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65권 - 09화
<낙룡극살파(落龍極殺派)>
5개의 검무를 하나의 경지로 승화시켰습니다.
하늘을 꿰뚫고 강림하는 새로운 신의 기세가 용과 같아 천지를 굴복시킵니다.
시야에 보이는 대상을 지정하고 돌진하여 대상과 대상의 반경 10미터(최대 50미터) 내에 있는 모든 적에게 물리 공격력 4,000퍼센트의 피해를 3회(최대 5회) 입힙니다. 지정 대상에겐 8,000퍼센트의 관통 데미지를 추가로 입힙니다.
관통당한 대상은 ‘회복 불가’상태가 되며, 관통 대상과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적이 <무장해제>됩니다. 또한 높은 확률로 ‘균형 상실’에 걸리고 상태이상 저항을 완전히 무시하는 ‘허탈’, ‘출혈’, ‘절망’에 빠집니다.
이 스킬은 높은 고도에서 사용할수록 위력이 상승합니다. 대상의 치명타 저항률을 무시하고 무조건 치명타로 적용됩니다. 대상의 격이 낮을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즉사시킵니다.
★브라함식 파이어, 인챈트 웨폰, 디텍트 포스, 실드 효과 적용.
스킬 사용 조건:도검류 무기 장착
스킬 자원 소모:검기 900. 마나 5,00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2시간 30분
낙룡극살파는 일격필살의 스킬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미터 상공에서 떨어질 경우 최대 데미지 기댓값이 초연살파극을 넘어선다. 연과 살의 조합을 베이스로 삼은 초연살파극과 달리 데미지가 순차적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 도중에 차단당할 염려도 없다.
물론 초연살파극은 ‘시전과 동시에 공간 내의 적들을 약화시키는’ 부가효과를 지니고 있지만 그와 비교해서 유틸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융합의 중심이 되는 용(龍)의 검무가 ‘돌진기’이기 때문.
발동과 동시에 대상을 관통해버리는 순살의 검무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콰앙━━!
“....!!”
후각의 혼란에 뒤따르는 충격.
크르차는 자신이 무슨 일을 겪은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엄청난 폭음이 있었고, 짓눌렸으며, 끔찍한 고통이 뒤따랐음을 한 발 늦게 자각할 뿐이다.
“켁.... 크게겍....”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하필 목을 꿰뚫리며 지면에 처박힌 크르차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불가능했다.
빛을 잃은 놈의 눈동자는 굴러가지 않았고, 생각은 멈춰버렸다. 심지어 손에 쥐고 있던 무기까지 떨어뜨렸다.
넋을 잃은 건 놈뿐만이 아니었다.
“보았느냐? 저게 바로 무패왕의 검술이니라.”
“대, 대단하군요. 레라지에 님께서 무패왕을 극찬하셨던 이유가 뭔지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낙룡극살파의 기세에 놀라 뒷걸음쳤던 레라지에와 칼바바가 피투성이가 된 크르차와 놈을 밟고 선 그리드를 번갈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레라지에가 무패왕의 검술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낙룡극살파는 뛰어난 스킬이였다.
그것을 감당하는 방법은 단 2개.
뇌신을 사용하는 미르처럼 빠르게 움직이거나, 바알처럼 압도적인 능력치로 그리드의 공격력을 무효화시키는 것.
단 2개뿐이다.
메르세데스나 크라우젤처럼 ‘예측’하고 반응하는 방식은 그다지 좋지 않다.
예측해봤자 반응이 힘드니까.
미르가 번개를 쏠 것을 알고도 당했던 크라우젤처럼 말이다.
“뭐해? 구경만 할 거야?”
푸우욱━!
무방비 상태의 크르차를 살(殺)로 찌르고, 극(極)으로 벤 그리드가 레라지에를 재촉했다.
그러자 잠시 멍하니 서있던 레라지에와 칼바바가 빠르게 나섰다.
대부분의 대악마가 그렇듯, 레라지에 또한 상위 서열의 대악마를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인식한다. 하물며 ‘서열전’을 신청할 수 있는 상대라면 더욱 더.
레라지에는 바르바토스의 권속 중 하나를 없앨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크르차를 없애야하는 그리드와 목적이 일치하는 것이다.
“캐캥!!”
공격을 허용할 때 발생한 충격도 충격이지만 후폭풍이 너무 크다.
회복하지 못한 채 방치된 크르차는 그리드와 레라지에의 협공을 몇 번이나 허용하고 말았다.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됐을 때, 놈은 이미 넝마였다.
활활 타오르던 양손의 지옥불이 사그라졌을 만큼.
“크, 크르르....! 네놈....! 네놈이 정말 인간이냐?”
신성(神聖)을 느낄 수 있는 악마는 의외로 많지 않다.
태어난 지 오래된 악마가 아닌 이상, 또는 신성 마법의 표적이 된 경험이 있는 악마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악마는 신성과 마주했을 때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낄 뿐이다. 신성의 개념과 혐오의 근원을 이해하진 못한다.
신성이 말살된 지옥에서 태어나 신성을 겪어보지 못했으니 그게 당연하다.
하물며 상대가 이제 갓 신격을 쌓아가기 시작한 애송이 신이라면, 그 정체를 알아볼 리 만무했다.
“....”
레라지에의 공세가 멈췄다.
헥세타이아가 지옥을 직접 방문했을 때도 신성을 눈치 채지 못했던 그녀다. 그녀는 크르차와 같은 의문을 담은 시선으로 그리드를 바라보았다.
“왜?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여?”
그리드가 히죽 웃었다. 그는 바르바토스의 저격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말락서스의 망토에 후각을 잃고, 레라지에에게 두 눈이 뽑혀나간 크르차는 더 이상 ‘시야’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신이다.”
“....!?”
“너를 죽일 사신.”
“....놈!”
피에 젖은 크르차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한 놈은 광증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듯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방심하지 않았다.
놈의 입가에 희미하게 스치는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스파앗-!
게이트가 열린다.
쿠콰콰콰콱!!
게이트를 통해서 검은 손이 솟구친다.
침묵하고 있던 바르바토스의 저격이 재개된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정확히 그리드를 노렸다.
크르차는 악마.
무려 9위, 8위의 대악마를 섬겨온 그 역시 대악마 후보다.
당연히 살육의 감각을 타고났다.
특히 맹수과의 악마인지라 사냥감을 탐색하는 감각이 악마 중에서도 탁월했다.
비록 눈과 후각을 잃었어도 사냥감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라는 뜻이다.
그 사실을,
“뭐하냐?”
전투 내내 생사를 넘나들었던 그리드가 모를 리 없다.
그리드는 크르차의 감각을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다. 놈의 눈과 후각을 빼앗고도 방심하지 않았다.
“....!!”
크르차가 기겁했다.
자신의 감각은 사냥감이 저쪽에 있음을 감지했고, 하여 바르바토스의 저격이 저쪽을 향한 것인데 사냥감의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렸으니 놀랄 수밖에.
디코이의 활약이다.
크르차의 시야가 살아있었을 땐 활용하지 못했던.
“연살화극.”
푸른 꽃잎이 나부낀다.
연속의 찌르기와 베기가 크르차를 난도질했다.
놈이 흘린 피가 검광에 뒤얽혀 붉은 거미줄을 만들었고, 그리드는 그 거미줄을 갈기갈기 찢어내는 검무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재차 연계했다.
“끄....윽!!”
크르차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레라지에를 꺾고 10번 지옥의 군주가 되기를 노리는 악마답게 대악마처럼 끈질겼다.
‘부족한가?’
그리드가 약간의 초조함을 느꼈다.
벌써 대부분의 공격 스킬을 때려 박았건만 끝끝내 버티는 크르차의 끈질김에 질려버렸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는 이유는 크르차의 레벨이 최소 550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8위 대악마의 권속.
현재 그리드의 스팩으론 쓰러뜨리기 힘든 게 당연한 상대다.
그래서 퀘스트 보상도 어마어마한 것일 테지.
본래 불가능에 가까운 결과를 낼수록 보상의 가치도 올라가는 법이니까.
시스템은 그리드가 이번 퀘스트를 클리어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분석했을 것이다.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분석했을 수도 있다.
이 시점의 플레이어가 설마 대악마와 친분을 쌓고 협력할 거라곤 예측 못했을 테니까.
“짐승답게 끈질기구나.”
콰작!!
레라지에의 작은 주먹이 크르차의 주둥이를 말 그대로 박살냈다. 기다란 턱이 기이하게 뒤틀리며 뾰족하고 단단한 이빨 수십 개가 우수수 떨어졌다.
“무....슨?”
크르차가 경악했다.
한낱 인간인 줄 알았던 그리드에게 치명상을 입었을 때 이상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레라지에가 콧방귀 뀌었다.
“네놈이 나와 그나마 견줄 수 있었던 이유는 헬가오에게 받았던 권능 덕분임을 정녕 몰랐던 것이냐.”
“....!”
크르차가 뒤늦게 깨달았다.
레라지에의 피부가 다시금 매끄럽게 변했다는 사실을.
크르차의 두 주먹에 일렁이던 지옥불이 약해짐에 따라서 레라지에의 메말랐던 점액이 회복된 것이다.
온전한 상태의 그녀가 발휘하는 전력은,
“강자에게 기생하여 얻은 힘을 자신의 능력이라 착각하는 네놈을 볼 때마다 가엽더구나. 진실을 깨달았을 때의 표정이 지금과 같을 것을 뻔히 알았기 때문이지.”
꽈아아아아아아아앙━!!
....지독한 절망에 빠진 크르차의 면상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그녀의 주먹에 관통당한 크르차의 대가리는 단어 그대로 소멸해버렸고, 대가리를 잃은 크르차의 육신은 몇 번을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쓰러져 잿빛으로 산화했다.
승리를 갈구하고, 쟁취하는 힘.
무패왕을 만나기 전까지 전승가도를 달렸었던 그 절대적인 힘은 그리드와 유라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가치가 있었다.
레라지에와 칼바바를 경악시켰던 그리드의 낙룡극살파와 마찬가지로....
[퀘스트 <바르바토스의 저격>을 클리어하였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바르바토스의 시야(5)>가 당신에게 이식됩니다.]
<바르바토스의 시야(5)>
바르바토스의 다섯 번째 눈입니다.
최대 10킬로미터의 거리까지 뻗어나가는 시야를 갖습니다.
스킬 자원 소모:초당 2,000의 마나
스킬 지속 시간:최대 30초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1시간
“....!”
그리드가 즉시 반응했다.
스킬 목록에 추가된 바르바토스의 시야를 즉시 활성화시켜서 마침 딱 10킬로미터 바깥에 솟아있는 새카만 산의 정상을 보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중절모를 쓴 매끈한 정장차림의 신사와.
“네가 뭘 할 수 있지?”
그리드의 시선에 깃든 분노를 읽은 듯, 신사의 입모양이 그렇게 말한다.
“원덕구.”
그리드가 화답해주었다.
내가 너보다 훨씬 더 나은 저격수라는 사실을 통보했다.
도발에 더 큰 도발로 응수하는 것이다.
콰쾅-!
쿠콰콰콰콰콰콰쾅!!
무구의 비가 내린다.
나무 한 포기 없던 새카만 산에 수천 그루의 강철 묘목이 심어졌다.
예상치 못한 저격에 피칠갑한 신사, 서열 제8위의 대악마 바르바토스가 도끼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시야가 하필 최악의 상대에게 넘어갔음을, 놈은 깨닫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