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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324화 (1,314/1,794)

템빨 67권 - 02화

‘서버를 롤백 시킬 정도의 네임드답게 역시 부자군.’

그리드는 우선 스탯 포인트부터 분배했다.

낙월검을 만든 뒤론 포인트를 킵하는 습관을 버렸다. 기존에 남겨뒀던 260여개의 포인트도 이미 근력과 민첩성에 투자한 상태다.

‘민첩에 찍자.’

3개의 레벨을 올리고 얻은 포인트는 총 54개. 그중 6개는 서사시의 마검사의 영향으로 근력에 자동 분배됐고, 24개는 지공의 영향으로 지력에 자동 분배됐다. 근력과 민첩의 황금비를 유지해야하는 그리드는 자연스럽게 민첩에 신경 썼다. 남은 포인트는 체력에 올인했다. 그리드와 상성이 가장 좋은 스탯이 체력이다. 다양한 생존 수단을 강화시켜준다.

‘음... 스탯 비율을 좀 더 다양하게 테스트하고 싶은데.’

현재 대중적으로 알려진 황금비 스탯은 근력과 민첩의 1대1 비율이다. 근력과 민첩의 수치가 각 2천 이상, 지력과 체력이 800 이상일 경우에만 발현되는 효과이며,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더 많은 황금비 스탯이 존재할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3개, 4개 스탯이 황금비를 이룰 수도 있다지 아마.’

물론 숨겨진 조건들을 충족시켰을 때의 이야기다.

각 스탯이 일정 수치에 도달한 상태로 어떤 비율을 이루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스탯 초기화가 가능하면 좋을 텐데.’

그리드는 근력, 지력, 체력, 민첩 4개의 기본 스탯만 해도 엄청 높다. 이 스탯들을 초기화할 수만 있다면 다양한 분배 실험을 통해서 숨겨진 황금비를 밝혀내는 게 가능했다.

이대로 영영 초기화가 불가능하다?

그럼 새로운 황금비는 운 좋은 놈들만 독식하게 될 테지.

‘이미 누군가는 내가 모르는 황금비를 이뤘을 수도 있어... 쩝, 쓸데없는 캐시템 말고 스탯 초기화권이나 출시하면 안 되나?’

야탄교에 가입해야만 구매 가능한 유료 아이템들을 떠올린 그리드가 치를 떨었다. 밸런스를 핑계로 종교를 차별하는 S.A그룹의 행태가 괘씸했다.

하지만 이내 기분을 풀었다. 단탈리안이 드롭한 아이템들을 보자 절로 행복해졌다.

‘일단 단탈리안의 검과 지팡이.’

단탈리안은 인계에서 죽었을 때도 검과 지팡이를 드롭했었다. 제법 훌륭해서 메르세데스와 브라함에게 하사했다.

‘하지만 2프로 부족한 느낌이었지.’

그리드가 단탈리안의 검과 지팡이의 상세 정보를 불러왔다.

훌륭했다.

인계에서 드롭했던 검과 지팡이의 완벽한 상위호환이었다.

‘명실상부 1티어 아이템이군.’

활용도를 고려했을 때 그리드의 신검과 비견될 정도다.

기본 능력치는 신검에 미치지 못했지만 형태 변환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이점이었다.

검은 건틀렛으로, 지팡이는 서클릿으로 변형이 가능했고 이때 부가적인 기능이 생겼다.

건틀렛의 경우 착용 시 공격력과 비례해서 방어력이 상승했으며 사출이 가능했다. 로켓 펀치마냥 쏘아지는 것이다. 회수가 자동으로 이뤄지며 이때 경로상의 적을 공격했다.

그리고 서클릿은 지력에 비례하는 마나 실드와 스킬 데미지 증폭이 패시브로 유지된다.

‘단탈리안이 쓰고 있던 서클릿이 이거였나... 우선 사자들에게 쓰라고 줬다가 라인하르트로 돌아가서 분해해봐야겠어.’

이해도를 높일 생각이다.

여태까진 탐욕에 한정해서 아이템 변신 스킬을 쓸 수 있었는데 앞으론 변신 기능을 기본 옵션으로 탑재한 아이템을 생산 가능할 수도 있다.

‘탈수를 변신시키면 재밌겠군.’

멋대로 바뀌는 형태에 기겁할 탈수의 반응을 생각하자 속이 시원하다. 녀석은 요즘도 종종 까부는 경향이 있었다.

흡족하게 미소지은 그리드가 다음 아이템을 확인했다.

<단탈리안의 지식 정수>

등급:레전드리

전대 전설이 사용했던 스킬 혹은 마법의 정보가 담겨있는 지식입니다.

습득 시 전대 전설의 스킬 혹은 마법을 무작위로 습득합니다.

*한 사람당 1회만 사용 가능합니다.

★이미 보유 중인 스킬 혹은 마법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런 미친.’

깜짝 놀란 그리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만큼 대단한 아이템이었다.

이 낡은 두루마리를 펼치는 순간, 평범한 노말 클래스 플레이어가 파그마의 대장장이 기술을 배울 수도 있는 거니까.

단탈리안이 이런 아이템을 드롭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무려 4개나 드롭할 줄은 몰랐다.

‘4개나 드롭하길래 이건 별거 아닐 줄 알았는데.’

전대 전설의 스킬을 습득하는 기능은 <훼손 된 단탈리안의 서>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예상보다 훨씬 더 후하다.

씰룩.

그리드의 입 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이미 보유 중인 스킬 혹은 마법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그를 특히 기쁘게 만들었다.

사실 그는 전대 전설의 스킬이 나와도 하필 파그마의 스킬이 나오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다.

워낙 재수 없는 경험을 많이 해온지라 늘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S.A 놈들도 드디어 양심이라는 게 생겼군.’

그리드가 마지막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훼손 된 단탈리안의 서>

등급:레전드리(초월)

단탈리안이 천년 동안 쌓아올린 지식을 모조리 기술한 서적입니다. 지식의 결합은 때때로 미래를 읽는 기적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만, 현재는 내용의 80프로가 훼손 된 상태입니다.

습득 시 보유 중인 모든 스킬의 레벨이 1단계 상승합니다. 이미 마스터 레벨을 달성한 스킬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당 1회만 사용 가능합니다.

★<시간 역행>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헉.”

그리드가 헛숨을 들이켰다.

모든 스킬 레벨업.

꿈꿨던 보상이 진짜로 나와 버렸다.

여태껏 그리드가 얻어온 모든 보상을 통틀어 열 손가락에 꼽을만한 가치의 보상이었다.

심지어 ‘한 사람당 1회만 사용 가능하다.’는 안내 문구가 있다.

마치 단탈리안의 서가 여러 개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중에 단탈리안이 리스폰 되면 또 같은 보상을 드롭할 확률이 있단 뜻인가?’

초대박이다.

게다가 시간 역행까지 가능하단다.

‘시간 역행... 운영자급 권한...’

시간 역행은 서버를 롤백 시킨다. 엄밀히 따져서 운영자 이상의 권한이다.

아이템을 강화한 뒤 실패하면 롤백하고 성공하면 놔두고.

이 짓만 반복해도 모든 아이템의 궁극 강화를 노릴 수 있으리라.

잔뜩 흥분한 그리드가 시간 역행의 정보를 확인했다.

<시간 역행>

단 1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최소 5초 전에서 최대 3분 전까지 되돌립니다. 정확한 시간은 지정할 수 없으며, 사용 시 훼손 된 단탈리안의 서의 모든 지식이 소멸합니다. 이때 훼손 된 단탈리안의 서의 ‘모든 스킬 레벨업’ 효과가 삭제됩니다.

“....”

그럼 그렇지.

있어봤자 무의미한 스킬이다.

단 1번밖에 사용 못할뿐더러, 사용하는 순간 많은 혜택을 잃게 되는.

‘이딴 스킬을 만든 인간은... 변탠가?’

줘도 안 쓸 스킬을 만들어서 데이터를 낭비하는 꼴을 보아 가학적인 취미가 있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쯧쯧, 혀를 찬 그리드가 일행을 돌아보았다.

대부분 흡족한 표정들이었다.

그들도 레벨이 올랐기 때문이다.

유라는 심지어 감격하고 있었다.

지옥을 정화할 때마다 보상을 얻는 그녀이니만큼 뭔가 큰 선물을 얻은 눈치였다.

‘대마력인가 뭔가가 강해진 느낌이군.’

그리드의 높은 통찰력이 유라의 변화를 감지했다.

그녀의 마력은 Satisfy에서 유일하게 옥빛으로 묘사되곤 했는데 색이 더 짙어졌다.

‘대마력은 마기에 대항하는데 특화 된 힘이라고 했지.’

신성력과 비슷한 듯 보이지만 성질도, 효과도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그 위력은 차차 알아가게 될 거다.

흐뭇하게 웃은 그리드가 일행의 공헌도를 확인했다.

이번 레이드의 기여도 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1위 그리드, 2위 브라함, 3위 메르세데스, 4위 네펠리나, 5위 사리엘, 6위 유라, 7위 지크프렉터, 8위 피아로.

그리드의 순위가 가장 높은 이유는 단탈리안이 성에서 나오게끔 강제했다는 점에서 추가 공헌도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브라함이 2위인 것도 쉽게 납득됐다. 브라함의 마법 관조가 없었다면 단탈리안의 전투력은 배 이상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메르세데스의 순위가 네펠리나보다 높은 건 의외군...’

이번 전투 최고의 딜러는 네펠리나였다. 그녀는 아직 해츨링이라 브레스를 마음대로 쓰지 못했지만 가공할만한 위력의 충격파를 숨 쉬듯 토해냈고 단탈리안의 뼈와 살을 몇 번이나 분리시켰다.

반면 메르세데스의 검은 단탈리안에게 몇 번 닿지 못했다. 이번 전투에서 그녀의 역할은 서포터에 가까웠다. 그리드가 보다 수월하게 공격을 연계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한편 네펠리나의 충격파를 견제하는 단탈리안의 원거리 공격을 차단하는 식으로 전투를 운영했다.

‘아.’

전투를 복기해보던 그리드가 문득 깨달았다.

낙월검이 단탈리안의 목을 베는 순간마다, 그리고 5융합 검무를 전개할 때마다 단탈리안의 움직임이 미묘하게 둔해졌던 느낌이다.

‘메르세데스가 중력장을 써서 보조해줬던 거구나.’

과연 메르세데스는 보물이다.

그리드는 메르세데스에게 더 깊은 신뢰와 호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피아로를 보더니 안타까워했다.

피아로의 안색은 어두웠다. 가장 낮은 공을 세웠다는 사실에 회의감을 느끼는 듯했다. 딜링을 완전히 포기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단탈리안의 회복 방해에만 집중했던 지크프렉터보다 순위가 낮단 점이 특히 충격인 눈치였다.

‘피아로의 능력치가 다른 사자들에 비해서 낮긴 하지...’

피아로는 순도 100퍼센트의 인간이다. 메르세데스처럼 특수한 권능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자꾸 잊는 사실인데, 그는 농부다. 비전투 클래스였다. 다른 사자들과 비교해서 능력치가 낮은 건 당연했다.

‘게다가 이번 전투가 특히 피아로에게 불리했어.’

25번 지옥은 수맥에 용암이 흐른다. 대부분의 식물이 싹을 트기도 전에 불타 사라졌다. 급성장을 써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피아로는 단탈리안이 원거리 공격에도 능통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유라의 신변 보호에 집중하기도 했다. 오직 그리드에게 충성하고 헌신하는 메르세데스와 달리 연륜이 있는 그는 그리드의 주변까지 살피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피아로의 실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버프가 필요해.’

본래 그리드는 레이드 보상을 공헌도 순으로 나눌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생각을 바꿔서 피아로를 우선적으로 챙기기로 결정했다.

생각을 바꾼 배경에는 사자들의 특수성에 있었다.

브라함, 네펠리나, 사리엘.

우선 이 셋은 전대 전설의 스킬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다.

‘배우라고 해도 안 배우겠지.’

당연하다.

브라함은 마법사다. 마법 외의 스킬을 배워봤자 효율이 낮다. 그가 당장 검성의 검술을 배우면 뭐하나? 낮은 근력과 민첩성으로 휘두르는 검술 따위 아무런 위력도 내지 못한다. 심지어 브라함은 소드 마스터리 스킬도 없다.

그리고 네펠리나는 드래곤이다. 그녀의 입장에서 인간의 기술은 쓸모없는 잡기에 불과했다. 그녀는 성장함에 따라서 자연히 드래곤의 마법과 스킬을 개화할 테고 그것들의 위력은 전대 전설들의 기술을 가뿐히 초월한다.

‘사리엘의 경우도 비슷해. 대천사 고유의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입장이니 인간의 기술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

생각해본 그리드가 말했다.

“지식 정수 2개는 나하고 유라가 가질 거고, 나머지 2개의 정수는 메르세데스, 피아로, 지크프렉터 세 사람이 상의해서 나눠가졌으면 한다.”

놀란 유라가 손을 저었다.

“저는 됐어요. 저 말고 다른 사자 분들이 배우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에요. 애초에 제가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피아로 님의 도움 덕분이었고.”

그리드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지크프렉터가 말했다.

“그대가 양보할 필요 없다. 내게는 지식 정수가 필요 없으니.”

“어? 필요가 없다고요?”

“이 육체는 나의 화신에 불과하다. 칠악성 지크가 아닌 칠악성 지크의 화신인 지크프렉터라는 말이다. 결국 쓰다 버릴 소모품에 불과하니 전대 전설의 기술을 배우는 건 사치다.”

“아...”

그리드가 바로 납득했다. 유라도 더 이상의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리드, 유라, 메르세데스, 피아로.

이 네 사람이 정수의 주인으로 결정됐다.

단 하나뿐인 단탈리안의 서의 주인은 당연히 그리드였다.

그리드는 공평하게 공헌도 순위로 결정한 거라고 말했지만, 만약 공헌도 순위에서 밀렸어도 본인이 갖겠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주장할 필요 없이 사자들이 알아서 갖다 바쳤겠지만.

“일단 성에 드시죠.”

정복의 완성은 입성이다.

그리드가 얻은 전리품에는 당연히 흑수정 성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

메르세데스의 안내를 받아 성 앞에 다가선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굳게 닫힌 성문과 높이 올라간 도개교가 꼼짝도 안했기 때문이다.

네펠리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새로운 주인을 인정하지 못하겠나 보구나.”

피아로가 분개했다.

“제가 당장 콩나무를 심어서 성벽을 넘으시도록 하겠나이다.”

“....”

그건 너무 없어 보이지 않나?

기왕이면 멋있게 용의 날개를 펼칠까... 그리드가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저벅.

유라가 그리드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쏴아아아아아!!

흑수정 성을 중심으로 찬연한 옥색의 빛이 뻗어 나오더니 25지옥 전체를 휘감았다.

주인 잃은 지옥에 작용하는 데빌 슬레이어의 정화 의식이다.

드르르르르륵!

고고하게 서있던 도개교가 내려오며 성문이 활짝 열렸다.

성문과 성벽을 구성하는 흑수정이 모두 맑게 변해있었다. 모든 수정에 각인되어 있던 마기가 정화되고 순수한 마법 술식만이 남은 것이다.

그리드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지옥지부의 새로운 본거지로 손색이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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