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60권 - 05화
‘별 미친....’
템 만들다가 대장간을 무너뜨리다니?
발리우드급 연출 효과다.
이쯤 되면 S.A그룹 개발진의 정신세계가 의심스럽다.
‘무서워서 대장일 하겠냐?’
용광로의 폭발에 휩쓸리면서, 그리드는 근심했다.
‘드래곤의 비늘부터가 진짜 문제겠군.’
염룡의 숨결이 깃든 화석은 드래곤의 숨결이 만든 외적 부산물 음, 일종의 분비물에 불과하다.
반면 그리드가 지혜의 탑에서 가져온 드래곤의 비늘은 드래곤의 신체 일부였다.
화석보다 비늘의 가치가 높은 것이 당연했고, 제련 난이도 또한 훨씬 더 높을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다른 게임을 보면 알기 쉽다.
보통 게임은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갑옷이 최종템으로 등장한다.
Satisfy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늘은 나중에 산속 깊은 곳에 틀어박혀서 제련하도록 하자.’
비늘을 제련하다간 도시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닐지 걱정이다.
에고 아이템 제작기술도 배웠겠다, 화석을 제련한 이후 곧장 비늘까지 제련할 계획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실력에 조금 더 확신이 필요하다.
잠재력 개방을 쓰지 않고도 <신에 필적하는 대장장이 기술>을 뽐낼 수준으로 성장해야한다.
즉, 대장기술의 레벨을 더 올려야한다는 뜻.
‘....가만?’
신묘한 보자기를 펼쳐 폭발을 막아내는 그리드의 뇌리에 어떤 생각이 번뜩였다.
그리드는, 도박을 걸었다.
[잠재력 개방을 해제합니다.]
[<신에 필적하는 대장장이의 기술>이 <眞-(신과 대적하는)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 마스터 레벨로 회귀합니다.]
화석의 제련 막바지 단계에 이르러서 본인의 잠재력을 강제로 억누른 것이다.
벽에 막혀있는 대장기술의 경험치를 끌어올려 벽을 넘겠다는 의도였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염룡의 숨결이 깃든 화석은 무려 신화 등급의 재료.
또한, 험난한 제련 과정을 어떻게든 잘 극복해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봤을 때, 잠재력을 억누르더라도 새로운 신검은 신화 등급으로 완성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본연의 기술로 승부를 봐야할 타이밍이다.’
<眞-(신과 대적하는)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의 벽을 넘어설 기회다.
그리드는 판단했고, 그렇기에 본인의 진짜 실력으로 작업의 마무리를 진행했다.
따앙! 따앙!
드디어 고체로 변한 화석을 검으로 가꿔나갔다.
탐욕을 섞어 강도를 높이고 손잡이까지 만들었다.
탈부착이 가능한 손잡이였다.
만약 검에 에고가 깃들지 않을 경우, 부득이하게 <땡기미>에 의존해야할 테니까.
결과는.....
[<염룡검>의 제작을 완료하였습니다.]
[신화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하여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하고 대륙 전역 명성이 1,000 오릅니다.]
기대 이상이었다.
[신화 아이템을 총 12개 제작하여 히든 피스가 발생합니다.]
[히든 피스의 효과로 플레이어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 <眞-(신과 대적하는)전설적 대장장이의 기술> 마스터 레벨이 <신에 필적하는 대장장이의 기술>로 진화합니다. !!]
“.....!!”
전율.
12번째 신화 등급 아이템을 제작하고서야 드디어 벽을 뛰어넘은 그리드가 감격에 몸을 떨었다.
-염룡에게도 굴복치 않은 나를 굴복시킨 인간이여. 그대가 멸한 후에도 나의 주인은 오직 그대뿐이리.
매일 24시간 듣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아름다운 목소리가 그리드의 마음을 한층 더 들뜨게 만든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콰르르르릉!!
염룡검을 휘둘러 브레스를 쏘아낸 그리드가 붉은 하늘을 등지며 인사한다.
염룡검은 붉게 물든 검신을 다시 투명하게 물들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어 마음을 진정시킨 그리드가 염룡검의 상세 정보를 불러왔다.
<염룡검>
등급:신화
내구력:무한 공격력:4,830
*일반 공격 시 무조건 화염(大)를 방출.
*공격 대상의 화염 저항력을 최소 20퍼센트에서 최대 100퍼센트까지 감소.
★물리 공격력을 화염 속성 마법 공격력으로 변환 가능.
★화염 속성으로 분류되는 스킬의 데미지를 2배 증폭.
★일반 공격 시 5퍼센트의 확률로 <염룡의 브레스>를 전개.
★탐욕에 스며든 서사시의 내용과 부가 효과를 모두 공유.
★스킬 ‘거짓 용언’ 생성.
대장장이의 신 헥세타이아와 필적하게 된, 그러나 헥세타이아의 질투를 사지 않는 대장장이 그리드의 역작입니다.
염룡 트라우카조차 굴복시키지 못했던 고고한 화석을 제련하여 칼날을 벼르고 탐욕으로 강화하였습니다.
무게:2,750
사용 조건:그리드
★이 아이템의 소유권자는 영구히 변하지 않습니다. 오직 플레이어 그리드의 곁을 맴돌 것이며 그리드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파괴 불가. 분실 불가. 양도 불가.
<염룡의 브레스>
염룡의 브레스의 위력을 일부나마 재현합니다.
표적이 된 대상에게 80,000의 고정 데미지를 입히고 대상과 대상의 반경 10미터에 있는 모든 존재에게 마법 공격력의 500퍼센트에 해당하는 폭발 화염 데미지를 추가로 입힙니다.
자원 소모:없음
재사용 대기 시간:없음
<거짓 용언>
에고의 음성이 염룡의 용언을 재현합니다.
높은 확률로 대상을 구속합니다. 구속 된 대상은 이동이 불가능해지고 이동 관련 마법과 스킬의 사용이 봉인됩니다.
자원 소모:없음
재사용 대기 시간:3분
★에고 아이템입니다.
긴 세월 동안 염룡의 숨결을 견뎌낸 자신을 굴복시킨 주인에게 경외심을 느낀 에고가 당신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에고에게 당신은 드래곤보다 더 위대한 존재입니다.
*용족과 조우 시 <일회용 절대방어> 활성화. 재사용 대기 시간 24시간.
*용족을 상대로 공격력 20퍼센트 상승.
*용족 처치 시마다 염룡검의 공격력이 1 상승. (영구 적용)
“.....”
침묵하는 그리드의 피부 위로 소름이 돋는다.
기대 이상인 염룡검의 위력이 그를 자꾸만 오싹오싹하게 만들었다.
8만의 고정 데미지.
예전부터 단일 대상에게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무기를 갖고 싶었던 그리드의 입장에서 <염룡의 브레스>는 정말이지 환영할만한 힘이었다.
두 가지 아쉬운 점은 염룡의 브레스가 평타에만 작용된다는 점, 그리고 열망의 무아검과 달리 한 가지 속성에만 특화됐다는 점이지만....
‘한 가지 속성에 특화됐다는 건 강점이기도 해.’
화염 저항력이 낮은 대상은 염룡검 앞에서 엄청난 무력감을 맛볼 것이다.
절대적인 존재들조차도 말이다.
그리드가 염룡검의 정보를 음미하고 있을 때였다.
[당신의 작품이 천상의 신들에게 포착되었습니다.]
[천상의 신들이 <드래곤 웨폰>을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합니다.]
[대장장이의 신 헥세타이아가 천사들과 함께 팡파르를 울립니다.]
[드래곤의 목을 베기를 꿈꿔온 무신 제라툴이 탐욕을 품습니다.]
[빛의 여신 레베카가 미묘한 표정으로 침묵합니다.]
‘빌어먹을.’
그리드의 입장에선 껄끄러운 알림창이 연달아 떠올랐다.
사실 그리드는 천상의 신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특히 호전적인 제라툴과 속내를 알 수 없는 레베카에게 큰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
그 마음을 읽은 것일까.
[대장장이의 신 헥세타이아가 유두의 불꽃으로 폭죽을 터뜨립니다. 천상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폭죽이 다른 신들의 원망을 삽니다.]
“.....”
그리드에게 집중됐던 신들의 시선이 분산 됐다.
덕분에 숨통이 트인 그리드가 염룡검과 함께 만든 붉은 칼집에 염룡검을 쑤셔 넣고 허리에 채웠다.
이어서 거리의 대장장이들과 백성들을 쓱 둘러보더니 걸음을 옮겼다.
대장장이들과 백성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리드를 뒤쫓아 걸었고 행렬은 점차 커졌다.
그리드의 목적지는 헥세타이아의 신전이었다.
헥세타이아의 동상 앞에 무릎 꿇고 앉은 그리드가 강철 몇 개를 꺼내놓고 기도를 올렸다.
“대장장이의 신이시여. 당신의 가호가 있었기에 염룡검을 만들 수 있었나이다.”
신격은 인간의 서원을 통해서 쌓인다.
더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신의 힘을 강하게 만든다.
화르륵!
그리드가 동상 앞에 놓은 강철들이 불타 사라졌다.
헥세타이아 신에게 공물로 바쳐진 것이다.
이날.
그리드가 올린 기도의 영향으로 헥세타이아 신을 믿는 신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템빨국의 백성들은 모두 그리드를 존경했으므로 그리드가 섬기는 신을 믿는 게 당연했다.
헥세타이아 신의 힘과 영향력은 점점 더 강해졌고 헥세타이아 신의 성장이 즉 그리드의 안전을 지키는 힘이었다.
***
첫날.
“대략 1천인가....”
지슈카는 도시 곳곳에서 기어 나와 사람들을 습격하는 망자들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딱히 나서서 사람들을 돕지 않았다. 아그너스에게 괜히 자신을 노출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힘들어 보이네.”
지슈카는 첫째 날과 마찬가지로 관망하기를 선택했다. 전날과 달리 크게 지친 초국의 군대에서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인내했다.
셋째 날.
“손님! 손님! 조심하세요!”
지슈카는 객잔까지 침입해온 망자들을 요격하며 농성했다. 바깥 상황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넷째 날.
“지원군은 더 없는 건가....?”
첫날과 비교해서 2배 이상 늘어난 망자들의 숫자와 그만큼 줄어든 카라스의 병력을 파악한 지슈카는 슬슬 초조함을 느꼈다. 하지만 나서지 않았다.
다섯째 날.
“2층으로 물러나죠. 계단을 막아요.”
“하, 하지만....”
“무리해서 싸울 필요 없어요. 어차피 날이 밝으면 사라질 놈들이니까.”
“으, 으으.... 내 가게.... 내 돈....”
지슈카는 객잔을 습격하는 망자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음을 파악했다. 아그너스가 이곳을 주시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일부러 활약하지 않고 자신을 숨겼다.
여섯째 날.
“뒷집 개똥이네도 아침이 되자마자 짐을 싸서 도망쳤어요. 저도 떠나야하는 걸까요?”
어린 점소이가 훌쩍였다.
카라스의 백성들 중 상당수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병사들이 매일 밤마다 용맹하게 싸워왔지만 피로가 쌓여 슬슬 한계인 듯했다.
하지만 지슈카는 나서지 않았다.
다만 점소이의 등을 토닥이며 약속했다.
“오늘부터 어머니와 함께 이 방에서 자. 누나가 지켜줄게.”
일주일이 지난 날.
우오오오오.
고오오오오오.
밤의 거리에 울려 퍼지는 망자들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음산했다.
테라스에 기대어 선 채 거리를 주시하던 지슈카의 눈동자가 태양처럼 이글거렸다.
“드디어 나왔네.”
저벅, 저벅, 저벅.
폐허가 된 도시의 거리를 유람하듯 걷는 녹발의 사내.
수천 망자를 거느린 녀석의 뒤통수를 드디어 포착한 지슈카가 활 시위를 당겼다.
“날아오르라!”
화르르르르르르르륵!!
밤의 어둠에 삼켜졌던 불꽃이 부활한다.
하늘에 떠오른 주작이 수천 망자들을 잿빛으로 산화시켰고 아그너스의 분노에 찬 시선이 지슈카에게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