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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233화 (1,223/1,794)

템빨 62권 - 20화

-감사합니다. 저의 작은 지식이 은인께 도움이 된다면 좋겠네요.

비쩍 마른 몸과 굽은 등,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눈가, 하얗게 질린 피부....

살아생전의 모습을 되찾은 무무드의 영혼이 유페미나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한 뒤 사라진다.

유페미나는 개벽을 맞이했다.

[천재 마법사 무무드의 광대한 지식을 흡수하였습니다.]

[성장형 레전드리 클래스 <무무드의 후계자>로 전직하실 수 있습니다.]

[전직 시 기존의 클래스 <복제술사>는 사라집니다. 복제술사의 직업 고유 스킬이 삭제되고 능력치가 초기화됩니다.]

[단, 복제술사 전직 퀘스트로 얻은 능력치와 스킬 중 일부는 삭제되지 않고 계승됩니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려면 상세정보를 클릭해주세요.]

[현재 보유 중인 세컨드 클래스 <무자비한 폭격자>는 퍼스트 클래스의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무무드의 후계자>로 전직하시겠습니까?]

“.....”

복제술사는 단점과 약점이 많은 직업이다.

스킬을 복제하기 위해선 대상 플레이어가 스킬을 쓰게끔 유도해야하며, 하루에 복제할 수 있는 스킬의 개수에 제한이 있다. 또한 성향이 다른 스킬을 연속으로 사용할 때마다 대량의 정신력을 소모하는 까닭에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수록 유지력이 나쁜 편이다.

하지만 매력적인 클래스이기도 했다.

복제해놓은 스킬의 양과 질에 따라서 공격, 방어, 버프, 회복, 디버프 모든 분야에 정통한 무결점의 존재가 되는 게 가능했으니까.

어느 날은 최강이었다가 어느 날은 최약일 수도 있는 직업이 바로 복제술사인 셈이다.

유페미나는 자신의 직업을 원망할 때도 많았지만 동시에 사랑하기도 했다.

“응, 전직할거야.”

하지만 미련 없이 버린다.

복제술사의 포텐셜이 아무리 높아봤자 무무드의 후계자와 비교할 대상은 아니었기 때문.

당연하다.

무무드는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조차 시기하고 질투하게 만들었던 천재 마법사.

그의 후계자가 된다는 건 전설 중에서도 1티어급의 잠재력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무무드의 후계자로 전직하였습니다.]

유페미나의 결심에 시스템이 호응한 순간, 모든 속성을 아우르는 무지갯빛 마력이 유페미나의 작은 몸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프론티어의 잿빛 하늘을 뒤덮는 오로라의 장관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그때.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무한한 잠재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짧고 강렬한 월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무한한 잠재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무한한 잠재력.

바알의 계약자를 레전드리 클래스로 승급시킨 아그너스도, 검성으로 전직한 크라우젤도, 수차례 서사시를 쓴 그리드조차도 얻지 못했던 표현이다.

언론이 발칵 뒤집히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누구지? 저거 도대체 누구야?”

“그리드나 크라우젤 아닐까요?”

“아그너스일 것 같은데.”

“머저리들! 그럴 리가 있겠냐!”

20억 플레이어가 즐기는 또 다른 세계.

하루에도 수만 가지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Satisfy의 소식을 다루는 S매거진 편집장 닉슨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번 월드 메시지의 주인공은 기존까지의 주역들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인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드, 크라우젤, 아그너스 세 사람 중 하나였다면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아니라 정확한 이름이 표기됐을 테니까.’

무한한 잠재력은 그리드, 크라우젤, 아그너스 세 사람에게도 새로운 경지다.

거의 최종적인 진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알 수 없는 누군가로 표기됐던 서사시의 주인공이 어떤 경지에 도달한 이후부턴 ‘그리드’라고 명확히 표기된 전례가 있는 만큼, 무한한 잠재력의 주인이 기존의 강자 중 하나였다면 아이디가 공개됐을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주역이 될 자격이 있었던 사람.... 누구지?’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많았다.

템빨단의 십공신과 오러 마스터 휴렌트, 군신 아레스, 마장기의 주인 지발, 교황 데미안, 무기수집가 아스카, 백요와 흑요 자매, 사신 나이트, 야탄의 종 로제 등등.

다만 붉은 현자 하스터는 제외다.

하스터를 사냥하는 동영상을 찍어서 딥 웹에 올렸던 할레 일당이 냥멍이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던 사건 이후부터 하스터에 대한 기대치는 나락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신흥 강자 중에서도 떠오르는 사람이 제법 많군.’

템빨단의 비밀병기 코크, 마법사 킬러 니콜, 사하란 제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는 질풍의 사야, 자신을 환국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빌트레드 등.

Satisfy는 광대하고 인재는 많았다.

어느 누가 새로운 월드 메시지의 주인공이 됐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전혀 아니었다.

만약 닉슨 편집장이 평범한 플레이어였다면 무한한 잠재력의 주인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먼 훗날의 순간을 느긋하게 고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닉슨 편집장에겐 새로운 소식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전파할 의무가 있었다.

무한한 잠재력의 주인이 누군지 당장 밝혀내고 싶었다.

‘우선 템빨단 소속원들은 후보군에서 제외시켜야겠지.’

안 그래도 최다 전설 보유 세력인 템빨단은 최근 새로운 전설을 2명이나 배출했다.

큰 사건 후엔 한동안 고요가 따르는 법.

아무래도 이번 월드 메시지의 주인공이 템빨단원일 가능성은 낮아보였다.

후보군을 차츰 좁혀나가는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뭐? 33위 대악마가?”

닉슨 편집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29위 대악마가 토벌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엔 33위 대악마가 토벌됐다는 월드 메시지가 떠올랐다는 게 아닌가?

그것도 심지어 지옥에서 말이다.

“그리드....!!”

지상보다 지옥에서 훨씬 더 강력하다는 대악마를 지옥에서 연속으로 토벌하다니, 29위 대악마를 토벌한 건 요행이 아니었단 말인가?

닉슨 편집장의 관심사가 대번에 바뀌었다.

강렬한 영감을 얻은 그가 ‘무한한 잠재력의 주인’과 관련해서 작성하던 기사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기사를 써내려갔다.

기사의 제목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자극적이었다.

<템빨왕 그리드, 검성 뮐러를 뛰어넘다!>

***

“그리드!”

“유페미나!”

33위 대악마는 29위 대악마 마르코시아스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파괴적이었다.

기본적인 성격부터가 악마답게 호전적이어서 그리드와 유라를 몇 번이나 위기에 빠뜨렸다.

하지만 백호 자세와 지신의 효과를 적극 활용한 그리드의 방어력을 끝내 완전히 파훼하지 못했고, 마르코시아스보다 낮은 격과 방어력을 지닌 놈의 육신은 유라의 총탄에 수천 차례 꿰뚫린 끝에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짧지만 힘든 전투였다.

연속적인 전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리드와 유라는 각종 소모품(지옥에서 구하지 못하는)을 충전할 겸 지상으로 올라와 유페미나부터 찾았다.

전직을 축하해주기 위해서였다.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는 그리드와 유페미나를 유라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크고 듬직한 그리드와 작고 사랑스러운 유페미나는 마치 친남매 같아 보였다.

초창기부터 계속 된 두 사람의 인연은 유라도 익히 알고 있었다.

“축하드려요.”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다며, 그동안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며 연신 서로를 다독인 그리드와 유페미나가 드디어 진정하며 떨어지자 유라에게도 축하를 건넬 기회가 찾아왔다.

웃으며 악수를 건네는 그녀의 손을 유페미나가 힘차게 맞잡았다.

“고마워요, 언니. 앞으론 저도 길드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여태까지도 충분히 활약했잖아요.”

“언니하고 비하면....”

유페미나가 그리드와 유라를 번갈아가면서 힐끔거렸다.

어떤 그 누구도 섣불리 발을 들이지 못하는 지옥.

지상과는 완전히 다른 별세계에서 단 둘이 함께하며 활약하는 두 사람을 유페미나는 부러워하고 있었다.

자신도 저들과 함께하며 템빨단의 주축이 되고 싶었다.

한동안 아그너스에게 흔들려 그리드를 실망시킨만큼 더욱 더.

그녀의 마음을 읽은 걸까.

“기대할게.”

상냥하게 미소지은 그리드가 유페미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해주었다.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활짝 웃은 유페미나가 힘차게 외쳤다.

무무드의 후계자로 전직한 그녀의 레벨은 300으로 하락한 상태.

무려 100이 넘는 레벨 즉, 최소 5년이라는 세월을 잃었지만 그녀는 불안해하지 않았다.

브라함식 강화 마법처럼 빠르게 연계할 순 없지만 고위 마법에 특화된 즉, 다수의 대단위 마법을 보유하고 있는 무무드의 후계자는 몹몰이에 특화된 직업이라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

그녀는 레벨쯤이야 빠르게 복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아예 1레벨로 초기화됐던 페이커, 지슈카보다 훨씬 더 상황이 좋은 것이다.

“좋아. 이번에 전설로 전직한 사람들을 위해서 축하 파티를 열자고. 다들 내일까지 우리 동네로 모여.”

그리드가 공지하자마자 템빨단원 중 상당수가 로그아웃했다.

그들은 해외에 거주 중인 템빨단원들이었다.

내일까지 한국에 도착하려면 서둘러 채비를 시작해야했던 것이다.

반면 지슈카와 라우엘처럼 한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부러움의 시선을 받으며 느긋하게 게임에 집중했다.

***

‘마신의 심장이 필요할 거라고....’

33위 대악마를 만나기 전.

지옥의 대장장이 헬스미스를 찾아간 그리드는 매우 큰 힌트를 얻었다.

스태미나 하락을 방지하는 아이템.

즉 체력이라는 동력을 공급하는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선 주작의 숨결만으로도 부족하고 마신의 심장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 마신의 정체라는 게 놀라웠다.

‘슈트리오.’

마신.

악신 야탄과 다른 지옥의 또 다른 신.

어째서 신의 지위에 오른 존재가 고작 12위 대악마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납득이 안 된다.

혼란스러워하는 그리드에게 유라가 말했다.

“우선 제가 아모락트를 만나봐야할 것 같아요. 그녀로부터 얻는 정보들이 단서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모락트가 바알과 적대한다고 했었나?”

“경계하는 것 같은 느낌이긴 했어요.”

“흠....”

야탄교 본단에 쳐들어갔던 브라함이 아모락트에게 큰 원한을 품었던 모습을 떠올린 그리드는 앞으로 지옥에서 펼쳐질 에피소드가 기대되기도, 걱정되기도 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이 그리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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