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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291화 (1,281/1,794)

템빨 65권 - 13화

나뭇가지에 나란히 걸터앉은 새들이 눈을 굴린다. 눈이 소복이 쌓인 장독 위에 누군가가 늘 뿌려뒀던 좁쌀이 오늘따라 보이지 않자 난감한 눈치였다.

짹짹.

급기야 재촉하듯 지저귀기 시작하는 녀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양반 미르가 입을 열었다.

“가야의 만년설은 청룡의 원한이 만든 거라지.”

가야가 모래왕국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막에 둘러싸여있기 때문이다. 한데 왕도에만 유독 눈이 내렸다.

언제부터 내린 눈일까.

청룡을 잊은 가야의 백성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미르와 양반들은 생생히 기억했다.

청룡이 울부짖으며 봉인당하는 순간 흐려진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한 이 눈을.

“이 눈은 많은 사람을 해쳤다.”

가야의 백성들은 추위를 몰랐다. 추위에 대비해놓지도 않았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눈과 살을 째는 추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얼어 죽거나 정든 고향을 버리고 떠났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저 새들처럼 끝까지 버틴 동물이 있는 반면 멸종되거나 사막으로 숨어든 동물들도 많았다.

“자신의 원한이 자신이 지키던 이들을 해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청룡은 정녕 몰랐을까.”

시리도록 푸른 청룡도의 도신을 바라보며 속삭이듯 중얼거린 미르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소매 속에서 좁쌀을 한 움큼 꺼내 마당에 뿌렸다.

짹짹.

반갑게 지저귄 새들이 미르 곁으로 모여들었다.

좁쌀을 쪼아 먹으며 주린 배를 채우는 녀석들을 바라보는 미르의 표정이 어두웠다.

“여느 인간들의 따뜻한 배려가 겨우내 굶주린 이 작은 새들을 살려왔다. 하지만 인간들이 힘들어질수록 새들은 배려 받지 못했고 결국 다시 굶주리게 되었지. 이 새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나뿐이고 그 꼴은 마치 가야의 백성들과 같아.”

스윽.

미르의 시선이 예음에게 향했다.

예음이 움찔했다.

미르의 아름다운 얼굴을 뒤덮은 검흔이, 미르가 지우지 않은 그 거친 흉터가 예음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예음, 나는 결국 신과 인간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늘 백성들의 곁을 지키고 보살폈던 가야의 수호신, 청룡.

뇌운을 몰고 와 수많은 양반들을 전율시켰던, 그 위대했던 신을 보라.

자신을 봉인한 다른 신들을 저주하며, 백성들이 자신을 다시 기억해주길 바라며 사시사철 눈을 내린다. 그 시린 눈꽃에 자신이 지켜온 백성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다. 아니, 설령 알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이기심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그 저열한 감정을 청룡도 갖고 있었다.

마치 오존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인간이 신이 됐다 한들 이상하지 않다.”

“....”

예음이 침묵했다.

미르의 얼굴에 흉터를 새겼다는 그리드를 비난하며, 무슨 인간 따위가 신을 참칭하느냐며 비웃었던 그녀는 더 이상 그리드를 비난하지도, 비웃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시 분하고 억울했다.

양반들조차 대부분 신이 되기를 포기하고 좌절하게 마련이건만 어찌 인간이 신이라 불리는가.

인간과 신의 성격이 같다고 해도 타고난 힘은 차원이 다를 진데....

잔혹하게만 다가오는 현실이다.

분해 떠는 그녀의 어깨를 미르가 두드려주었다.

“희망이라고 생각해라.”

“....?”

“그리드는 나 또한 무신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해주는 존재다. 시기하기보다 존중하고 본받아야할 대상인 셈이지.”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미르는 그리드의 탄생을 느낀 순간 전율했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 주먹을 불끈 말아 쥐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었다.

인간의 몸으로 신이 된 그리드의 발전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신의 피조물인 양반 미르에게도 커다란 희망이었다. 여러 신 가운데서도 특별한 ‘무신’이 되고 싶다는 자신의 열망과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확신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그는 어디까지 올라설 수 있을까.’

이 흉터를 훈장으로 남겨둘 것인지, 가치 없어 지울 것인지.

그건 좀 더 지켜봐야 알게 될 테지.

생각하며 좁쌀을 뿌리는 미르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

“아스모펠.”

“주군을 뵙습니다.”

몇 달 만의 재회는 화려하지 않았다.

어두운 취조실에 들어선 그리드를 아스모펠이 무릎 꿇고 맞이했다.

“무탈하게 돌아온 모습을 보니 기쁘다.”

그리드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10년 넘게 자신을 보필해온 충신과 몇 달 만에 재회했는데 기쁘지 않을 리가.

친히 일으켜주는 그리드에게 아스모펠이 미소 지었다.

“전하께서는 못 본 새 더 강해지셨군요. 자랑스럽습니다.”

아스모펠은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드의 성장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리드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아스모펠

나이:52세 성별:남

직업:템빨 마법기사단장/템빨국 대장군(조건부 병사)

칭호:화검(華劍)

*꽃처럼 만개하는 검기를 나부끼며 화려하고 섬세한 검술을 구사합니다. 극의에 달한 쾌검이 대상의 방어를 무력화시키며 반격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검술 관련 스킬 사용 시 대상의 방어 동작을 30퍼센트 확률로 차단.

*검술 관련 스킬 사용 시 대상의 반격 확률을 60퍼센트 저하.

★검기의 꽃잎이 광채를 불태울 때 모든 능력치가 20퍼센트 상승하고 공격속도가 50퍼센트 상승합니다. 또한 화염 속성 공격력을 얻습니다. 지속되는 동안 대상의 반격을 완전 봉쇄합니다.

칭호:영원한 2인자

*1인자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류라는 뜻은 아닙니다.

*각 분야의 1인자와 싸울 때 모든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1인자가 아닌 상대와 싸울 때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레벨:523

근력:3,859 체력:2,220

민첩:3,859 지력:3,180

통솔력:2,812 통찰력:5,024

정치력:2,311

스킬:[제국군 검법(B)] [제국 병법(A+)] [레이단식 창술(A+)] [정치(A+)] [교란(A+)] [템빨국군 검법(A+)] [최고급 소드마스터리(S)] [레드 소드(S)] [섬화의 검(SS)] [대기만성(SS)] 일개 병사(SS)] [마법 통찰(??)] [2인자의 집념(??)]

사하란 제국의 명문 무가 혈통으로 검술과 병법의 재능이 타고났습니다. 약관의 나이에 적기사단에 입단하여 12년 만에 부단장의 지위에 올랐고 이후 피아로와 함께 제국의 기둥이라고 칭송 받았습니다.

황비 마리의 계략에 빠져 피아로와 동료들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했던 적도 있지만, 피아로에게 용서를 받은 뒤로 그리드의 명령에 따라 속죄의 길을 걷는 중입니다.

‘뭐지?’

몇 달 만에 돌아온 아스모펠의 모습은 그리드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레벨이 많이 오르고 근력과 민첩이 황금비를 이루는 등 분명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그 발전 수준이 그리드의 기대를 웃돌 정도긴 했지만 방향성이 약간 어긋난 느낌이랄까.

‘지력이랑 통찰력이 왜 이렇게 많이 올랐어?’

아스모펠의 지력과 통찰력은 원래 높았다. 본디 기사라는 직업의 능력치가 균등하게 높기도 했고, 계략을 구사해서 전 적기사단을 몰락시킨 아스모펠의 이력이 적용돼서 평균치보다 높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특히 통찰력은 몇 달 전과 비교해서 2배나 늘어났다.

‘아....’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그리드가 뒤늦게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아스모펠의 보유 스킬 목록 중에 전에 없던 ‘마법 통찰’이 생긴 것이다.

<마법 통찰>

패시브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에게 패배한 경험이 커다란 양분이 되었습니다.

마법에 대해 심도 깊게 연구한 그는 이제 평범한 수준의 마법은 쉽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마법 저항력이 200퍼센트 상승하고 10퍼센트의 확률로 마법을 무효화시킵니다. 대상의 레벨이 낮을 경우 보유 중인 마법 목록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리드가 보유 중인 <마법 관조>의 하위 호환 격인 스킬.

마법 통찰의 각성이 아스모펠의 스탯 수치에 영향을 크게 미친 듯했다.

‘....마냥 하위 호환이라기에는 좀 애매하군.’

물론 마법 관조가 마법 통찰보다 훨씬 더 좋다.

<마법 관조>Lv.2

패시브

지공(智公)의 지혜와 지식이 모든 마법의 섭리를 꿰뚫어 봅니다.

*적이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마법의 술식을 해독하고 55퍼센트 확률로 파훼하거나 4.5퍼센트 확률로 복제, 반격합니다.

*아군이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마법의 술식을 해독하고 35퍼센트 확률로 강화시킵니다.

*모든 속성의 마법에 적용되는 효과입니다.

*한 번에 여러 개의 마법을 관조하는 일은 아직 불가능합니다.

마법 자원 소모:없음

마법 재사용 대기 시간:3초

이렇듯 압도적이다.

하지만 마법 관조에는 대상의 보유 마법 목록을 열람하는 기능이 없고 마법 저항력이 오르지도 않는다.

‘대상의 보유 마법 목록을 열람할 수 있으면 사실상 높은 확률로 파훼시킬 수 있다는 건데.... 명시돼 있는 설명보다 훨씬 더 효과가 뛰어날 것 같다.’

이거 조만간 마법사 킬러라는 호칭이라도 얻는 거 아닐까.

모든 마법사에게 악몽으로 다가갈 아스모펠의 미래를 그려보던 그리드가 이내 주변을 살폈다.

정확히 37명의 낯선 사람들이 취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나 같이 플레이어였다.

“저들이 그 거수자인가?”

로이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뭔가를 의심할 근거가 명확히 없는지라....”

아스모펠이 체포해온 37명의 거동수상자는 어떤 혐의가 없었다. 단지 아스모펠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체포해온 것인데 이건 사실 큰 논란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역시나.

“권력을 너무 남용하는 거 아닙니까?”

거수자 중 한 명이 그리드를 노려보고 따졌다.

당장 로그아웃해서 인터넷에 글이라도 올릴 기세였다.

“흠.... 어떻게 처리하려고?”

“아스모펠 님의 주장은 저들이 하나 같이 광역 폭발 마법에 특화된 마법사들이라는 겁니다. 한데 상인이나 사제로 신분을 위장하고 있는 점이 수상하다는 건데 일단 저들이 마법사가 맞는지부터 확인해야 취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탑에서 라엘라 님을 모셔오고 있으니 곧 라엘라 님께서 확인을....”

“아스모펠.”

“예, 전하.”

“저자들이 마법사인 게 확실해?”

“확실합니다.”

“그럼 체포해.”

시국이 흉흉하다.

오크 왕국의 반란을 주도한 놈들이 뒤로 어떤 수작을 부렸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드의 결단엔 거침이 없었고 취조실에 갇힌 플레이어들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다.

그들 모두 중국 정부에서 잠입시킨 테러범들이었다.

***

국가대항전 마지막 날.

며칠 동안 오크 왕국에서 발생한 반란을 집중 조명하던 각국 언론사들이 다시금 국가대항전에 관심을 돌렸다.

반란이 벌써 진압단계에 들어서기도 했고, 당대 최강의 플레이어를 가리는 PvP와 국대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왕토벌전이 있는 날이기도 했으니 당연하다.

국대전 관련 방송들의 시청률이 고공행진 했다.

『올해 PvP 우승자는 역시 하오라고 봐야겠죠. 모든 무기에 능통하고 그만큼 다양한 전투 스킬을 보유한 하오는 심지어 반용족이기도 합니다. 몇 달 전 있었던 이종족 에피소드 이후 급격히 발전한 반용족의 힘은 하오에게 말 그대로 날개를 달아준 셈이죠. 하오와 대적할만한 상대가 올해 참가자 중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저는 크리스가 우승할 확률이 더 높아 보이는데요? 크리스의 거검은 반용족의 비늘을 박살내기에 손색이 없지 않습니까.』

『크리스는 안 되죠. 반용족의 비행능력을 그가 무슨 수로 막습니까?』

『그럼 지슈카는요? 지슈카 앞에서 비행하는 순간 바로 표적이 될 텐데 그런 논리면 하오가 지슈카에게 상성이 밀려서 지슈카에게 지는 거 아닙니까?』

『아니 무슨 그런 극단적인....』

상당수 프로그램의 MC와 패널리스트가 우승후보자로 하오와 크리스를 점찍었다.

이변이 없다고 확신하는 눈치였고 시청자들도 동의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지슈카는 아직 레벨이 낮고 아레스는 1대1에 꽤나 약한 면이 있으니....”

“아레스는 단체전에만 출전할 것이지 왜 PvP에까지 명단을 올린 거래? 이미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2개나 땄잖아. 금메달을 하나만 더 따면 그리드나 크라우젤급의 업적을 남기는 건데 왜 굳이 PvP에 집착해서 위험을 감수하는 거야?”

“아무래도 PvP에서 우승하는 게 상징성이 가장 강하잖아. 그리드하고 크라우젤이 둘 다 없는 올해야말로 PvP에서 우승할 몇 안 되는 기회인데 놓치고 싶겠어?”

“요즘 발할라의 성장률이 저조하다던데 아레스가 직접 나서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매해 PvP 우승후보자 중 하나로 지목됐던 데미안의 이름을 거론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올해 데미안의 상태가 별로였다.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고 할까.

그나마 일본에서는 데미안의 이름이 심심찮게 언급됐다.

데미안의 성적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제로스의 영향이었다.

『1라운드의 결과에 따라서 데미안과 제로스가 2라운드부터 격돌할 수도 있겠군요.』

『일본 입장에서 올해의 대진 운은 최악이네요. 하필 자국인 선수들끼리 초반부터 경쟁하게 되다니....』

『두 사람의 대결이 성사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만. 데미안이 1라운드를 통과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군요.』

『아니 데미안은 왜 종교를 바꿔서.... 하아, 정말이지 답답합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걱정 속에서.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PvP가 시작됐다.

무대에 오른 데미안이 새로운 무기를 꺼내 쥐었다.

[<그리드의 검>의 효과로 <그리드의 검무>가 일부 활성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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