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66권 - 11화
‘어떻게 귀신 같이 알고 온 거지?’
무신의 추종자들이 식당에 난입한 순간 그리드가 품은 의문이다.
바이란 성에 도착하고 고작 20분.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무신의 추종자들을 마주하자 성내에 첩자라도 있는 건가 의심이 생겼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지크프렉터의 해석을 간과했음을 깨달았다.
‘무신의 성상을 파괴함으로써 안전구역을 확보했다.’는 논리를 수용하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드는 로드에게 무신의 성상을 파괴하라고 지시한 바가 없다. 지크프렉터의 발언을 즉각적으로 이해하기엔 힌트가 적었고 시간도 부족했다.
‘일부러 유인했군.’
한편 지크프렉터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드는 수호자의 숲에 있던 무신의 성상들을 파괴해 안전구역을 만들었다. 무신의 추종자들의 추적을 따돌리는 방법을 진즉부터 간파하고 있었단 뜻이다.
한데 굳이 장소를 옮겨 추종자들의 추적을 허용했다.
지크프렉터라는 새로운 사자의 출현을 알리는 개전(開戰)을 겸해서 활동 중인 추종자들을 일망타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판단이 빠르고 용맹은 굳세니 선망의 대상이 될 만하다.’
쥬앙데르크 제위 시절부터 그리드를 탐내온 지크프렉터이다.
그리드에게 사하란의 황제가 되기를 종용했을 정도로 그리드를 높이 평가해온 그는 그리드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드와 지크프렉터의 생각이 교차하는 이때.
‘함정이었다고?’
자신이 이동하면서 남긴 잔상과 겹쳐지고 폭발한 혈검의 파편에 휩쓸린 삼제 해각은 등골이 오싹해져 있었다.
시각을 버린 대가로 청각과 육감을 얻은 뒤로 그 어떤 종류의 공격도 허용해본 바 없는 해각 입장에선, 전신을 휘감는 작열감이 낯설고 놀라웠다.
해각의 시선이 그리드에게 꽂힌다.
공격이 빗나갔음에도 동요하지 않고 다시 혈액을 뽑아 검으로 만드는 놈의 자약한 태도가 해각에게 경고를 보냈다.
놈이다.
놈이 이 나라의 왕이며 감히 신을 참칭하는 사교다.
“네놈이 그리드렸다. 이정을 죽였다더니 실력이 나쁘진 않구나.”
한 손으로 물구나무 서는 불안정한 자세를 버리고 똑바로 서는 해각에게 그리드가 이죽거렸다.
“크큭, 이정은 우리 중 최약체였다━ 뭐 이딴 대사를 지껄이려는 건 아니지?”
라우엘의 단골 멘트다.
파견 보낸 인원이 실패하고 돌아올 때마다 이런 식으로 혼자 중얼거린다.
움찔, 어깨를 떤 해각이 입을 다물었다.
“...진짜냐.”
해각의 반응을 보고 눈살을 찌푸린 그리드가 종횡무진을 전개했다.
무신의 추종자는 오로지 정진한다. 무의 극의를 이루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목적이다. 제라툴이 보여준 비급에 현혹되어 이성을 상실하긴 했어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 설정 때문인지, 놈들은 쉬운 기술을 구사하지 않았다. 사용이 까다롭고 복잡하며 적중시키기 어려운 상위의 기술에 집착하며 실전에서도 발전을 도모한다.
간단히 말해서 타깃팅 스킬을 쓰지 않는단 뜻이다.
스파앗-!
파팟, 퍼펑!!
무너진 외벽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달빛.
조명과 부딪쳐 흩어지고 물결을 이룬 빛을 따라 추종자들의 무기와 수도, 발차기가 유영한다.
화려하게 연계되는 기술이었지만 그리드의 펄럭이는 망토조차 스치지 못했다.
모든 논타깃 스킬을 회피하는 종횡무진의 권능은 절대적인 것이기에.
‘1.2초.’
마력사출기와 결합시킨 혈검의 유지 시간을 계산하며, 그리드는 해각에게 도달했다. 그리고 즉시 4융합 검무를 전개했다. 먼저 연살의 묘리가 체현되었고 해각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회피했다.
순간, 끊임없이 축적해온 전투 경험이 그리드에게 경종을 울렸다.
‘반격이 날아올 거다.’
꽈앙!!
연살에 이어 파극의 묘리가 펼쳐진다.
이를 피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즉시 알아본 해각이 오른팔을 뻗었다. 일체의 반동을 이용하지 않고, 팔꿈치를 허리에 붙인 채로 주먹만 앞으로 내질렀다.
한데 결과가 놀라웠다.
[당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공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드의 초월경이 발동했다.
본래 공격이란 반동이 더해짐으로써 속력을 얻는 것인데 해각의 정권 지르기는 일체의 과정을 생략하고도 탄환처럼 쏘아졌다.
감탄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느려진 세상 속에서 해각의 기습을 회피한 그리드는 해각의 주먹이 뻗어지면서 당겨진 쇠사슬이 자신의 혈검을 튕겨내는 광경을 목격했다.
까강!!
해각의 양쪽 손목을 연결하는 쇠사슬. 팽창한 그것이 혈검과 충돌하고 출렁이자 반탄력에 튕겨나온 혈검이 그리드에게 꽂혀왔다.
정말이지 빠르고 날카로운 반격기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이미 반격을 예상했던 그는 작금의 상황에 대비해놓은 상태다.
쩌정!!
갓 핸드가 전개한 회가 혈검을 가로막는다. 그러자 방향을 바꾼 혈검이 다시금 해각에게 되돌아갔다.
그리드의 응수는 실로 완벽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혈검은 해각에게 닿지 않았다. 해각에게 닿기 직전에 유지 시간이 끝나 폭발을 일으켰다.
파편에 재차 상처를 입은 해각이 그리드로부터 크게 물러섰다.
‘저 검을 완전히 통제하진 못하나보군.’
혈검이 폭발하지 않고 그대로 꽂혀 들어왔으면 위험했다.
해각이 십년감수하는 사이 지크프렉터는 5명의 추종자를 속박하고 있었고 메르세데스는 3명의 추종자를 참살하고 있었다.
지크프렉터가 그물처럼 펼쳐낸 룬어에 묶여 꼼짝 못하는 추종자들에게 칼침을 먹인 지발이 소리쳤다.
“그리드! 슬슬 복병을 불러!!”
그렇다.
지발 또한 지크프렉터, 해각처럼 작금의 상황을 그리드가 설계했다고 믿었다.
당연하다. 아무런 대책 없이 안전구역을 벗어났을 리 없을 테니까.
‘복병이 더 있었나?’
해각이 감각을 끌어올렸다.
그리드와 지크프렉터, 그리고 은빛 검기를 흩뿌리는 여기사.
8개의 비급을 익힌 추종자들을 압도하는 강적이 이미 셋이나 있는 마당에 적의 숫자가 늘어서야 좋을 게 없다.
‘속전속결을 노리고 싶다만.’
쉽지가 않다.
해각이 가늠하기로 그리드의 솜씨는 자신과 비등했다. 한데 그리드는 각자 다른 무기를 거머쥔 흑금색 손을 허공에 10개나 띄우고 통제하였으니 결과적으로 자신보다 유리하다고 보는 게 옳았다.
‘저쪽의 복병보다 이쪽의 원군이 더 많길 바라는 수밖에 없군.’
최악의 경우엔 ‘날개’를 빌려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