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327화 (1,317/1,794)

템빨 67권 - 05화

저마다 다른 형태와 색으로 점멸하는 폭발의 연쇄. 끔찍한 살육의 증명이건만 아름답다.

홀린 듯 화면을 바라보는 임원들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갔다.

파도처럼 뻗어나간 적색이 다른 폭발들을 모조리 집어삼키며 화면을 잠식하고 있었다.

십만대군 학살검, 필멸검, 봉쇄검.

그리드가 염룡검으로 재현한 십만대적검이 만들어낸 광경이다.

타오르는 불꽃같은 검광에 베이고, 분쇄 당한 수백 마리의 마물이 자신이 흘린 피에 익사하는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윤상민 이사가 우려를 표했다.

“무패왕의 검술은... 너무 강합니다.”

꾸준히 발전해온 20억 플레이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하는 중이다.

몬스터를 일격에 쓰러뜨리는 공격력, 태산처럼 굳건히 버티는 방어력, 인지 능력을 기만하는 속력, 고난도의 마법을 캐스팅하는 지력.

그것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드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의 꺼지지 않는 열정이 수많은 히든 클래스를 밝혀냈고, 4차 전직의 시대를 맞이한 노말 클래스는 히든 클래스와 대등한 위치에 올라서고 있었다.

공격력 계수가 2,000퍼센트를 초과하는 궁극기를 습득한 플레이어가 속속들이 등장했으며, 악명 높은 보스 몬스터들의 레이드 시간은 매일 새롭게 단축됐다.

그리드가 세워온 수많은 기록들.

영원불멸할 것 같았던 기록들이 하나, 둘씩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리드와 대적할만한 플레이어가 등장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직업과 칭호의 진화, 새로운 아이템의 출현 같은 외적인 요소들 덕분에 플레이어들의 평균 성장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을 뿐이다.

S.A가 그토록 집착해온 ‘밸런스’가 아주 천천히, 느리지만 착실하게 잡혀나가는 느낌이었다.

한데 이때 그리드가 십만대적검의 원본을 획득해버렸다.

윤상민 이사는 그리드와 다른 플레이어 간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희망적인 관측이 무색해지는 걸 염려하는 걸까?

“무패왕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모르는 겁니까? 고작 대악마 따위가 무패왕의 검술을 드롭한다는 허술한 설계를 이사회가 용납할 것 같습니까?”

윤상민 이사가 대악마 단탈리안을 디자인한 개발팀 직원을 질책했다. 하지만 개발팀은 임철호 회장이 직접 관리, 감독하는 조직이다. 윤상민 이사가 위협해봤자 제이콥 수석디자이너는 눈 하나 깜빡 안 했다.

“단탈리안은 진리에 근접한 몇 안 되는 존재 중 하나입니다만. 운영이사님이야말로 단탈리안에 대해서 잘 모르시나보군요.”

“단탈리안이 장장 천년 동안 지식에만 집착해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많은 지식을 쌓았다고 해서, 지혜롭다고 해서 세계관 최강의 검술을 습득했다는 논리가 옳다고 봅니까? 그런 논리면 Satisfy의 강자들은 죄다 학자겠는데요.”

“단탈리안의 지식은 권능의 영역인데 어딜 학자랑 비교합니까? 심지어 단탈리안은 자신이 직접 무패왕의 검술을 재현하진 못했습니다. 다만 이론적으로 이해했을 뿐이고, 지식으로 정립해놨을 뿐이죠.”

“그걸 하필 그리드가 얻었고 말이죠? 하.”

“....”

윤상민 이사가 그리드의 오랜 팬이라는 건 업계에서 유명한 사실이다. 한데 그가 작금의 상황에 탄식하고 있다. 이쯤 되자 제이콥 수석디자이너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사실을 그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지식 정수에서 십만대적검이 나올 확률은 4.2퍼센트에 불과했는데... 그리드의 운이 너무 좋았다고 밖에는...”

“애초에 그런 기믹이 왜 존재했느냐, 이 말입니다. 전대 전설들의 스킬을 드롭하는 단탈리안의 가치는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는데 굳이 무패왕의 검술까지 미끼로 내놓아야 했습니까?”

“단탈리안이 전대 전설들의 기술에 정통했다는 설정이므로 무패왕의 검술도 포함시킬 수밖에 없던 겁니다. 설령 어떤 변수를 초래할지언정 설정은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게 개발팀의 규칙이기 때문이죠. 그건 Satisfy를 관통하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설정을 지키지 않거나 오류를 범할 경우 플레이어들의 몰입도가 깨지기 시작할 테고 결국 Satisfy도 게임에 불과하다는 귀결에 이를 우려가 있으니까요.”

“변수가 발생시키는 문제점은요?”

“플레이어들이 스스로 감당하고 극복하리라 믿으며 감수해야죠. 바로 그런 점이 자유도를 보장하는 요소 중 하나인 겁니다.”

“그게 개발팀의 입장인 겁니까?”

윤상민 이사의 시선이 임철호 회장에게 향했다.

임철호 회장은 침묵했다. 윤상민 이사의 해석을 긍정하는 것이다.

한숨 쉰 윤상민 이사가 말했다.

“운영팀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제이콥 수석디자이너가 자꾸 설정을 운운해서 하는 말인데, 마드라의 전설은 후세에 구전될수록 신화가 되어간다는 설정이지 않습니까?”

십만대적검의 스킬 등급은 신화다. 만약 누군가가 그리드의 상태창을 볼 수 있다면, 그가 익힌 십만대적검의 등급은 SSS도, 가변성을 지녔다는 의미의 물음표도 아닌 열람 불가로 표기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서사시의 마검사 덕분에 신이 된 그리드가 직업과 관계없는 신화 스킬까지 추가로 얻은 겁니다. 그건... 파그마의 후예 시절 그리드가 다른 전설들의 스킬들을 얻었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파장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플레이어가 신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마왕을 토벌해 세계를 구원한 용사도 영웅이라고 칭송 받게 마련이다. 세계를, 인류를 수차례나 수호해낸 위대한 플레이어를 신이 아니면 무엇이라 칭송할까.

모르페우스는 언젠간 반드시 그리드 같은 플레이어가 등장할 것을 예측했고, 그러므로 신화 등급 클래스를 처음부터 안배했었다.

그리고 신화는 전설보다 강력하다.

한 명의 플레이어가 2개의 신화적 힘을 갖게 되었다간 전능감마저 느낄 것이다.

“윤 이사, 도대체 뭘 그리 걱정하는 게요? 설마 다른 플레이어가 그리드를 영영 따라잡지 못할까봐 불안해하는 거요? 이제 와서?”

잠자코 듣고 있던 다른 임원들이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윤상민 이사의 격정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리드와 플레이어 간의 격차를 논하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무의미해지지 않았소?”

정확히는 서사시의 마검사를 손에 넣은 뒤부터였다.

신화 클래스 전직자의 경쟁자는 같은 플레이어가 아닌 초월적인 상대들로 상정하는 바.

신이 된 그리드가 서사시의 마검사를 신화 등급에 도달하기 직전까지 성장시킨 지금에 이르러 다른 플레이어와의 격차를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가 우려하는 건 그리드가 변질 될 가능성입니다.”

윤상민 이사가 그리드의 팬이 된 계기는 그의 선택과 행동이 대부분 올곧았기 때문이다.

그리드는 입이 거칠고, 욕심이 많고, 불만도 많은 성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서대륙 최고의 권력과 무력을 손에 넣고도 그 힘을 함부로, 저질스럽게 휘두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실제 세계사에 등장하는 수백, 수천 명의 국왕들이 어떤 식으로 권력을 휘둘렀었는지 참고해 봤을 때 그리드는 거의 성인군자였다.

하지만 무패왕의 검술은 너무 강력했다.

단순히 칼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수천, 수만을 학살할 수 있는 인간이 언제까지고 초심을 지킬 리 만무했다. 그리드가 힘에 도취되어 타락할 가능성이 100퍼센트에 가깝다는 게 윤상민 이사의 추측이었고 염려였다.

“하나만 묻지.”

회의 내내 조용히 있던 임철호 회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운영이사에겐 플레이어가 정당하게 얻은 능력을 빼앗을 권리가 있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새로운 정책을 세워서라도 무패왕의 검술을 제재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Satisfy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올바른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S.A그룹은 여태껏 그 어떤 단체나 개인의 호소도 들어주지 않았네. 운영진이나 이사회의 판단이 어떻든 자체적인 업데이트를 진행한 적도 없고 모든 흐름을 모르페우스와 플레이어들에게 맡겼지. 한데 이제 와서 정책을 바꿔 회사가 Satisfy에 개입하면 어떻게 될까? 여태껏 정책을 이유로 방임했던 모든 사안들에 책임을 져야할 텐데 윤 이사가 감당할 수 있나?”

“그, 그건... 제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윤상민 이사가 꼬리를 말았다.

자신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이치에 맞지 않는 헛소리를 지껄였단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임철호 회장과 임원들이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온갖 형태와 색의 폭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드와 사자들의 파괴 행진이 만들어내는 현상이었다.

개의 아가리를 제외한 20번대 지옥 전체가 고작 일주일 만에 템빨단에게 함락 당했다.

“과연...”

임철호 회장이 쓰게 웃었다.

오랫동안 그리드를 지켜봐온 그는 그리드를 신뢰했지만 이번만큼은 걱정이 앞섰다. 윤상민 이사의 우려를 충분히 납득했다.

하지만 회사가 개입하는 순간 Satisfy의 수명이 급격히 떨어질 거란 사실을 그는 알았다.

그리드가 새로운 힘에 도취되어 끔찍한 폭군이 될지언정 다만 지켜보는 게 회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이다. 설령 그리드가 폭군, 혹은 악신이 될지라도 별 문제가 없다는 믿음이 저변에 깔려있기도 했다.

새로운 악의 등장엔 모르페우스가 대응할 테니까.

또 다른 누군가가 그리드의 역할을 대신해주게 될 것이다.

***

단 하나의 스킬이 출현했다는 이유로 S.A그룹이 발칵 뒤집힌 그때.

‘시원시원하네.’

그리드는 소탈한 감상을 느끼고 있었다.

전능감?

전혀 느끼지 못했다.

몬스터를 스킬 한두 방에 해치우는 경험이 그리드에겐 조금도 특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어디 한두 번이여야지.

만약 십만대적검의 파괴력이 물리 공격력에 비례하는 게 아니라 입힌 피해량에 비례했다면 또 모를까, 낙월검의 효과도 딱히 누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드는 극적으로 강해졌다는 자각이 없었다.

대악마를 후려 팰 때 오지게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세진 것 같긴 했지만... 고작 이 정도로 힘에 도취되기엔 여태까지 그가 너무 강했다.

[20번 지옥에 입장하였습니다.]

“음...”

드디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그리드가 사뭇 긴장했다.

벼락이 번지는 새카만 하늘과 스틱스, 레테 따위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강. 날카로운 바람에 섞이는 영혼들의 절규.

20번 지옥은 통상적으로 떠올리는 지옥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낸 듯한 모습이었다.

소용돌이치며 원을 그리는 다섯 개의 지류 중심에 우뚝 솟은 동굴의 모습이 특히 압권이다. 어지간한 성보다 거대한 그것은 아가리를 힘껏 벌린 개의 두개골을 닮아있었다.

“설마 저게 성인가?”

접근하기 굉장히 까다로워 보여 자연히 떠오르는 의문이었다.

천혜의 요새 같다.

공교롭게도 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거예요. 글런트가 20번 지옥을 개의 아가리라고 부르곤 했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요.”

붉은 피부의 악마 글런트.

비록 대악마는 되지 못했지만 연륜이 깊은 그는 든든한 조언자였다. 지금쯤 앞치마를 두르고 불멸의 성을 청소하고 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린 그리드가 사자들에게 물었다.

“페널티는 어때? 많이 심해졌어?”

“근력과 체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느낌입니다. 움직임도 크게 둔해졌고 사고도 원활하지 않군요.”

피아로가 솔직하게 말했다. 이견을 제시하는 사자가 없는 걸 보아 상황이 모두 비슷해 보였다.

‘50퍼센트 이상의 페널티를 받고 있는 건가...’

페널티를 감소시켜주는 수단과 방법을 모조리 동원했는데도 저 정도라니... 헬가오와 재회했을 때 얻었던 <제9위 대악마도 알아보는> 칭호가 얼마나 훌륭한 보상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이번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면 사자들에게 헬가오 레이드를 지시해야겠어.’

지옥 명성 시스템을 활성화 시키는 <제9위 대악마도 알아보는> 칭호는 다수의 대악마를 처치한 뒤 헬가오 레이드에 2회 이상 도전할 때 활성화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메르세데스는 다음 레이드 때 바로 얻겠지만 다른 사자들은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 그때까지 나는 한동안 대장간에 틀어박혀 있어야겠군.’

대악마들을 해치우고 얻은 부산물이 제법 쏠쏠했다. 특히 보석류가 많아 액세서리를 대부분 신상으로 교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봤자 부조리의 반지만큼 뛰어난 액세서리를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지금 엘리자베스의 실력으로는 브라함과 연금술의 도움을 받아도 어림도 없겠지.’

엘리자베스의 실력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대마법사 파울드의 실력이 워낙 훌륭했다. 아티팩트 제작에 있어서는 브라함도 몇 수나 접어뒀을 정도라니 말 다했다.

선두에 선 그리드가 이동을 개시했다.

사자들이 20번 지옥에 입장하자 더 큰 페널티를 겪게 된 상황이었지만 딱히 긴장감은 없었다.

21번 대악마의 전투력이 단탈리안과 비슷했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20번 대악마도 거기서 거기일 거라는 판단이었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는 걸 피해야하기도 했다. 위치가 발각되는 즉시 바르바토스가 추적해올 확률이 높았다.

‘이상하게 평화로운 곳이군.’

요새를 둘러싼 지류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마리의 마물도 나타나지 않았다. 고요하다고 표현하기에는 영혼의 절규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유라.”

그리드가 유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슨 뜻인지 알아 들은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그리드의 손을 붙잡았다.

스윽.

그리드가 유라를 품에 안았다. 유라는 갑옷을 무장하고 있었지만 그리드의 체격이 워낙 좋아 품에 쏙 들어왔다.

“가자.”

신호한 그리드가 용의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브라함, 네펠리나, 지크프렉터는 마법으로 몸을 띄웠고 메르세데스와 사리엘은 은익과 천사의 날개를 펼쳤다.

...땅에 콩을 심고 물을 주던 피아로의 몸도 두둥실 떠올랐다. 보다 못한 브라함이 중력 마법으로 띄워준 것이다.

일행이 강을 넘기 시작했고,

크르르...

짐승의 숨소리가 메아리친다 싶더니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열기의 근원은 개의 아가리라고 불린다는 동굴 안쪽.

일행 전원 반사적으로 산개했다.

쿠콰콰콰콰콰콰쾅!!

동굴에서 불길이 솟구쳐 나왔다.

염룡검으로 십만대적검을 재현할 때 그려지는 불꽃의 검광과 흡사한, 말인 즉 드래곤의 브레스를 연상시키는 기세의 불길이었다. 번지는 속도가 워낙 빨라 능력치가 하락한 상태인 사자들은 피하기 버거웠다.

제멋대로 발동한 초월경에 의지해서 전면으로 나선 그리드가 이십만대군 분쇄검을 써서 화염을 소멸시켰다.

콰아아앙!!

불꽃이 튀어나온 지점까지 날아간 검기가 폭발을 일으킨다.

뿌옇게 일어나는 흙먼지 속에서 거대한 개 한 마리가 걸어나왔다.

대가리가 3개 달린 켈베로스였는데 여태껏 보았던 켈베로스보다 족히 100배는 컸다.

더욱 시선을 끄는 건 놈의 등위에 올라탄 대악마였다.

흑색의 갑주를 무장한 그의 붉은 안광이 그리드 일행을 쭉 둘러본다.

“...한 놈을 제외하면 하찮은 쓰레기들이군.”

페널티를 입고 있기 때문일까.

사자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박하다.

“호오... 살면서 들은 개소리 중 가장 웃기는 개소리군.”

미간을 찌푸린 브라함이 황당해서 실소한다. 그가 즉시 마법을 캐스팅했지만 지옥의 억압이 마나의 흐름을 느리게 만들었다. 그의 마법이 발현되기도 전에 켈베로스가 토한 불길이 먼저 덮쳐왔다.

콰르르륵!!

3개의 아가리에서 동시에 토해진 불길이다.

위력과 범위 모두 처음에 쐈던 하나의 불길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다.

‘이런 썩을.’

사자들을 전부 다 지키는 건 힘들 것 같다. 각자 잘 버텨주길 비는 수밖에.

유라를 더 강하게 끌어안은 그리드가 회를 전개해서 불꽃의 일부나마 거두려는 순간이었다.

“이곳은 아직 이르오.”

중절모 쓴 신사가 다가오는 불길을 등지며 나타나 손가락을 퉁겼다.

그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이름이 ‘마르바스’라는 사실을 스치듯 본 그리드의 시야가 좌우로 쭉 늘어지더니 이내 암전되었다.

[지옥 유수의 권력자가 당신을 지옥에서 추방했습니다.]

“....”

그리드 일행이 인간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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