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323화 (67권) (1,313/1,794)

템빨 6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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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67권 - 01화

““...!?””

목에서 잘려나간 단탈리안의 8개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16개의 시선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상황을 관찰했다.

템빨신, 해츨링, 대마법사, 칠악성, 대천사, 혜안의 주인, 데빌 슬레이어 등...

하나의 시대를, 혹은 세계를 거머쥘 자격을 지닌 자들이 굶주려 이성을 잃은 짐승마냥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었다.

‘이건... 예상외군.’

단탈리안은 영리하다.

템빨신이 거느린 사도들의 면면을 토대로 템빨신의 목적을 유추했다.

베리아체의 복수, 악룡 토벌, 아스가르드와의 전쟁 등...

마치 창세 신화 속의 주신들처럼, 템빨신은 어깨에 많은 짐을 짊어진 존재였다. 사도들의 염원을 이뤄주고 완전히 종속시키기 위함일 터였다.

‘템빨신은 필히 지옥을 정벌해야하는 입장이다. 나의 지식을 탐내야 정상이야.’

한데 이 상황은 뭐냔 말이다.

템빨신에겐 상식이 결여된 듯했다. 비정상이었다.

툭! 투툭!!

용암이 흐르는 뜨거운 바닥에 떨어진 8개의 머리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템빨의 신이여. 굳이 저를 죽일 필요가 있습니까? 왜 목을 벤 거냐? 나와 싸우기보단 협력하는 편이 네게 도리어 이득일 텐데?””

“무슨 근거로?”

““굳이 설명이 필요하오? 저의 지식과 힘은 필시 당신께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별로.”

““악마라서 불신하는 건가. 하면 제가 당신의 사도가 되어드리지요. 그럼 신뢰하실 수 있겠죠?””

“그다지.”

목 잘린 시체와 대화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당황하지 않았다. 명색이 대악마가 고작 머리가 잘려나갔다고 해서 죽을 리 없음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푸욱!!

단탈리안의 몸에 염룡검이 박혔다. 화염이 솟구쳤다.

8개의 머리가 불길에 휩싸인 자신의 육신을 보고 탄식했다.

““어리석군요. 하긴... 신이라고 해서 모두 지능이 뛰어난 건 아니지. 돼지처럼 울부짖기밖에 못하는 토착신도 더러 있을 정도이니.””

‘그놈 참 말 많네.’

노골적으로 지능이 떨어진다는 말을 듣자 울컥한 그리드가 5융합 검무를 전개했다. 단탈리안의 심장을 박살내고 오장육부를 모조리 찢어발겼다.

콰아앙!

네펠리나가 입으로 토해낸 충격파와 브라함의 마법이 단탈리안의 살과 뼈를 짓뭉갰다. 지크프렉터의 룬어는 단탈리안의 회복을 막았고 사리엘과 메르세데스는 단탈리안의 사지를 잘랐다. 피아로가 심은 콩나무를 타고 하늘 높이 이동한 유라의 저격은 바닥에 떨어진 8개의 머리를 차례대로 관통하며 파괴시켰다. 머리에서부터의 재생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단탈리안은 철저히 고립됐다.

그 어떤 악마도, 마족도, 마물도 그를 돕지 않았다. 흑수정 성 안에 틀어박힌 채 죽어가는 주인을 멀뚱멀뚱 지켜볼 뿐이었다.

‘지옥에도 충성이라는 개념이 있을 텐데?’

대부분 계약에 의거한 강제적인 충성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경계해야한다. 대악마와 대악마의 부하들은 운명공동체다. 단탈리안이 죽으면 단탈리안과 계약으로 엮인 악마와 마족들도 함께 죽거나 영혼이 타락해 버린다. 저기서 구경만 하고 있을 신세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상하군.’

그리드 일행은 이질감을 느꼈지만 그것이 공격을 멈출 이유는 아니었다. 그들의 공세는 계속됐고 단탈리안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소실한 시력을 마력으로 대체하여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종류의 공격을 읽고, 방어했으며 몸 주변으로 수십 개의 마법진을 형성해 반격했다.

마법을 관조하는 그리드와 브라함, 불완전하나마 절대 방어의 가호를 받는 네펠리나와 달리 나머지 사자들은 조금씩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단탈리안이 죽어가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기습을 당해 머리를 잘리고 시작한 단탈리안은 마력의 소비가 너무 컸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모든 생명력을 잃었다. 반격당할 걱정 없이 시원하게 저격을 연사하는 유라의 공로가 컸다.

단탈리안의 몸이 잿빛으로 흩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단탈리안의 권능으로 시간이 역행합니다.]

“...!?”

시스템 메시지를 본 그리드와 유라가 경악했다.

그리드의 사자들은 한 발 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혀를 내둘렀다.

단탈리안의 몸에서 잿빛이 걷히고 있었다. 잘렸던 팔 다리가 멀쩡하게 재생했고 크고 작은 상처들이 아물었다. 유라의 저격에 미간을 꿰뚫리고 소멸했던 8개의 머리도 어느새 다시 나타났다. 급기야 목으로 날아가 붙어버렸다.

역재생되는 영상을 보는 듯했다.

이내 완전히 회복한 단탈리안이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놈이 처음 등장했던 지점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리드 일행은 눈치 챘다.

자신들의 위치 역시 몇 분 전에 서있던 장소로 옮겨졌음을.

‘백섭이냐?’

무기라도 질러볼 걸 그랬나?

그리드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때 시간의 흐름이 정상화됐다.

““제게 미래란 역사입니다.””

혹자는 <단탈리안의 서>라고 칭하고 단탈리안 본인은 <미래의 서>라고 부르는 책.

단탈리안이 늘 소지하고 다니는 그 책은 어떤 희생을 대가로 미래를 보여준다. 미래의 범위를 특정하지 못해서 만능은 아니지만 사기적인 기능이 하나 있다. 현재를 ‘미래에 일어날 일’로 바꾸는 기능이다. 쉽게 말해서 시간을 되돌렸다.

물론 여기에도 제약은 있다. 시간을 되돌리는 시점을 선택하는 게 불가능했다. 몸이 멀쩡한 시점으로 되돌아온 것은 단탈리안 입장에서도 커다란 행운인 셈이다. 재수 없었으면 목이 잘린 시점으로 되돌아가서 시간을 역행시킨 의미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

‘게다가 대가도 크지.’

단탈리안이 큰 고통을 느꼈다. 그의 8개 머리 중 소년과 소녀의 머리가 검게 변색되더니 이내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러면서 상당량의 지식을 영구히 소실했다.

쯧, 혀를 찬 단탈리안이 급히 등을 돌렸다. 성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순간.

서걱━!

은빛의 검광이 날아와 단탈리안의 목을 베어 떨어뜨렸다.

“미래가 역사라는 게 무슨 개소리야?”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리드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어왔다.

단탈리안이 속으로 혀를 찼다.

‘순보로군.’

초월자의 과정을 밟고 올라온 신의 위용이라는 건가.

‘이놈은 보통 신이 아니다. 각오한 시련들을 모조리 극복하는 순간 주신의 반열에 오를 테지.’

단탈리안이 다시 미래의 서를 펼쳤다.

흠칫 놀란 그리드가 축복받은 무기 강화석을 꺼냈다. 고대의 강화 주문서가 아닌 강화석이다.

[<+4 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칼날>을 강화합니다.]

[강화에 실패하여 강화 수치가 떨어집니다.]

시간이 다시 한 번 역행했다.

‘이런.’

이제 4개 남은 단탈리안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필 또 성을 나온 뒤의 상황이었다.

목이 베이기 직전.

고작 10미터 거리 앞에 서있는 그리드가 보였다.

어째선지 그리드의 표정은 자신보다 더 처참하게 구겨져 있었다.

단탈리안이 소리쳤다.

““저를 사도로 삼았을 때의 이점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지금 기분 안 좋으니까 말 시키지 마.”

한숨 쉰 그리드가 무기를 확인했다. 다행히 4강으로 복구돼 있었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실패하는 거 아니냐... 그건 그렇고 단탈리안의 시간 역행 능력은 분명히 대단하군.’

본인의 시간만 되돌리는 게 아니라 세계의 시간 자체를 회귀시켜버린다.

그리드가 장담컨대 현재 접속 중인 모든 플레이어가 시간 역행을 체험하고 있을 것이었다.

‘인계에서 굳이 이 능력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페널티가 너무 커서였겠지.’

인계를 습격하는 행위.

대악마들에겐 일종의 유희다. 고작 유희를 즐기는데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싶을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희를 나왔다가 루비를 만나 영혼을 소멸당한 대악마들은 병신 중의 병신인 셈이고.

‘시간을 한 번 되돌리는 대가로 머리 2개... 머리를 모조리 잃을 순 없을 테니 앞으로 저놈에게 남은 기회는 1번뿐이다. 순보.’

스팟!

다시 한 번 순보를 펼치는 그리드의 손에는 낙월검이 쥐어져 있었다.

‘낙월검을 휘두르기 전’으로 시간이 역행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시간 역행은 단탈리안에게만 유리하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시간 역행이 단탈리안에게만 유리하게 적용되기 위해선 셀 수 없이 많은 조건이 뒷받침 되어야만 했고 그건 명백히 행운의 영역이었다.

““...제길!””

단탈리안이 여유를 잃었다.

텔레포트를 써서 성으로 피신하려다가 브라함의 시선을 느끼고 검을 뽑아 쥐었다. 실시간으로 마법을 관조하고 무효화시키는 브라함의 능력이야말로 단탈리안을 약화시킨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

낙월검을 휘두르려던 그리드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검을 쥔 단탈리안으로부터 기시감을 느낀 까닭이다.

츠츠측━!

단탈리안의 상체가 뒤로 크게 젖혀진다 싶더니 하단에서 쇠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찰나.

그리드의 무의식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단탈리안이 인계를 습격했을 당시 검성의 검술을 사용했었다는 정보를 상기한다.

비반이 사용했던 검술들의 형태가 뇌리를 스친다.

크라우젤과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아군으로 싸웠던 순간들을 복기한다.

그리드의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근육을 강제로 비틀어 낙월검을 거두고 <백호 자세>를 취했다.

동시에.

까가가강━!!

시야의 사각에서 벼락처럼 나타난 단탈리안의 검이 그리드의 상체를 베었다.

그것이 검과 검의 대결인 이상 반드시 승리하는 검술.

대상의 검을 무조건 회피하는 동시에 자신의 검을 대상에게 무조건 적중시키는, 검성의 부조리한 일격이 그리드의 갑옷과 충돌해 불똥을 튀겼다.

[43,508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도란의 반지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과연 대악마다.

단탈리안의 검은 탐욕으로 만든 방어구들을 베어내지 못하고도, 그리드가 백호 자세를 써서 방어력을 대폭 증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단탈리안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대 검성들의 상징이었던 무쌍검법을 연달아 연계하여 그리드를 압박했다.

그리드는 놈이 작금의 상황에 심취하기를 바랐다. 조금 더 깊이 다가와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단탈리안의 정신력은 생각보다 더 강인했다. 자신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그리드에게 품은 살의를 억누르며 ‘선’을 지켰다. 그리드에게 필요 이상으로 파고들지 않도록 절제하며 퇴로를 탐색했다.

퍼펑! 퍼퍼퍼펑!!

브라함과 지크프렉터의 마법, 그리고 유라의 저격이 그리드를 엄호했다. 하지만 단탈리안은 초감각마저 구현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저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회피하며 네펠리나가 쏘는 충격파는 검막으로 튕겨냈다. 다만 충격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해서 신영이 흔들렸다.

‘지금!’

그리드가 백호 자세를 해제하고 반격했다.

서걱!

그리드의 목에서 피가 분출됐다. 그리드의 검을 회피한 단탈리안이 갑옷과 투구 사이의 작은 틈새를 노리고 반격한 것이다.

‘검성 개사기네 진짜.’

눈살을 찌푸린 그리드가 긴장했다. 다음 공격이 날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단탈리안의 자제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리드에게 치명상을 입힐 기회를 외면하고 도리어 물러나며 시야를 넓게 보았다.

역시나.

그리드의 등 뒤에서 날아오는 방패가 단탈리안의 시야에 포착됐다.

쩌엉!!

단탈리안의 검에 가로막힌 메르세데스의 방패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갓 핸드들과 충돌한다.

“....”

“....”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단탈리안은 먼 과거의 검성을 재연하고 있었다.

““당신은... 제 제안을 받아들이는 편이 좋았습니다. 오늘의 오판을 평생토록 후회하십시오.””

분위기가 넘어왔다고 판단한 걸까.

검을 칼집에 집어넣은 단탈리안이 상체를 깊숙이 숙였다.

누가 봐도 발검술을 준비하는 자세였다.

“전하!!”

그리드의 위기를 느낀 피아로가 다급히 외치며 달려왔다. 브라함과 지크프렉터의 방어 마법이 그리드의 몸을 감쌌다. 네펠리나가 무리해서 브레스를 끌어올렸다. 흥분한 사리엘이 폭주의 조짐을 보였고 유라는 어쩔 수 없이 지옥 규제를 준비했다.

단 두 명.

발검술의 표적이 된 그리드 당사자와 그를 뒤쫓는 메르세데스, 오직 두 사람만이 그리드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쌍검법을 체험해봤다는 거다.

그것도 무쌍검법의 창시자인 비반을 통해서 직접.

피잉━!

칼집에서 검이 뽑혀 나온다.

날카로운 검광이 그리드의 목을 베는 듯하더니 멈추며 검기를 방출했다.

쿠와아아아앙!!

붕 떠오른 단탈리안의 몸이 뒤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였다. 단탈리안의 몸은 순식간에 성문까지 도달했다.

검기를 출력 삼은 도주다.

회심의 미소를 그리던 단탈리안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드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도망칠 걸 예상했다는 듯이 추격해온 형세였다.

‘어떻게?’

서걱━!

단탈리안의 목이 또 다시 베였다.

낙월검을 회수한 그리드가 염룡검과 무아검을 합치며 말했다.

“내 사자가 되기엔 네가 너무 약해.”

잘하면 레라지에나 마리로즈를 사자로 섭외할 수 있는 상황이다.

고작 단탈리안 따위에게 집착할 그리드가 아니었다.

지식?

브라함과 스틱세이, 네펠리나와 지크프렉터의 지식이면 충분하다. 그들은 비록 미래를 엿보진 못하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지식인들이었다. 애초에 미래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개념에 불과했다.

그리드 입장에선 단탈리아를 부하로 삼는 것보다 단탈리안의 힘을 탈취하는 편이 나았다. 자신과 사자들이 놈의 힘을 훨씬 더 잘 쓸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끈질긴 놈!!””

드디어 분노를 터뜨린 단탈리안이 다시 한 번 시간을 역행시켰다. 그의 성에서 수천 마리의 마족과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과는 참패였다.

단탈리안의 시간 역행 시점은 이번에도 역시 성을 나온 뒤였다.

마족과 마물들의 숫자는 무의미했다. 400레벨대의 몬스터 따위, 사자들의 광역 마법에 갈려나갔다. 특히 사리엘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리드가 위기에 빠지자 동요해서 폭주 직전이던 사리엘은 마물들에게 힘을 분출함으로써 마음을 안정시켰다.

털썩, 단 2개의 머리만 남기고 주저앉은 단탈리안이 허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운... 운만 따랐어도...””

“구차하기 짝이 없는 유언이군.”

조소하는 그리드.

자신이 단탈리안의 입장이었다면 욕을 폭포수처럼 쏟아냈으리라.

[<단탈리안의 지식 정수>를 얻었습니다.]

[제25위 대악마 단탈리안을 해치웠습니다.]

[<단탈리안의 지식 정수>를 4개 얻었습니다.]

[<훼손된 단탈리안의 서>를 얻었습니다.]

[<단탈리안의 검>을 얻었습니다.]

[<단탈리안의 지팡이>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3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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