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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328화 (1,318/1,794)

템빨 67권 - 06화

“소문보다 더 대단한 놈이었군.”

마르바스.

지옥을 논할 때면 종종 언급됐던 이름이다.

대악마의 서열을 바꿀 정도의 권력을 지녔다고 했던가.

당연히, 여러모로 과장이 보태진 명성이라고 생각했다.

대악마의 서열이란 무력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순전히 더 센 놈이 싸워서 이기고, 쟁취함에 따라 유동하는 거지 타인의 권력으로 강제할 순 없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확신하기 애매해졌다.

지옥이 마치 자신의 집이라고 선포하듯, 마르바스는 그리드 일행을 지옥에서 강제 추방시키지 않았나.

신의 격을 묵살하는 강제력. 그것은 이미 권력의 극한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다.

“그놈은 야탄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건가?”

그게 아니면 지옥에서 안방 주인 행세하는 게 말이 안 된다.

“야탄의 대리인은 아모락트라고 알려져 있지만... 마르바스를 만나고 보니 대리인은 여러 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유라가 그리드의 추측에 동조했다.

마르바스의 권력은 마물과 마족을 번식시키는 능력에 기인한 거라고 여겨왔는데, 근본적으로 틀린 해석인 듯했다. 든든한 뒷배가 있음이 분명했다.

“권력행사는 둘째 치고 마법 실력이 대단했느니라. 놈이 눈앞에 나타나고 나서야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으니, 마법을 캐스팅하는 속도가 내 인지를 웃도는 셈이야.”

네펠리나는 한 술 더 떠서 마르바스의 실력을 칭찬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해츨링이라고 해도 고룡의 핏줄인 그녀는 자존감이 매우 높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을 근거 없이 폄하하진 않았다.

자신을 탑의 결사들로부터 보호해준 그리드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 바 있듯이, 세상에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그녀는 충분히 인지하고 납득하고 있었다.

“근데 왜 우리를 도운 거지?”

“....”

근본적인 의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

그리드가 질문을 바꿨다.

“켈베로스랑 검은 기사 놈의 수준은 어느 정도 같았어?”

마르바스는 말했다.

너희들에게 20번 지옥은 아직 이르다고.

그리드도 어렴풋이 이해했다.

거대한 켈베로스가 입에서 불을 토할 때마다 초월경이 강제로 발동했고 사자들은 쉽게 반응하지 못했다. 한데 놈은 20위 대악마의 애완동물에 불과했다.

전신에 검은 갑주를 두른 채 붉은 안광을 번뜩이던 20위 대악마.

놈은 켈베로스보다 강할 확률이 높았다.

“켈베로스는 무저갱의 입구를 지켰던 히드라와 함께 지옥을 대표하는 신화적인 괴수다. 매우 강력하고 흉포한 맹수로 천상의 신들조차 두려워하는 대상이지. 우리가 지옥의 억압을 극복한 상태였다고 해도 쉽게 이기지 못했을 거다.”

지크프렉터의 답변이었다.

그리드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여태껏 만나왔던 켈베로스와 20번 지옥에 있던 켈베로스가 격이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직접 체험하지 않았나.

“검은 기사는... 잘 모르겠군. 우리 칠선인은 지옥에서 활동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지옥의 정보는 단편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제가 알고 있답니다.”

사리엘이 번쩍 손을 들었다.

풍성한 금발이 찰랑이며 요염한 쇄골이 드러났다. 한 장의 얇은 천을 몸에 두르고 있을 뿐인 사리엘은 피부 노출이 굉장히 심했고 몸의 굴곡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그리드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리드가 봤을 때 사리엘은 중성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마음껏 모습을 바꾸는 그녀를 이성으로 인식하기 힘들었다.

“흑기사 엘리고스. 천마대전이 일어날 경우 가장 경계해야할 대상 중 하나라고 교육 받았었지요. 지옥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라고 들었는데 20번 지옥을 지키고 있었을 줄은... 저도 놀랐답니다.”

“지옥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라고?”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납득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그럴 수밖에.

엘리고스는 고작해야 20번 지옥의 군주다. 네임드라고 해도 한도가 있을 텐데 한 자릿수 대악마와 비견된다는 건 인정하기 힘들었다.

사리엘이 설명을 덧붙였다.

“흑(黑)은 악과 마를 상징하는 색이랍니다. 엘리고스를 표현하거나 설명하는 묘사에 흑색이 들어간 시점부터 그가 대악마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지요.”

“음... 그 말이 사실이라면 20번 지옥의 정복을 논하는 건 너희들이 지옥 페널티를 완전히 극복한 뒤로 미뤄야겠군.”

“마땅한 수가 있나?”

브라함의 반응이 탐탁찮았다.

뱀파이어 즉, 마족이었던 그는 알고 있었다.

마족이 아닌 존재가 마기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브라함이 봤을 때, 그리드의 사자 중 마기의 억압을 극복할만한 존재는 자신과 네펠리나 정도밖에 없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그리드가 히죽 웃었다.

“방법이야 당연히 있죠. 엄청난 호구가 하나 있거든요.”

헬가오.

뮐러에게 봉인당한 육신을 되찾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인류에게 몇 번이나 패배한 과오를 지우고 싶기 때문인지 주기적으로 인계를 침략하는 서열 제9위의 대악마.

명색이 한 자릿수 대악마인 그놈의 입지는 지옥에서 여전한 눈치였다. 놈에게 인정받는 것만으로 지옥에서 명성이 올랐고, 지옥 페널티를 완화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

그리드의 주도하에 헬가오 레이드 팀이 대대적으로 개편됐다.

7개의 화석과 함께 등장하는 헬가오.

놈을 레이드하기 위해선 그리드가 직접 팀을 이끌어야했는데 정작 그리드가 명단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그리드의 빈자리를 브라함, 네펠리나, 메르세데스, 피아로, 사리엘, 지크프렉터가 채웠다.

억 소리 날 정도로 화려한 멤버 선정이었다.

“...이 정도면 우리는 빠지는 게 낫지 않나?”

화석의 개수가 늘어남에 따라 강력해진 헬가오의 출현주기는 전보다 더 늦춰졌다. 정확히 45일에 한 번이다.

그때마다 그리드를 보좌하며 손발을 맞춰왔던 십공신이 난색을 표했다.

그나마 그리드와 함께했을 때는 자신들이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그런 믿음조차 품기 힘들어졌다.

그리드의 사자들이 힘을 합치면 헬가오도 쉽게 해치울 텐데, 굳이 자신들이 레이드 팀에 낄 이유가 있을까?

인력 낭비를 운운하려는 게 아니다. 보상을 나눠 갖게 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아이템이야 국고로 들어간다지만 경험치는 다르지 않나. 공헌도에 따른 차등을 둔다곤 하지만 레이드 팀 전원이 공유한다. 별 도움도 못주고 경험치를 나눠 먹는 건 강도짓이나 다름없다는 게 십공신의 생각이었다.

그들의 생각을 뻔히 읽은 그리드가 말했다.

“헬가오 레이드에 시간을 뺏기느니 개인적으로 사냥하는 편이 너희에게 훨씬 이득이라는 걸 알아. 그래도 길드 발전을 위해서 꼭 참가해줬으면 좋겠다. 대악마를 일정 횟수 이상 레이드하면 얻게 되는 칭호가 있는데 너희가 그걸 반드시 얻었으면 하거든.”

배려가 가득 담긴 말이었다.

누가 보면 십공신이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거라고 착각할 지경이다.

“그리드...”

그리드의 상냥함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템빨단원들이었다.

하지만 지슈카에게만큼은 그 상냥함이 비수로 다가왔다. 그리드에게 품은 마음을 접고 싶었던 그녀는 그리드를 차라리 미워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꾸 이런 모습을 보게 되면 불가능하다.

질끈, 붉은 입술을 깨문 지슈카가 먼저 회의실을 떠났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리드의 표정이 슬펐고, 유라도 덩달아 우울해졌다.

그리드와 지슈카처럼 연애에 무지한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치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분위기를 보고 어렴풋이 눈치 챘다.

처음엔 마냥 기뻤다.

지슈카와 자신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리드가 드디어 마음을 정하고 자신을 선택해준 거라고 생각하자 행복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고작 이틀을 가지 못했다.

같은 여자로서 동경할 수밖에 없던 지슈카.

늘 밝고, 당당하고, 씩씩했던 그녀가 의기소침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의 선택에 괴로워하는 그리드를 보는 게 힘들었다.

실제로 그리드는 망설이는 눈치였다.

요즘 부쩍 데이트하는 횟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진 건 아니다.

어쩌면... 그리드가 선택 했어야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지슈카가 아니었을까.

지슈카는 그리드와 함께하기 위해 한국으로 이민까지 온 사람이다.

내가 그녀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그럴 수 있었을까?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리드에게 고백하고 족쇄를 채워버린 내가. 나처럼 비겁한 여자가 그녀만큼 용기 있게 행동했을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그리드 곁에 있을 사람은...’

떠올려 본다.

서슴없이 대하는 지슈카의 행동에 난감해하면서도 쉴 틈 없이 웃으며 행복해하던 그리드의 모습들. 연애에 한해서 수동적인 그리드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내가 아닌 지슈카다.

알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아직은 떠나기 싫다.

그리드가 지옥 정벌을 위해 나를 필요로 하는 이 순간만큼이라도 함께하고 싶다.

마지막 욕심을 부디 이해해주길, 유라는 멀어지는 지슈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사죄했다.

***

각기 다른 형태만큼이나 성질도 다양한 뼈와 가죽, 뿔 등의 부산물이 총 31개.

극상급 보석 4개와 최상급 보석 39개.

블러드스톤 5개와 흑요석이 22개.

현실 시간으로 일주일. 고작 일주일 동안 지옥에서 활동하면서 확보한 제작재료 목록이다.

전리품 중 제작재료만 이 정도다.

완제로 얻은 아이템-심지어 레전드리 등급의-은 9개였고 축복 받은 강화석도 무려 43개를 얻었다. 단탈리안에겐 전대 전설의 스킬북과 스킬 레벨 상승권 등을 얻기도 했다.

지옥.

유라를 제외하면 감히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했던 미지의 땅.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현존 최고 난도의 영역이 그리드에겐 지고의 보물창고로 인식되고 말았다.

‘지옥에서 죽은 대악마의 리스폰 시간은 최소 한 달에서 최대 세 달이라고 했지... 그게 너무 아쉽군.’

문제는 리스폰 간격뿐만이 아니다.

다시 부활한 대악마는 한 번 죽기 전이었을 때보다 약하고 아이템 드롭률도 떨어진다.

예를 들어 단탈리안이 다시 부활할 경우, 놈은 일단 2개의 머리만을 갖고 부활한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흐르며 지식을 축적해야 여러 개의 머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지식 정수를 드롭할 가능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셈이다.

‘드롭률이 떨어진다고 해도 많이 잡다보면 결국 원하는 걸 얻게 될 텐데... 리스폰 간격을 단축시키는 방법은 없나?’

조금이라도 더 빨리 부활 시켜서 조금이라도 더 많이 죽이고 싶다...

대악마 입장에서 봤을 땐 정말이지 악마 같은 발상일 것이다.

“어머, 요즘 방문이 잦으시네요?”

엘리자베스의 공방에 입장하자 그녀가 반겨주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감을 보면, 이제 그녀가 삼촌보다 부자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흐뭇하게 웃은 그리드가 보석이 잔뜩 담긴 주머니를 엘리자베스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에요?”

“열어 봐.”

“히에엑...”

엘리자베스가 경악했다.

국보(國寶)급 보물을 만들 때 쓰이는 보석의 등급이 최상급이다. 최상급 보석만 해도 뛰어난 잠재력과 아름다움을 지녔고 그만큼 진귀했다.

한데 극상급 보석이라니.

세공사 장인인 엘리자베스도 극상급 보석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건... 마스터 레벨의 연금술 시설에서도 생산 확률이 0.5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들었는데...”

심지어 최상급 보석을 재료로 써야한다.

극상급 보석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선 최상급 보석이 필요하며, 제작 실패 시 재료로 쓴 보석의 등급이 격하됐다.

그런데도 생산 확률이 0.5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건 사실상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나마 연금술 시설의 레벨이 마스터가 되지 않으면 시도조차 못한다는 게 위안 아닌 위안이었다.

“대악마들이 종종 떨구더라고.”

“와...”

그리드의 지옥 정벌 소식은 엘리자베스도 매일 접하고 있었다.

TV만 틀면 오늘은 몇 위 대악마가 토벌 당했느니 속보가 떴고, 인터넷 인기 검색어는 대악마 이름들로 도배됐으니 관심이 없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유라 언니의 랭킹도 엄청 올랐다던데. 지옥은 여러모로 쏠쏠한 동네네요.”

“응,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

아마 조만간 사람들은 지옥에 대해서 오해하게 될 것이다.

지옥을 기회의 땅으로 착각한 수많은 사람들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지옥에 도전하리라.

...그리고 절망할 테지만, 그리드는 모르는 일이었다.

“어때? 쓸 만한 장신구 좀 만들 수 있겠어?”

“음... 극상급 보석으로 만드는 것들은 기대를 걸어볼 만해요. 부조리의 반지급을 만드는 건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하지만, 도란의 반지보단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라고 확신해요.”

워낙 초반부터 사용했기 때문에 간과할 수도 있는 사실이지만, 도란의 반지는 등급에 비해서 굉장히 좋은 아티팩트다.

속성 저항력을 높여주고 중독, 저주를 회복시켜주는 것으로 모자라 입은 데미지의 절반을 즉시 회복하는 아티팩트보다 좋은 물건이 세상에 몇 개나 되겠는가?

유니크 등급이라는 태생적인 한계 탓에 방어력이 전혀 붙지 않은 게 단점이었지만 그리드는 여전히 도란의 반지를 애용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부탁할게.”

“원하는 형태나 옵션은요?”

“순전히 네 영감에 맡길게. 시간은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까 되도록 훌륭한 물건을 만들어줘.”

의뢰를 맡긴 그리드가 곧바로 공방을 떠났다. 기껏 부탁하는 주제에 용건만 남기고 떠나는 건 조금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리드는 엘리자베스의 성격을 알고 있다.

그녀는 나를 닮았다.

내가 지금 당장 대장간으로 달려가 철을 달구고 싶은 것처럼, 그녀 또한 어서 보석을 세공하고 싶으리라.

“대장!!”

“어?”

서둘러 대장간 지구로 향하던 그리드가 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자 숨을 헐떡이는 엘리자베스가 보였다.

여기까지 쫓아오느라 온 힘을 다해서 달려온 눈치다.

“할 말이 있으면 귓속말로 하지 왜...”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서요.”

“....”

결의에 찬 표정이다.

엘리자베스가 어떤 중요한 결심을 했음을 눈치 챈 그리드가 상냥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뭔데? 부담 갖지 말고 말해.”

“그게...”

엘리자베스는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드는 묵묵히 기다려줬다. 바삐 움직이는 마차들에 혹 치여 다칠까,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지키듯 선다.

“그...”

한참을 망설이던 엘리자베스가 꿀꺽, 마른 침을 삼키더니 용기를 쥐어짜 말했다.

“보석, 다 부숴먹어도 괜찮나요?”

“...응?”

이건 예상 못했다.

당황하는 그리드에게 엘리자베스가 설명했다.

“사실 얼마 전에 엄청난 기연을 만났거든요. 마력기관을 만들 때 필요한 부속품들의 제작 의뢰를 맡았는데, 그 사람이 만들려는 마력기관은 여태껏 본 적 없던 최고의 성능을 자랑할 게 분명했어요. 대장이 허락만 해주신다면 그걸... 만들어 보고 싶어요...”

“설계도는 있고?”

“부속품을 만들면서 유추해낸 수준이에요. 그래서 아마... 보석들을 다 날려먹을 확률이 높아요.”

“...극상급 보석도?”

“네... 극상급 보석이 없이는 시도조차 못할 거라... 아, 허락 안 해주셔도 이해해요. 제가 지금 얼마나 염치없는 부탁을 하는 중인지 잘 알고 있거든요.”

“해봐.”

“네?”

“그게 옳다고 생각하면 해. 최대한 협력해줄 테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그리드는 체다카 길드에 가입하고 나서야 날개를 펼쳤다.

자신을 믿어준 동료들이 값비싼 재료들을 맡겨준 덕분에 기회를 얻고 실패든 성공이든 경험할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들이 지금의 그리드를 만든 것이다.

이젠 그리드가 제2의, 제3의 그리드를 만들 차례였다.

“고마워요, 대장!!”

기뻐서 폴짝 뛴 엘리자베스가 그리드를 힘껏 끌어안았다.

템빨단의 뿌리가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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