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325화 (1,315/1,794)

템빨 67권 - 03화

[+8 가희의 검이 찬란하게 빛납니다.]

[강화에 성공하여 +9 가희의 검을 획득하였습니다.]

“...떴어!!!”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결과물을 확인한 케이지가 환호했다.

전재산을 건 도박에 성공한 것이다.

힘들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눈물이 흘렀다.

‘이것마저 실패하면 게임 접혔을 것 같은데...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케이지는 운이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었다. 남들과 똑같이 노력하고 도전해도 결과는 늘 최악. 매번 좌절을 겪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레이드 공대에 메인 딜러로 참가해 고생이란 고생은 다해놓고 마지막 주사위에서 ‘1’이라는 숫자를 뽑고 말았다. 힘겹게 잡은 보스가 그토록 원했던 아이템을 드롭했건만, 아이템에 입찰할 권한 자체를 잃은 것이다.

언제나처럼 운이 나빴다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너무 분했다.

운이 나쁜 것도 한두 번이여야지

왜 매번 나한테만 이런단 말인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케이지가 평정심을 잃었다.

싸구려 포션으로 연명하며 꾸역꾸역 모아온 골드를 몽땅 털어서 거래소의 강화석을 대량으로 매입했다. 그리고 언젠가 시세가 오르길 고대하며 창고에 모아놨던 레어 등급의 아이템들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강화석만 날렸다.

이성을 잃기에 딱 좋은 전개였다.

그리고 진짜로 이성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애용해온 장비를 모조리 지르고 난 뒤였다. 아이템 강화수치가 하나도 남김없이 기본 수치로 떨어진 상태였다.

멀쩡한 건 무기뿐이었다.

대출까지 받아서 구매했던 유니크 등급의 무기.

질렀다.

8강이 떴다.

고작 1의 강화 수치가 더해진 것으로 아이템의 가격은 4배로 폭등했다.

멈출까?

수십 번을 더 고민하고 망설인 끝에, 여기서 멈추기엔 애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손해를 복구하기엔 아직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질렀다.

9강이 떴다.

아이템 가격이 8배 폭등했다.

Satisfy를 플레이하고 5년 만에 처음으로. 정말로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푼돈이 아닌 거금을!

“하하! 하하하핫!!”

드디어 나도 꽃길을 걸어보는 구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는 케이지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시간이 역행합니다.]

“...?”

케이지의 웃음이 뚝 그쳤다.

찬란한 빛을 내뿜던 +9가희의 검이 빛을 잃기 시작했다. 두 눈을 비벼봤다. 가희의 검의 강화수치가 +7로 돌아와 있었다.

“뭐, 뭐야 시발 으아아아아악!!”

도시 곳곳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케이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이 작은 도시에만 수십 명이었다.

***

“...하여 우리는 정확한 해명과 배상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초췌한 얼굴의 사내가 성명문의 마지막 문장을 읽는다.

무려 수백 명의 기자들 앞에서, 감히 S.A그룹을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선포한 그는 자신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너무 긴장되고 두려운 나머지 머리가 핑핑 돌고 토악질이 올라왔다.

하지만 <백섭 피해자 연대>의 대표로 선출 된 몸이다. 그는 물러설 수 없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굳건한 표정으로 수백 대의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의 용기에 화답하듯, S.A그룹이 즉각 입장을 발표했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정상적인 게임 진행 중에 발생한 현상이다. 배상은 없다.

“대기업의 횡포다!”

백섭 피해자 연대가 S.A그룹의 태도를 강력하게 지탄했다. 사람들은 피해자 연대를 동정했다. 하지만 동정의 수준에서 그쳤다. 피해자 연대를 돕자는 여론은 형성되지 않았다.

S.A그룹의 말대로 이번 롤백은 정상적인 게임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드와 템빨단이 대악마 단탈리안을 레이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S.A그룹이 보상해줄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이번 백섭 현상으로 인해 오히려 이득을 본 사람이 많았다.

피해자 연대만 불쌍하게 됐다.

***

‘내가 다 민망하네.’

잠시 로그아웃했다가 돌아온 그리드가 헛기침했다.

시간 역행 탓에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수만 명이라는 뉴스를 본지라 마음이 찝찝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S.A는 피도 눈물도 없구나.’

배상을 안 해주는 건 이해한다. 단탈리안의 시간 역행은 S.A의 주장대로 정상적인 게임 시스템이었으니까.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위로의 말 한 마디 정도는 건네줘도 되는 거 아닌가? 설령 그것이 가식일지언정, S.A그룹이 피해자들의 마음이나마 달래줬다면 중간에 끼인 자신이 이렇게까지 민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혀를 차던 그리드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S.A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만약 S.A그룹이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건넸다면, S.A그룹이 잘못을 인정해서 사과한 거라고 확대해석하는 무리가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불똥은 그리드에게까지 튀었을 테지.

피해자들에게 여지를 주지 않은 이번 S.A그룹의 대처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리드에게 잘 된 일이었다.

‘뭐가 됐든 더 이상 생각할 가치는 없어. 우리 길드원 중에는 다행히 피해자도 없고.’

그리드가 대전으로 이동했다.

“브라함은 아직인가?”

맑은 수정으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동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아름다운 성.

알고 보니 불멸의 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25번 지옥 성의 소유주는 단탈리안에서 유라로 바뀌었다.

하지만 왕좌에 앉는 사람은 그리드였다. 유라가 한사코 상석을 양보했다.

“지금 왔다.”

“아니 좀 빨리빨리 다녀요.”

뒤늦게 입장한 브라함에게 그리드가 핀잔을 줬다. 브라함 탓에 지식 정수의 습득이 늦어지고 있었으니 조금 짜증이 난 상태였다.

“이 성에 각인된 마법 술식은 총 193개다. 그중 3개의 술식은 자력으로 결합하며 실시간으로 새로운 술식을 창조하고 있지. 이 살아 숨 쉬는 예술품을 눈앞에 두고도 네놈은 아무런 감흥이 없는 거냐?”

브라함이 꼬박 이틀 동안 자리를 비웠던 이유다.

브라함은 불멸의 성에 매료되었다.

수백 년 단위를 살아온 그조차도 단탈리안의 천년 지식이 만든 결과물엔 경외심을 느끼는 것이었다.

“뭘 알아야 감흥이 일죠.”

당당하게 대답한 그리드가 메르세데스와 피아로, 그리고 유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음의 준비들은 됐어?”

“네.”

단탈리안의 지식 정수는 전대 전설의 스킬을 무작위로 지급한다.

그중엔 비전투 스킬도 있었다.

비전투 스킬의 특징은 성장 잠재력을 올려주는 것이니 그걸 꽝이라고 표현해선 안 되지만... 메르세데스, 피아로, 유라는 전투 스킬을 원했다.

무패왕의 검술과 브라함의 마법 등, 이미 많은 전투 스킬을 보유한 그리드와 달리 그들의 전투 스킬은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긴장됐다. 원치 않는 스킬을 얻게 될까봐 정수를 쓰는 게 두려웠다.

성을 둘러보고 올 동안 정수를 쓰지 말고 기다리라던 브라함의 이기적인 요구가 반가웠을 정도다.

“어서 시작해라.”

브라함이 재촉했다.

그리드와 사자들이 어떤 스킬을 얻게 될지 꽤 흥미로운 눈치였다.

그리드가 혀를 내둘렀다.

‘저러니까 친구가 없지.’

불멸의 성을 살펴보느라 이틀이나 자리를 비웠던 브라함.

그가 그리드와 사자들에게 정수를 쓰지 말고 대기하라고 했던 이유는 순전히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서였다. 그는 그리드와 사자들이 어떤 스킬을 얻게 될지 직접 구경하고 반응을 즐기기 위해서 간식까지 준비해온 상태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브라함을 마냥 얄미워할 수가 없었다.

브라함은 이틀 동안 놀다 온 게 아니다. 수정마다 각인된 마법을 분석하고 그 대가로 지력이 대폭 상승해서 돌아왔다.

이번엔 우리 차례다. 우리가 강해져서 동료들을 기쁘게 해줄 차례다...

“뭐 이리 뜸을 들이느냐.”

어느새 브라함 곁에 앉은 네펠리나가 베이컨을 씹으며 재촉한다. 마치 영화 감상을 앞둔 관객처럼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그들을 노려봐준 그리드가 일행에게 말했다.

“시작하자.”

“네.”

네 사람이 단탈리안의 지식 정수를 꺼냈다.

짙은 파란색의 구슬.

마치 우주가 담긴 듯하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시선을 교환한 네 사람이 동시에 구슬 위로 손을 얹었다.

쏴아아아...!

구슬에서 쏟아져 나온 마력이 네 사람에게 깃든다.

이 순간에도 그리드는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무패왕의 검술이 나와 주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지.’

무패왕 마드라는 전설 중에서도 특별했다.

역대 최고의 재능을 타고났지만 활동 범위가 너무 한정적이었고 활동 연대도 짧았다. 단탈리안의 지식 속에도 무패왕의 검술은 없을 거라는 게 그리드의 판단이었다.

‘이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노릴 건 역시 뮐러의 검술이다.’

검이라는 도구를 손에 쥐는 순간 이치에 맞지 않는 결과를 창출하는 검성의 검술.

무쌍심법을 익힌 자신과 상성도 좋다.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말자.’

그리드는 이 패턴을 알고 있다.

장담컨대 크루제의 재단 기술이나 기스의 채광 기술이 나올 확률이 높다.

무언가를 강렬하게 염원할수록 결과는 항상 나쁘게 마련이었으니까.

“...!”

마음을 비우기 위해 노력하며 머릿속에 흘러들어오는 지식을 느끼던 그리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십만대적검을 습득하였습니다.]

무패왕의 검술을 얻은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그리드의 등골을 타고 올라오던 희열이 일순 차갑게 가라앉았다.

십만대적검.

십만대군 봉쇄검과 십만대군 학살검으로 구성 된 그 검술을... 그리드는 이미 습득하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그리드의 동공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최악의 전개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습득 중인 십만대적검을 대신해 크루제의 재단 기술이나 기스의 채광 기술로 보상이 갱신...

“...!”

깊어지던 그리드의 상념이 뚝 끊겼다.

그의 시야에 놀라운 알림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새로운 지식의 유입으로 당신이 습득 중인 십만대적검이 완전해집니다.]

[십만대적검 열화판이 원본으로 격상합니다.]

대박...! 초대박이다!

넋 나간 그리드의 쩍 벌어진 입에서 주르륵, 침이 흘러내리는 그때 피아로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저, 전하!! 신이 무쌍검법을...! 무쌍검법을 얻었나이다!!”

“뭣이...!”

그리드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검성을 꿈꿨으나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피아로가 한풀이를 하게 된 상황.

도대체 뭐지? 이 행운은?

그리드의 떨리는 시선이 메르세데스와 유라에게 향했다.

그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과 피아로가 얻은 행운의 여파로 그녀들이 크게 불행해지지 않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들 또한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드문 행운이 한꺼번에 몰려온 날이었다.

아무래도 백섭 피해자 연대가 제물이 되어준 느낌이었다.

“하하하!!”

그리드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무 신난 나머지 춤추듯 어깨를 들썩이며 대소를 터뜨렸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사리엘이 하프를 꺼내서 연주했다.

연주와 노래는 대천사의 기본 소양이었다.

아름다운 천상의 하모니가 지옥 한복판에 울려 퍼졌다.

미친 짓이었다.

[지옥의 모든 군주가 천사의 존재를 감지하였습니다.]

[깊은 마경의 군주들이 관심을 표합니다.]

깊은 마경.

한 자릿수 지옥을 표현하는 말이다.

“....”

그리드와 사자들의 시선이 사리엘에게 못 박혔다.

멀뚱멀뚱.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그들을 마주보던 사리엘이 삐질, 뒤늦게 식은땀을 흘렸다.

콰앙!!

어떤 거대한 충격이 불멸의 성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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