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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1171화 (1,161/1,794)

템빨 60권 - 06화

끼긱, 끼기기긱....

망자들의 행군은 느리되 멈추지 않는다.

시가지 곳곳에 복잡하게 세워놓은 방책에 몸이 찔리고, 가로막혀도 계속해서 전진한 녀석들이 급기야 궁전을 포위하고 말았다.

“빌어먹을.... 화살은? 화살은 더 없나?”

“몇 주 동안 계속된 야전으로 전부 소모되었습니다!”

“끄응, 그 많던 대장장이들이 죄다 떠나버렸으니.... 모두 대열을 정비하라!!”

둥! 두둥!! 둥!!

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우렁찬 북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몇 주 동안 야전을 치르고 낮에는 도사를 수색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한 그들을 수마가 사로잡고 있었다.

와르르!!

망자의 군단이 왕궁을 노린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곳곳에 설치해놨던 함정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인지 없는 망자들은 함정을 구분하지 못했고 스스로 구덩이 속에 파묻혔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간신히 기름을 뿌린 병사들이 불을 붙여 놈들을 태웠다. 새카만 연기가 일어나며 지독한 악취가 일대에 번져나갔다.

망자의 옷과 살을 태울 때마다 더욱 더 거세지는 불길이 병사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그때였다.

“아이스 웨이브.”

하늘 위로 작은 소년이 나타난다 싶더니 묘한 주문을 읊었다.

그러자 차가운 얼음의 격랑이 일어나 전장의 불길을 사그라뜨렸고 병사들이 힘들게 파놨던 함정 구덩이를 모조리 메워버렸다.

“부, 부적도 없이 주술을?”

“서쪽에서 온 도사다! 저놈부터 쳐라!”

병사들은 낯선 존재에게 혼란과 두려움을 느꼈지만 상층부는 달랐다. 망자의 군단에 강시가 아닌 좀비가 섞여있는 모습을 봤던 시점부터 그들은 침입자의 정체가 외인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감히 우리의 조국을 침범하고 우리의 백성을 욕보인 저들을 용서치 마라!!”

“우와아아아아!!”

카라스군과 망자의 군단이 전면전에 돌입했다.

카라스군의 숫자가 3배 이상 많았지만 잔뜩 지쳐있었으므로 치열한 전투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의외의 결과가 발생했다.

카라스군이 망자의 군단을 일방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망자들은 1대1로도 카라스의 병사와 대적하지 못했는데 숫자까지 밀리자 완전히 압도당했다.

“....?”

후위에서 망자들을 통솔하던 아그너스의 눈가가 씰룩였다.

카라스에 잠입하고 몇 주가 지나서야 처음으로 전면전을 체험한 그는 카라스군의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지했다.

“킥킥.... 동대륙은 다르다 이거냐?”

바알의 계약자는 시체를 언데드로 만들어 수족으로 삼는다.

즉, 시체가 많아질수록 강해진다는 뜻이다.

한데 전투가 진행될수록 시체가 쌓이기는커녕 망자들의 숫자만 줄어들었으니 낭패였다.

“돌겨억!!”

기세가 오른 카라스군이 망자들의 진형을 돌파하며 붕괴시켰다.

말 위에 올라탄 무사들의 언월도가 하나의 반월을 그릴 때마다 수십 구의 망자가 목을 잃고 쓰러졌다.

“네놈이 원흉이렸다!!”

망자들의 호위를 받는 아그너스를 발견한 장군 하나가 도끼눈을 치켜뜨며 호통 쳤다. 유령마들을 베어 넘어뜨린 그의 참마검이 벼락처럼 번쩍이며 아그너스에게 쇄도했다.

순간.

짜악!

아그너스가 손뼉을 쳤고,

와르르르르!!

전장 곳곳에서 허우적거리던 수천 망자들이 동시에 실 끊어진 인형마냥 쓰러졌다.

눈앞의 흉수가 전쟁을 포기한 거라고 판단한 장군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검을 휘두르는 손은 멈추지 않고 흉수의 목을 쳤다.

서걱!!

“....!?”

흉수의 목에 꽂혀있던 장군의 시야가 한 바퀴 회전하더니 달을 담았다.

성스러운 빛을 흩뿌려야할 보름달이 붉게 물든 채 수백 개의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뭣?’

사고가 이어지지 않는다.

지면으로 곤두박질 친 그의 시야가 그대로 암전됐다.

“곽 장군!!”

“이, 이런....!”

기껏 기세를 올렸던 카라스군이 주춤거렸다.

목을 잃고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쓰러지는 장군의 시신을 밟고 선 데스나이트가 그들을 쓱 훑었다.

아그너스의 광소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죽여! 모조리 죽여라!! 키햐하하핫!!”

키얏!!

수천의 망자 군단을 통솔하느라 소모하고 있던 지배권을 회수, 이를 이용해서 3기의 데스나이트와 리치 무무드를 소환한 아그너스가 전장을 서서히 지배해나갔다.

자신은 무무드의 호위를 받으며 3기의 데스나이트를 운용해 카라스군의 상층부를 저격하기 시작했으니 카라스군의 지휘체계는 순식간에 붕괴됐다.

하지만 병사들의 저항은 거셌다.

자신들을 통솔하던 장군과 책사들을 잃고도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용기백배해 데스나이트의 팔과 다리를 베고, 부쉈다.

결국 3기의 데스나이트가 모조리 잿빛으로 산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절망의 신호탄이었다.

데스나이트의 유지에 쓰이고 있던 지배권을 회수한 아그너스가 전장에 쓰러져 있던 망자들을 다시금 일으켜 세웠다.

망자들의 숫자는 전보다 배 이상 늘어나 있었다.

데스나이트와 리치 무무드에게 살육당한 수천 병사들이 망자로 부활한 까닭이다.

“마, 말도 안 돼....”

무한동력.

전장의 악마가 선보이는 배리(背理)가 카라스군을 절망시켰고,

끼이이이이이이이이!!

새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마치 동이 트듯이 하늘이 밝게 물들었다.

전장의 인간들을 묵묵히 지켜보던 지옥 달의 수백 개 눈이 괴로운 듯이 일제히 감겼다.

콰르르르르륵!!

불의 비가 쏟아졌다.

아그너스가 험난한 과정을 통해 일으켜 세운 수천 구의 망자들이 허무하리마치 쉽게 잿빛으로 산화했다.

아그너스의 곁에 함께하고 있던 연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신이 창조한 사자(死者), ‘루나 카롤린’이 큰 피해를 입고 소멸합니다.]

파그마의 후예에게는 아이템 창조가, 검성에게는 검술 창조가 있듯이 바알의 계약자에게는 사자 창조라는 직업 고유 스킬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자는 보통의 언데드나 데스나이트, 리치와 달리 지배권을 소모하지 않고도 소환할 수 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늘 곁에 둘 수 있다는 뜻.

운용 수량에 제한이 생기는 다른 소환수와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최대한 많은 사자를, 최대한 높은 등급으로 만들어 부릴수록 바알의 계약자의 강함은 증폭됐다.

하지만....

“루나!!”

아그너스는 그 귀중한 스킬을 다른 방향으로 소모했다.

힘을 탐닉하지 않고 행복을 좇는 용도로 사용했다.

허무밖에 남지 않는, 거짓 행복을 좇는 용도로....

“갸아아아악!!”

루나 카롤린의 등급은 레어에 불과하다. 형편없는 지적능력과 쉽게 손상되는 육체를 지녔다.

사자 창조의 과정이 순탄치 못했기 때문이었고, 아그너스가 위력이 아닌 형태에 집착한 결과이기도 했다.

“루나아!!”

하늘에서 쏟아진 불의 비를 견디지 못하고 고통 속에 타들어가는 루나 카롤린.

거짓으로 꾸며진 모습을 잃고 흉측하게 소멸해가는 괴물의 모습에 카라스군 병사들은 혐오를 느꼈지만 아그너스는 달랐다.

루나 카롤린의 꺼져가는 육신을 끌어안은 그는 과거를 체험하고 있었다.

백 번 죽어 마땅한 벌레들에게 욕보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연인의 마지막 모습과 이 순간 루나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뚝!

아그너스는 뭔가가 끊어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 오열하며 몸부림치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게도 차가운 표정을 지은 그가 주작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높이 솟은 어느 건물의 꼭대기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적발의 여자가 어렴풋이 보인다.

백 번 죽어 마땅한 놈이다.

“죽여....! 저 년을 죽여엇!!”

아그너스가 소리쳤지만, 현재 그가 운용하는 병력은 소수에 불과했다.

3천을 돌파했던 망자의 숫자는 고작 수백 단위로 떨어졌고 그마저도 카라스군 병사들에게 발목이 붙잡혀 있었다.

리치 무무드는 초왕이 직접 이끌어 나온 도사들의 부적에 방해를 받아 마법의 일부가 차단 됐다.

역소환 됐던 3기의 데스나이트는 아직 완전히 수복되지 않았으니 이제 믿을 구석은 하나뿐이다.

“쓸모없는 것들! 꺼져! 꺼져라!!”

발악하듯이 외친 아그너스가 수백 망자들과 리치 무무드를 역소환했다.

그리고 리치 무무드 이상의 지배권을 요구하는 전설의 암살자, 란스티어를 소환했다.

스파아아앗!!

등장과 동시에 어둠에 녹아든 란스티어가 수백 미터 바깥에 떨어져있는 객잔의 정상에 등장한다.

하지만 지슈카의 화살이 한 발 더 빨랐다.

이미 진즉부터 활시위를 당기고 있던 그녀 아닌가.

그녀가 연달아 쏜 화살 9발이 아그너스의 미간에, 그리고 또 미간에, 다시 또 미간에 연속적으로 꽂히자 생명력이 최소치로 떨어진 아그너스의 살이 녹아내렸다.

전설들의 불사와는 다른, 바알의 계약자의 고유 스킬이 발현되는 것이다.

“노옴!”

언데드로 변한 아그너스가 광분했다.

콰르르르륵!!

전장 곳곳에 뒹굴고 있는 뼈 조각들을 마법으로 모아 길을 만든 그가 그 위에 올라 날 듯이 이동했다.

그리고 객잔의 테라스에서 란스티어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지슈카를 범위에 넣더니 공격 마법을 폭격했다.

평소였다면 란스티어를 강화시켜 지슈카를 비교적 쉽게 제압했겠지만 지금의 그는 냉정한 판단이 아예 불가능했다.

Satisfy 최강의 대공방어 스킬 <우비>를 사용하는 것을 잊어 지슈카의 화살을 연속으로 허용할 정도로.

그만큼 연인을 잃은 분노가 컸다.

콰쾅! 쿠콰콰콰쾅!!

아그너스의 마법에 지슈카와 란스티어가 함께 휩쓸렸다.

객잔을 통째로 폭발시키는 위력적인 마법이 하필 란스티어가 단도를 쥔 오른팔 뼈를 부러뜨렸다.

기회를 놓칠 지슈카가 아니었다.

미리 설치해놓은 덫으로 아그너스의 전진을 막은 그녀가 란스티어의 허점을 파고들어 단도로 목을 그었다. 그리고 곧장 다시 거리를 벌리며 활을 속사했다.

화륵! 화르륵!!

지슈카는 주작의 가호를 받고 있다.

성스러운 힘이 깃든 그녀의 공격은 양쪽에서 계속되는 폭격에 혼선을 겪고 있는 란스티어에게 큰 상처를 입히기에 충분했다.

크악....! 크아아아!!

“쥐새끼 같은 년!!”

지슈카가 란스티어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자 초조해진 아그너스가 스스로 발목을 잘랐다. 그리고 덫에서 빠져나와 지슈카에게 쇄도, 칼을 휘둘렀다.

란스티어를 신경 쓰느라 미처 피하지 못한 지슈카는 어깨를 베이고 말았다. 그녀의 상처부위가 순식간에 썩어 들어갔다.

“죽인다! 기필코 죽인다!!”

아그너스는 웃지 않았다.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집요하게 지슈카를 쫓았다.

지슈카는 여전히 란스티어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뒤를 안배하지 않고 모든 회피기를 소모하며 그리드제 미스릴 화살을 란스티어에게 쏟아 부었다.

푹! 푸푹!!

키야악....!

란스티어.

지금은 비록 데스나이트로 전락했다지만 그의 격은 전설이다.

전대 바알의 계약자 파그마와 당대 바알의 계약자 아그너스가 그를 탐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도박이 먹힐지 모르겠네.”

푸욱!!

끝까지 쫓아오는 아그너스의 칼에 심장을 꿰뚫리며,

피잉-!

애써 미소 지은 지슈카가 한껏 당기고 있던 활의 시위를 놓는다.

쩌엉!!

란스티어의 두개골이 박살난다.

[전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

지슈카의 심장에 더욱 깊숙이 칼을 쑤셔 넣던 아그너스의 전신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의 칼끝에서 꺼져가던 생명이 다시금 활력을 되찾은 것을 느낀 것이다.

[전설의 궁수가 탄생하였습니다!]

한 줄의 월드 메시지가 지슈카와 아그너스의 희비를 교차시켰다.

***

전설의 궁수가 탄생하기 약 2분 전....

“그리드 사마!! 그리드 사마앗!!”

로드의 과외를 끝낸 후에도 떠나지 않고 템빨국에 머물던 데미안이 그리드를 찾아왔다.

그리드가 탈리마로 떠나기 전 나눴던 약속을 잊지 않은 것이다.

“아이템....! 아이템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드디어 찾았다.

그리드를 발견하고 희열에 찼던 데미안의 얼굴이 곧바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곁에 맴돌고 있는 투명한 검을 보고 어떤 불안을 느낀 것이다.

그리드가 환하게 웃었다.

“마침 잘 왔네. 이거, 위력 테스트 좀 도와주라.”

“.....”

단단한 게 죄냐.

눈물 지은 데미안이 온갖 버프 스킬을 몸에 두르기 시작했다.

국가대항전에서 세상을 질리게 만들었던 <좀비 마왕>이 태동하는 것이었다.

“예전하고 달라요. 이제 저는 쉽게 쓰러지지 않습니다.”

1분 뒤.

大자로 뻗은 데미안은 전설의 궁사가 탄생했다는 월드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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