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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302화 (1,292/1,794)

템빨 66권 - 03화

[신규 종족 뱀파이어가 해금됨에 따라서 <혈왕>에 새로운 시스템이 추가됩니다.]

★혈왕은 주 1회, 모든 뱀파이어 플레이어에게 <혈왕령> 퀘스트를 부여합니다.

*퀘스트 내용과 난이도 무작위. 난이도 최대 등급은 A.

*퀘스트를 클리어한 플레이어는 소정의 보상을 얻으며, 혈왕은 플레이어들의 퀘스트 클리어 횟수가 일정 수치에 도달할 때마다 ‘장악력’ 스탯을 얻습니다. 장악력이 높을수록 혈액 동화율이 상승, 혈마법의 캐스팅 속도와 전개 속도, 형상 구현 속도가 빨라지고 구현시킨 형상의 유지 시간이 증가합니다.

*퀘스트에 4주 연속 불응한 플레이어에겐 페널티가 부여되며, 혈왕과의 관계가 우호에서 적대로 바뀝니다. 혈왕과 적대인 플레이어는 일족에게 반역자로 인식됩니다.

*퀘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플레이어는 특정 주기마다, 매우 희박한 확률로 등급이 ‘일반’에서 ‘정예’로 승급합니다. 정예 등급의 뱀파이어는 더 적은 주기마다, 더욱 더 희박한 확률로 ‘진혈족’ 등급으로 승급합니다.

“흐음...”

뱀파이어가 선택 가능 종족으로 바뀐 갑작스러운 사태.

그 사태를 자신이 일으켰다는 사실에 짐짓 당황하던 그리드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드디어 드러난 혈왕의 진가가 그는 꽤 흡족했다.

마리로즈가 실세로 버티는 까닭일까, 비록 절대적인 명령권을 지니진 못했지만 어찌됐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혈왕령> 시스템이 존재하는 이상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은 혈왕을 좌시할 수 없어진다. 자신들이 혈왕의 손바닥 위에 있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 혈왕령 퀘스트를 혈왕이 직접 만들고, 내리는 거라고 오해할 소지가 크므로.

테루찬이 그리드에게 충성하는 이상 오크족이 그리드의 손아귀에 있듯, 혈왕령이 존재하는 이상 뱀파이어는 그리드의 손아귀에 있었다.

‘거기에 덩달아 새로운 스탯까지 생겼다.’

장악력.

현재 수치는 0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히 오를 것이다.

‘그것도 꽤 빠른 성장세를 자랑하겠지.’

뱀파이어는 Satisfy에서 진귀한 ‘흡혈’을 기본 특성으로 지닌 종족이다. 성장할수록 안개화, 박쥐 분열 등이 가능해서 공간의 개념에 덜 구애 받고 물리력 내성이 매우 높다. 사역마를 만들 수도 있다. 진혈족이 되면 뱀파이어를 생산할지도 모를 일이다.

더군다나 아름답다.

엘프 같은 생기는 없지만 퇴폐적인 매력이 있어서 매니아층이 두텁다.

태양이라는 약점이 있을지언정, 뱀파이어로 종족을 바꾸는 플레이어의 숫자는 오크보다 훨씬 더 많을 거라는 게 그리드의 예상이었다.

수백, 수천 만 명의 뱀파이어 플레이어가 매주 혈왕령을 완수할 거라고 상상해보라. 장악력 스탯의 성장세는 정말이지 엄청날 것이다.

‘근데 이거....’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간 인간의 숫자가 너무 적어지는 거 아닌가?

언젠간 엘프나 드워프 종족도 해금될 텐데.

잠시 걱정도 해보지만.

‘뭐, 상관없나.’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본래 인간의 무조건적인 적이었던 오크와 뱀파이어들이 플레이어화 되면서 인간과 공존할 수 있게 된 상황이다.

인류의 세력은 도리어 더 커지고 있다고 보는 게 옳다.

“피의 우물을 풀었지만 어디까지나 차선책일 뿐이야.”

그리드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사이 마리로즈가 입을 열었다.

“최소 직계급 뱀파이어가 아닌 이상 대악마들과의 전쟁에서 별 도움이 안 되거든. 피의 우물로 개체수만 늘려봤자 사실상 의미가 없어. 그리드, 만약 네가 약속을 어기고 나를 돕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강제로 덮칠 수밖에 없다는 걸 기억해둬.”

명백한 경고였다.

차라리 협박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리드는 위축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약속을 반드시 이행할 각오였기에.

“저는 꼭 당신을 위해서 싸울 거니까요.”

좋다.

완벽한 멘트다.

그리드는 방금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서 마리로즈와의 호감도가 조금 더 오를 거라고 확신했다.

기대 따위가 아닌 확신.

헥세타이아 신의 마음조차 사로잡은 경험이 주는 확신이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그리드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

호선을 그릴 줄 알았던 마리로즈의 눈매가 살짝 사선을 그렸다. 뾰루퉁한 표정이 심기 불편한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

[마리로즈와의 호감도가 1 하락하였습니다.]

“...!?”

뭐냐?

도와줄 거라는데 왜 호감도가 오르기는커녕 내려가는 거지?

‘내가 방금 말실수를 했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자신이 방금 뭐라고 지껄였는지 반추해보는 그리드와, 여전히 뾰루퉁한 표정으로 그리드를 노려보는 마리로즈.

둘 사이의 메르세데스는 왠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

“이 그림들은 베리아체의 작품이 맞았군요.”

마리로즈와의 관계는 확실히 정리됐다.

언젠가 함께 지옥을 토벌할 파트너.

최소한 마리로즈의 복수가 끝날 때까진, 만에 하나라도 적이 될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브라함의 입장에선 자존심이 무척 상하는 일일 테지만,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일일 테지만, 마리로즈는 브라함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눈치였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면 죽여 버릴까? 고민할 수준이지, 굳이 브라함을 찾아가서 해코지할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그만큼 사소한 존재인 것이다.

전설의 대마법사조차, 그녀에게는...

물론 어디까지나 ‘현재 시점’에서의 이야기다.

“음... 그러게.”

마리로즈는 복도에 걸린 그림들을 ‘무력했던 어머니의 유치한 복수’라고 표현했다.

몇 번이나 파괴와 수복을 반복해온 세계를 묘사하며 레베카를 흑막으로, 야탄은 레베카에게 거역하지 못하는 반푼이로 표현한 작품.

세상에 공개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다고 했다.

두 신에게 품은 증오를 고작 그림 따위로밖에 풀지 못했던 어머니의 무력함을 알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다.

‘공개해봤자 딱히 파급력도 없겠지.’

대악마의 작품이다.

인간들이 대악마의 작품에 담긴 내용을 신뢰할리 만무하다.

이 작품이 세상에 공개된다고 해서 레베카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릴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대악마의 계략이라며, 이럴 때야말로 인류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레베카 여신께 기도를 올려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녹색은 아모락트라고 했나.’

긴 복도를 걸으며 베리아체의 작품을 역순으로 감상하던 그리드가 잠시 두 번째 그림 앞에 멈춰 섰다.

야탄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느낌의 적색 베리아체, 어째선지 야탄에게 거리감을 두는 듯한 거인 바알.

그들과 비교했을 때 녹색 아모락트는 야탄을 정중히 떠받드는 인상이다.

‘그러고 보니 야탄교를 만든 것도 아모락트였지.’

아모락트.

마리로즈가 말하길 서열 제2위의 대악마다.

‘바알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난적이겠군.’

여태껏 보고 겪은 바에 따르면, 바알에겐 목적의식이 없다. 그만큼 변수가 많아 대처가 힘들다. 놈과 싸우기 위해선 임기응변에 능해야한다.

반면 아모락트에겐 명확한 목적이 있을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야탄을 지상에 강림시킨다거나,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음흉한 계략들을 철저하게, 산더미처럼 준비해놨을 것이다. 아모락트와 싸우기 위해선 체계적인 계획과 수준 높은 책략이 필요할 테지.

그리드의 근심이 깊어질 때였다.

걸음을 멈춘 메르세데스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어떤 시련이 전하의 앞길을 가로막을지언정 제가 전하를 지탱해드릴 거예요.”

“든든하네.”

수심이 가득했던 그리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눈앞의 안개가 걷힌 기분이다.

이 순간 메르세데스는 해답을 제시했다.

적이 누구고, 어떤 성격일지언정 힘으로 돌파하면 된다.

‘계속해서 강해지는 수밖에.’

마침 마리로즈의 성을 벗어난 그리드가 시험 삼아 혈마법을 전개했다.

촤르르르륵!

마력이 빚은 붉은 핏방울이 그리드의 손끝에 집결하며 검의 형상을 갖춘다.

이 검을 3초 내에 폭발시켜 광역 피해를 입히는 게 바로 <혈검 분쇄>다.

‘장악력이 높아지면 검을 더 빠르게 만들고,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거지?’

그리드가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조용히 떠있던 혈검이 화살처럼 쏘아져 멀리 날아가 폭발했다.

“잘하면 무기 판정을 받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최근 배운 다섯 개의 혈마법 중 공격계열 마법들은 실전에서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습득하고 있는 다른 공격 스킬들과 비교해서 위력이 떨어졌기 때문. 하지만 장악력이 오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 많은 패를 손아귀에 넣게 된다.

기대하던 그리드가 문득 허무감에 휩싸였다.

‘파그마의 후예는 약하구나.’

클래스의 종합적인 가치를 논했을 때 파그마의 후예의 가치는 당연히 최고다.

최강의 무구를 자력으로 생산할 수 있을뿐더러 온갖 종류의 아이템을 제약 없이, 그것도 성능을 증폭시켜서 다룰 수 있으니 가히 사기급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하지만 적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한계점도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리드가 신장과 마안, 무패왕의 힘을 얻지 못했고, 브라함과 탑의 결사들을 만나지 못했으며, 영웅왕과 혈왕이 되지 못했다고 가정해 보자.

파그마의 검무만 가지고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었을까.

신의 지위를 얻기는커녕 서사시의 마검사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파그마의 후예는 다른 전설 클래스들과 비교해서 전투력이 확실히 아래다.

‘나 의외로 진짜 대단한 거 같은데...’

잘도 여기까지 성장했구나.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겨본 게 얼마만일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너의 짧은 응원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이 감사한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메르세데스를 품에 안은 그리드가 귀환 주문서를 사용했다.

***

캡슐에서 일어난 영우가 창가로 다가갔다.

역시나.

집 앞이 오래간만에 북새통이다.

다양한 인종의 취재진이 거대한 인파를 이뤘다.

“이거 또 야단나겠네.”

나로 인해 뱀파이어가 해금됐고, 내가 바로 혈왕이다. 그리고 시스템은 뱀파이어가 혈왕의 지배하에 놓일 거라고 서술했다.

기자들이 무엇을 염려하고, 질문할지 뻔히 예상됐다.

‘너무 혼자 다 해먹는 거 아니냐고 난리겠지.’

물론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진 못하겠지만, 은근히 사람 기분을 언짢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한 번쯤은 입장을 표명해야한다.

피해 다녀봤자 만나줄 때까지 스토커처럼 쫓아다닐 족속들이니.

“응?”

대충 저지를 걸친 영우가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가 화들짝 놀랐다.

문 앞에 세희가 서있었다.

“허억... 허억...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아 급히 뛰어온 눈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문제는 오빠 행색이지! 트레이닝복 입고 나가는 건 아니잖아!”

“그야 집 앞이니까 편하게....”

“당신 집 앞에 전 세계 방송국의 취재진이 모여 있다구요! 오빠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는 사람만 해도 수천만 명일 텐데, 최소한의 이미지 관리는 해야지!”

“그, 그래...”

이후 1시간이 걸렸다.

세희한테 등을 떠밀려서 샤워를 하고, 수십 벌의 옷을 갈아입어 보고, 머리도 만지고, 썬크림까지 바르느라.

“...지친다.”

기자들을 상대할 땐 엄청난 체력이 소모되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동반되는 법이다. 전투에 임하는 마음가짐으로 나서려고 했는데 출전을 앞두고 벌써 지쳐버렸다.

하지만 운동으로 단련된 영우의 몸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넓은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걸어 나온 그에게 기자들이 덤벼들었다.

“왜! 어째서 마리로즈와의 혼인을 거부하신 겁니까?”

“...?”

이 상황에 궁금한 게 고작 그거라고?

예상과 다른 질문에 얼떨떨해진 그리드에게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혈왕의 정체를 아시나요?!”

“아...”

그러고 보니 내가 혈왕이 된 건 월드 메시지로 안 떴었나?

‘아는 사람들만 알겠군.’

아무래도 덜 귀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에 내심 안도하는 영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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