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259화 (1,249/1,794)

템빨 64권 - 03화

네바르탄의 목걸이.

3좌 라드볼프가 네바르탄의 부러진 발톱 조각으로 만든 목걸이다.

보는 이를 미혹시키고 착용자를 광기로 몰아넣는, 무시무시한 저주가 걸린 아이템이었다.

어찌하여 그런 목걸이를 만든 것이냐는 그리드의 질문에 라드볼프는 간단히 대답했었다.

“일종의 전리품인 셈이지. 너 같으면 기껏 얻은 드래곤의 발톱을 그냥 버려두겠냐?”

그래, 네바르탄의 목걸이는 단순 전리품에 불과했다. 딱히 탐낼만한 물건이 아니다.

목걸이를 만든 당사자 라드볼프도, 목걸이를 훔쳐간 적야의 대도도 목걸이가 갖는 의미에 집착하는 거지 목걸이의 성능에 기대를 거는 게 아니었다.

그리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드가 네바르탄의 목걸이를 원하는 이유는 목걸이 자체가 탐나서가 아니라 진행 중인 퀘스트 때문이었다.

<네바르탄의 목걸이>

난이도:???

적야의 대도가 훔쳐간 네바르탄의 목걸이를 회수하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네바르탄의 목걸이를 3좌 라드볼프에게 전달.

퀘스트 클리어 보상:월야철. 라드볼프와의 호감도 상승.

월야철은 대상의 ‘격’을 차단시키는 광물이다.

정확히 어느 정도의 격을 떨어뜨리는지는 실험을 해봐야 알겠지만, 이론적으론 고귀한 존재를 범인으로 만들 수 있었다.

대악마, 초월자, 신, 드래곤 등의 절대적인 존재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거라는 뜻.

그리드가 탐해야할 궁극의 광물 중 하나가 바로 월야철인 것이다.

또한 라드볼프는 마장기 제작자다. 그의 호감을 살 경우 마장기를 선물로 받거나 마장기 제작에 큰 도움을 얻으리라.

‘차라리 잘 됐다.’

그리드는 대도와 같은 편이 되는 전개를 예상조차 못했었다. 사실 대도와 언제 만날지도 몰랐다.

네바르탄의 목걸이를 대체 무슨 수로 회수해야할지 눈앞이 깜깜했었다.

한데 이렇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헥세타이아의 소검.

무려 대장장이의 신이 직접 만든 신물을 내놓으라는 대도의 터무니없는 요구 덕분에 그리드 또한 그에 상응하는 요구를 할 수 있게 됐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소검은 내가 갖고 있을만한 물건이 아니야.’

열망의 무아검과 염룡검만 해도 현존 최강의 무기로 취급받는 실정이다.

한데 그 두 자루 신검보다 몇 배는 강력한 헥세타이아의 소검을 그리드가 소유한다?

밸런스에 집착하는 모르페우스가 잠자코 지켜볼 리 만무했다.

크라우젤의 애병이었던 백아도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번헬리어의 송곳니로 만들었다.’는 설정 탓에 <번헬리어의 시선>이라는 저주가 귀속됐던 백아도처럼, 헥세타이아의 소검은 천사나 신들의 이목을 끌고 추적당하게 만들 확률이 높았다.

아무렴, 대천사조차 단칼에 죽여 버리는 최강의 신검 아닌가.

그런 위협적인 물건이 인간의 손아귀에 쥐어져있는 꼴을 잠자코 지켜볼 정도로 너그러운 신은 아마도 없다.

“네바르탄의 목걸이를 요구할 줄은 꿈에도 몰랐군.... 그런가.... 자네가 바로 당대의 선구자였나.....”

중얼거린 적야의 대도가 그리드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수백 년의 연륜이 쌓인 대도의 눈동자는 하염없이 깊었다.

실상은 지독한 도벽에 시달리는 미치광이 노인네일 뿐인데, 욕망을 억누르고 있을 때의 그는 얼핏 현자처럼 보였다.

“자네는 눈치 채지 못했을 수도 있네만, 그 소검은 매우 위험한 물건일세. 발상을 바꿔보게. 지금 나는 자네에게 소검을 선물로 요구하는 게 아니라 자네를 대신해서 소검이라는 시한폭탄을 떠맡으려는 걸세. 초월의 격을 넘어 신격을 쌓아가는 후배를 존경하며 응원하는 뜻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게지. 한데 네바르탄의 목걸이를 달라고? 네바르탄의 목걸이 또한 그 소검과 비슷하게 위험한 물건인데, 내 자네에게 목걸이를 넘겨줘서야 소검을 가져가는 보람이 없잖은가.”

헥세타이아의 소검을 소유하면 어떤 위험이 뒤따르게 될지.... 적야의 대도 역시 눈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소검을 가지려는 이유가 그리드를 위해서라는 건 궤변이었다.

대도는 그리드에게 지켜야할 의리가 전혀 없다.

그는 단지 소검을 갖고 싶을 뿐이며, 네바르탄의 목걸이도 주기 싫을 뿐이다.

대도의 욕망이 여실히 드러났던 <나라 훔치기>스킬을 떠올린 그리드는 대도에게 속지 않았다.

“소검을 받는 대신 선물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건 선배님이십니다. 적야의 대도라는 명성이 있는데 설마 스스로 뱉은 말을 주워 담으시려는 건 아니겠죠?”

“....쩝.”

기껏 번지르르하게 말해봤자 통하지 않는가.

그럼 괜히 심력 낭비할 필요가 없다.

빠르게 판단한 적야의 대도가 허름한 상의 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곧 한 줄의 목걸이를 찾아 꺼냈다.

고작 발톱 조각을 세공해서 만든 거라고 보기엔 너무 크고 아름다운 보석이 달린 목걸이었다.

[저항하였습니다.]

“아.”

잠시 넋을 잃고 목걸이를 바라보던 그리드가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조금 전까진 마냥 아름답게 보였던 목걸이가 사이한 기운을 내뿜고 있음을 자각했다.

‘과연 대단하군.’

네바르탄의 목걸이는 보는 이를 미혹시킨다.

적야의 대도조차도 지혜의 탑에서 처음 이 목걸이를 보았을 때 몇 분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그때 마력이 흐트러져 탑의 탐지 마법에 발각되는 바람에 자칫 탈출하지 못하고 붙잡힐 뻔 했었다.

한데 그리드는 찰나 만에 미혹을 떨쳐낸 것이다.

적야의 대도는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자가 신으로 추대 받는다 해서 비웃을 일이 아니야.’

그리드의 명성은 이미 예전부터 들어왔다.

그가 어떤 싸움을 해왔고 어떤 업적을 이뤄왔는지 적야의 대도는 모두 알고 있었다.

당연히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대악마와 싸우고, 무신의 추종자와 대천사를 쓰러뜨리는 등....

본래 소문은 과장되게 마련인데, 오늘 본 그리드의 실력은 도리어 소문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게다가 자신의 명성이 아닌 모든 인간의 존엄을 위해 싸웠다.

그렇기에 존경 받고 신으로 추대된 것일 테지.

‘나 같은 놈은 도무지 이해 못할 위인이군.’

짤랑.

피식 웃은 대도가 먼저 네바르탄의 목걸이를 그리드에게 넘겼고,

“받으십시오....”

그리드 또한 헥세타이아의 소검을 대도에게 건네주었다.

소검을 넘기는 게 좋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아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그에게 대도가 말했다.

“난 약속을 잘 하지 않을 뿐이지 이미 한 약속은 잘 지키는 편일세. 그러니 너무 걱정 말게. 자네가 이 검을 필요로 할 때면 아무 조건 없이 빌려줄 테니.”

“그 검이 선배님을 위험에 빠뜨릴까 걱정입니다.”

그리드는 적야의 대도를 오늘 처음 만났다.

본래는 별 감정이 없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리드는 적야의 대도에게 큰 호감을 품고 말았다.

나라 훔치기 스킬로 수많은 인명을 구해줬으니 호감을 품는 게 당연했다.

최강의 인간 중 하나.

언젠간 인류를 한 마음, 한 뜻으로 규합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그리드 입장에선 적야의 대도가 어디서 객사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대도가 끌끌 웃었다.

“나는 평생 남의 것을 훔치며 살아왔네. 도망치고 숨는 일은 누구보다 잘한다고 자부할 수 있지.”

신의 징벌조차도 나를 벌할 순 없다.

그리 말한 적야의 대도가 그리드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대로 떠나는 그에게 그리드가 다른 두 개의 선물은 받지 않을 거냐고 묻자 대도가 손을 휘저었다.

“필요 없네. 이 소검이 있는 이상 여태껏 넘보지 못했던 보물들을 노릴 수 있게 됐으니 그대에겐 더 이상 바랄 게 없어.”

“....”

적야의 대도가 떠났다.

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그리드가 문득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천사 사리엘이 잠자코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내게 당신을 섬길 자격이 있겠느냐 물은 뒤부터 계속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눈치다.

순백의 날개가 기운 없이 늘어져있다.

천사의 고리도 바닥에 떨어질 듯 위태롭게 기울어 있다.

그리드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의기소침해진 듯했다.

그리드가 고백했다.

“내겐 너를 지켜줄 힘이 없어.”

사리엘이 답했다.

“그 어떤 신도 누군가를 완벽하게 지켜줄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신은 당신이 유일하실 거예요.”

“....나랑 같이 지내면 힘든 일만 생길 거야.”

“힘들지언정 혼자서 외로운 것보단 나아요.”

“천상의 신들보다 내가 훨씬 더 부족한 사람일 거야.”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으니 고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더 이상의 대화가 필요할까.

그리드는 언제나 더 많은 동료를 원해왔고 고결한 천사인 사리엘에겐 그리드의 동료가 될 자격이 차고도 넘쳤다.

“그래.... 너만 괜찮다면 함께하자.”

그리드가 사리엘에게 손을 내민 순간이었다.

감격에 눈물 지은 사리엘이 그 손을 붙잡자 그녀의 머리 위에 빛을 잃은 채 떠있던 고리가 완연한 금색으로 물들었다.

[대천사 사리엘이 템빨신의 사자가 되었습니다.]

짧고 강렬한 월드 메시지 한 줄이 이번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드는 어떤 여운에 잠길 틈이 없었다.

신이 됨으로써 활성화 된 새로운 시스템들을 파악하고 활용하는 게 급선무였다.

새로운 종교의 이름을 템빨신교로 할지 그리드교로 할지 의견을 내며 첨예하게 대립 중인 전 레베카교 신도들부터 일단 진정시켜야했다.

또한 총 7명밖에 지정할 수 없는 사자의 자리에 누구를 임명해야할지도 고민해야했고, 종교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교황부터 임명해야했다.

“우선 교황은 데미안.”

“....”

여신의 대행자 자격을 박탈당한 데미안.

기왕 일이 이렇게 된 거 모든 책임으로부터 해방되고 이사벨 쨩과 자유를 만끽하겠다....

마음먹고 들떠있던 데미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물론 한 순간에 불과했다.

그리드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낀 그가 곧 열정적으로 신도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템빨신교가 탄생하였습니다.]

[현재 템빨신교의 신도는 총 42,255명입니다.]

[신도의 숫자가 일정량 이상 늘어날 때마다, 신도들의 기도 횟수가 일정량을 충족할 때마다 당신은 새로운 권능을 얻습니다.]

그리드와 데미안의 시야에 같은 알림창이 떠올랐다.

신과 교황의 관계가 된 두 사람은 이제 운명 공동체가 된 셈이다.

42,255명이라는 숫자는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은 NPC의 숫자와 일치했다.

같은 시각, S.A그룹 본사.

“....설마 종교까지 만들 줄이야.”

드라시온 레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임원진이 넋을 잃었다.

끊임없이 업적을 쌓고 힘을 얻어 반신(半神)이 되고 급기야 신의 자격까지 얻게 될 플레이어야 충분히 등장할 수 있다고 예견했지만, 설마 NPC(인류)의 바람을 등에 업고 신앙의 대상이 되는 플레이어가 탄생할 줄은 예견하지 못했었다.

두 눈만 껌뻑이는 임원들 사이에서 임철호 회장이 미소 지었다.

‘인류의 등불이 됐을 때부터 설마 했건만....’

인류의 등불.

수많은 사람을 구원해온 그리드가 종국에 얻은 타이틀이다.

자기희생이 발판이 돼야하기 때문에 그 어떤 플레이어도 얻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던 궁극의 히든 타이틀 중 하나였다.

어쩌면 그리드는 그 타이틀을 얻었던 시점부터 신앙의 대상이 될 자격을 증명한 걸지도 모른다.

“흠....”

임철호 회장이 종교 상황을 파악했다.

새로운 종교의 탄생.

이번 결과로 인해서 레베카교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고 야탄교의 세력은 반등했다.

균형의 회복.

아이러니하게도 템빨신교의 탄생 덕분에 모르페우스의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앞으로 더 치열해지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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