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65권 - 11화
Satisfy를 단순 오락 취급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만약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얼간이 정도일 것이다.
“두 번 다신 없을 기회로군요. 제가 이 기회를 멋진 결과로 빚어 기대에 부응해보겠습니다.”
막대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스포츠산업.
바로 그 Satisfy에 중국 정부는 최근 상당한 투자를 감행했다.
우선 수많은 중국인 플레이어가 종족을 오크로 바꾸게끔 선전 유도했고, 그들을 인도할 오크 부족의 지도자들에게 은밀히 접근해 돈과 권력으로 회유했다. 한편으론 각 분야 최고의 지식인들을 섭외해서 철저하고 화려한 계획들을 설계했다.
만약 오크 로드 테루찬이 왕국을 세우지만 않았어도. 아니, 그 왕국을 관리함에 있어서 조금의 허술함만 보였어도 지금쯤 오크 종족 전체가 중국 정부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거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울타리 안에서 오크는 그 특유의 번식력을 보호 받고 수억, 수십억 명의 병사로 육성됐을 터.
Satisfy에도 위대한 중국이 탄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크 왕국이 사실상 템빨국의 속국이 되면서 관리가 워낙 철저해졌다. 그리고 물경 일백의 부족을 강압하는 오크 로드 테루찬의 무력과 카리스마가 중국 정부의 개입을 자꾸만 좌초시켰다.
그리드에게 충성하는 테루찬이 살아있는 한, 오크 왕국을 제2의 중국으로 만들겠다는 중국 정부의 야망은 이뤄지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회는 매우 컸다.
국대전 개최와 템빨 왕자 로드의 성인식이 겹친 시즌.
템빨국의 주요 전력들이 대부분 외부로 빠져나가거나 발이 묶인 지금이야말로 테루찬을 없애고 오크 왕국을 흡수할 기회였다.
-모든 랭커를 동원할 순 없소. 당(黨)에서 오크에게 집착했던 표면적인 이유는 국대전에서의 성적 때문이었으니, 그들의 국대전 출전을 막을 명분이 없단 말이지.
“막아서도 안 되겠죠. 외국에 중국의 속내를 들킬 우려가 있으니까요.”
-그렇소. 이번 반란에 동원되는 병력은 보기보다 질적인 측면에서 떨어질 거라 방심해선 안 된단 말이외다.
“하하, 당연하지요. 제 자신감은 방심이 아닌 충분한 근거로부터 비롯한 거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곧 시간이군요. 이만 끊겠습니다.”
띠링.
홀로그램 통화를 종료한 사내가 안경을 고쳐 썼다.
여태껏 짓고 있던 사람 좋은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늘하게 식었다.
“방심은 XX.... 탁상공론밖에 못 하는 머저리 새끼들, 템빨단하고 싸우겠다는 각오를 다진 사람한테 방심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하나?”
제발 방심하라고 부추겨도 방심 못한다.
템빨단과 싸우려면 과장 좀 보태서 게임을 접을 각오가 필요한데 미쳤다고 방심하겠는가?
까득, 이를 간 사내가 캡슐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플레이어 중 몇 안 되는 <전쟁 사령관> 하비스가 되었다.
전쟁 사령관.
자신이 지휘하는 군대에 ‘명령’을 내릴 때마다 광역 버프를 주고 기동력을 상승시키는 클래스.
전쟁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클래스의 등급은 의외로 ‘노말’이다.
하지만 직업을 군인으로 선택한 뒤 병사의 4계급과 십부장, 백부장, 천부장, 장군을 거쳐 진급해야하는 직업이니만큼 전직 난이도는 어지간한 히든 클래스보다 훨씬 더 높았다. 애초에 군대에서의 계급이라는 건 활약뿐만 아니라 근무 기간과 비례하기도 해서 사령관급 플레이어는 정말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결론적으로 하비스는 엄청난 고급 인력이라는 뜻이다.
이번 반란에 그를 고용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막대한 금액을 대가로 지불했다.
하비스로서는 도무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템빨단과 적대한 대가로 여태까지 쌓아올린 모든 걸 잃게 되더라도 감수할만한 금액....
‘심지어 반란에 성공하면 그 2배의 보상을 받는다.’
반드시 성공해야한다.
물론 힘들 테지만....
“....생각보다 많군요?”
결의를 다지며 지휘 본부 막사에 입장한 하비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령관급 플레이어가 자신을 포함해 무려 30명이었기 때문.
통솔력 스탯과 레벨에 따라 개인차는 있지만, 한 명당 통솔할 수 있는 병력을 평균 4천이라고 봐야하는데 30명이면 무려 12만이다.
이번 반란에 섭외하지 못한 부족들이 테루찬을 지원하기 전에 12만 대군을 먼저 왕도에 집결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게 중국의 저력인가.’
하비스는 이번 반란에 참가하는 사령관 플레이어의 숫자가 많아봐야 일곱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처럼 돈벌이 목적으로 Satisfy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또 모를까, 어느 왕국을 가도 대접 받는 그들이 굳이 템빨단과 적대하면서까지 중국 정부의 돈에 회유될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30명의 사령관 중 5명을 제외하면 전부 다 중국인이었다.
중국 정부가 키운 인재들 같았다.
‘사령관을 이만큼이나 육성할 정도면 다른 클래스들의 육성 현황은 어마어마하겠군.... 과연 강대국답다.’
중국의 자본과 철저한 준비성을 보니 괜히 두 손가락에 꼽히는 강대국이 아닌 듯하다.
새삼 감탄하는 하비스의 입가에 곧 짙은 미소가 번졌다.
사실 그는 이번 반란의 성공확률을 60퍼센트 정도라고 예측했었다.
300만 대군을 대대적으로 진군시켜 오크 왕국의 시선을 끄는 한편 7명의 사령관에게 버프를 받은 3만 병력을 별동대로 운영, 빠르되 은밀하게 왕도로 이동하여 이미 물색해놨던 지하수로를 통해 왕궁에 진입한다. 그리고 테루찬과 테루찬의 친위대를 2시간 내에 섬멸시킬 수 있으면 승리, 만약 적의 원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섬멸시키지 못하면 패배....
그런 식으로 도박적인 전략을 짰었다.
힘 싸움은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왕도에 주둔 중인 테루찬의 병력이 50만, 그를 따르기로 선택한 부족들의 병력이 100만 가량이었는데 그 150만 병력이 수성을 준비할 시간을 줘버리면 300만 대군으로도 뚫기 어려워진다.
가장 큰 문제는 오크 로드 테루찬의 무력이다.
단기필마로 성문을 빠져나와 아군을 학살하고 유유히 되돌아갈 놈을 견제할 힘이 중국인 플레이어들에겐 아직 없다. 놈이 벌이는 소모전에 아군은 계속해서 죽어나가고 사기가 저하될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테루찬을 좁은 궁전에 고립시켜 대군의 엄호를 받지 못하게 만들고 죽이는 게 중요했다.
‘그 일을 고작 3만 병력으로 해내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만....’
3만의 병력으로 지하수로의 방비와 테루찬의 친위대를 돌파하고 테루찬까지 레이드한다?
아무리 사령관의 버프를 받은 병력이라고 해도 성공 확률은 60퍼센트 정도에 불과해보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숫자가 12만으로 불어나버렸다.
이 정도면 승산이 100퍼센트라고 봐도 무방하다.
‘병력을 쪼개서 양동도 가능하다.’
국대전 시기가 아니었다면 템빨단의 주요 전력들이 지원을 올 테니 12만으로도 벅찼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리드가 움직일 확률도 적다.
이미 국대전 기간에 칸이라는 스승을 잃었던 경험이 있는 그는 섣불리 자리를 비우지 못할 것이다.
‘만에 하나 그리드가 움직이더라도.’
거기에 대한 대응책은 중국에서 이미 준비해놨다고 한다.
로드의 성인식에서 사용할 각종 행사도구를 운반하는 상단의 행렬, 혹은 타국 축하사절단의 행렬 등에 세작을 심었다나.
그리드가 오크 왕국에서 목격되는 순간 그들은 테러범으로 변모할 것이며 템빨국을 해치진 못할지언정 그리드를 초조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소동이 발생하리라.
그리드가 그 소동을 무시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곧바로 라인하르트로 귀환하겠지.’
두 번 다신 겪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황급히.
그래, 이번 전쟁은 오직 승리뿐이다....
단언한 하비스가 다른 사령관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시작하시죠.”
이런 대규모 반란을 은밀하게 진행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대적으로 반란을 선전했고 도리어 역이용했다.
오크 왕국과 템빨국의 시선은 이미 어제부터 진격을 개시한 본대에 집중돼 있을 것이다.
그 틈에 우리는 대기시켜놨던 이 별동대를 움직여 기습을 가한다.
총사령관 역할을 맡은 왕웨이가 작전의 개요를 설명했다.
“제아무리 본대가 시선을 끌고 있다 한들 별동대의 병력이 12만이나 되면 눈에 띌 수밖에 없습니다. 하니 군을 4개로 나누고 따로 이동하겠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다시피 요새의 구조상 시야각이 좁은 곳들이 있는데....”
승산을 엿보고 있는 사령관들의 의욕이 넘친다.
그들은 집중했으며 적극적인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부질없었다.
이들은 3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첫째, 템빨국이 워프게이트의 상용화에 성공했다는 점.
둘째, 당대 란스티어 페이커가 이끄는 템빨 그림자단의 눈과 귀가 이미 이곳까지 미쳐있다는 점.
셋째, 그리드가 초장거리 폭격이 가능하다는 점.
“전군 집결!!”
작전 회의를 끝내고 막사에서 나온 사령관들이 12만 대군을 집결시켰다.
평야에 초록 물결을 이루는 오크 대군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 장관이다.
너무 눈에 띈다.
“지금부터 우리는....!”
“....?”
“....?”
단상 위에 올라 병사들에게 소리치던 왕웨이가 갑자기 넋 나간 표정으로 입을 닫자 다른 사령관들과 병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려 24만개의 눈동자가 왕웨이의 떨리는 시선이 고정된 방향을 쫓았고,
“....!”
“....!”
일제히 부릅떠졌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천 개의 무구를 목도한 까닭이다.
무구의 비.
템빨왕 그리드의 성명절기가 12만 오크 대군을 폭격했다.
***
“데미안의 상태가 좀 이상한데요? 이거 진짜로 이길 수 있겠어요.”
일본 대표로 국가대항전에 출전한 제로스.
통합랭킹 989위의 하이랭커인 그는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장본인이다.
잘생기고 세련된 것으로 모자라 유쾌하기까지 한 그 젊은 랭커에게 일본 국민들은 매료되어버렸다.
전국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오디션 프로그램 <플레이어 55>의 최종 우승자가 됐다는 사실이 그의 인기를 증명한다.
플레이어 55의 PD 세이치가 빙그레 웃으며 제로스를 격려했다.
“당연하지. 너는 이번에 우승하면서 레전드리 아이템도 얻었잖아? 반면 데미안은 퇴물이라니까? 교황이 아닌 놈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야. 나이 먹은 히키코모리에 불과하다고. 애초에 놈이 교황이 됐던 것도 순전히 그리드 덕분이었고 말이지.”
사회성이 부족한 데미안은 소위 말하는 방송각을 제대로 준적이 없다. 간신히 방송에 섭외해봤자 그리드를 찬양하는 게 고작인 병신이었다.
세이치 PD는 그런 데미안을 본능적으로 혐오했다. 국가적 망신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놈이 교황의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PD님이 데미안을 싫어하는 건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비 마왕을 퇴물이라고 하시는 건 좀....”
“아니, 진짜야. 놈이 템빨신교 교주가 된 건 선택이 아닌 강제였어. 놈은 정말로 모든 걸 잃은 상태라고.”
물론 템빨신교의 저력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데미안은 성장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놈이 구사할 수 있는 검무는 아직 몇 개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제아무리 템빨을 받아봤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내년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올해는 제로스보다 몇 수나 아래다.’
그래서 제로스에게 PvP에 출전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제로스와 데미안의 대결이 성사됐다.
앞으로 3일 뒤 국대전 마지막 날에 진행될 PvP의 첫 번째 대결에서 일본 국민들은 목격할 것이다.
일본의 새로운 아이콘이 탄생하는 순간을.
‘바로 나 세이치가 만든 스타가 일본을 대표하게 되는 거다.’
데미안을 꺾고 일본을 대표할 얼굴이 될 제로스와 함께 앞으로 얼마나 멋진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내년쯤엔 나도 예능국 국장이 되겠군.’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세이치의 만면에 미소가 번지는 그때.
“이건....”
게임 속 데미안은 자신 앞으로 도착한 소포들을 확인하고 경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