남았을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템빨골의 성장은 여러모로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