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66권 - 17화
<낙월검>
등급:신화
내구력:무한 공격력:1
★대상이 무엇이든 반드시 벱니다. 방어, 회피, 반격, 반사, 피해 경감, 무시 등의 효과를 무시합니다. 피해량은 착용자의 모든 스탯을 합산한 후 대상의 레벨을 곱한만큼 적용됩니다. 무조건 치명타가 발생하며 대상의 모든 버프 효과를 제거하고 3분 동안 버프 적용 불가 상태로 만듭니다.
★10분에 한 번 휘두를 수 있습니다.
템빨신 그리드가 23일 밤낮으로 월야철을 단련하여 만든 신물입니다.
차가운 빛이 서린 칼날이 모든 개념을 파괴합니다.
무게:500
착용 조건:그리드
그리드의 스탯 총량은 58,000에 육박하고 있다.
물론 손재주와 위엄, 정치력 등의 비전투 스탯을 모조리 합산한 수치다.
엄밀히 따져서 거품이었다.
다른 랭커보다 최소 3배 이상 높은 스탯을 보유하면 뭐하나.
전투에 영향을 주는 스탯은 한정적이고, 비전투 스탯은 과도할 정도로 세분화되어 있다.
단적인 예로 그리드의 정치력은 여전히 800대에 불과했다. 정재계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의 평균 정치력 스탯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아 내정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등급 아이템을 만들 때 발생하는 ‘모든 스탯 상승’ 혜택이 지금의 그리드를 만든 근간이긴 하나, 최근의 그리드는 그 혜택에 다소 아쉬움을 느꼈다.
쓸모없는 스탯까지 전부 오르기보단 반드시 꼭 필요한 스탯에만 포인트가 집중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었다.
물론 양심 없는 욕심이었다. 실현 가능성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차에 낙월검을 만든 것이다.
잉여 스탯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무기. 그리드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장장 23일을 대장간에 틀어박혔던 보람이 있다.
물론 완전히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10분에 한 번밖에 휘두르지 못할뿐더러 이름이 너무 초라하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외관과 섬뜩한 위력을 고려하면 ‘낙월’ 따위보다 ‘초토화’라는 이름이 딱 어울릴 터인데...
‘작명 센스하고는. 쯧.’
S.A그룹... 하여튼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다.
놈들이 잘한 일이라고는 현실과 완전히 똑같은 가상현실 세계를 창조했다는 점과, 지구보다 광활한 가공의 세계를 수십 억 유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오픈필드로 구현했다는 점, 또한 완전하다고 표현해도 무방한 자유도를 제공한다는 점 정도밖에....
‘...대단하다! S.A!’
빌어먹을, 사정없이 까고 싶은데 깔 수가 없다. 그들이 만든 가상현실 덕분에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진 게 사실이다.
낙월검이 신화 등급으로 떠줘서 좋답시고 호구마냥 지껄이는 게 아니다.
S.A그룹은 대단하고 감사한 기업이 맞다. 괜히 국가급 재력과 권력을 거머쥔 기업이 아니다.
“음...”
들뜬 마음을 진정시킨 그리드가 다시금 태양마차로 시선을 돌렸다.
태양을 작게 응축시킨 듯한 외관.
너무나도 눈부셔서 똑바로 쳐다보는 게 불가능해야 정상 같은데 그리드는 불편함 없이 마차에 다가설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신들을 위한 오픈 마켓 <태양마차>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당. ( *˘╰╯˘*) 본 마켓의 운영자인 귀염둥이 ♥베니스♥는 고객을 차별하지 않아요. 아스가르드뿐만 아닌 세상의 모든 신들께서 이용하실 수 있답니다! 'ڡ'४]
[인류에게 숭배 받으며 모은 명성을 재화로 다른 신이 판매 중인 물건을 구매하거나 자신의 물건을 판매해보세요. (˶◕ ‿◕˶✿)]
“...허허.”
다시 봐도 황당한 안내문이다.
베니스.
아스가르드의 주신 중 하나.
그리드의 잠재적인 적인 그녀는 보통의 신들하고 느낌이 많이 달랐다. 방정맞은 말투를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세상의 모든 신을 대상으로 영업이라... 아스가르드, 환국, 동대륙 등지에서 조직을 이루고 폐쇄적으로 활동하는 다른 신들과 달리 개방적인 사상이 놀랍다.
물론 신뢰하지는 않았다.
‘신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자고 이러는 건 아니겠지.’
안내문은 ‘사람들에게 숭배 받으며 모은 명성’ 즉, ‘신앙’을 재화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신의 힘은 신앙과 직결된다. 더 많은 신앙을 쌓은 신일수록 더 강하다. 대표적인 예가 무신이다.
세상 모든 신들은 신앙을 탐낼 수밖에 없을 터.
베니스는 그런 신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이 오픈 마켓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것이다.
‘태양마차에서 거래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가 전부 베니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식인가?’
추측해본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베니스가 만만치 않다고 느끼며 커다란 경계심을 품었다.
하지만 태양마차에 등록된 물품들을 확인할수록 그의 표정은 점차 흥미롭게 바뀌어갔다.
<익명의 권능>
지정한 지역에 먹구름을 소환해서 장대비를 내려요. 구름은 언제라도 물릴 수 있고 최대 열흘 동안 유지 되요. 당신을 섬기는 인간들이 가뭄에 허덕일 때 비를 내려 보세요! 본전을 뽑고도 남을 만큼의 신앙이 쌓일 수도 있어요!
1회 사용 가능.
판매자:익명
가격:8,000 수수료 별도
<익명의 권능>
지정한 지역에 대지진을 일으켜요! 인간들에게 벌주기용으로 딱 좋아요! 대신 가리온한테 혼날 수도 있어요! 베니스는 책임 안 져요. ( ˘⌣˘ )
1회 사용 가능.
판매자:익명
가격:8,000 수수료 별도
<익명의 권능>
특정 인간들에게 신탁을 내릴 수 있어요. 자신을 섬기지 않는 인간에게도 효과가 적용 된다고 하네요. 정말 대단하죠? 하지만 신탁의 내용이 힘들고 복잡할수록 큰 보상을 걸어야 해요! 사용에 주의하세요! ( ´͈ ᵕ `͈ )◞♡
1회 사용 가능.
판매자:익명
가격:45,000 수수료 별도
<제라툴의 비급함>
제라툴의 비급이 들어있는 상자에요~ 제라툴이 주장하기론 본인이 만든 최고의 비급 중 하나가 들어있다고 하는데... ┐( ̄‸ ̄)┌ 싸움 못하는 분들께는 필요할 수도? ◔ᴗ◔ 가격 책정은 판매자가 직접 했어요. 바가지 씌운다고 베니스를 욕하지 마세요!
판매자:제라툴
가격:150,000 수수료 별도
<익명의 물건>
최면 향초에요. 이 향기를 5분 이상 맡는 인간은 꼭두각시가 된다고 해요! 악마가 만든 물건 같죠? 놀랍게도 아니에요! 태양마차에서는 악마의 물건 따위 취급하지 않는답니다. ( ˘⌣˘ )
최면 유지 시간 20분.
1회 사용 가능
판매자:익명
가격:30,000 수수료 별도
다양한 신들이 자신의 권능, 혹은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제라툴을 제외하면 죄다 익명이다.
‘제라툴 이 새낀 여기를 왜 이용하는 거지?’
짝퉁이라고 해도 무신은 무신이다.
제라툴은 다른 신보다 훨씬 쉽게 신앙을 쌓을 수 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신앙이 마구잡이로 쌓일 것이다.
한데 굳이 왜 마켓에 물건을 판매하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 그냥 자랑하려는 건가...’
베니스조차 제라툴의 물건 판매가는 바가지라고 표현하고 있다. 신앙이 아쉬울 것도 없는 놈이 굳이 저딴 가격에 물건을 올려놓은 걸 보면 단순히 과시용일 확률이 높다.
‘제라툴이 올린 물건은 거들떠도 보지 말자.’
비급함은 획득처가 존재하는 아이템이다. 모으기가 지독하게도 힘든 명성 포인트를 지불하면서까지 구입할 가치는 없어 보인다.
뭣보다 저 빌어먹을 비급함은 랜덤 뽑기라는 게 문제다.
“...!”
상품 목록을 쭉 내려 보던 그리드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굳었다.
<헥세타이아의 망치&모루>
배신자 헥세타이아를 감옥에 가두면서 압수한 물품이에요. 경매에 싼값에 올라왔길래 충동 구매했는데 쓸 곳이 없네요. ( •́ ̯•̀ )
판매자:베니스
가격:35,000 수수료 포함
“헥세타이아...”
나를 도운 죄로 유폐된 대장장이의 신.
그가 평생을 소중하게 다뤄왔을 물건이 이딴 곳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가격은 3만 5천.
헥세타이아를 상징했던 신물(神物)인 점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다. 다른 1회성 권능이나 물품들이 수천, 수만의 가격에 등록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다.
물론 그리드 입장에선 결코 싸지 않았다.
언젠가 템빨신교 교인들의 신앙이 수치화되고 그걸 명성처럼 쓸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면 또 모를까, 현재 그리드의 입장에서 명성을 쌓는 방법은 신화급 아이템을 만들거나 거물을 레이드하는 방법밖에 없으니.
하지만 그리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기꺼이 명성을 지불해서 헥세타이아의 망치와 모루를 구매했다.
대장장이 신의 신물은 그에게 필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설사 도움이 안 된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헥세타이아에게 돌려줄 물건이니까.
‘당신의 물건은 제가 잘 맡아두겠습니다. 당신을 구출하는 날 돌려드릴게요.’
[35,000명성을 지불하여 헥세타이아의 망치와 모루를 구매하였습니다.]
알림창과 함께 그리드의 인벤토리로 2개의 물건이 배달됐다.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려는 그에게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온다.
-어머, 어머? 어떤 고마운 고객인가 했더니 당신이셨군요?
음성의 주인이 누구인지 유추하는 건 쉬웠다.
‘베니스.’
금전의 신.
대부분의 상인이 섬기는 신이다. 그녀를 섬겼을 때 발생하는 버프 효과는 아이템 거래를 유리하게 만들어주기로 정평났다. 특히 수수료를 줄여주는 효과가 쏠쏠하다는 듯하다.
“나를 알고 있습니까?”
-당연하죠! 인류의 염원으로 탄생한 신! 그리드 당신은 우리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요. 후훗, 긴장한 표정 짓지 않아도 되요. 황금 마차는 세상 모든 신에게 열려있으니까요. 그게 설령 아스가르드를 적대하는 신이라고 해도 태양마차의 고객인 이상 정보를 유출하거나 독소조항을 적용시키지 않아요.
“믿어보죠.”
-태양마차를 자주 이용해줘요. 물건을 팔다 보면 제법 쏠쏠하다는 생각이 들 걸요?
“알겠습니다.”
그리드는 대화가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신은 속내를 감추는데 능숙하므로 영양가 있는 대화를 기대하는 건 어렵다. 오히려 이쪽의 정보만 유출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드가 딱히 대화에 흥미를 보이지 않자 베니스가 눈치껏 물러났다.
-그럼 꼭 다시 봐요~~
“....”
베니스가 떠난 후.
헥세타이아의 망치와 모루의 정보를 확인한 그리드가 안도했다. 그리드의 망치와 모루보다 성능이 훨씬 더 우수했기 때문이다. 명색이 대장장이의 신이 쓰던 물건이니 당연했다.
‘전에 봤던 망치하곤 다르군. 새로 만든 건가?’
매우 좋다. 특히 아이템 제작 속도를 2배나 올려주는 옵션이 일품이다. 이 망치를 진즉에 얻었다면 낙월검을 만들겠답시고 23일이나 소모하진 않았겠지.
하지만 사기라고 할 정도의 성능은 아니다.
애초에 제작용 아이템엔 한도가 정해져있다. 고등급 아이템의 제작 확률을 한도 끝도 없이 올려줄 수는 없는 법이니.
따앙. 따앙. 따앙.
그리드가 즉시 제작에 돌입했다. 이번에 만들 물건은 벨트. 마력사출기를 보다 신속하게 쓸 수 있게끔 도울 벨트다.
완성은 빨랐다.
헥세타이아의 망치와 모루 덕분이었다.
‘슬슬 출발할까.’
드디어 대장간에서의 용무를 끝낸 그리드가 사자들을 소집했다. 천상과 결탁할 가능성이 있는 지옥을 정벌하러 떠날 차례였다.
이번 일정의 목표는 20번대 지옥을 모조리 점령하는 것.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그리드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번엔 그랜드마스터와 네펠리나도 함께였으니까.
게다가 레라지에가 기대 이상으로 협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