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1257화 (64권) (1,247/1,794)

템빨 6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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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64권 - 01화

[대천사 라구엘에게 최초의 죽음을 선사하였습니다.]

대악마가 그렇듯 대천사 또한 쉽게 죽지 않는다.

설령 죽어도 다시 부활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대악마는 죽음 이후 영혼 상태로 떠돌다가 새로운 육신을 얻고 윤회하는 반면 대천사는 천상에서 즉시 부활한다는 점이다.

그들을 만든 신들의 성격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대악마를 만든 야탄은 파괴와 죽음, 그리고 안식을 관장하는 신.

죽은 대악마가 다시 부활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죽음의 무게를 돌이켜보며 안식을 취하라는 야탄 신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반면 대천사를 만든 레베카는 자애를 베푸는 여신이다.

죽은 대천사가 죽음의 고통과 고독에서 허덕이지 않게끔 즉시 부활시켰다. 죽은 대천사의 육신을 새로이 빚어내는 일이야 그녀에겐 쉽고 익숙한 일이었다.

[플레이어 최초의 업적입니다!]

인류 최초의 업적은 아니다.

이래야 개연성이 맞다.

대천사 중 몇 명은 이미 먼 옛날 칠선인과의 전쟁에서 죽음을 맛봤을 테니.

라구엘처럼 여태껏 단 한 번도 죽지 않은 대천사는 의외로 드물지 모른다.

[‘천사의 고리’를 획득하였습니다.]

[‘천사의 깃털’을 획득하였습니다.]

[‘라구엘의 창’을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엔젤 슬레이어’를 획득하였습니다.]

[새롭게 시작될 신화의 첫머리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위대한 업적의 보상으로 신격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

[레벨이....]

....

...

<천사의 고리>

등급:신화

천사의 머리 위에 떠오른 채 광채를 발하던 고리입니다. 지금은 빛을 잃었고 용도를 알 수 없지만 대단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게:0

<천사의 깃털>

등급:신화

천사의 날개에서 떨어진 깃털입니다. 무슨 수를 써도 더럽힐 수 없을 것처럼 하얗고 깨끗합니다. 아직 용도는 모르지만 대단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게:0

<라구엘의 창>

등급:신화

내구력:1/1 공격력:1,277

대천사 라구엘이 애용하던 창입니다.

라구엘이 죽음에 도달하기까지 혹사당한 탓에 기능을 잃고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 휘둘렀다간 산산조각날 것 같습니다.

무게:1,220

<엔젤 슬레이어>

★신성한 존재를 공격 시 일정 확률로 방어력 하락 유발.

완전무결한 존재인 대천사에게 죽음을 체험시키고 고통과 공포를 학습시켰습니다.

대천사들은 당신을 경계할 것이며 천사들은 당신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고리, 깃털, 그리고 창과 칭호.

칭호를 제외하면 현재 시점에선 가치를 짐작하기 힘든 보상들이다.

하지만 라구엘의 창과 헥세타이아의 소검의 재질이 같다는 사실을 눈치 챈 그리드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고리와 깃털 모두 반드시 중요한 쓰임새가 생길 것 같군.’

디바인 스톤.

대장장이의 신 헥세타이아가 천상에 존재하는 모든 광물의 장점을 한데모아 창조한 광물이다.

파브라늄을 모태로 만든 탐욕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에 있는, 세계관 최고의 광물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물질이었다.

비록 함량은 높지 않지만, 라구엘의 창의 재질이 다름 아닌 디바인 스톤이었다.

라구엘의 창에서 소량이나마 디바인 스톤을 추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잠재력 개방을 써서 대장장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면 추출할 수 있겠지.’

어찌됐든 천사의 고리와 깃털도 디바인 스톤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물질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새로운 신화의 첫머리에 그리드라는 이름을 장식함으로써 신격이 올랐다.

신위가 아닌 신격이다.

신위 스탯이 10개가 오를 때마다 신격의 레벨이 하나 오른다는 점을 감안해봤을 때 그리드가 이번에 얻은 보상은 10개 이상의 서사시를 쓴 것과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고 해석해도 무방했다.

‘아니, 초월의 격은 오르지 않았으니 그 정도까진 아니군.’

진정하자.

레벨도 무려 7개나 올랐다지만 지금은 기뻐할 때가 아니다.

심호흡한 그리드가 여전히 울고 있는 사리엘을 바라보았다.

대천사 사리엘.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땐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사리엘은 레베카교의 템플러를 이끄는 대천사의 이름이 아니던가.

이미 버젓이 사리엘이 존재하건만 사리엘을 자처하는 드라시온을 보면서 당연히 사칭이라고 생각했다. 악마놈이 끝까지 수작을 부리는 거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초조해하며 달려드는 천사들의 모습을 본 순간 슈트리온의 ‘손’ 하나에도 쩔쩔맸던 사리엘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사리엘이 대천사로써의 위엄을 보여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리드가 만난 최초의 대천사 사리엘은 ‘마법을 차단한다.’는 고유 특성을 제외하면 딱히 큰 인상을 남긴 적이 없다.

그리드는 자연히 의심을 품었다.

대악마 레이드에 레베카교의 실력자들을 대규모로 투입하고 급기야 본인도 직접 참전한 데미안의 곁에 사리엘과 템플러가 없었다는 점, 죽은 뒤에 다시 부활했을 데미안이 즉시 전장에 복귀하지 못한 점 등등.

수상한 부분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가장 수상했던 점은 드라시온이 자신을 사리엘이라고 밝힌 순간 천사들이 보여준 반응이다.

드라시온의 주장을 부정하지 못한 것은 소위 말하는 천사의 순수함 때문이었을까.

천사들의 반응 때문에라도 그리드는 드라시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설령 믿지 못했더라도 천사들을 적대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데미안을 해친 것으로 모자라 전장의 인간을 모조리 멸절시키려했던 놈들을 그리드가 용서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결과적으로.

[천상의 신들이 당신에게 분노합니다.]

[대천사를 해친 당신을 바라보는 레베카 여신의 시선에 복잡한 심경이 담깁니다.]

그리드는 신들에게 찍히고 말았다.

보상을 보고 기뻐할 때가 아닌 것이다.

‘이런 젠장.... 미친....’

그리드는 반신(半神)이 될 기회를 두 번이나 얻었었다.

신이 되는 지름길에 두 번이나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절호의 기회를 걷어찼던 이유는 신들과 척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신에게 굳이 미움을 사려는 병신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그리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다.

절대적인 존재들과 적대할 경우 잃을 게 너무 많은 입장이다.

‘아니 난 대악마를 레이드하려고 했을 뿐인데....’

어쩌다가 아스가르드의 신들과 적대하게 됐지?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좌절하던 그리드가 드라시온 아니, 사리엘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그녀는 여전히 슬피 울고 있었다.

신들의 죄를 밝히지 못하고 칠선인을 돕지 못한 것으로 모자라 악마로 타락해 인간들을 학살했던 자신을 원망하며 괴로워하는 눈치였다.

그녀를 사람들이 둘러쌌다.

레베카교의 장로들이 그녀 앞에 무릎 꿇고 말했다.

마치 기도를 올리는 듯했다.

“스스로를 원망하지 마소서. 스스로의 죄를 묻지 마소서. 당신께서 겪어온 모진 고통과 희생이 신들의 실체를 밝혔음에 인간은 새로운 구원을 체험했나니.”

“당신께선 진정한 빛이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드님을 섬길 자격을 지닌 유일한 천사이십니다.”

“....?”

잠자코 듣던 그리드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를 섬길 자격을 지닌 천사라고?

저 노인네들이 지금 뭐라는 거야?

귀를 의심하는 그리드에게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대천사들이 내린 신벌을 피하지 못하고 죽었던 각국 방송사의 카메라맨들이 마침 다시 현장에 도착하는 중이었다.

시청자들에게 참상을 전달하려는 듯, 참혹한 전장의 풍경을 천천히 훑고 지나가던 수백 대의 카메라가 일제히 그리드에게 향했다.

수백 명의 레베카교 교인들이 그리드에게 절을 올리기 시작했기 때문.

개중에는 <사리엘>이라는 이름을 지닌 아름다운 천사도 포함돼 있었다.

“오늘 우리는 신앙을 잃었나이다.”

장로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자 현장의 분위기가 술렁였다.

템빨단원을 비롯해 이번 전쟁에 참가했던 모든 플레이어들과 제국의 모든 사람들이 숨죽인 채 장로들과 그리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신앙을 품었나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당신 그리드께서 우리의 새로운 신이 되어주시길 간곡히 기도하고 바라옵니다.”

“....!”

“....!”

곳곳에서 침음이 이어졌다.

서대륙 최대 종교의 개종.

하물며 그 대상이 플레이어라는 사실에 세상이 충격에 빠졌다.

한 명의 평범했던 플레이어가 영웅이 되고, 국왕이 되고, 전설이 된 끝에 새로운 신화의 주역이 된 순간이다.

너무 대단하고 놀라운 나머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섣불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한편 그리드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엿 됐다.’

아마 레베카교 전체가 그리드교로 개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을 실제로 보고 겪은, 레베카교 교인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수백 명의 교인들만이 그리드를 새로운 신으로 받들 것이며 그들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실망하고 그리드를 떠날지 모른다.

하지만 적게나마, 그리고 일시적으로나마 그리드는 레베카의 신도들을 빼앗고 말았다.

의도치 않게 레베카에게 선전포고를 한 셈이었다.

영향은 바로 찾아왔다.

[템빨국 북부에서 역병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입니다.]

[템빨국 서부에서 메뚜기떼가 출몰했다는 소식입니다.]

[템빨국 중부를 태풍이 휩쓸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템빨국 남부에서 홍수가 범람했다는 소식입니다.]

“아....”

제발 이러지마.

그리드가 레베카교 교인들과 사리엘에게 애타는 시선을 보냈지만 속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였다.

“늦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아무런 도움도 되어드리지 못했군요.”

데미안이 전장에 복귀했다.

레베카의 딸들과 함께 현장을 찾아온 그는 상처투성이였다.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레베카의 딸들도 중상을 입은 모습을 보아 어디선가 사투를 벌이고 온 눈치다.

아무래도 레베카교에 침투해있던 또 다른 사리엘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을 가능성이 커보였다.

“데미안, 이사벨....”

제발 이 사람들 좀 말려봐.

부탁하려던 그리드가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그리드는 기억해야한다.

그를 최초로 신격화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이사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새로운 신을 뵙습니다.”

이사벨을 비롯한 레베카의 딸들이 일제히 무릎 꿇으며 그리드에게 절을 올렸고,

“그리드교에서는 일반 신도로 마음 편히 지내고 싶네요.”

데미안은 레베카교의 교황을 상징하는 관과 망토를 벗어던졌다.

그리드가 황당해서 말문을 닫았다.

물론 플레이어 또한 신이 될 수 있음을 여태껏 시스템은 몇 번이나 시사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이루어질 줄이야....

넋이 나간 그리드의 시야에 아니, 현재 게임에 접속 중인 모든 플레이어의 시야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템빨왕 그리드가 열 번째 서사시를 써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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