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61권 - 06화
“행례의 연출 수단에 불과한 검무를 거기까지 발전시킨 집념도, 패기도 마음에 드는군.”
“제 검술의 정체를 알아보셨던 겁니까?”
첫 시련에서 잠재력을 개방한 그리드는 5융합 검무를 선보였었다.
하지만 그 어떤 양반도 검무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당연하다.
그리드의 검무가 파그마의 검무를 기초로 삼고 있다지만 너무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룬 상태였기 때문이다.
동작을 최소화하고 위력을 극대화시킨 그리드의 검무는 파그마의 검무와 달리 검술의 형(形)을 갖춰 가는 중이다. 훨씬 더 전투적이고 효율적이었다.
물론 일부 공통점이 남아 있긴 했지만 양반들이 기억하는 파그마의 검무는 단일 검무에 불과했다. 두 검무의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치우는 달랐다.
짤랑.
“융합 검무는 내가 파그마에게 제시했던 길이므로 몰라볼 수가 없지.”
“……!”
“하지만 정작 파그마는 투쟁심이 없었어. 무력의 필요성을 간과했다. 그 결과를 체험하라.”
스파아아아앗━!
흑백의 세상을 온갖 색채가 덧씌운다.
푸른 하늘과 맑은 강물, 강변의 단풍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조화를 되찾았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감탄하던 그리드가 문득 상념에서 깨어났다.
“…파그마아!!”
시간이 다시 흐르자 평화도 끝났다.
도포를 요란하게 펄럭이며 덮쳐 오는 가람의 검이 그리드의 심장에 닿기 직전이다.
이미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그렸던 그리드가 황급히 백호의 숨결을 활성화시켰다.
[백호의 가호가 당신을 지킵니다.]
[피격 시, 최소 1회에서 최대 3회에 한하여 치명상을 면하고 당신을 공격한 대상에게 반발력을 가합니다.]
[생명력과 스태미나가 소폭 회복됩니다.]
쩌어엉!!
그리드의 몸을 둘러싼 은백색의 기운이 가람의 연검을 가로막았다.
부르르, 요란하게 흔들린 가람의 연검이 반발력을 견디지 못하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지금!’
그대로 상체를 기울인 그리드가 가람의 가슴을 어깨로 힘껏 밀쳤다. 가람을 강물에 떨어뜨릴 의도였다. 아직 남은 청룡의 숨결을 이용해서 이 거대한 강의 물고기들과 가람을 통째로 기절시킬 각오였다.
하지만 가람은 뒤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불완전한 자세로도 그리드의 밀치기를 견뎌 내고 역으로 그리드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능력도 없는 놈이 요행을 바라는군. 인간들이 쓴 서사를 읽고 인간들을 이해하겠다, 도공이 되어 인간들을 돕겠다, 제사장이 되어 신과 인간의 교두보가 되겠다……. 온갖 핑계로 수련을 등한시하고 허송세월해 온 네놈 따위에게 무슨 힘이 있을까?”
“컥……! 켁켁!!”
파그마보다 레벨도, 능력치도 훨씬 높은 게 분명한 가람을 파그마의 몸으로 자빠뜨린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목덜미를 붙잡혀 숨도 못 쉬고 버둥거리는 그리드를 가람이 지그시 노려보는 그때였다.
캬앙!
가람이 나타난 순간부터 겁에 질려 벌벌 떨던 청호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앞으로 달려 나왔다. 아직 작지만 날카로운 송곳니로 가람의 종아리를 힘껏 깨물었다.
가람이 코웃음 쳤다.
“흥, 잘 어울리는 한 쌍이군.”
꽈악.
목덜미를 더욱 세게 붙잡힌 그리드가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
카응… 카으응…….
가람은 파그마가 환국의 수치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드는 놈의 여러 발언들을 토대로 파그마가 환국에서 소외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
질식해 혼절했던 그리드.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커다란 철창의 안이었다.
뭔가 묵직해 시선을 돌려 보니 팔뚝에 청호가 매달려 있었다.
당장 눈물을 흘려도 이상하지 않을, 촉촉이 젖은 눈동자로 이쪽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마주치자 기뻐하며 혀로 뺨을 핥아 온다.
“목숨은 건졌구나. 그래도 명색이 양반이라고 명줄이 길군.”
철창 밖에서 조소가 들려왔다.
가람이었다.
호랑이의 가죽을 덧씌운 의자를 철창 가까이 끌고 와 앉은 놈이 히죽 웃었다.
“네놈이 죽지 않아 다행이다. 너무 싱겁게 죽어 버리면 시시할 것 같아 난처했던 참이거든.”
“…….”
“잠자리는 어떻더냐? 짐승과 더불어 사는 것이 네놈의 소원 같기에 이뤄 줬거늘 마음에 드느냐?”
“…….”
그리드는 이 당시의 파그마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 또한 비슷한 입장을 체험했던 사람이니까.
크릉! 커흥!!
가슴을 바닥에 바짝 붙인 청호가 포효했다.
철창만 없었어도 당장 가람을 할퀴었을 기세다.
가람이 어깨를 으쓱였다. 짐승 따위의 태도에 일일이 반응하기엔 놈이 지닌 여유가 너무 컸다.
“백호의 새끼를 인계에 풀어놓으려고 했던 네놈의 배신행위는 조만간 오존께서도 알게 될 테지. 엄벌을 받을 게다. 그때까지 짧게나마 그 짐승 새끼와 어울려 놀거라.”
“…알고 있었는가?”
그리드가 아닌, 과거의 파그마가 던진 질문이다.
그리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입이 제멋대로 열렸다.
과거의 재연이었다.
“이 아이가 백호 신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런 취급을 했던 겐가?”
“그럼 모르고 그랬을까? 저놈이 평범한 호랑이였다면 애저녁에 죽여 가죽을 벗기고 고기는 불태워 버렸겠지.”
“어떻게……. 어찌 그런…….”
분노로 가슴이 떨린다.
파그마가 느끼는 감정이 그리드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무엇을 비난하고자 하는 거지? 백호의 새끼를 가둬 두고 괴롭히길 즐긴 행동을 비난하려는 게냐, 아니면 짐승의 새끼 따윈 쉽게 죽일 거라는 말을 비난하려는 게냐?”
“당연히 전부일세. 자네는 정녕 모든 생명이 평등함을 모르는가? 어째서 자네는 자신보다 약한 생물을 보살필 생각을 않고 해칠 생각만 하는 겐가?”
“네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인간들조차 자신보다 하등한 짐승을 학대하고, 사냥하고, 섭취한다. 넌 너의 잣대가 어긋나 있음을 자각해야 할 필요가 있어.”
“대부분의 인간이 짐승을 사냥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함일세. 짐승을 단지 재미로 학대하는 인간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들은 같은 인간에게도 비난받는 불안정한 존재야. 반면 우리는 신께서 직접 빚으신 피조물이므로 이미 완전하지.”
우리가 굳이 인간의 나쁜 점을 답습할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인간의 죄를 핑계로 우리까지 죄를 저지를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파그마는 가람을 맹렬히 비난했고 가람은 콧방귀 뀌었다.
“인간이 순전히 생존을 위해서 짐승을 사냥한다고? 큭큭, 궤변이다. 인간의 사냥은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쾌락이야말로 모든 존재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신의 은총인 바. 나 또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며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등한 생물을 이용하는 것인데 그걸 비난하는 건 너무 큰 이기심 아니더냐? 막말로 내가 인간을 죽이진 않잖아?”
“…….”
파그마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눠 봤자 의미가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에도 가람과 양반들의 학대는 계속됐다.
청호의 작은 몸엔 매일 새로운 상처가 생겨났고 그때마다 파그마의 마음과 정신은 더 큰 고통에 시달렸다.
끼잉… 끼이잉…….
어느 날.
청호의 작은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청호였지만 오늘따라 유독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
청호를 안아 위로해 주려던 파그마가 흠칫 놀라 굳었다.
청호의 몸이 마치 불덩이처럼 뜨거웠던 까닭이다.
“어, 어디가 편찮은 것이냐?”
끼잉…….
화륵.
청호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눈치챈 파그마가 주작의 숨결을 사용했다.
주작의 따스한 숨결이 죽어 가는 청호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길 기원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파그마는 이미 주작의 숨결을 소모한 상태였다. 플레이어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쿨타임에 걸렸다.
지난 보름 동안 매일 그랬듯이, 오늘 밤 역시 청호가 편히 잠들 수 있게끔 주작의 숨결을 사용했던 여파다.
“신이시여……! 주작 신이시여!!”
파그마가 급기야 기도를 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해 봤자 주작의 호응은 없었다. 봉인당한 신이 기도에 반응할 리 없는 것이다.
“안 돼! 정신 차리거라!”
끙끙 앓던 청호가 끝내 의식을 잃자 파그마는 더욱 초조해졌다.
“오존이시여! 한울이시여! 부디……! 부디 이 가여운 아이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깊은 새벽.
가람과 양반들이 떠나고 빈 술병만 굴러다니는 대전에 공허한 외침이 울려 퍼진다.
대답은 없었다.
오존은 파그마의 기도를 뻔히 들었음에도 묵살했다.
백호 신의 자식.
세상에 돌려보냈다간 어떤 화를 일으킬지 모를 변수 따위, 그냥 이대로 소멸하는 편이 낫다는 게 오존의 판단이었다.
“아이야! 정신 차려라! 힘을 내거라!!”
잔뜩 구겨지고 때 묻은 도포.
지난 보름 동안 파그마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그 거적이 청호의 몸을 칭칭 감는다.
그 탓에 속적삼 차림이 된 파그마의 폐부를 차가운 새벽 공기가 찔렀지만 파그마는 자각하지 못했다.
그는 단지 청호를 살리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견뎌 내거라.”
“고통만 받다가 떠나기엔 이 세상이 너무나도 아름답단다.”
“부디… 부디 살아남아 행복을 좇아 보거라. 내가 도울 것이다.”
파그마가 품에 안은 청호에게 연신 속삭였다.
하지만 부질없게도 청호의 몸은 차갑게 식어 가기 시작했다.
파그마는 절망했다.
나약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선, 혹은 막아서기 위해선 이성과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짤랑.
어둡고 차디찬 대전에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힘을 연마하라 일렀던 이유를 이제 알겠느냐?”
무신이 나타났다.
치우.
신의 의지가 아닌 인간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신.
“네가 신이 아닌 제사장이 되기를 바랐던 이유도, 도공이 되기를 꿈꿨던 이유도 나는 모두 이해한다. 아마도 한울 또한 마찬가지겠지.”
“…….”
“그리고 적어도 나는 너의 마음을 기특하다 여겼다.”
“…….”
“그렇기에 무력을 갖추라고 일러 줬음이다.”
무신은 인간들의 이상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힘이 필요하단 사실을 고대부터 깨우친 인류는 무신을 탄생시켜 숭상함으로써 자신들 역시 강해지길 기원했다.
치우는 파그마 또한 무력의 필요성을 자각하길 바랐다.
양반 중에서 유일하게 정감이 가는 아이에게 갖는 애착이었다.
“보아라.”
스릉.
치우가 허리춤에서 도를 뽑았다.
천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순간을 기억하여라.”
서걱.
일도양단.
그 외의 표현은 딱히 필요치 않았다.
치우는 단지 도를 휘둘렀을 뿐이고, 파그마와 청호를 가뒀던 철창은 단지 베여 나갔을 뿐이다.
하지만 파그마는 개벽을 맞이했다.
[새로운 검무, 초(超)를 습득하였습니다.]
[새로운 검무, 제(制)를 습득하였습니다.]
[새로운 검무, 극(極)을 습득하였습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선 싸울 각오가,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선 힘이 필요한 법이다. 설령 살업을 짊어지게 될지언정 투쟁함이 옳다.”
[새로운 검무, 살(殺)을 습득하였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은혜를 갚겠나이다.”
“그 다짐이 사실이라면 오존의 눈을 피해 서쪽 땅으로 떠나라. 그리고 신살의 자격을 얻어서 돌아오너라.”
꾸욱…….
청호를 끌어안은 양팔에 힘을 실은 파그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치우에게 깊이 허리를 숙인 뒤 서둘러 대전을 떠났다.
“놈! 네놈이 또다시!!”
선착장에 도착한 파그마가 인근의 복숭아나무 사이에서 백도를 찾는 사이 가람과 양반들이 추격해 왔다.
딱히 문제는 없었다.
지난 보름 동안 관찰자의 입장에 머물렀던 그리드가 이 순간 다시 파그마의 육신에 빙의했으니까.
그의 무력은 옛 양반들의 척도를 넘어섰다.
“초.”
“……?”
“연살파.”
“……!!”
콰르르르르르릉!!
고양이가 호랑이의 괴력을 발휘할 거라고 예측하는 게 가능할까?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종전과 다른 파그마의 솜씨에 놀란 가람과 양반들은 대처하지 못하고 중상을 입었다.
“쿨럭, 쿨럭……! 네놈이 무슨 수로?”
가람과 양반들이 파그마를 혐오하는 이유는 첫째, 그의 사상이 어긋났기 때문이며 둘째, 노력하지 않아 나약하기 때문이다.
탁상공론이나 지껄일 줄 알지 기본 소양조차 못 갖춘 놈이 좋게 보일 리 만무했다.
그런 기본도 안 된 놈이 갑자기 하루 사이에 강해진 것이다.
자신 또한 양반이라고 포효하듯이 뛰어난 무예를 선보였다.
당황하는 가람과 양반들에게 결정타를 먹이려던 그리드가 이내 행동을 멈추고 선박 위에 올라탔다.
청호를 살리는 게 급선무였으니까.
겁먹은 선장을 무시한 그리드가 백도를 씹어 청호에게 먹여 주었다.
끼잉…….
청호가 힘겹게 눈을 떴다. 차갑게 식었던 몸이 다시 따스해지기 시작했다.
그리드가 안도하는 순간이었다.
“…….”
다시 흑백으로 변한 세상에 적막이 깔렸다.
짤랑, 짤랑.
안개에 가린 갑판 쪽에서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철창을 베어 파그마를 도왔던 과거의 치우가 아닌 현재의 치우가 그리드 앞에 다가와 섰다.
“그대와 달리 파그마는 간신히 살아남았었지. 그건 기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
“그 아이가 진즉부터 각오를 다졌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 것이다.”
“…당신께서도 오존과 양반들이 그릇됐다고 생각하십니까?”
치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심한 표정으로 가만히 그리드를 응시하더니 주제를 바꿨다.
“이제 다섯 번째 시련만이 남았군.”
그리드가 의아해했다.
“세 번째 시련을 진행 중이던 게 아니었습니까?”
지금 세 번째 시련을 통과한 게 맞다면, 다음은 네 번째 시련을 치러야 할 차례다.
한데 다섯 번째라니?
짤랑.
“그대는 이미 세 번째 시련과 네 번째 시련을 통과하였으니 남은 시련은 하나뿐이다.”
“…….”
“무(武)를 보여라.”
스파아아앗━
시간이 다시 움직인다.
퇴색했던 세상이 색채를 되찾으며 선착장 인근에 쓰러져 있던 가람과 양반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갔다.
해진을 비롯해 이번 시련에 참가했던 양반들의 모습이었다.
그리드가 과거의 파그마를 체험했듯, 해진과 양반들 역시 과거의 가람과 양반들의 역할을 체험했던 것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해진과 양반들이 술렁였다.
아무래도 그들은 그리드와 달리 멈춰진 세상에 갇혀 있던 눈치다.
치우에게 아무런 언질도 받지 못해 시련의 진행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짤랑.
갑판 위에 올라선 치우가 선언했다.
“지금부터 마지막 시련을 시작한다.”
콰르르르르르릉!!
강과 산이 소용돌이친다 싶더니 점이 되어 소멸했다.
그리드가 올라선 선박과 양반들이 자리 잡은 선착장만이 도화지처럼 변한 세상 위에 우뚝 솟았다.
전쟁의 무대였다.
“싸우고, 이기고, 지키고, 쟁취해라. 그것이 무의 존재 이유다.”
짤랑.
방울 소리가 희미해진 것이 신호였다.
허리띠처럼 두르고 있던 연검을 풀어 쥔 해진이 도약해 선박 위로 올라섰다.
“인간 주제에 마지막 시련까지 도달한 건 대단하구나. 하지만 요행은 여기까지다!”
촤르륵!!
뱀처럼 뻗어 나간 연검이 그리드의 허리를 노리는가 싶더니 급격히 꺾여 목젖을 노렸다.
연검의 특성을 극대화시킨 변칙적인 검술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을 정도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리드는 양반의 검술에 익숙했다.
그것도 최강의 양반 중 하나였던 가람의 검술에 말이다.
챙!
“……!?”
해진의 기습은 그리드에게 비교적 손쉽게 차단당했다.
기겁하는 그녀의 부릅떠진 한쪽 눈을 극(極)의 묘리가 담긴 염룡검이 베고 지나갔다.
“눈깔 뽑혀 보니까 어때?”
아이린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그리드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