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59권 - 19화
에고 아이템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자아 부여 스킬을 활용하는 방법.
오직 파그마와 그리드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대상 아이템’에 원하는 영혼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활용도가 무척 높아 원하는 결과물을 손에 넣기 쉽다.
하지만 윤리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탓에 그리드는 이 스킬을 봉인해왔다. 또한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다는 아주 큰 단점이 있었다.
둘째, 특정 행동으로 아이템에 감정을 부여하는 방법.
‘제작 중인 아이템’에 모욕을 주는 등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아이템을 자극해서 마이너스 감정을 주입하는 방식이다. 성공률은 높지 않다.
현재 플레이어 사이에서 유통되는 소수의 에고 아이템이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제조한 에고 아이템이며 높은 시세에 비해 가치는 낮았다.
에고 아이템의 대표적인 특징은 자립적 운동능력과 사고능력, 그리고 의사소통 능력인데 이런 방식으로 제조한 에고 아이템은 자신이 품은 감정에 기인한, 아주 제한적인 사고능력만을 갖추기 때문이다.
<통한의 가시>로 예를 들면 쉽다.
통한의 가시는 제작자에게 해를 끼치고 싶어 한다. 그게 사고의 전부다. 자립적으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사실 에고 아이템의 범주에 넣기엔 무리가 있을 지경.
[<갓 핸드>의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드디어 손에 넣은 완성품을 바라보며 그리드는 확신했다.
에고 아이템을 제작하는 마지막 세 번째 방법.
에고 아이템 제작기술.
이 드워프산 기술만이 진정한 에고 아이템을 창조하는 궁극의 방법이다.
<갓 핸드>
등급:레전드리(성장형)
내구력:무한
신화가 되어가고 있는 그리드가 <탐욕>을 재료로 창조한 아티팩트입니다.
그리드 본인의 손을 고스란히 본떠 만들었으므로 모든 아이템을 제약 없이 착용, 사용할 수 있고 대장일 또한 가능합니다.
그 경이로운 성능에 놀란 대장장이의 신 헥세타이아가 탐내고 있습니다.
*주인의 순수 근력과 손재주 수치를 40퍼센트 적용받습니다.
*주인의 ‘고유 스킬’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단, 스킬의 위력은 25퍼센트로 제한되며 스킬 사용 시 주인의 마나를 소모합니다.
하지만 착용한 아이템에 귀속된 스킬들은 자원 소모 없이 완벽하게 발현합니다. 버프 스킬을 사용할 경우 영향을 주인에게 줍니다.
*고급 대장장이 기술을 마스터하고 있습니다.
*고급 웨폰 마스터리와 실드 마스터리를 마스터하고 있습니다.
....
...
등등.
등급에 따른 수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새로운 갓 핸드의 상세정보는 기존의 갓 핸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에고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였다.
기존의 갓 핸드는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인다.’는 에고의 지극히 기본적인 특성을 지녔을 뿐인 반면,
★에고 아이템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탄생시킨 주인의 모습에 감명 받은 에고가 당신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에고는 당신을 닮고 싶어 합니다. 험난한 시련을 마주할수록 더 큰 의지를 불태워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주인의 생명력이 하락할수록 이동 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주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시 일시적으로 <용맹> 상태에 돌입하여 근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주인에게 사용하는 버프 스킬의 효과가 20퍼센트 상승합니다.
“....!!”
자립적 운동능력과 사고능력, 그리고 의사소통 능력까지 겸비한 완전체.
심지어 주인과의 교감을 기반으로 삼아 여러 개의 스킬까지 개화한 갓 핸드를 마주본 그리드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전율하고 있었다.
모든 플레이어가 환상으로 치부했던 궁극의 에고 아이템을 탄생시켰으니 감격하는 게 정상이었다.
짝. 짝짝짝.
잠시 여운에 잠겨있던 그리드가 누군가의 박수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앙트리노의 모습이 보였다.
“훌륭하군. 아주 훌륭해. 아름다운 작품에 올곧은 영혼이 깃들었으니 이보다 큰 경사가 또 있겠나? 과연 명불허전일세. 자네는 모든 대장장이의 귀감이며 탈리마의 자랑이야.”
헥세타이아 신에게 인정받은 대장장이가 탄생시킨 최고의 작품.
그가 이번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탈리마의 가르침 덕분이다.
그리드의 업적이 곧 탈리마의 자랑이었다.
“우와아아아아!!”
역시나.
탈리마의 대장장이들은 그리드만큼이나 기뻐하고 있었다.
수천 명의 드워프가 열렬히 환호하며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쳤으니 그리드의 미소도 밝아졌다.
그리드는 템빨국과 탈리마의 관계가 생각보다 더 깊어질 수 있음을 직감했다.
물론 염룡 트라우카가 없어야한다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말이다.
***
“오오. 오오오....”
요람.
인공 정령과 골렘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탈리마의 대규모 연구시설이다.
그곳에 정령과 골렘의 운동능력을 테스트하는 실험장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그리드가 연신 감탄을 토했다.
초롱초롱 빛나는 그의 눈동자에 갓 핸드의 묘기가 투영되고 있었다.
복잡한 구조의 실험장 내부를 자유자재로 이동하며 장애물을 돌파하고 함정을 회피하는 갓 핸드의 움직임은 실로 민첩했다. 상황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속도가 빨라 운동능력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또한 고도의 지능을 요구하는 속임수들을 대부분 간파해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칼날 비를 피한답시고 슬라임 구덩이에 빠져서 추진력을 잃기보다 단단한 내구력을 앞세워 칼날 비를 주파, 최단의 경로로 보호 대상의 곁으로 도달한 녀석이 닥쳐오는 위기로부터 보호 대상을 구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5분 47초.
“인지능력과 운동능력 모두 최상급이군.”
요람의 책임자 벨벳이 평가했다.
“인간으로 치면 천재요. 어떤 명령이든 완벽하게 수행할 것이고 명령이 없더라도 적절히 판단해서 행동하겠지.”
듣지 않아도 안다.
그리드는 새로운 갓 핸드의 수준이 기존의 갓 핸드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음을 이미 알아보고 있었다.
‘역시 정답이었어.’
여제의 영혼에 집착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주인의 안전을 최우선하며 싸웠던 기존의 갓 핸드는 방어능력만큼은 신뢰할만 했지만 전반적인 판단 능력이 다소 아쉬웠다. 특히 강적을 상대할수록 갓 핸드의 자체 판단 능력만으로는 상대방을 위협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드가 세부 명령을 실시간으로 직접 전달해야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그리드의 사고력에 과부하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전투가 치열해질수록 갓 핸드의 활약이 저조했던 이유이자 그리드가 갓 핸드의 수량을 늘리지 못했던 이유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최상급의 에고를 지닌 갓 핸드는 그리드가 굳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정도의 지성을 갖췄다.
앞으로 그리드는 꾸준히 새로운 갓 핸드를 제작할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 이르러서는 최상급의 에고를 지닌 갓 핸드를 수십, 수백 개 거느릴 계획이었다.
물론 몇 년이 지나도 이룰 수 없는 목표일 수도 있었다.
에고가 쉽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정작 깃든 에고의 수준이 낮을 수도 있으니까.
‘분명 욕 나올 때도 많겠지.’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리라.
갓 핸드의 재료가 되는 탐욕은 무한하며, 그리드는 어떤 시련이라도 이겨내는 집념의 사나이다.
그리드와 탐욕의 조합은 최강이었다.
그리드는 언젠간 반드시 목표를 이룰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대신 비행요새의 건조는 기약 없이 미뤄지겠지만.’
워낙 규모가 큰 프로젝트인지라 애초부터 기약이 없었다. 시기를 더 미룬다고 해서 아쉬움을 느끼기엔 무리가 있다.
“정령왕급인가?”
그리드를 요람까지 안내해온 앙트리노.
팔짱 낀 채 갓 핸드의 성능을 구경하던 그가 벨벳에게 질문하자 벨벳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과연 대단하군....”
그리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령왕이라뇨?”
“진짜 정령왕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다섯 기의 최상급 인공 정령을 지칭하는 표현일세. 만마전에 봉인할 수밖에 없었던 치부, 탈리마의 수치와 달리 그 다섯 기의 인공 정령은 온갖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탈리마의 수호자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네. 한데 자네가 만든 저 손이 그와 동격이라고 하는군.”
“그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까?”
그리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앙트리노에게 경칭을 쓰고 있었다.
요람의 책임자 벨벳을 포함한 탈리마의 모든 드워프가 그를 깍듯이 대하는 모습을 통해서 앙트리노의 나이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앙트리노의 태도부터가 호의적이기도 했고.
“정령왕들은 이제 탈리마에 없다네.”
“네? 왜요?”
도대체 얼마나 굉장한 인공 정령이기에 정령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단 말인가....
한껏 기대했던 그리드가 당황했고 앙트리노는 쓴 미소를 지었다.
“염룡에게 공물로 바쳤거든. 지금쯤이면 염룡의 둥지를 청소하느라 바쁘겠군.”
“.....”
탈리마가 트라우카로부터 안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그리드가 예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트라우카는 어쩌다가 이곳에 둥지를 지은 겁니까?”
드워프는 미치지 않았다.
굳이 트라우카의 둥지 근처에 찾아와 나라를 세운 게 아니다.
본래 이 화산의 주인은 드워프였고, 불청객은 트라우카였다.
앙트리노가 어깨를 으쓱였다.
“염룡의 원래 둥지가 광룡과 싸우다가 파괴된 것 같더군. 그걸 기회로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용암이 흐르는 이곳으로 이사한 거고. 방금 들었다시피 우리는 비굴하게 연명할 수밖에 없었네.”
벨벳이 한숨 쉬었다.
“가장 뜨거운 용암이라.... 한때 그랬던 적이 있었죠.”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까?”
“예, 트라우카가 산의 화기를 모조리 흡수하는 바람에 용암의 열기가 약해졌습니다. 그 탓에 성의 화로의 출력이 줄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야기됐고.”
‘성의 화로? 아.’
케롤에게 들었던 적이 있다.
탈리마에는 어떤 광물이든 녹여서 에너지로 삼는 메인 용광로가 있는데 그것이 재기능을 못하게 됐다던가.
“이걸 쓰면 어떨까요?”
인벤토리에서 장작 하나를 꺼낸 그리드가 그것을 벨벳에게 건네주었다.
하얀 나무.
바로 백린목이었다.
용암의 열기 자체가 낮아진 마당에 장작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의아해하던 벨벳이 백린목을 자세히 살펴본 후 기함했다.
“이, 이건 설마 동쪽에만 있다는...? 이 귀한 나무를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당연히 동대륙에서 구해왔죠.”
“허....! 바깥세상이 많이도 변했나보군요. 적해를 건너 대륙 간 교류가 가능한 시대가 왔다니.... 이거 어쩌면 우리의 염원이....”
백발을 쭈뼛 세운 벨벳이 감탄을 거듭하는 와중에 앙트리노가 찬물을 끼얹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리드 저자가 별개로 동대륙을 다녀온 거겠지.”
“네, 맞습니다.”
“허허, 양반이라는 놈들이 힘 좀 쓴다고 들었는데 자네에게 신물을 빼앗긴 걸 보니 자네 상대는 아니었나보군.”
“저보다 강한 양반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백린목은 신물치고 워낙 흔하기도 해서....”
그리드가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작궁을 통해 백린목을 알게 되고 백린목을 패기 위해 도끼를 만들기까지 겪었던 이야기들 말이다.
“....그래서 그때 백린목을 꽤 많이 구해왔죠.”
그리드는 이야기를 그만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내 흥미롭게 듣던 앙트리노와 벨벳이 뒷내용을 요구했다.
“주작궁 제작 승부는 어떻게 된 겁니까?”
“제가 이겼습니다.”
“오오, 역시 헥세타이아 신께 인정받은 대장장이답습니다!”
“주작궁을 만든 뒤에는? 양반 놈들이 순순히 진품으로 인정해주던가?”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요?”
“아마라니? 승부가 끝나고 양반들에게 평가 받은 게 아니었나?”
“네, 그 자리엔 양반들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전 그 직후에 사악한 도사하고 엮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사악한 도사? 그놈은 또 누구였지?”
드워프는 부지런하다고 소문났다. 여가 생활도 없이 일만 한다고 들었다.
한데 앙트리노와 벨벳은 그리드의 이야기를 듣겠답시고 돗자리까지 깔 판이었다.
“....두 분은 일 안 하십니까?”
“지금 일 하고 있잖은가? 자네에게 탈리마를 안내하고 호위하는 게 내가 맡은 임무니까.”
“전 이곳 요람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으므로 요람에 있는 게 일이지요.”
“....”
그게 그렇게 되나?
묘하게 납득한 그리드가 다시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대륙에서 겪은 일들을 천천히 풀어놓으며 요람의 모든 시설을 견학하고 인공 정령과 골렘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탈리마에 백린목을 제공하는 대가로 인공 정령을 주기적으로 공급받기로 협약을 맺은 후 앙트리노의 안내를 받아 엘리테르 광산으로 향했다.
이때 벨벳은 그리드를 배웅하며 흥미로운 말을 꺼냈다.
“참고로 탈리마의 수치의 에고 등급은 측정이 불가능했었습니다.”