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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222화 (1,212/1,794)

템빨 62권 - 09화

“냐아~흥!”

“....누구세요?”

노에를 소환한 그리드가 두 눈을 껌뻑였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새하얀 털과 벙어리장갑을 신은 것처럼 둥글게 말린 발. 여기까지는 우레석을 먹고 한층 더 아름다워진 노에와 꼭 닮았는데....

딱딱! 딱!

그리드가 혼란을 느끼는 사이 노에의 등에 올라탄 템빨골들이 기마병 흉내를 낸다.

그렇다.

템빨골들을 태울 수 있을 정도로 노에의 몸집은 거대해졌다.

팔다리와 목이 통나무처럼 두꺼워졌고 찐빵마냥 둥글고 귀엽던 얼굴은 갸름해지고 날카로워졌다. 머리와 가슴을 풍성하게 뒤덮는 갈기가 위협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왜 갑자기 사자가 된 거야?”

원래 고양이잖아?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은 어디로 가고 갑자기 위풍당당해졌단 말인가.

“이게 바로 지옥 제일 마수 멤피스님의 진짜 모습이다흥.”

둥글게 말렸던 발을 쫙 펴자 칼날 같은 발톱이 후두둑 튀어나온다.

진짜로 강해 보인다.

‘인계에 있을 때는 마기가 부족해서 축소된 상태로 지냈던 건가.’

아니, 그렇다고 보기엔 우레석을 먹기 전까진 진짜 완전히 고양이였잖아?

갑자기 왜 사자냐고.

새카만 털에 네 발 끝은 희었던 노에의 옛 모습을 떠올려본 그리드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굳이 깊이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

‘어떻게 생겼든지 노에는 노에니까.’

그리드가 노에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노에

종족:멤피스

레벨:309

상태:흡족

(어흥! 어흥! 어흐흥!)

생명력:500,000

근력:2,000 체력:3,000

민첩성:3,000 지력:2,000

★지옥의 환경 속에서 우레석을 완전히 소화시키고 성체로 거듭났습니다.

★성체가 된 멤피스는 10레벨 단위로 모든 능력치가 100씩 상승합니다. 단, 생명력은 100레벨 단위로 성장합니다.

★탑승 시 탑승자의 공격력 10퍼센트 상승. 돌진 계열 스킬의 위력 30퍼센트 상승.

-현재 습득 중인 스킬 목록-

[유체화] [영혼섭취] [할퀴기] [매혹] [무엄하도다!] [질주]

‘성장력이 엄청나네.’

1레벨이 오를 때마다 스탯 포인트를 40개씩 얻는 셈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노에를 집중적으로 육성할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노에의 성장도가 중요해졌다.

‘아니, 템빨골도 충분히 훌륭해’

<템빨골1>

직업:스켈레톤 소드 댄서

레벨:322

생명력:51,000 마나:1,090

근력:1,301 체력:450

민첩:720 지력:80

착용 중인 아이템

무기:<날카로운 무아지경의 검>

보조 무기:<가시 방패>

갑옷:<굳건한 발할라>

-직업 고유 스킬 목록-

<해골 부수기Lv.MAX> <파괴적인 춤을 추는 대장장이 기술Lv.4>, <춤추기Lv.6>, <춤추면서 베기Lv.3>, <춤추면서 찌르기Lv.3>, <생명력 상승>, <방어력 상승>, [살육의 춤(A)]

-학습한 스킬 목록-

<해골의 인내심>, <은사 피하기>, <고급 소드마스터리Lv.2>, <중급 채광 기술Lv.3>, <중급 석화 내성>, <중급 물리 내성>, <중급 마법 내성>, <하급 순간 가속>, <깨물기>, <비웃기>, <두개골 박치기>, <중급 중독 내성>, <하급 신성 내성>, [해골 검무(A)]

<템빨골2>

직업:스켈레톤 비숍

레벨:319

생명력:30,200 마나:21,900

근력:100 체력:700

민첩:300 지력:1,350

무기:<벨리알의 지팡이(모작)>

보조 무기:<사령의 오브>

갑옷:<케리안 로브>

-직업 고유 스킬 목록-

<해골 붙이기Lv.4> <수복하는 춤을 추는 대장장이 기술Lv.6>, <춤추기Lv.6>, <해골 붙이기Lv.8>, <두개골 강화Lv.2>, <골격 강화Lv.2>, <마나 실드Lv.2>, <생명력, 마나 상승> [해골 만들기(A)]

-학습 중인 스킬 목록-

<해골의 인내심>, <은사 피하기>, <고급 매직 마스터리Lv.2>, <중급 채광 기술Lv.3>, <중급 석화 내성>, <초급 물리 내성>, <중급 마법 내성>, <깨물기>, <비웃기>, <중급 중독 내성>, <중급 신성 내성> [어떤 신을 향한 기도(A)]

카오스 산맥과 귀선이 서식하는 저수지에서 사냥할 당시.

그리드는 노에가 아닌 템빨골들의 육성에 주력했었다.

아무래도 노에보단 새로운 스킬을 학습하는 템빨골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템빨골의 레벨 당 획득 능력치는 8로 매우 낮긴 했지만, 이마저도 3차 전직 이후에 늘어난 수치였기 때문에 앞으로 더 늘어날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노에와 템빨골 모두 잘 키워야 돼.’

귀선을 상대로 싸우며 생사고락을 함께했기 때문일까.

템빨골들은 노에의 등위에 올라타 좋다고 방방 뛰었고 노에는 녀석들을 너그러이 받아들여주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그리드가 슬그머니 칼을 뽑았다.

“어서 오십시오.”

연미복을 입은 붉은 피부의 마족이 그리드 일행 앞에 다가온 까닭.

왼쪽 이마에 솟아난 외뿔과 날카로운 송곳니가 눈에 띈다.

새카만 눈자위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마기가 위협적이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마주쳤던 마물들과는 전혀 다르다. 지성을 지닌 존재였다.

중립 지역에서 보았던 마족들과 닮았다고 하기엔 뿔과 마기가 너무 거슬렸고.

이 느낌은 마치....

“대악마?”

긴장하는 그리드에게 유라가 설명해주었다.

“지옥에 서식하는 종족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마물과 마족, 그리고 악마에요.”

마물은 이름 그대로 몬스터로 분류되며 마족은 지옥의 백성들이라고 표현함이 옳다.

반면 악마는 귀족이다.

지옥의 군주 즉, 대악마의 자리를 노릴 자격이 있는 종족.

악마는 개체수가 적은 대신 매우 강력한 무력과 마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지적능력도 높다.

“대악마 후보쯤 되는 건가?”

“네.”

‘환국으로 치면 양반 같은 놈들인 거군.’

앞으로의 전개야 뻔하다.

지독히 오만해서 인간을 깔볼 것이며 실제로 더럽게 강할 테지.

악마답게 공격적이고 잔인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이곳은 지옥.’

멤피스가 증명했듯이 마족과 악마는 인계가 아닌 지옥에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한다.

인계에 강림했던 하위 대악마보다 눈앞의 악마가 더 강할 수도 있다는 뜻.

힘든 싸움이 될 거라고 예상하며 긴장감을 높이는 그리드에게 악마가 말했다.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주인의 손님께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으니.”

‘주인의 손님?’

주인이라는 놈은 누구기에 나를 손님으로 맞이하는 거지?

지옥에 인맥이 없는 그리드의 입장에선 당연히 의아했다.

“....?”

영문을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가 문득 유라와 눈을 마주쳤다.

유라의 시선은 한없이 고요하고 평온했다.

갑자기 나타난 악마를 보고도 일절 동요하지도, 경계하지도 않았다.

설마?

그리드가 놀라는 그때였다.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인님.”

자신의 심장에 손을 얹은 악마가 유라에게 부복했다.

“....!?”

경악하는 그리드.

믿기 어려운 상황을 목격하고 혼란에 빠진 그에게 유라가 살포시 웃어주었다.

“템빨단 지옥지부에 오신 걸 환영해요.”

***

32지옥은 본래 대악마 벨리알의 거처였다.

하지만 인계에 강림했던 그녀가 완전히 소멸하는 바람에 32지옥의 왕좌는 공석이 되었고, 악마간의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다.

“무려 13명의 악마가 참전한 전쟁은 참혹하고, 치열했습니다. 적이 아군이 되고, 아군이 적이 되기를 반복하면서 전투의 양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었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폭풍우 속에 떨어진 심정이었습니다. 이 전쟁이 언제쯤 끝날지 도무지 예상할 수 없었죠.”

텀벙.

악마가 주전자에 눈 달린 지네를 담갔다.

펄펄 끓는 물속에 담기고도 지네는 죽지 않았다. 두 눈에 핏발을 세운 녀석이 몸을 뒤틀며 법석을 떨 때마다 찻물이 붉게 우러났다.

“계속되는 전쟁에 지쳐갈 무렵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한 명의 인간이 전장 곳곳에 나타나 악마들을 해치고 다닌다지 뭡니까?”

쪼르르.

악마가 그리드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피처럼 시뻘건 차였다.

악취가 진동해 구정물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아직 어린 악마들은 고작 인간 따위가 무슨 수로 지옥에 들어와 우리를 해치겠냐며 콧방귀 뀌었지만 저는 달랐습니다. 왜냐면 전 이미 인간의 침략을 당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스윽.

악마가 장갑을 벗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두 손은 검었다. 다른 피부는 붉은색인데 유독 두 손만 검정색이었다. 게다가 납덩이처럼 무겁고 단단해보였다.

‘의수?’

“데빌 슬레이어 알렉스. 수백 년 전 지옥을 침략했던 그자에게 두 손을 잃은 저는 소문의 인간이 새로운 데빌 슬레이어일 거라고 확신한 채 방문을 기다렸고, 기다림 끝에 유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그리드가 붉은 차를 입에 가져가보았다.

유라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

한데 웬걸.

구정물 같은 악취가 무색하게도 맛이 좋았다.

입 안 가득 퍼져나가는 떫고 단 맛이 매혹적이었다.

효과도 끝내줬다.

[지옥의 마기가 조금 해독되는 것을 느낍니다. 지옥에서의 페널티가 5퍼센트 영구적으로 감소합니다.]

“그리고 저는 유라님께 충성을 맹세했죠.”

“음....”

알렉스에게 양손을 잃었다기에 깊은 원한을 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라에게 복수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충성을 맹세했다니, 뭔가 깊은 사연이 있는 듯했다.

“알렉스에게 뭔가 큰 은혜라도 입었던 건가?”

그리드가 질문하자 악마가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 양손을 자른 놈인데 은혜라니요?”

“그럼 유라한테는 왜 충성을 맹세한 건데?”

“그야 당연히 목숨을 부지하려고 그런 겁니다. 전대 데빌슬레이어에게 품은 원한을 당대 데빌슬레이어에게라도 갚자는 심정으로 기다렸다가 기습을 가했는데도 도리어 두들겨 맞았으니 선택지가 없을 수밖에요. 후....”

“....얘 믿어도 되는 거야?”

“이미 충성의 계약을 맺었어요. 악마는 죽는 한이 있어도 계약을 어기지 못하기 때문에 신뢰해도 좋아요. 어쩌면 인간보다 더요.”

“맞습니다. 목이 잘려나가도 계약 대상을 배신하지 못하는 게 바로 악마라는 족속의 한계죠. 알렉스도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켈베로스마냥 꼬리를 흔드는 저를 살려놓고 계약을 맺어 부려먹었었죠. 매일 그 뒤통수를 볼 때마다 후려치고 싶었는데 끝내 후려치지 못했으니.... 악마로 태어난 것에 정말이지 큰 자괴감을 느낍니다.”

“악마인 게 문제가 아니라 계약을 맺어가면서까지 살아남은 게 문제 같은데.”

“계약을 맺어서라도 살아남는 게 옳지요. 죽으면 언제 다시 부활할지도 모르는 마당에 왜 죽습니까? 일단 살고 봐야지.”

그리드가 찻잔을 전부 비웠다.

그리고 차를 한 잔 더 따라 마셔보았지만 공교롭게도 페널티 감소 효과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지옥의 마기를 해독하는 히든 아이템이 지역마다 숨겨져 있어요. 제가 몇 군데 아는 곳이 있으니까 나중에 안내해드릴게요.”

실망하는 그리드를 안심시키는 유라였다.

아직도 할 말이 많은지 또 입을 여는 악마에게 유라가 질문했다.

“서큐버스의 서식지는 확인했나요?”

“네, 헬리테라 숲에서 마물들을 현혹하며 연명하고 있더군요.”

유라가 악마를 부하로 받아들인 이유는 32지옥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한 번 악마들을 몰아내고 정화하긴 했지만 여전히 꽤 많은 마족과 마물들이 살아있었고, 놈들 탓에 32지옥은 언젠가 다시 오염될 운명이었다. 들끓는 마기는 새로운 악마를 유인할 것이었고 놈들 중 누군가가 대악마에 등극하는 순간 32지옥은 완전히 부활하게 된다.

유라가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32지옥에 계속 머무르는 수밖엔 없었는데 그러기엔 그녀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대리인을 세운 것이다.

무려 수천 년을 살아온 악마 글런트.

나이만큼은 대악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그의 수완은 매우 훌륭했고, 덕분에 32지옥의 마기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악마들 입장에선 영양가 없는 황무지로 보일 것이다.

“좋아요. 곧바로 출발하죠. 제가 앞장 설 테니 영우씨는 향수의 지속 시간을 잘 확인하세요.”

“응.”

의지할 사람이 많다는 건 정말로 행복한 일이구나.

마물들을 처치하며 유라의 뒤를 따르는 그리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짧은 미소였다.

“왜 저렇게 학학 거려?”

헬리테라 숲.

숲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풀 한 포기 없는 그곳에 도착한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서큐버스들의 거친 숨소리가 듣기 영 민망했던 까닭이다.

데리고 다니려면 입에 재갈이라도 물려야하는 건 아닐까 고민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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