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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213화 (1,203/1,794)

템빨 61권 - 21화

템빨국은 플레이어가 세운 나라다. 중세시대를 방불케 하는 기존의 국가들이 봤을 때 템빨국의 정책들은 혁신적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큰 화제가 됐던 건 템빨국의 교육 시스템이다.

신분과 성별, 그리고 재능과 재력을 차별하지 않는 평등한 교육 시스템.

재능에는 귀천이 없다고 주장했던 제국보다 한 발 더 앞서나간 것이다.

‘이 정도로 커졌을 줄이야.’

오래간만에 아카데미에 방문한 그리드가 혀를 내둘렀다.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온 템빨아카데미의 부지는 이미 하나의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그 어떤 캠퍼스보다 템빨아카데미가 크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뿌듯하군.’

그리드는 배움의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흐뭇한 표정으로 교정을 걷는 그의 감회가 깊었다.

템빨아카데미 건립 후 7년.

드디어 첫 졸업생들이 탄생하는 날이다.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두각을 드러낼지 벌써부터 기대됐다.

“전하의 방문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템빨아카데미에는 수십 개의 학부가 있다. 교수진만 해도 수백 명이었다. 라우엘이 전국 각지에서 어렵게 초빙해온 명사들이다. 청렴결백하고 자존심 강한 그들이 템빨아카데미에서 교수를 맡은 이유는 재물이나 권력을 탐해서가 아니라 대현자 스틱세이를 존경하는 마음에서였다.

“늘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리드는 교수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자신이 평생토록 쌓아올린 지식과 경험을 백성들에게 베푸는 그들을 솔직히 말해서 존경했다. 벌써부터 근심이 들기도 했다. 교수 중 상당수가 백발의 노인이었던 까닭. 대부분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라우엘이 조만간 또 고생하겠군.’

“왜 이렇게 빨리 오셨습니까?”

스틱세이가 은근히 핀잔을 주었다.

곧 수탉이 울 시간이다.

아직 이른 새벽인 것이다.

졸업식이 시작하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찾아온 그리드의 의도가 영 꺼림칙했다.

하루의 시작부터 마나를 빨리는 건가.... 졸업생들에게 훈화하다가 쓰러지는 건 아닐까....

미리부터 근심하며 텔레포트 주문을 준비하는 스틱세이에게 그리드가 웃어주었다.

“아직 학생들이 없을 때 조용히 교정을 둘러보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던 교수님들과 인사도 나누고 싶었고요.”

“그렇군요.”

덕분에 꼭두새벽부터 일어난 교수들만 죽을 맛일 텐데.

뒷말을 삼키는 스틱세이였다. 그는 그리드의 부지런함이 상식에서 벗어나는 수준까지 이르렀음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잠은 제대로 자고 다니는지 걱정이었다.

“식단이 영 별로군요.”

교정을 한 바퀴 쭉 돌아본 후.

조식을 먹기 위해 구내식당을 찾은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갓 구운 빵은 부드럽고 풍미가 깊어 맛있었지만 찬이 영 별로였다. 스프도 오래 끓이지 않은 건지 맹탕이었다.

“고작 이런 음식을 먹고 학생들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리드가 불쾌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해마다 아카데미에 쏟아 붓는 예산이 얼마인가.

먹거리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마당에 훌륭한 시설은 허례허식밖에 더 되는가.

‘중간에 누가 급식비를 떼어먹나?’

라빗이 직접 운영하는 감찰단을 보내서 매운 맛을 한 번 보여줘야겠다.

진지하게 다짐하는 그리드에게 스틱세이가 몇 마디 했다.

“조식 시간까지 아직 2시간이나 남았습니다. 음식 준비도 다 안 됐는데 찾아오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조리사들이 섭섭하겠군요.”

“.....”

잠시 시간을 망각하고 말았다. 매일 치열하게 살다보니 남들보다 하루를 빨리 시작해 시간 개념이 뒤틀렸다.

그리드가 민망해서 헛기침하는 사이 라우엘이 자리에 합류했다.

재상인 그 또한 오늘 졸업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낼 예정이었다.

“꼰대세요?”

“....”

작게 속삭여 묻는 라우엘 탓에 그리드는 한층 더 민망해졌다.

***

졸업식 일정이 시작되기 전.

이른 아침부터 아카데미로 달려온 졸업생들이 저마다의 학부를 방문했다. 오랫동안 자신을 가르쳐주신 스승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였다.

“고향에서 홀로 지내시는 아버지의 집이 얼마 전 태풍으로 무너졌을 때, 제가 좌절하지 않고 아버지를 안심시켜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스승님 덕분이었습니다. 스승님께 배운 기술로 다시 기둥을 세우고, 벽과 천장을 덮어 아버지께 새로운 집을 지어드릴 수 있었죠. 제가 백정의 아들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께 하염없이 감사드릴 뿐입니다.”

“제 고향은 산속이에요. 저는 화전민이거든요. 제 가족과 이웃들은 모두 허름한 오두막에서 지냈어요. 여름에는 더위와 벌레들에게 고통 받았고 겨울에는 추위에 벌벌 떨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제가 방학마다 고향을 찾아가 가족과 이웃의 집들을 보수해줬거든요. 헤헤.... 스승님 덕분에 고향의 허름했던 오두막들이 따뜻한 보금자리로 변할 수 있었어요.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집은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기술이 그렇듯 건축기술은 아무에게나 전승되지 않았다. 건축가들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이 있었고 제자를 키우는데 신중했다.

출신이 의심되거나 재능이 없는 사람은 집 짓는 기술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주변 어른들의 지식과 경험에 의지해서 집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은 집들은 완성도가 매우 떨어졌다. 겉으로 봤을 땐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방음, 방한, 방수 등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내구도도 형편없었다.

건축부 학생들에게 있어서 스승은 신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값싸게 지어주고 우리의 기술을 널리 전파하리라.... 빗물 새는 천장을 바라보며 잠드는 아이들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야 말겠다.

“저 친구랑 저 친구.”

다짐하며 스승과 인사를 나누는 건축부 학생들을 멀리서 지켜보던 그리드가 2명을 지목했고 그들의 명단을 라우엘이 받아 적었다.

그리드의 손에는 왕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

“스승님 덕분에 몇 번이나 골절상을 입고 인대가 늘어나 뼈와 근육이 튼튼해졌습니다.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스승님.”

“스승님께 하도 맞으면서 배우다 보니 이제 어지간한 놈들은 무섭지도 않습니다. 지난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갔다가 만난 도적놈들이 협박을 해대는데 우스워서 오줌만 지렸지 뭡니까.”

“주둥이들이 살아났군. 졸업을 취소하고 앞으로 1년 더 배워볼 테냐?”

“하하하.... 정말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스승님. 평범한 사냥꾼이었던 저를 어엿한 검사로 만들어주신 스승님의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이제부턴 기사를 목표로 더욱 더 정진하겠습니다!”

“영광이었습니다, 스승님!”

“영광이었습니다!!”

그리드가 아홉 번째로 방문한 학부는 검술부였다.

과연, 다른 학부와 비교해서 학생의 숫자가 월등히 많았고 그만큼 졸업생도 많았다.

무려 137명.

하지만 역시 뛰어난 인재는 없었다.

당연하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는다. 재능이 있었다면 진즉 누군가의 눈에 띄어 거둬지거나 직접 기사를 찾아가 제자가 됐겠지.

애초에 아카데미를 다니는 학생들은 생계를 꾸려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루 중 절반을 일하고 남은 시간에 학교로 찾아와 교육을 받아왔다. 그렇기에 7년이란 세월 동안 간신히 기본기를 연마하고 졸업 자격을 얻은 것이다.

“그래도 평범한 병사보단 뛰어난 이들도 보이는군요.”

재상의 안목은 높다.

재상이라는 지위에 오르면 얻는 고유 스탯과 스킬들이 존재하기 때문.

그리드와 나란히 서서 졸업생들의 면면을 살핀 라우엘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저들이 각자의 마을로 돌아가 자경단에 들어가면 치안 유지에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렇겠지.”

앞으론 매 해마다 졸업생들이 탄생할 것이다. 심지어 숫자도 몇 배씩 늘어나는 추세다.

향후 10년만 지나도 전문가 못지않은 기술력을 갖춘 백성들과 병사 못지않은 전투력을 지닌 백성들이 마을 곳곳에서 목격될 것이었다. 또한 그들이 제자를 키우기 시작하면 수십 년 후쯤 템빨국의 백성들은 하나하나가 뛰어난 인재로 성장해있으리라.

그리드는 뿌듯했지만 다소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재능.

세상에서 가장 불공평한 개념 중 하나인 그것은 때때로 사람을 속인다.

적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을 쥐 죽은 듯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나 주위를 놀라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보통 그러한 재능을 끈기, 혹은 근성이라고 한다.

어릴 때는 둔재라고 평가 받던 사람도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다보면 평균 이상의 재능을 개화하는 경우가 있었고 그리드 본인이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소위 말하는 대기만성이라는 것이다.

‘졸업생 중에 몇 명은 예상 이상의 실력을 쌓았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실제로 보니 전혀 아니었다.

졸업생 대부분이 평범했다. 그리드가 9개의 학부를 돌며 건진 인재는 총 5명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보통보다 아주 약간 나은 정도였다. 앞으로 몇 년 정도 빡세게 굴려야 좀 쓸만하게 크겠다 싶은 수준?

근데 검술부엔 그런 사람조차 아예 없었다.

검술부와 마법부, 그리고 정령부에 큰 기대를 걸었던 그리드 입장에선 속이 쓰릴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마법부는 더 심각할 테니 믿을 건 정령부뿐인가.’

마법에 작게나마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마탑에 들어갔다. 아카데미에서 뛰어난 마법사가 될 재목을 발견할 가능성은 현격히 낮았다.

‘울족에게만 의지하는 건 한계가 있을 텐데.’

템빨국의 마법병단은 대부분 울족으로 구성돼있다. 숫자가 적은데다가 평범한 사람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다. 소수민족 출신인 울족은 아무래도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와 마탑에서 교육담당을 맡았던 울족의 실력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퇴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전하!!”

“전하를 뵙습니다!!”

“....”

그리드가 문득 상념에서 깨어났다.

멀찍이 떨어져있는 그리드를 우연히 발견한 건지 연병장의 검술부 학생들이 일제히 절을 올리고 있었다.

“일어나라.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외면하지 못하고 연병장으로 내려온 그리드가 학생들을 몸소 일으켜주었다. 그를 보는 학생들의 시선엔 선망이 가득했다.

대장장이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그렇듯, 검술부 학생들이 검사가 되기를 꿈꿨던 이유 또한 그리드를 존경해서였다. 마법부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검과 마법으로 온갖 대적들과 싸우고 이겨온 그리드는 백성들의 꿈이었다. 그리드를 조금이라도 닮고 싶은 게 그들의 목표였다.

초롱초롱한 시선을 보내오는 학생들의 면면을 살펴본 라우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학생들이 전하의 검술을 견식하고 싶나본데요.”

꿀꺽.

라우엘이 판을 깔아주자 학생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리드의 검술을 가까이서 구경할 기회를 그들이 놓치고 싶을 리 만무했다.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 학생들의 모습이 그리드의 발목을 붙잡았다.

‘조금 민망하지만....’

닳는 것도 아니고, 검 한 번 휘둘러 보이는 게 무슨 대수겠나.

그리드가 유난히 눈동자가 맑은 청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목검을 빌릴 수 있겠나?”

여기서 진검 썼다간 라빗이 출동할 수도 있다.

“여, 영광입니다!!”

부러워하는 주변의 시선 속에서 청년이 공손히 목검을 바쳤다. 긴장과 흥분으로 덜덜 떨리는 그의 어깨를 다독여준 그리드가 고요한 시선으로 연병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표적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장 전체를 살피고 인지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위력 테스트를 겸해볼까.’

그리드의 검무는 이제 보폭 없이도 전개 가능하다. 하지만 최대 4회의 보폭을 밟음으로서 위력을 극대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저벅.

목검을 쥔 손을 편하게 늘어뜨린 그리드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쿠웅!

대기가 짓눌렸다.

학생들은 당연히 착각인 줄 알았지만 이내 착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드가 다음 보폭을 다시 밟자 이번엔 대지가 흔들렸기 때문.

연병장의 모래들이 스스슥, 스스슥 진동하며 소음을 발생시켰고 그리드의 검 끝엔 투명한 검기가 서렸다.

“아아.”

학생들은 물론이고 검술부 교수와 메르세데스까지 감탄을 터뜨렸다.

세 번째, 네 번째 보폭을 밟아나가는 그리드의 뒷모습은 그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던 무언가를 연상케 만들었고 너무나도 거대했다.

“극(極).”

무신.

복제품에 불과한 제라툴 따위가 아닌 치우의 일격을 재현하는 검무.

찬란하게 빛나는 인챈트 웨폰에 휩싸인 목검이 직선으로 떨어진다.

파공성은커녕 작은 소음조차 없었다.

하지만 대기가 반으로 잘라져나간 광경을 메르세데스는 똑똑히 엿봤다.

이어서.

콰아앙!!

폭음과도 같은 파공성이 한 발 늦게 울려 퍼졌고 이때 발생한 풍압이 연병장 주위의 가로수를 모조리 뒤흔들어놓았다.

한동안 소용돌이친 낙엽이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허억....”

검술부 교수와 학생들이 숨을 내쉬었다.

‘응?’

석상처럼 굳은 맑은 눈의 청년에게 목검을 돌려주던 그리드가 이질감을 느끼고 허리춤의 칼집에 손을 가져갔다. 국왕의 검에 손을 얹은 것이다.

그러자 활성화되는 <인재 탐색>이 청년에게 반응했다.

이름:베델

나이:21세 성별:남

직업:검사

칭호:검의 구도자

템빨왕 그리드의 일격이 그의 세계를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앞으로 평생 동안 그리드의 일격을 재현하기 위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베기 공격 시 위력이 50퍼센트~400퍼센트 증가. 소드 마스터리 숙련도 상승 속도 300퍼센트 증가.

레벨:195

근력:981/1,590 체력:360/630

민첩:319/551 지력:210/509

집념:10

스킬:[초급 소드 마스터리(D)] [템빨아카데미 검법(D)] [일격의 저주(S)] [검의 구도자(S)]

<일격의 저주>

패시브

평생 도달하지 못할 일격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이 강력한 저주는 그를 끊임없이 절망시키고 발전시킬 것입니다.

*분노 스탯 생성.

*분노 스탯 축적 시마다 베기 형태의 공격 위력이 대폭 증가.

★분노 스탯이 최대치에 도달할 때마다 스탯 한계 돌파.

재사용 대기 시간:없음

자원 소모:없음

“라우엘.”

“네.”

“이 친구도 포함시켜.”

“알겠습니다.”

치우와 파그마의 일화가 지상에서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리드는 베델에게 깊은 흥미를 품었고 베델은 얼어붙어버렸다.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그리드의 날카로운 눈동자는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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